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끼의 말뚝
전 정 우
< 2 회 >
이런, 이런!
다시 구시렁거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손님을 초대한 놈이 저런 짓을 다 해? 막 되먹은 놈 아닌가. 빨리, 끝내기나 해라. 제발 잠 좀 자자. 홈 리스에게 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구세군과 사회단체 수박시설을 차례로 머리에 떠올리고 있을 때 방광이 차올랐다. 소변을 보기 위해서 일어서기가 죽기만큼 싫었다. 색스는 저들이 하는데 왜 내가 배설을 하느냐는 오기까지. 참다못한 내가 벌떡 몸을 솟구쳤다.
이불 가로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묘한 것은 눈도 사람을 알아본다는 점이었다. 사람 누운 위에는 눈이 별로 없었다. 물기로 변한 눈 아닌 눈물이 이불 위에 덮인 비닐 포 골을 따라 얼고 있었다. 이불 속에서 움칠거릴 때마다 보안등 불빛을 받고 눈물이 반짝거렸다. 거지 색스 치고는 퍽 화려한 것에 내가 감탄했다.
일어선 자리에서 한 발은 이불 속에 둔 그대로 몸만 틀고 바지 지퍼를 내렸다. 오줌 줄기가 곧게 뻗어갔다. 술 마신 뒤끝답게 불빛을 받은 포물선이 멀리까지 이어졌다. 폭포수 같은 줄기가 떨어지면서 눈이 녹았다. 아스팔트 바닥이 하수구처럼 검게 드러났다. 오줌은 낮은 곳을 찾아 소리 없이 눈 속으로 포복해 가거나 고여서 얼게 될 것이고, 다가올 도시의 퇴행을 예언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새벽까지 잭도 엘리스도 한 번쯤 소변을 보게 될 것이다. 잭과 내가 소변을 본 자리와 엘리스가 소변을 본 자리가 같은 수는 없다. 멧돼지나 고란이 같은 짐승들이 오줌 누운 자리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비죽 웃음이 나왔다. 오줌으로 눈 녹은 자리가 성차별을 하고 사람과 짐승 차별까지 하다니 기가 찼다. 나는 이미 사람보다 짐승 쪽에 가깝다고 내 삶을 에누리해 두고 있는 참이었다.
사람이 책을 만권 이상 읽게 되면 저절로 신의 경지에 놓인다지 않던가. 그럼 만 명 사내들로부터 지문을 받아 두었다는 에리스는 어떤가. 그녀 역시 입신의 경지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그래서 그러는 것 같다. 많고 많은 뒷골목 다 제쳐두고 도서관 벽에 의지해서 둥지를 틀게 된 동기가. 밤에만 도서관 벽에 둥지를 트는 것은 아니었다. 대낮에는 도서관 열람석에 엎드려 앉아서 코를 골면서 잠드는 여자, 어느 쪽으로든 입신의 경지에 있다고 보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엘리스는 그렇다 치고, 나는 무엇인가? 엘리스 몸에 자신의 DNA를 심어주었다는 남자들은? 엘리스가 신이 되도록 도와주는 사제의 위치? 모르겠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내의 말 그대로 내가 밀리언 달러 이상, 카지노에 꼬라박았다는 사실이었다. 이 정도면 나도 신의 경지에 이르렀어야 하는데, 카지노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도박판 하나 제대로 뀌는 게 없으니 말이 아니었다. 그럼 스스로 목줄을 조이고 세상을 뜨는 게 순리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 혹은 행운이란 순간에 온다는 신념 하나로 버텨내던 게 그때 나였다.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있을 때 엘리스가 나를 거칠게 흔들었다. 왜 소란인가? 잭과 볼일 다 보았다는 신호였다. 계속 잠에 파묻혀 있고 싶은데, 움직이면 더 추운데 귀찮았다.
손가락 사이에 콘돔을 끼고 덤비는 손을 내가 뿌리쳤다. 거머리 같은 손이 내 몸을 포기하지 않았다. 홧김에 가슴을 떠밀었던지 혈관을 타고 전해오는 촉감이 물컹했다. 잠든 성욕이 벌떡 일어서는 것도 무시하고 미적미적 망설였다. 그녀 맨살과 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냄새를 철조망 높이로 계산하고 있을 때 칼로 베듯 날카로운 통증이 파고 들어왔다.
여윈 다리를 접은 여자 무릎이 내 하복부를 들이받은 것. 번쩍 켜진 반딧불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지독한 도발이었다. 말이 하복부이지 낭심이었다. 내가 입을 쩍 벌리고, 몸을 뒤채고 고통스럽게 할딱거렸다. 창자가 끊기는 것 이상으로 통증이 심했다. 킬킬 여자 웃는 소리가 들렸다. 못된 여자, 버릇을 뜯어고쳐주고 싶어도 허리를 펴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숨이 컥컥 막히는데 어쩌지 못했다.
폭풍이 몰아치듯 경적이 울렸다. 번쩍번쩍, 잠들었던 뒷골목이 진저리를 쳤다. 소방차는 곧 달아나고 소리만 귀에 남았다. '메밀묵 사아려어', '찹살떠어어~ 사아려어-'를 차지게 외치던 소리처럼 꼬리가 길었다. 마음이 착잡했다. 그리운 게 찹쌀떡이나 메밀묵인지 그 시절 그 골목인지, 스멀스멀 눈물이 나왔다. 고환이 아파서 나오는 눈물은 아니었다. 비박의 선물이었다.
자정 무렵에 한 바퀴 둘러본 객장은 썰렁했다. 돈 있고 팔자 좋은 치들이 미치지 않고 밤새워 도박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도 주말에는 새벽까지 슬롯머신 줄을 기웃거리는 수가 적지 않지만 그날은 좀 그랬다. 이럴 때 자리를 메워주는 게 우리, 삐끼들 몫이었다.
첫댓글 그들의 세계를 너무도 실감나게 그리셨네요.
글감을 구하시기 위해 많은 시간 발품을 팔으셨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수고와 열정이 좋은 작품으로 짜여지는군요.
전 선생님의 노력에 숙연해지는 저녁입니다.
그래도 그들에겐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생존전략이 있군요. 나름 저들만의 규칙도 있고 의리도 있고요.
사람 사는 곳은 결국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카지노 같은 도박판에 갈 때 십계명처럼 지켜야 할 것을 귀 종그리고 들어 둔 게 있습니다. 그 말을 줄이면 노름판에 어울릴 때는 딸 생각보다는 돈 잃어줄 계획부터 세워두면 패가망신 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지요.
집을 나서기 전에 호주머니에 든 현금 카드나 크레딧 카드부터 빼서 얌전히 모셔둘 것, 현찰은 그 날 잃어도 좋을 만큼만 호주머니에 담고 갈 것, 세번째 좌우명은 호주머니에 든 돈 다 나가거든 한번 씩 웃어주고 일어서라는 것이지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락이 지나치면 거지 소굴로 굴러 떨어진다는 것 만은 명심해 둘 필요가 있지요. 망하고 떠난 사람들 이야기가 적지 않지만 다 떠벌릴만 하지는 못합니다.
장면마다의 묘사가 군침을 돌게 합니다.
맛있는 그리고 제법 풍성히 차려진 저녁 만찬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아, 물론 묘사가 그렇다는 것이고
줄거리는 말 그대로 거지(?)들 이야기지만...
한 상 잘 먹고 갑니다.
내일 저녁을 기다리면서(이미 올라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