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지방에는 천안 안내에 새로 영세한 신자가 적지 아니하였고 그곳에는 특별히 일반 신자가 기도청에 성실히 출석하오며 또한 교역자와 일반 신자들이 협력하여 성당을 정제청결하게 간수하는 것은 참으로 일반이 유의할 만 하더이다. 봉항리에는 그곳에 있는 교육기관을 일반이 찬조함을 치하할 바이며 겸하여 영세 입교한 자도 약간 있었나이다. 이 지방의 중앙 성당인 천안부대리에는 다만 한 명의 영세자가 있었고 예산교회에는 한 사람도 없었나이다. (1931년 5월)
10월 22일(목) 천안 안내에서 견진성사 거행 (1931년 10월)
목천 안내교회에서 전도부인으로 다년 근무하시던 강미리암씨는 대단한 신병이 계셔서 교역에 종사하지 못하시게 되었나이다. 우리들이 그녀를 위하여 기도하여 가히 병이 평복되며 천주께 각양 은총을 받으시기를 바라나이다. (1932년 4월)
명예전도사 강습회 소식
제2차 강습회는 2월 6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되었나이다. 각처에서 오신 분을 지방별로 기록하나이다.
1. 평남 순천에서 2인
2. 평남 성전에서 2인
3. 충북 진천에서 1인
4. 충북 청주에서 2인
5. 충북 대소원에서 1인
6. 충남 천안 봉항리에서 1인
7. 황해도 백천 관내에서 2인
8. 경기도 여주에서 1인
9. 경기도 강화에서 2인
10. 경기도 수원에서 1인
이상 15인은 다 재미있게 강습을 마치시고 각기 귀가하셨나이다. (1933년 3월)
6월 25일 봉항리 행, 6월 26일 봉항리서 견진, 예산으로 출발 (1933년 6월)
수년간 성당이 퇴락되고 경비에 곤란이 많은 봉항리교회는 1932년 여교인 성미회(誠米會)를 조직한 바 성적이 매우 우량하여 한 주일 두 주일 지날수록 교회 재산이 적립되고 신앙이 두터워지매 천주께서 돌아보시고 냉담자와 외인들의 마음을 감화하사 성당이 좁게 되었더니 여러 교인들을 격동시키어 지난 봄에 성당신축적립금 일금 2백원을 세우고 선교회에서의 8백원의 보조와 합하여 1000원으로 건축한 바 병천교회 교우께서 제단 휘장과 촛대 가격 20원을 기부하여 주시고 제시 수녀께서는 십자고상과 미사용 제단보를 기부하시어 지난 10월 26일에 축성식을 거행한 바 250여명의 교인이 참석하시고 다수의 외인은 천주께 찬송함을 듣기 위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참례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나이다. 앞으로 본 교회 교인들이 주께서 주신 은총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라나이다. (1933년 12월)
11월에 천안 봉항리와 해주에 있는 두 새 회당을 축성하였나이다. 올해 조선성공회가 많은 복을 받았으니 천주께 감사하나이다. (1933년 12월)
6월 10일 주교견진순회 일정, 봉항리로, 6월 11일 병천으로 (1934년 6월)
서울서 이틀 후에 나는 충주와 음성과 진천전도구들과 천안과 봉항리와 아내에 있는 여러 교회를 심방하였나이다. 내가 여러 곳을 심방하는 가운데 교회가 발전되어감과 여러 교인의 열성이 늘어감을 보고 마음으로써 감사하며 기뻐하였나이다. 교회가 날로 발전하며 강하여 감에는 여러 교우들이 자기들의 책임을 다하며 규칙적으로 기도하며 관대함으로 주며 범사에 그리스도를 모범하여 자기들의 신앙을 증거하는데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모든 교인들이 이와 같이 노력한다면 교회는 강하여 갈 것이다. (1934년 7월)
5월 31일 주교견진순회 일정, 병천으로 (1935년 5월)
문 마르다씨는 천안 병천에서 전도부인으로 시무하시다가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사면하셨나이다. (1935년 12월)
4월 21일(화) 주교견진순회 일정, 봉항리로 감 (1936년 4월)
안 다니엘(奎泰) 시종은 천안 병천서 용인 샘골로 가시고, 최 안드리아((萬奉) 시험전도사는 온양온천에서 천안 병천으로, (1936년 6월)
5월 7일(금) 주교견진순회 일정, 아내(병천)로 감 (1937년 4월)
5월 8일(토) 주교견진순회 일정, 아내에서 견진 시행하고 (1937년 4월)
어떤 신도들은 때로 옳지 못한 행동을 취하면서도 스스로 핑계를 대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나이다. 그 반면에 어떤 신도들은 많고 큰 유혹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신실한 마음과 열성이 충만하여 계신 분도 있음을 볼 때가 있나이다. 지난달에 내가 93세의 노령의 노인으로서 봉항리에서 병천까지 20리나 되는 먼 길을 멀다하지 아니하고 오셔서 성례성사를 영하시고 나의 축복을 받으시고 가셨다는 말씀을 여러 신도에게 들은 바 있나이다. 그 노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간 지 사흘 후에 별세하셨다고 하나이다. 그 노인은 오랫동안 궁핍한 생활을 계속 하셔왔고, 가정상 일로 많은 지장이 있었으며, 자기가 가졌던 소유물도 다 잃고 동네 사람에게 방 한 칸을 얻어서 거기서 여생을 보내시던 분이셨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낙심치 아니하고 이 세상을 떠날 때 믿음과 평안한 마음으로 별세하셨나이다. 원컨대 별세한 신자의 영혼이 음간에 평안히 쉬어지이다. (1937년 7월)
5월 29일(일) 주교견진순회 일정, 봉항리 행 (1938년 5월)
5월 30일(월) 주교견진순회 일정, 병천 행 (1938년 5월)
지난 6월 동안에 나는 충북 음성과 충주와 청주와 경기도 여주와 경상도 부산과 대구와 경기도 강화 남북부의 각 전도구를 순회하였나이다. 내가 여러 회중을 심방하고 반가이 만나볼 때에 교우들의 열성이 자라가고 새로운 곳에 교회가 발전되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에 무한한 기쁨을 느꼈나이다. 천안전도구 안에도 3개소나 되는 새로운 곳에 회중이 늘어가게 되었는데, 모두 병천서 20리 혹은 30리 되는 곳이며 심방한 전도구마다 거진 다 새 촌락에서 온 신도들에게 견진을 베풀었은즉 차후에 이런 촌락에도 회중이 조직되게 되기를 바라고 있나이다. (1938년 7월)
9월과 10월 동안에 새로 건축된 회당이 몇 곳 있어서 축복하였는데, 즉 진천전도구 내의 마일과 아산 백석포와 평산 용못과 양평 장수골과 강화 냉정리와 순천 도흥리와 순천 신창 등지며 천안전도구 안에는 화성리라는 곳에 기도실을 설치하게 되었나이다. (1938년 10월)
6월 25일 주교견진순회 일정, 천안 병천 행 (1939년 6월)
이 엘리야(福先), 천안전도구 병천교회 임명 (1940년 7월)
이 엘리야(福先) 차부제께서는 천안 병천에 거주하시며 천안전도구 일을 보시겠으며, (1940년 8월)
10월 7일(월) 주교견진순회 일정, 천안전도구 병천교회 (1940년 10월)
그 외에 새로 신학원에 받아들인 신학생이 오직 두 분 밖에 없으나 자격을 갖춘 분들이 나오시게 되어 대한성공회의 지도자가 되시기를 크게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강애단(姜俊熙) 부제와 심바우로(沈興燮) 부제 두 분이 지난해 여름에 신학원에 가셔서 공부를 마치시고 장림절 중인 지난 12월 16일에 사제 신품을 받드시게 되었나이다. 우리는 사제 두 분이 느신데 대하여 천주께 감사하는 바이다. 여러 교우들은 이 분들과 신학원에서 공부하고 계신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1950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