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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0 (고난의 원칙)
성경본문 예레미야애가 3: 30
30.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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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홍도 목사
제가 딸 셋에 아들이 하나인데 이 아들놈이 막내인데다가 누나들 틈에서 응석받이로만 자라서 좋은 목사가 될 것 같지 않아서 늘 염려하고 꾸중을 많이 했는데 신학 대학에 들어가 한 학기를 마치고는 고생스러운 해병대에 지원해서 들어가기에 잘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고생을 모르고 자란 놈이 그 고통을 견디어 내겠는가 염려했는데 드디어 훈련을 잘 마치고 수료식을 하게되서 포항에 내려가 부모 대표로 사령관차에 올라타고 사열을 받고 나서 몰라보게 씩씩한 군인이 된 아들을 얼싸안고 등을 두들겨 주면서 "장하다 내 아들아 그 어려운 훈련을 잘 마쳤구나 내가 이제야 아들다운 아들을 둔 기분이 드는구나"하고 칭찬을 했더니 자기도 그렇게 좋아하며 칭찬해 주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지라 몹시 기뻤던 모양입니다. 부대 배치를 받고 나더니 이번에는 '해병대 수색대'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녹색 베레모를 쓰는 이 해병 수색대는 대한민국 군인 중에는 가장 어려운 훈련을 받는다는 부대인데 굳이 그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해병대 군인이 되어도 아버지가 저렇게 기뻐하시는데 녹색 베레모를 쓴 대한 민국에서 가장 씩씩한 수색 대원이 되면 아버지가 더 기뻐하실 것이 아니냐"하는 생각에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씩씩한 것도 좋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는데까지 외아들을 내보내고 싶은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고 몇일동안 설득시켜서야 겨우 그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온실의 꽃과 같이 안일하게만 지내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일수록, 큰 사명을 맡길 사람일수록, 큰 고난과 시련으로 연단 시키는 것입니다. 결코 달콤한 축복만 주시지 않고 쓰디쓴 고통을 겪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통 당하는 것이 보기 좋아서 고난 당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0-33절에 보면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금심케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노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우리가 수욕을 받고 고생하며 근심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값진 음식물과 같아서 고난을 잘 참고 견디어 소화만 시키면 영양소가 되고 힘이 되고 성장의 촉진제가 되지만 이 고난을 소화시키지 못하면 음식물이 체한 것 같아서 큰 손해를 보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에 뒤따르는 원칙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명심해 두어야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딜 수가 있습니다.
1. 감당치 못할 고난은 없다는 원칙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아무리 절망적인 고난일지라도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것만 주시지 견디지 못할 고난은 주시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부모가 다섯살밖에 안된 어린 아들에게 쌀 한 가마니를 어깨 위에 짊어지우겠습니까? 이와 같이 감당할 만한 고난만 주시지 견지지 못할 고난을 결코 주시는 법이 없다는 이 원칙을 암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험을 당할 때에는 "이제는 끝장이구나" 혹은 "에이, 콱 죽어버릴까보다",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나를 버리셨구나"하는 생각이 반드시 들 때가 옵니다. 그러나 이 원칙만 알면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승리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2.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는 원칙
우리가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는 공연히 당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고난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우둔해서 깨닫지 못할 뿐이지 먼 훗날 혹 영적으로 성장한 뒤에는 그 고난의 의미를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은 이 세상에서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반드시 의문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 이하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어찌 아들이 잘못하는데 징계하지 않는 아비가 있겠는가, 잘못하는데도 고통으로 징계를 주지 않으면 사생아이지 참 아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12장 11-13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아픈 매를 때릴 때에는 잘못을 깨닫고 회개케 한다든지, 나쁜 버릇을 고친다든지 교만을 꺽는다든지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때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 때에는 죄를 깨닫게 하고 돌이키게 하시거나 우리의 육성을 깨트려서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한다거나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서 큰 사명을 감당케 하시기 위함에서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법입니다.
의미 없는 고난이란 없습니다. 이사야 48장 10절에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여 쓰실 사람들은 반드시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풀무불에 들어 갔다 나와야 더러운 찌꺼기가 제거되어 순금이 되는 것처럼, 고난의 풀무를 통과할 때 죄성이 제거되고 육성이 깨어지며 교만이 녹아져 버리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어느 민족보다 고난을 많이 겪은 민족이고 그 고난을 통과하면서 세상 만민에게 구원의 길과 진리를 가르쳐 주는 성경이 탄생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이 동반되는 원칙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의 울타리 밖에 있으므로 알 수 없지만 예수 믿고 구원받고 자녀들이 당하는 모든 고난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원칙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요셉이 형들의 시기를 받아 죽을뻔 했다가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가고 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2년이나 감옥 생활을 할 때 같아서는 어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까? 틀림없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요 버림받은 사람으로밖에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 막말로 하면 지지리도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 말은 창세기 50장 19-21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인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은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이었지만 지나 놓고 볼 때, 모든 고난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고난으로 연단 시키되 섬세한 사랑과 지혜로 각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따라 적당한 방법으로 치리하시는 것입니다.
욥기 5장 17-18절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원칙을 알지 못하면 고난을 받을 때 낙심하거나 불신앙에 떨어지기가 쉽습니다.
이사야 28장 26절 이하에 보면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 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로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놈은 가는 회초리로 때리고 어떤 놈은 굵은 몽둥이로 때립니다. 어떤 곡식은 수레바퀴로 맷돌질을 해야 굵은 껍질 벗겨지듯이 극심한 고통으로 우리의 죄성과 육성의 껍질를 벗기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곡식 알맹이는 부수어지지 않을 만큼 연자방아로 곡식들 찧는 것입니다. 그 섬세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는 기묘하고 오묘막측합니다.
믿음이 하나도 없는 무신론자는 우주 만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고, 믿음이 조금 있는 사람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하지만, 우리 인간의 작은일까지 간섭하시거나 섭리하시는 분은 아니라고 믿으며,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은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까지 섭리하시고 우리의 머리터럭하나 까지도 세시는 섬세하신 하나님을 매일 매일 생활에서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시련 속에는 섬세한 하나님의 사랑이 배후에 있다는 원칙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유익이 없는 고난은 없다는 원칙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때 고난의 보자기에 싸서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복을 주실 때 반드시 고난을 겸하여 주시는 법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공이나, 실패나, 건강이나, 질병을 지난 다음에 보면 다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고 유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67-71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했습니다.
모든 고난은 다 유익한 것입니다. 평안할 때 받는 은혜보다 고통 속에 받는 은혜가 더 크고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하나님이 안 계신가보다" 혹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보다"하고 하며 낙심하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의 원칙들을 알면 의심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9장 14-16절에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젖먹이는 엄마가 자기 아기를 잠시도 잊은 없음같이 나도 너를 잊을 수가 없다 혹 육신의 엄마는 잊을 때가 있어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한 기독교인에게 지금까지 지나온 과거를 모래사장 발자국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내내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는데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는 발자국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왜 내가 고통을 당할 때는 나를 버리고 떠나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주님께서는 "얘야, 그때는 내가 너를 떠난 것이 아니라 너를 내 품에 안고 갔단다"고 하실 때 발자국이 하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부모가 자기 어린아이가 잘 놀 때는 멀리서 바라보지만 아이가 위험한 곳이 갈 때는 얼른 가서 품에 안습니다. 더욱 숨을 헐떡이며 몹시 아플 때, 그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고난의 원칙들을 명심하고 고난 당할 때 결코 의심하거나 낙심하지 맙시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