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ai”라는 말은 이(tooth)를 의미하는 쌤(Sam)어의 Sen 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아랍어어로도 이빨(Teeth)을 Sinnen(복수)이라고 한다. 시나이 반도가 지도를 보면 마치 송곳니처럼 생겼다. 시나이는 아시아에 속하는 이집트 땅이다. 시내산을 떠나 우리는 출애굽 반대 길로 입애굽(?) 하려는 것이다. 호텔 앞에 보이는 넓은 광장은 모세가 출애굽 할 당시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내려 왔다는 곳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나는 이를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자아상을 창조한다지 않는가. 일생의 경험을 통하여 어떤 이는 이를 축소하기도 하고 확장하기도 한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선택인 것이다. 나는 내 믿음을 통해서 나 자신의 자아를 찾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과학적으로 종교를 논하지 않는다. 또한 맹목적으로 나의 종교를 시험하려 들지도 않는다. 종교를 과학적으로 논하게 되면 철학이 된다. 시나이 반도를 통과하면서 우리 일행은 유태민족의 고통을 느끼고자 했다. 인간의 본능 중 가장 참기 힘든 것이 허기와 갈증, 그리고 공포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알면서도 , 아무런 사전 계획도 없이 ‘모세”라는 한 지도자를 믿고 묵묵히 따라가는 그 긴 행렬 ! 정든 삶의 터전을 미련을 가지고 뒤 돌아 보고 또 뒤돌아 보면서 나아갔을 것이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성서 안에서 우리는 지성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 까. 하지만 지성의 판단은 진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하느님은 자연의 법칙을 초월해서가 아니라 이 척박한 광야의 생활 속에서 믿음의 눈을 뜨게 해주려고 하셨던 것이다. 탈출해야 하는 것은 이집트가 아니라 하느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는 무지함이 아니었을까?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정녕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 까.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광야를 달렸다. 모세가 아내가 될 미디안의 족장의 딸 ‘싯보라’를 만났던 오아시스를 지났다. 수년 전, 이 곳에 홍수가 나서 르비듬 오아시스 지역이 쑥밭이 되었었는데 그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곳의 명물인 야자대추 나무들이 많이 죽어있다. 그 죽은 나무 뿌리에서 새 순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끈질긴 생명력을 느낀다. 그 모습이 싱그럽기 까지 하다. MANTA 2라는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튀긴 닭고기에 그 동안 아껴왔던 김치를 곁들이니 그 맛이 일품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 주셨던 만나와 메추리기의 맛이 이보다 더 했을 까. + 주님,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음미하면서 우리는 식사 전 기도를 했다. 먹을 것을 찾아 이 광야를 헤맸을 유대 민족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점심을 마치고 약 한 시간을 달려서 우리는’ 하맘 파라온’ 이라는 바닷가 노천 온천에 도착했다. 등반하느라 지쳤던 발의 피로를 푸는 데는 온천수가 그만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사람들이 이런 천연 온천수를 그냥 놔뒀을 까. 영악한 한국사람들의 상혼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이집트 정부에서 머지 않아 이 곳을 개발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건물들이 제법 들어서 있다. 한 참을 뜨거운 물에 발을 마사지 하고 있는데 곧 이어 에디오피아에서 온 성지순례 단이 도착 하여 합류 했다. “초콜릿을 먹을 땐 꼭 흰 장갑을 끼고 먹는다’는 재들이 왜 우리를 따라 올까요?” 했더니. 일행 중 한 사람이,” 왜 흰 장갑을 껴요? “하고 묻는다. “자기 손가락까지 초콜릿으로 알고 먹으면 안되니까요.” 라고 답해 줬더니 다들 뒤집어 진다. 나라와 인종의 구분 없이 우리 모두는 다 같이 즐겼다. 우리는 또다시 달려서 마라(MARA)에 도착 했다. 이 곳에는 ‘아윤무사’ –모세의 우물-이 있는 곳이다. 참고 :아랍어로 Mara= Malah (소금) Ayun=우물 ,Musa=모세(Moses)라는 뜻이다 이집트 군대에 쫓겨 겨우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증을 호소하자, 모세가 종려나무 가지를 쳐서 쓴물(소금물)을 단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한 곳이다. 목마름 끝에 마셨던 짠물은 마치 쓴 물 같았을 것이다. 사막에서의 물은 곧 생명 그것이다. 우리 그리스토인도 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가( 세례). 40여 년을 광야에서 지내면서 물의 귀함을 절실하게 느꼈을 유대민족... 가나안 땅의 그 작은 물줄기를 보고,‘ 아, 여기 생명이 있다.’라고 외쳤단다. 믿음의 눈이 열린 것이리라.. ‘마라’에서는 사진만 몇 장 찍고, “ 베드윈들이 파놓은 우물을 유대인들이 마셨던 우물로 착하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자.”고 말하면서 우리는 수에즈 운하를향해 또 달렸다. 시나이와 이집트 본토를 연결하는 운하 (Cannel Ahmed)는 리노베이션(보수)을 해 아주 깨끗하고 내부 공기도 맑고 물이 새는 곳을 볼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이 곳을 통과할 때는 꽤나 불안했었다. 1km의 운하를 막힘 없이 통과했다.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세계 최대의 운하를 머리위에 두고 그 밑을 통과하는 기분이 제법 쏠쏠했다. 이 운하를 설계하고 공사를 책임졌하던 프랑스 출신 건축학자, 페르디낭드 리셉스는 10년 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운하를 완성했고 이집트의 미래를 열었다. 그 길이가 120여 마일(약 195km)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구분하는 인간이 만든 경계선이다. 우리는 순식간에 아시아 대륙을 지나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3시간 후, 우리는 드디어 카이로에 입성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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