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 대한민국 국회는 여의도에 있다. 그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는 항상 1인 시위자가 자리 잡고 있다. 1인 시위라 함은 각종 억울한 사연을 쓴 패널 하나를 목에 걸고 추우나 더우나 국회 정문 앞에 서서 국회의원이 한번쯤 억울한 사연을 읽어보라고 애처롭게 ‘버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검은색 중형차를 탄 국회의원들이 쏜살같이 정문 앞을 스쳐지나가면서 그런 1인 시위자의 사연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1인 시위자는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한동안 ‘석궁판사를 비난하는 사람’이 1인 시위를 벌였었다. 당사자 김명호 교수는 국회가 아니라 서초구 대법원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쳤었다. 내용은 자신은 억울한 판결의 희생자라는 것. 국민들은 김명호라는 교수 이름은 몰라도, ‘석궁사건’은 매스컴을 통해서 다들 기억한다. 대체로 “무슨 억울한 사연을 가졌는지 몰라도,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해를 가해?”라고. 그런데 허구한 날 이상한 일만 벌어지는 대한민국에서 또 벌어진 이상한 일로만 생각하고 넘겼을 이 사건에 대해 새롭게 바로 볼 계기가 생겼다. 바로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재창조한 영화 <부러진 화살>은 9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정지영’의 귀환을 알리는 작품으로, 한국 영화계에서 작품 활동이 전무하다 싶은 60대 중견 감독들의 맥을 잇는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남부군>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룬 작품들을 내놓으며, 영화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진중하게 전달해온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을 통해서도 약자의 시각에 서서, 기득권층을 보호하고 집단의 폐해를 꼬집으며 사회 비판적 주제의식을 오롯이 담아낸다. 특히 <부러진 화살>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면서도 위트 있는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정 드라마의 또 다른 진화를 보여준다.
사건의 주인공 김명호 교수는 한 대학의 수학과 교수였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교수로 재직하던 중 대학 본고사 수학문제 채점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출제된 문제의 오류를 집어내었다고 학교 측의 괘심죄에 걸려 교수재임용에 탈락한다.(김 교수의 주장) 그런데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학교 측의 조치가 합법적이었다는 판결이 내려진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의 교육현실(대학문제)에 욕을 하며 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제2의 인생을 살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달랐다. 그 자신이 재판을 받으면서 법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재판정에서 ‘고귀한 판사님’께 대든다. 전례 없는 피고의 역습에 판사는 당황하다 못해 황당할 수밖에…….
여기서도 괘씸죄에 걸렸을까? 김명호 교수는 모든 재판에서 패소하고, 징역형을 선고 받고 꼬박 형기를 다 채우고 출소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김 교수가 유죄이고, 무리수를 두었고, 대한민국 사법부는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김명호 교수가 안됐다 싶었는지 몇몇 언론과 매체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하며 인터뷰를 한다. 그들 중에 ‘서형’이라는 프리랜서 작가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공판에 참가했다가 여타 피고인과는 달리 판사에게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법전문가에게 법을 들이대는 김명호라는 특이한 피고인을 보게 된다. 서형은 그 공판과정을 책으로 써낸다. 그 책 제목이 <부러진 화살>이다.
이 책을 본 문성근이 정지영 감독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고, 당시 다른 영화를 준비 중이던 정지영 감독은 그 책에 관심을 갖고 공판기록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정지영 감독은 어렵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알려졌다시피 안성기, 문성근 이하 전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하였고 단지 5억 원으로 영화가 완성된다.
국민 배우 안성기는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캐릭터로 분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석궁 사건의 실존 인물을 극화한 캐릭터 ‘김경호’는 한치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고, 법정에서 선처를 호소하기는커녕 법대로 판결하지 않는다고 판사들을 꾸짖는 별스러운 인물.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완고한 캐릭터가 안성기라는 배우 본연의 훈훈한 이미지와 만나 인간미를 더하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안성기는 “교수로서의 양심과 자존심이 굉장히 센 김경호 캐릭터를 부드러울 땐 부드럽고, 확실한 정감을 줄 수 있는 인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되었다. 그런데 당시 부산에서는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김진숙 위원장이 고공시위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예상대로 논란이 거듭됐다. <도가니>이후 한국 사법부에 정조준을 한 영화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이 영화가 일반에 개봉되었다. 그것도 설 연휴에…….
<부러진 화살>은 ’기드온의 나팔‘이 아닌 대한민국이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경고등‘이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 벌어지는 일련의 반응과 대책들도 ‘2012년 대한민국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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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관. 201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