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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중국 선종사 서론
선종의 출현
종교宗敎의 기원을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인류가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 번개나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 그리고 짐승들의 습격, 외적의 침략 등 불확실한 미래가 그 시초라고 한다. 인류는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든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최초의 종교 형태인 심령心霊 신앙 혹은 예배의 일종인 “샤머니즘Shamanism”,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혼이나 영을 부여하는 정령신앙精靈信仰인 “애니미즘 精靈信仰Animism”, 그리고 동물이나 자연물 또는 상징물 등과 관계를 맺는 “토테미즘Totemism” 등으로 나타난다. 한편 이러한 형태의 종교를 가진 집단이 없는 집단보다는 유리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어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 순서로 진화했다. 어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가 내세나 종교가 없는 것이 확실하므로, 종교는 영장류와 인간 사이 어디선가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정확히 언제라고 지적할 수 없지만 그사이 언젠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인들이 주장하듯이 종교가 시작도 없는 태초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천부당만부당하다. 그리고 어류 파충류는 지도자 없이도 아쉬움이 없어 보이므로 지도자에 대한 의지(依支) 역시 파충류와 포유류 중간 어디선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강병균,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종교가 참일 확률은?」[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2, 불교닷컴.『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 : 큰스님, 왜 이러십니까? 환망공상의 수상록.)
농경農耕시대로 접어들면 인구가 늘어나면서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게 된다. 사회가 복잡해지자 종교는 사회 보호 장치로서 혹은 강제장치로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종교가 모습을 갖추게 되면서 이를 주도하는 집단이 생겨나게 되어, 종교도 사회체제의 하나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들 집단들은 어느 정도의 권능과 함께 사회적인 책임 또한 갖게 된 것이다. 문자의 발명으로 지식이 쌓이게 되자, 종교는 한층 더 체제體制를 공고히 하게 되었고, 정치권력과 결합하여 신분이 높은 종교적 지도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1) 종교심의 발생
종교심리학(宗敎心理學, Psychology of Religion)은 인간 주체들의 종교적 경험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연구 관찰하는 학문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 축적되어 있는 다양한 종교전통의 발생과정과 이들과 관계 맺고 있는 인간들의 집단심리, 그리고 그 전통에 참여하는 신앙인들의 경험적 차원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종교심리학은, 종교적 의식이나 종교적 행동에 대한 연구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연구로 선회하는 추세다. 보다 절실하고 실재적인 인간의 문제, 수행을 통한 마음의 평화나 인간의 자각, 그리고 깨달음의 체험이나 “회심回心” 등을 다루고 있다. 또, 신비주의와 같은 심층적 종교 체험에 대한 논의나 영적靈的 사회운동인 “뉴에이지 혁명”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럼 한 개인에게 있어 종교심의 발생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일본의 선객이자 선학자인 스즈키 다이세츠1 는, 인간은 “자기분열自己分裂”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종교심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어떠한 급격한 마음의 변화가 종교적 의식을 싹트게 하는데, 갑자기 병이 들거나 혹은 사업에 실패하였을 때, 어떤 장애를 만나서 마음의 평정의 깨어졌을 때 생겨난다는 것이다
자기분열은 이렇게 생애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경우나 정신적 동요가 일어났을 때 경험하지만,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한 번은 겪게 되는 “자기인식自己認識(Self Awareness)”으로부터도 발생한다. 자기인식이란 “자기이해” 혹은 “자기성찰” 등을 뜻하는데,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 등 자기가 느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공자의『논어(論語)』중에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갖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공자가 열다섯 살에 비로소 이 ‘있다’와 ‘있고 싶다’와의 양자 사이에 있는 모순을 깨달은 것을 말하며, 그로부터 점차 깊이 내성적(內省的) 경험의 세계로 들어간 것을 의미하고 있다. 요사이 심리학자의 설에 의하면 남자는 평균 열다섯 살 정도, 여자는 열세 살 정도에서 이 정신적 동요를 느끼기 시작한다고 한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 17.)
아주 어릴 때는 자기를 의식하지 않다가, 자라면서 자기분열은 자연스레 경험하게 된다. 당면한 현실과 자기가 요구하는 것의 차이, 즉 ‘있다’와 ‘있고 싶다’가 충돌하게 되면서 생긴다. ‘실재하는 나’와 ‘내면의 나’ 사이에 괴리乖離, ‘현실 속의 나’와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생각 속의 나’ 사이에 모순이 생기면서 자기분열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자기분열은 대개 괴로움으로 표출되는데, 사람들은 그 괴로움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에 부딪혀 종교에 의지하게 되고, 더러는 종교지도자를 따라 수행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던 세계’와 ‘보이는 대로 보는 세계’ 사이의 경계선에 서게 되어, 비로소 자기를 “관조觀照”하는 시기로의 진입을 예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관찰하고 들여다보게 되면서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될 뿐 아니라 종교심 또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2) 종교와 지식知識의 관계
스즈키 다이세츠는 자기분열을 구제할 방법으로 종교를 지목하면서 종교를 “지적종교知的宗敎”와 “정적종교情的宗敎”로 구분하였다.
우리에게 이 분열이라고 하는 것을 구제할 방법이 있는가 없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두 가지 방법을 들면, 하나는 지적 종교(知的宗敎)에 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적 종교(情的宗敎)에 의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불교는 지적이며 그리스도교는 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불교 중에서도 선종(禪宗) 같은 것은 그 지적인 방면을 대표하며 정토종(淨土宗)이나 진종(眞宗) 등은 그 중에서도 정적인 방면을 대표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구별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지적인 것 안에 정적인 것이 있고, 정적인 것 안에 지적인 분자가 있는 것이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 20.)
논자는 이어 지적종교에서는 회심을 ‘오도悟道’라고 하고, 정적종교에서는 회심을 ‘안심安心을 얻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회심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지식知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분열을 구제하고, ‘사실의 세계로부터 탈출하여 완전한 가치의 세계’로 진입하려면, 전체를 달관하는 데 필수적인 “이지理知”, 즉, 이성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관계되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곳에 지식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종교 그 자체에 지식은 필요가 없지만 그러나 거기까지 들어가는 전제로서, 또 종교 그 자체의 참다운 활동을 시작하기까지는 아무래도 지식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p. 22~23.)
선종禪宗은 표면적으로는 지식을 배척하는 입장이지만, 불교는 원래 지적인 종교인데다 선종은 특히 지식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조사들의 선어록을 읽고, 그것으로부터 추출된 공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수적인 것이다. 조사들의 깨달음의 체험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기 위해서는 듣고, 읽고, 배우는 전단계가 필요한 것이다.
한편 지식을 필요 없을 것처럼 보이는 타력종他力宗에서도 지식은 필요하다. 소위 ‘지식을 배척하는 곳’까지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종과 마찬가지로 지식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논자는, 모르면 배척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지식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거나 혹은 이미 ‘회심을 한 사람’들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지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가? 논자는 싯다르타의 경우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함경(阿含經)』은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여 드디어 삼보리(三菩提)를 깨달아 도를 깨쳤다고 하는 사실을 설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경지까지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처도 ‘사체(四諦)와 십이인연(十二因緣)’이라고 하는 고된 수련이 없었다면 회심도 오도도 불가능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 23.)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사제(사성제四聖諦, 사진제四眞諦)와 십이인연’이라는 고된 수련이 필요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제나 십이인연이 수련법이 아니고 불교의 기본교리이기 때문에 그 뜻이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그의 견해와 경전의 실제 상황을 비교해 보면, 사제나 십이인연을 깨닫는 과정이나 좌선과 사색, 혹은 사유를 통하는 지적인 과정, 모두를 수련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3) 사유思惟는 지식知識이다
인도의 요가Yóga나 명상(冥想, Meditation) 혹은 선禪 등은 호흡을 중요시한다. 물론 좌법과 정신집중도 중요한 요소이다. 호흡을 조절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고 몸을 건강하게 하며, 나아가서는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함이다. 정신이나 육체를 회복하고,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하며, 호흡과 정심집중을 통해 신들과 영성을 교류하고, 대자연과 합일을 이루며 진실한 자아를 탐구하였던 것이다.
싯다르타 역시 출가 후 마가다국으로 가서 두 사람의 선인仙人을 만나 명상을 배우게 되는데, 알라라칼라마Āḷāra-kālāma로 부터는 무색계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다음 우다카 라마푸타Uddaka Rāmaputta로 부터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익히게 된다. 이 수행법은 ‘일종의 정신통일로 삼계三界에서 가장 높은 계위로 올라가거나 혹은 그곳에 태어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싯다르타는 이런 수행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졌던 본질적인 문제, 소위 “사문유관四門遊觀”에 대한 의문을 풀 수는 없었다. 그들과 추구하는 목표가 달랐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현실적인 문제에 매달린 까닭일까? 어쨌든 기존의 수행법으로는 현실의 자기 문제인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깨닫는다. 이에 싯다르타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해답을 구하는 것을 단념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부다가야 부근 숲으로 가서 당시 출가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고행苦行 수행”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고행 수행은 고대 인도에서 유행하던 수행법으로, 소위 육체적인 면의 극소화를 통하여 정신의 독립을 구하는 수행법이다. 당시 인도의 수행자들은 몸과 마음을 이원적으로 보고, 자유로워야 할 ‘영혼(마음)’을 ‘육체(몸)’가 구속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몸이 있어 생사가 있는 것이므로, 몸을 학대하는 고행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싯다르타도 하루에 깨 한 알과 쌀 한 알씩을 먹는 고된 수행으로, 신체가 해골처럼 되어 죽기직전까지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기존에 존재하던 다양한 수행들을 경험하였고, 몸과 마음을 따로 보는 이원적二元的 극단론에 근거한 고행 수행 또한 6년간이나 전념하였다. 그러나 의문을 풀 수도, 해탈을 이룰 수도 없었다. 그러자 그는 니련선하尼連禪河(Nairanjananati) 강으로 가 몸을 씻고, 보드가야 우루빈라優樓頻螺(Uruvilva) 마을 보리수菩提樹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사색思索” 혹은 “사유思惟”에 들어간다. 그동안의 수행을 정리하고 자신이 가진 의문을 다시 끄집어내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불교 창시자가 요가를 수행하고 체험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고대의 전기에 의하면 추측상 상카(Samkhya) 철학을 신봉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두 사람의 요기가 집을 떠난 뒤의 석가모니의 고행생활을 지도했다고 한다. 6년 동안 석가모니는 요가에서 가르치는 엄한 고행과 명상수련을 몸소 닦았지만 이 방법으로는 그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전설은 또 석가모니가 그의 성도(成道)와 열반(涅槃 : Nirvana)이라는 두 가지 큰 대목에서, 요가에서 알려져 있는 네 가지 명상단계[四禪定]을 거쳤다고 전하고 있다. (하인리히 두몰린/박희진 옮김, 다르마 총서 12『禪과 깨달음』p. 34.)
마귀들이 나타나 이를 방해하였으나 동요하지 않았고[망상과의 싸움], 깨닫지 못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불퇴심不退心의 정신으로 정진하여 마침내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깨달음을 정각(正覺 Abhisambodhi, Enlightenment), 즉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한다. 그동안의 수행이 뒷받침되었겠지만, 싯다르타는 결국 스스로 행한 깊은 사유를 통해 ‘연기緣起’의 법칙을 유추해 내었고, 이로써 그의 오랜 의문이 해소되었던 것이다. 사유를 발판으로 기존 수행법에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정각의 내용은 다양하게 설명되지만, 근본적인 내용은 연기緣起의 도리이다. 깨달음으로 인해 삼명육통三明六通이 생겨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은 연기다. 연기는 모든 것이 서로 조건 지워져 생겨난다는 것으로, 우리의 삶은 모두가 인과 연의 관계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도리다. 인간의 한계적 삶을 제공하는 죽음에 대한 의식도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과 애착을 원인으로 생겨난다고 연기는 가르친다. (이태승, 「불교란 무엇인가 - 연기」, 불교신문 2106호.)
연기란 일체현상의 생기소멸生起消滅의 법칙을 말한다. 즉, 모든 사건이나 사물은 그 자체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과 관계 속에서 임시로 존재하며,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因, Hetu)’과 ‘조건(緣, Pratyaya)’이 서로 상호 관계하여 성립된다는 것이다. 원인이나 조건이 없으면 ‘결과(果, Phala)’ 또한 없다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조금은 평범한 진리이다. 이미 우리는 이 논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2연기설十二緣起說이다. 싯다르타가 가졌던 의문, 즉 ‘사람은 왜 늙고 죽는가?’라는 “노사老死”는 근본적으로 삶의 이치에 대한 무지無知, 즉 “무명無明”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12연기설은 맞고 틀리고를 떠나 당시로는 획기적인, 종교적인 이슈에 대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과학적 분석이었다.
경전들은 어떻게 하여 그가 하룻밤 동안에 세 가지 지식을 얻었는지를 초저녁에는 그의 전생(前生)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한 밤중에는 세상사의 업(業) 연기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삼야(三夜)에는 번뇌로부터 구제되는 지식-번뇌의 원인, 번뇌의 단멸, 번뇌의 단멸에 이르는 길-을 얻었다. 또 그는 의식적으로 사선(四禪) 단계를 거쳤다고도 기술하고 있다. (하인리히 두몰린/박희진 옮김, 다르마 총서 12『禪과 깨달음』p. 28.)
다시 돌아와 다이세츠가 말하는 ‘사제와 십이인연의 고된 수련’은 이러한 연기법을 유추해내는 과정을 통칭하고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싯다르타를 정각에 이르게 한 이 연기법이야말로 사유를 통해 얻어진 고도의 ‘지적 수련’의 과정이자 결과라고 보았던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전생, 업에 대한 지식의 습득 그리고 번뇌와 번뇌의 소멸 등 수련의 과정인 사유가 있었고, 사유 혹은 사유를 통해 얻어진 어떤 것을 지식이라고 한 것이다.
물론 다이세츠가 직접적으로 사유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답을 얻지 못한 것은 ‘지적인 전개나 체험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한 것으로 보아, 좌선을 하며 사유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비로소 정각에 이를 수 있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싯다르타가 행한 깊은 사유의 과정이야 말로, 그의 고민을 해결하는 열쇠였으며, 그 열쇠를 통해 얻은 것이 바로 지식이라고 본 것이다.
한편 다이세츠가 말하는 지식은 다른 말로 하면 “지혜知慧”의 일부 혹은 전부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의 말을 현대적으로 풀어보면 싯다르타의 좌선은 ‘선정禪定(정려靜慮, 명상, 선나禪那)’이고, 선정으로 얻은 깨달음은 지식 곧 ‘지혜(반야般若)’라고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생각이 끊어진 곳에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데, ‘선정’은 생각을 끊기 위한 과정이고, ‘지혜’는 그로부터 생기는 깨달음을 말한다.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서 일월성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홀연히 지혜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상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의 자성이 깨끗함도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慧)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한 뿐이다. (退翁 性撤, 성철스님 법어집 2집1권『敦煌本 六祖檀經』 pp. 141~142.)
선정은 마음을 집중하는 것으로, 그러므로 해서 잡념이 사라지면[不生], 여기에서 지혜가 생긴다는 것이다[不滅]. 즉 불생불멸의 무념無念, 무심無心의 단계로, 무심은 거울과 같아서 ‘있는 그대로 보는 것[如實知見]’이기도 하다. 여실지견하면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不動의 깨달음을 얻고, 최종적으로 번뇌의 속박에서 해방된 상태[解脫]에 이른다.
그런데 다이세츠는 선정과 지혜 사이에 지식을 끼워 넣은 것이다. 끼워 넣었다기보다는 선정과 지혜의 과정을 세분화하였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선정 다음에 사유의 과정을 지식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즉, 선정-지식-지혜(혹은 선정-지식, 지혜)로 구분하고 사유의 과정을 지식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지식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먼저 선정과 지혜에 대해 알아보자.
4) 선정禪定과 지혜知慧
선정(선나禪那, dhyana)과 지혜(반야般若, prajna)는 선종에서 특히 강조하는 트레이드마크 같은 말이다. 선정과 지혜, 즉 정혜는 선 수행에 있어 시작과 끝인 것이다. 정혜는 거슬러 올라가면 ‘위없는 대열반이여[無上大涅槃], 원만히 밝아 항상 고요히 비추는 도다[圓明常寂照].’라는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의 자전적 일대기『육조단경六祖壇經』의 한 구절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요함과 비춤[寂照]이 언제나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탈의 경지인 대열반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적寂’은 고요함, 즉 선정을 뜻하고, ‘조照’는 밝게 비춤, 즉 지혜를 말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정혜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육조단경』은 강조한다.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과 혜로써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니라. 곧 정은 이 혜의 몸이요 혜는 곧 정의 씀이니, 곧 혜가 작용할 때 정이 혜에 있고 곧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 안에 있느니라.
선지식들아, 이 뜻은 곧 정·혜를 함께 함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에 두 가지 모양이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혜와 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 가지면 정·혜가 곧 함께 함이니라. (退翁 性撤, 성철스님 법어집 2집1권『敦煌本 六祖檀經』 pp. 120~121.)
잡념이 그치는 것을 “사마타(Samatha, 止)”라 하는데, 이것이 선정으로 잡념이 쉬면 고요하여 삼매三昧에 들어가게 된다. 삼매에 들면[定] 생각이 끊어지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선종은 여기에 하나의 단계를 더 추가한다. 정에 들어 생각이 끊어지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고요하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고, 오롯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를 위한 전 단계를 이루는데, 이 논리는 선종사에 길이 남을 큰 사건이었던 남악과 마조 사이에 있었던 선문답에서 그 진위를 찾을 수 있다. 남악회양(南嶽懷讓, 677~744)은 좌선만으로 성불하겠다는 마조도일(馬祖導一, 709~788)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는 좌선坐禪을 배우고자 하는가, 좌불坐佛을 배우고자 하는가? 만약 좌선을 배우고자 한다면 선은 앉고 눕는 것이 아닐 것이며, 좌불을 배우고자 한다면 불은 고정된 모양이 아니며 머무는 것이 아니므로 취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니라. 네가 만약 좌불을 배우고자 한다면 곧 부처를 죽이는 것이니라. 만약 앉아 있는 모양에 집착한다면 진리에 도달할 수가 없느니라.”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든다.’는 『전등록傳燈錄』<마전작경磨塼作鏡>의 일부다.)
남악은 기존의 수행법인 좌선만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는 당시 유행하던 좌선수행, 예컨대 신수의 북종선 혹은 천태지의(天台智懿, 538∼597)의 지관(止觀, Samatha-Vipassana) 좌선법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당시로는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정(선정, 삼매)을 중시하지 않는 것으로 중국불교 사상사에 없었던 실로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때까지 수행의 정석이라 여겨지던 좌선수행법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 중국이라는 문화와 환경이 바뀌면서 계율은 변화할 수밖에 없었고, 변화한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생략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주기 마련이다. 여지가 생긴다는 것은 절대적인 구속력이 퇴색함을 의미하고 비중이 축소되어 감을 의미한다. 선정은 어떠한가. 중국불교의 전개과정에서 계율에 대한 비중이 사라지면서부터는 삼학 중에서 정과 혜 둘만이 문제가 되었다.
천태종에서 강조하는 止觀(지관)이 이를 말한다. 정은 지이고 혜는 관이다. 그러다가 {역대법보기}의 무주와, {금강경}의 하택신회 시대에 이르러서는 止觀(지관)이라는 기존의 노선에서 탈피하기 시작한다. 정의 비중이 점차 축소되고 혜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혜의 비중이 증가한다는 것은 돈오사상의 등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돈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돈·점 논쟁이 발생하게 된다. 돈·점 논쟁이 미시적으로는 선종내의 남종과 북종간의 논쟁이었지만, 거시적으로는 정과 혜의 논쟁이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이해이다. 점파는 상대적으로 정 쪽을 강조하고 돈파는 혜 쪽에 비중을 두었다. 돈파는 기존의 선법에 해당하는 천태지관이 정에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趙龍憲, 원광대 대학원 불교학 박사과정 수료. 동양종교학과 강사,「淨衆無相의 楞嚴禪 硏究」.)
인도 불교가 중국에 정착하면서 중국 여건에 따라 계정혜 삼학 중에서 정과 혜 둘만이 남게 되었고, 이는 당시 천태종에서 강조하는 지관止觀(지관좌선법止觀坐禪法, 즉, 정혜)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남종과 북종간의 논쟁을 거쳐 혜가 더 중시되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중국 선종사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그럼 다음 혜를 중시하는 행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혜능을 만나 바로 깨닫고 조계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떠났다는 일숙각一宿覺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은 좌선 수행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좌선수행에서 흔히 겪게 되는 “도거掉擧”와 흐리멍덩한 상태인 “혼침昏沈”에 대한 경계의 말이다.
고요하기만 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혼침에 잠겨 있는 것이요, 깨어 있기만 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생각에 얽혀 있는 것이다. 깨어 있음도 고요함도 아니라면 그것은 다만 생각에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혼침에도 빠져 있는 것이다. 寂寂不惺惺 此乃昏住 惺惺不寂寂 此乃緣慮 不惺惺不寂寂 此乃非但緣慮 亦乃入昏而住 -『禪宗永嘉集』序 (불학연구소 편저,『조계종 수행의 길, 간화선看話禪』p. 269.)
그의 글에 ‘적적寂寂’이니 ‘성성惺惺’이니 하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서 ‘적寂’은 정이요 ‘성惺’은 혜다. 깨어있는 ‘성’만 있고 고요한 ‘적’이 없으면, 생각에 얽혀 있는 것이고, 고요한 ‘적’만 있고 깨어 있는 ‘성’이 없으면, 그것은 혼침에 빠진 것이라는 경고의 말을 하고 있다. 잡생각인 망상에 얽혀있는 ‘도거’는 어지럽고 시끄럽다. ‘혼침’은 목석과 같은 공허한 무기다. 뭐 이런 이야기다.
고려 중기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은 명종 18년(1188) 공산의 거조사에 불교계를 정화하기 위한 정혜결사를 조직하고『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발표한다. 지눌은 여기서 ‘선이란 고요함으로 분별하는 마음을 다스리고[寂寂], 마음이 밝게 깨어 있음으로[惺惺], 아무런 생각이 없는 흐리멍덩한 무기를 다스리라’고 하였다. 한편『수심결修心訣』에서는 정定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혜慧로써 무기를 다스리라고 하였다.
현각 선사의 말을 빌려 성성적적惺惺寂寂은 옳지만 성성망상惺惺妄想은 그른 것이고, 적적성성寂寂惺惺은 옳지만 적적무기寂寂無記는 그른 것이다[惺惺寂寂是 惺惺妄想非 寂寂惺惺是 寂寂無記非라고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고요함으로 망상妄想, 도거를 잡지만, 깨어있음으로 무기, 혼침도 잡으라는 것이다.
정혜定慧가 선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적적성성寂寂惺惺’ ‘성성적적惺惺寂寂’으로 변주變奏가 일어난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지만[定] 오롯이 깨어 있는 것[慧], 즉 고요한 가운데 깨어 있고, 깨어 있는 가운데 고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좌선 시 밖의 시끄러운 소리가 방해가 된다고 느껴지면 ‘성성惺惺’하지만 ‘적적寂寂’하지 않은 것이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적적’하지만, ‘성성’하지 않은 것이다. 적적과 성성은 체體와 용用, 공적空寂과 영지靈知, 진공眞空과 묘유妙有, 이理와 사事, 살殺과 활活 등 다양하게 변신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선종이 기존 좌선수행을 부정하고 비판하고 있지만, 선종이 말하는 수행법 또한 초기불교의 수행법이나 천태지의의 지관좌선법과 별로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분명 차이는 있겠지만 그 차이점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한 예로 ‘분간分揀해서 본다.’는 “위빠사나(Vipassana, 觀)”역시 선종에서 말하는 일종의 ‘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종과 기존 수행법의 결정적인 차이는, 선의 황금기를 지나면서 서서히 가시화 된다. 이른바 선사들이 활약이 두드러질 즈음 “공안公案” 또는 “화두話頭”가 등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좌선 시 도거와 혼침을 잡으라는 말은, ‘망상과 싸우지들 말고 화두에 집중하라’는 점잖은 충고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망상을 없애려고 애쓰지 말고 오직 화두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화두에 집중해서 참구하다 보면 망상은 사라지고, 화두 또한 순일하게 들리게 되며, 연하여 마침내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망상을 없애려는 마음 또한 망상이므로, 거기에 힘을 쓰기 보다는 보다 강력한 또 하나의 망상, 즉 화두에 집중하므로 써 다른 망상들을 죽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선법에서 한 발 앞으로 나간 새롭고 기발한 수행법인 것이다.
다만 하루 스물네 시간을 이 ‘무無’자만을 참구하라. 밤이나 낮이나, 가나 머무나, 앉으나 누우나, 옷 입으나 밥 먹으나 나아가 뒷간에 갈 때도 생각생각 끊이지 말고 맹렬히 정신차려 이 무자 화두만 의심해 가라. 이리하여 날이 가고 해가 가서 이윽고 공부가 한 덩어리가 되면 홀연히 마음 빛이 밝아져 부처님과 조사들의 기틀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불학연구소 편저,『조계종 수행의 길, 간화선看話禪』p. 170.)
대개 이 문제는 풀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목숨을 떼어 놓고 힘써 공부하려고는 아니하고, 다만 어렵고 어렵다고만 하니 만약 진정한 대장부라면 어찌 이와 같으랴. 모름지기 저 공안(公案)을 간(看)하되『승이 조주에게 묻되「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답하되「무」(無)』하였으니 다만 二六시중에 이『무』자를 참구하여 밤이고 낮이고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누우나 옷 입으나 밥 먹으나 변소에 가나 생각생각 끊이지 아니하고 맹렬히 정신을 차려 저『무』자를 지켜갈 것이다. 이리하여 날이 가고 해가 가서 공부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느듯 홀연히 마음빛이 활짝 밝아 불조의 기틀을 깨달아 문득 천하 노화상의 혀끝에 속지 않고 스스로 큰 소리를 치게 될 것이다. (雲棲 珠宏 編纂 · 光德 譯註『이것이 禪의 길이다, 禪入門 · 禪關策進』pp. 137~138.)
화두에 집중해서 화두와 한 덩어리가 되면 화두 삼매에 들어가게 되고, 화두 삼매에 들어가 화두를 타파하게 되면, 구름이 걷히면 해가 나오듯 지혜는 저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간화선의 창시자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을 비워 없애려 하지 말고 생각을 붙이고 분별하지도 말고 다만 언제 어디서나 빈틈없이 화두만 들라. 망념이 일어날 때 또한 억지로 그것을 그치게 하지 말라. 움직임을 그치게 하여 끝내 그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잠시일 뿐 더욱 크게 움직이게 된다. 단지 마음이 움직이거나 그치는 곳에 화두만을 살피라. (불학연구소 편저,『조계종 수행의 길, 간화선看話禪』p. 171.)
혼침과 도거는 옛 성인이 꾸짖은 것입니다. 조용히 앉았을 때 이 두 가지 병이 앞에 나타난 것을 알았거든 단지 ‘개가 불성이 없다’는 화두만 드십시오. 그러면 두 가지 병은 힘써 물리치지 않아도 당장에 고요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조금 힘 덜림을 아는 것이 문득 힘을 얻는 곳이 될 것입니다. 또한 고요한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다만 이것이 곧 공부입니다. (『書狀』「答富樞密」, 무비스님 <서장(書狀)> 대강좌에서 인용)
화두를 들고 오래오래 살피다 보면 힘이 덜 드는 때가 오는데[생력省力], 힘이 덜 드는 것을 알게 되는 곳이 바로 “득력처得力處”, 힘을 얻는 곳이다. 화두를 꾸준히 들다보면 화두에 대한 의심이 무르익어, 생력이 생기고 득력처에 다다라, 자연스럽게 화두가 들린다. 그것이 바로 공부를 잘 지어가는 길이다.
고려 말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은 ‘고요한 가운데 화두話頭가 없는 것을 무기’라고 하면서, 정을 강조하면서도 무기에 빠질 수 있으니 화두를 참구하라고 설한다. 화두참구가 곧 ‘혜’이자 ‘성성’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선사 역시 다음과 같이 화두를 강조하였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생사라 한다. 이 생사에 부딪혀 힘들 다해 화두를 들라.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면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어질 것이니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어진 것을 고요하고 한다. 고요함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고 하고, 고요함 가운데서 화두가 살아 있는 것을 신령 지혜하고 한다. 이 텅 빈 고요와 신령한 지혜가 허물어지거나 뒤섞이게 하지 말 것이니 이렇게 공부하면 멀지 않아 깨달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화두와 한 덩어리가 되면 기대고 의지할 것이 없어지고 마음이 갈 곳도 없어질 것이다. (불학연구소 편저,『조계종 수행의 길, 간화선看話禪』p. 268.)
고려 중기 이후 우리 불교계에서도 참선수행에서 무기의 상태에 떨어지는 것을 경계하였다. 고려 말기에 이르면 ‘여말삼사麗末三師’로 일컬어지는 유학승 백운경한白雲景閑, 태고보우, 나옹혜근 이후에는 화두를 참구하라고 권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좌선을 하든, 지관을 하든, 염불을 하든, 등등 어떤 대상에 집중하게 되면 분별망상이 사라지고 잡념이 그친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하면 무기에 빠질 수 있으니 화두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선정과 지혜를 간략하게 정리하였는데, 앞에서 다이세츠는 선정과 지혜 사이에 사유의 단계인 지식을 끼워 넣었다면, 선종에서는 선정과 지혜 사이에 화두참구가 들어갔다. 여기서는 화두참구가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럼 ‘선정→사유→지혜’는 ‘선정→화두참구→지혜’가 되고, 그러므로 해서 “지식=사유=화두 참구”의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사유가 지식이 되고 화두참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다이세츠는 초기불교에 대해서 말한 것이고, 화두 참구도 일종의 사유의 과정이므로 내용만 다소 다를 뿐 셋 다 공통점은 있다. 그럼 그 차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5) 근본불교와 선불교의 차이
다시 반복되지만 싯다르타는 연기법을 발견하고 그의 생로병사에 대한 의혹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성제’나 ‘십이연기’를 설하였다. 그리고 고苦의 원인인 욕망[탐진치貪瞋痴]을 없애고,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팔정도를 닦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국 선종에 오면 이런 부처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좌선을 하고 화두를 투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정토종에서는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하라고 가르친다.
선종에서는 사체나 십이인연 같은 것은 모른다 하고 진종(眞宗)에서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고 외우면 극락왕생極樂往生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은 원시불교의 경전에는 그 흔적도 없다. 그런데 그 반대로 불교란 무엇인가 할 때, 선자(禪者)는 개(狗子)에게 불성(佛性)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식으로 나온다. 또 진종에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본원(本願)이 곧 불교다”라고 말한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 27.)
그렇다면 근본불교와 현재의 불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과연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 이에 대해 불교가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는 “불교의 요소”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선객 스즈키 다이세츠는 말한다. 학자의 입장에서 그는 불교의 요소를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그가 첫째로 꼽은 것은 ‘부처님의 인격人格’이다. 부처님의 인격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부처님의 인격이 위대했기 때문에 불교가 오늘날까지 부처님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남의 말을 듣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말이 진실 되고 논리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인격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석가의 인격을 떠나서 불교는 성립될 수 없다.
둘째 요소로는 ‘석가의 경험經驗, 체험體驗 그리고 실험實驗’을 들었다. 석가의 탄생과 출가, 성도成道와 열반涅槃 등 석가의 생애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여전히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요소로 꼽은 것이 ‘석가의 가르침’이다. 석가는 성도 후 무려 49년 동안 돌아다니며 법을 설하였다. 지금은 경전으로 남아 전하는 그의 가르침 또한 불교 성립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네 번째 요소로 꼽은 것이 ‘부처님 이후 가미된 불교도들의 체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격과 일생의 체험, 그리고 부처님 이후 불교도들의 생활, 그리고 그들의 학문 연구나 깨달음의 체험 또한 불교의 한 요소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인격은 천고千古, 만고萬古에 변함이 없겠지만, 그 가르침을 오늘에 있어서는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간 가르침을 설할 수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혹 어떤 사람은 오해를 할 지 모르지만, 그 가르침 속에 내포되어 있는 진리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에 적합하도록 논리상의 운용運用이 가능한 것이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 35.)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깊은 진리가 들어있기는 하지만, 당시 부처님이 설한 내용이 오늘 날에도 변함없이 딱 들어맞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부처님이 위대하고 훌륭하여 뛰어넘을 수 없는 산이라고 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 재세 시 사람들의 인식認識과 의식意識, 그리고 의식에 비친 지혜 이상으로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교 교리발달사를 보면 시대에 따라 ‘연기’에서 ‘공’ 그리고 ‘중도’로 그 모습을 달리하며, 진리를 찾아, 바른 정견을 찾아 끝임 없이 노력한다. 그런 연유로 앞에서 논의한 세 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후학들의 깨달음의 체험, 혹은 사상이나 연구 업적 또한 불교의 한 요소로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인격과 체험과 가르침만을 불교라고 한다면 불교는 어쩌면 화석(化石)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불교는 살아있다고 할 수 없게 된다. 불교를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고 할 수가 없게 된다. 불교가 발생하여 2,600년이라고 하는 오늘까지 그 명맥이 끊기지 않고 전해온 원인이 무엇인가 하면,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 38.)
실재 현대 불교에서는 어디까지가 부처님 말씀이냐를 놓고 심심치 않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불교가 부처님 시대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뚜렷한 반증일 수 있다. 그러므로 불교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에는 부처님의 인격과 더불어 전 생애를 통한 체험,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 외에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인 불교도들의 경험과 체험,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종만을 놓고 보아도 조사들의 경험과 체험에 더욱 더 무게를 두고 있고, 여래선과 조사선을 비교하면서 은근히 부처로 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동력이 되어 불교를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 부처님의 인격. 깨달음의 체험과 가르침, 그리고 수많은 후학들의 깨달음의 체험 등이 모여 있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깨달음의 체험”일 것이다. 불교에 있어 하이라이트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그 순간의 체험은 시대나 사상, 그리고 지역 등 모든 것을 초월한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 것이다. 그것은 부처의 시대나 선종이나 정토종이나 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한 것으로, 불교 역사를 꿰뚫는 공통의 주제인 것이다.
선객 다이세츠는 깨달음을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깨달음 즉 반야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지식을 위해서는 사유나 화두참구 등 지적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차이점은 사유는 혼자서 하는 것이고, 화두는 선문답을 참구하는 것으로 여러 사람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를 세밀히 살펴 볼 차례다.
6) 싯다르타의 사유와 선문답의 차이
석가의 사상은 논리論理가 발달한 인도에서 현란한 이론들로 체계화 된다. 이는 승려이자 철학자인 용수龍樹에 이르러 그 절정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논리학은 인도논리학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화深化된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왔을 때, 이들 논리 정연精硏한 이론들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한자의 특성상 중국에는 논리라는 것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내세에 관심이 없었던 중국인들에게 불교의 윤회설 또한 매우 신선한 것이어서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중국에 불교 경전들이 번역 소개되었을 때, 이들 경전의 수준이 다양할 뿐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가르침도 있어, 중국 불교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교리가 자연스럽게 발달해왔던 인도와는 달리, 무작위로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경전들이 너무 다양하여 어디까지가 붓다의 가르침인지도 모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정리할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이른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이루진 것이다.
한편 이렇게 몇 백 년이 지나자 중국 불교는 교리 논의에만 집중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 성격이 몹시 성하게 되어 대중과는 점차 멀어지게 된다. 경전을 연구하는 이론 불교는 상류층이나 지식인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한 운동이 현세에서의 성불을 지향하면서도, 주지주의 요소를 제거한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종이다.
새로운 종교의 매력은 무엇보다 먼저 그 단순한 실천에 있었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 앞에 개방된 그 단순한 실천 속에 기성 가치의 일체를 역전시키는 비밀이 있었다. 중국에 전해진 인도 불교의 모든 사상과 실천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했던 사람은 수나라의 천태지의(天台智懿, 538∼598)였다. 그런데 체계적인 책은 완전하면 할수록 구체적인 실천의 실마리가 없기 마련이다. 그것은 오히려 구체적 실천의 선택은 미루어 둔 채, 일체를 평등하게 종합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대무변한 천태지의의『마하지관摩訶止觀』(위대한 명상)에 대한 실천파 사람들의 비판과 행동에서 새로운 실천 종교로서의 선禪과 염불念佛이라는 두 종파가 탄생하게 된다. (柳田聖山 著 / 楊氣峰 譯『초기선종사, 능가사자기·전법보기』pp. 17~18.)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정토종도 마찬가지였다.특히 선종은 교외별전을 표방하며 인도인에게 빌려 입은 옷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중국인 체형에 맞는 새로운 옷을 만들어 입는다. 당시로서는 기존 불교를 부정하는 이단 그룹에 속하는 집단으로 치부되었지만, 대중의 호응을 얻으면서 중국 불교의 대표 주자로 부상하게 된다.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표방하는 선종은 좌선을 위주로 하였지만, 좌선 삼매를 통한 깨달음의 체험은 방할棒喝이나, 스승과 제자 간에 문답을 통해 거론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문제를 제기하고 대답을 듣는 문답법은, 싯다르타가 가졌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의문과 그에 따른 사유를 통한 해결과도 같은 구조다. 결과적으로 싯다르타의 의문과 사유가 새로운 형태로 구체화 된 것이 묻고 답하는 형식의 “선문답禪問答”이 된 것이다. 차이라면 싯다르타는 스스로 묻고 답하였다면, 선문답은 선지식에게 묻고 답을 듣는 구조라는 것이다.
요즈음은 공안(公案)이라는 것이 생겨서 수행이 되고 있지만, 공안이 되기 전의 중국의 선종(禪宗)은 일문일답(一問一答)이나 일봉일갈(一棒一喝)을 사용했는데, 어쨌든 물음을 내서 이에 답함으로써 그로 말미암아 선종이 고양(高揚)되고 개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鈴木大拙 著/金知見 譯,『禪, 그 世界』 p. 101.)
부연하자면 선종에 오면 싯다르타가 가졌던 실제적인 문제와 사유를 통한 깨달음의 과정은, 선지식과의 문답을 통한 깨달음의 장면으로 바뀌었고,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선어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고 널리 유포되었다. 그리고 이들 선문답은 실생활에 입각한 공안公案의 형태로 진화하였으며, 연하여 그것이 체계적으로 다듬어지고 발전한 것이 화두 참구이다. 이를 기반으로 새롭게 탄생한 수행법이 간화선인 것이다.
싯다르타를 깨달음에 이르게 한 사유가 선종에서 화두 참구로 대체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싯다르타는 스스로 묻고 답하였다면, 화두 참구는 스스로 묻고 답한 견해를, 선문답을 통해 선지식의 체험과 비교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유를 공통분모로 하지만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선지식과 공유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 시작에 혁명가인 싯다르타의 사유가 있었다면, 켜켜이 쌓인 불교 이론들을 뚫고 실생활에 실재實在하는 문제로 다시 되돌린 것은 선종의 간화선법이다. 켜켜이 쌓인 이론들을 걷어내고 기본적인 인간의 문제, 살아가는 데 겪는 개개인의 문제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불교의 진면목이고 또한 진정한 진리의 모습이 아닐까? 이 방법은 요즘 잘 알려진 “메타인지Meta Cognition”2 학습방법을 닮아 있어 현대의 눈으로 보아도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선객 다이세츠는 이런 논의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그가 지식 운운한 것은 선종도 초기 불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고, 공안을 매개로 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불교 초기 지식의 전개 과정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간화선을 체험한 선객이 가질 수 있는 공감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그가 이해한 초기불교의 세계이고 선의 세계이다.
문득 필자가 2007년 선도회『무문관』과정을 마치고 쓴「지식의 탐구 신비의 타파」라는 글이 생각났다. 필자도 간화선 수행과정이 지식을 탐구하는 과정이라 보았고, 그 과정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되면 자연스레 신비주의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체험적 수기를 쓴 것이었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지식을 필요로 하고 지식은 배움을 필요로 한다. 깨달음을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서는 배움과 더불어 기존의 배움을 뛰어넘는 사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이런 이지적理智的 단계들을 두루 거쳐야 얻어지는 것이다. 다이세츠가 지식 운운한 것은 그것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경전의 말씀을 인용해본다.
반야와 식은 결합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결합되어 떨어지지 않는 반야와 식에는 어떤 구별이 있는가? 반야는 힘써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식은 두루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구별이다. (『유명대경有明大徑』)
반야는 지혜이고 식은 분별 지식이다. 지식과 지혜에 대해서는 많은 선사들이 논했지만 ‘지지일자知之一字 중화지문衆禍之門’이 대표적일 것이다. ‘지’라는 한 글자는 모든 재앙의 문이라는 것이다.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고 한 사람도 있다. ‘지’라는 한 글자는 모든 오묘함의 문이라는 것이다. 반야 지혜는 힘써 닦지 않으면 안 되고, 지식은 두루 두루 배워 섭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혜를 닦는 것과 지식을 두루 배워 아는 것은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다. 지혜와 지식은 동전의 양면처럼 다르지만 한 몸인 것이다.
왕은 물었다.
『존자여, 지식을 가진 자는 지혜도 가집니까.』
『그러합니다, 대왕이여.』
『지식과 지혜는 둘 다 같은 것입니까.』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지식과 함께 지혜를 가진 사람은 당혹當惑하는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어떤 일에 대해서는 미혹하고, 어떤 일에 대해서는 당혹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당혹합니까?』
『아직 익히지 않은 기술의 영역이나, 아직 가 본 적이 없는 지방이나 아직 들어 보지 못한 명칭과 술어 등에 대해서는 당혹할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당혹하지 않습니까.』
『통찰에 의하여 달관達觀한 것, 즉 무상無常이라든가, 고苦라든가, 무아無我라고 하 는 것들에 대해서는 당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친 사람의 어리석음癡은 어떻게 됩니까.』
『지혜가 생기자마자 곧 어리석음은 사라져 버립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사람이 어두운 방안으로 등불을 가져왔을 때,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이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지혜는 어디로 갑니까.』
『지혜는 자신의 해야 할 일을 성취하자마자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지혜에 의하여 성취된 무상이라고 알며, 고苦라고 알며, 무아無我라고 아는 깨달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徐景洙 譯,『現代佛敎新書 3 미린다 팡하』 pp. 59~60.)
한 선사는 도는 생각이 끊어지는 곳에 있다고 말했다. 그럼 생각이 없으면 바로 도인가? 아니다. 생각이 끊어지기까지는 엄청난 사유의 과정이 전제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루 지식의 습득과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두말할 것 없이, 생각할 것이 없을 때 생각은 끊어진다. 생각할 것이 없을 때래야,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때래야, 생각은 스스로 멈출 수밖에 없다. 망상이라 이름 붙일 어떤 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다음 장에는 이런 지식들을 바탕으로 하여 중국에서의 선종의 탄생과 간화선으로 진화, 그리고 한국 일본에서의 그 화려한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1. 스즈키 다이세츠(Suzuki Daisetsu, 鈴木大拙, 1870~1966)는 일본 북부 이시카와현 가네자와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스즈키 데이터로[鈴木貞太郞]이다. 불교의 선禪사상을 서양에 소개한 주요인물이다. 와세다대학교의 전신인 도쿄[東京]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가마쿠라에 있는 엔카쿠지[圓覺寺]에서 당대 선사상의 대가로 유명하던 샤쿠쇼엔[釋宗演]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쇼엔 노사로부터 다이세츠[大拙]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는 13년간(1897-1909)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잡지 편집인인 폴 케이러스와 함께 일하는 한편, 독자적으로 불교연구를 계속해 나갔다.『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The Discourse on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ayana』(1900)로 영역하였고,『대승불교개론大乘佛敎槪論 Outline of Mahayana Buddhism』(1907)을 간행하였으며, 선학논문집『Essay in Zen Buddhism』을 발간하여 주목을 받았다. 생애 후반기에는 일본과 해외, 주로 미국 등지에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지냈는데, 서양사회의 불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에 따르면 동양 정신세계의 근본적인 특징은 불이성不二性을 강조하는 데 있으며, 근대과학으로 구현되는 서양의 정신은 이원론적 특징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이 같은 서양의 정신은 일상적인 행위에는 필요한 것이지만 궁극적인 실체를 포착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스즈키의 철학에서 궁극적인 실체는 논리적인 탐구보다는 체험과 직관의 대상이며, 따라서 비이원적인 종교적 체험, 특히 선불교의 전통에서 표현되는 것과 같은 방식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둔황석굴 문헌을 교정 발간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근대 한국 선종사학자 김구경金九經이 스즈키 다이세츠의 제자이다.
2. 메타인지(MetaCognition)란 자신의 인지적 활동에 대한 지식과 조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계획과 그 계획의 실행과정을 평가하는 것에 이르는 전반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의사결정 상황에서 ‘A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B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인지(Cognition)라고 한다면, ‘A 또는 B를 선택한다는 것이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올바르게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한 단계 위의 수준에서 생각하는 것이 메타인지(Meta Cognition) 인데, 인지를 사고가 수행하는 엔진에 비유한다면, 메타인지는 사고의 방향을 설정하는 조종 장치의 역할을 뜻하는 것이다. 메타인지 학습법이란 한 번 암기한 후 ‘재학습’을 하는 것보다 ‘셀프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외우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풀이가 좋은 게 바로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인데, 책만 읽는 사람은 그 내용을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재로는 생각나는 게 별로 없기 마련이고 문제를 내서 풀어보아야 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풀어 보므로 써 자기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파악한다면 다음에 그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KBS 시사기획 창, 전교 1등은 알고 있는 '공부에 대한 공부' / 2014-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