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부끄러운 현대사 한 장면
김 길 수
봄볕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3월 하순! 올해에도 어김없이 6.25전사자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식(開土式)소식들이 들려온다. 국방부는 올해도 해병 1사단이 영덕지구에서, 육군 제 50사단이 영천지구에서의 첫 작업을 시작으로 오는 11월까지 8개월 동안 전국 85개 지역에서 34개 사단과 여단의 장병 연 10만여 명이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참전했다가 어느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조국과 부모형제를 애타게 부르며 산화(散華)해 갔을 전사자들의 유해를 수습하는 일의 중요성이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는 국가 백년대계를 책임질 후세들에 대한 나라사랑 교육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은 끝까지 국가가 책임진다!’는 국민적 믿음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책무다.
그럼에도 6.25전쟁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13만 3천여 명의 전사자 유해를 아직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니 후손들로서 참 면목이 없는 일이구나! 싶다.
6.25한국전쟁이 발발한지도 올해로써 66주년이다. 너무도 긴 세월이 흐른 뒤라, 유족들도 대부분 타계하신 상태다. 따라서 유족들의 한과 눈물도 거의 역사 속으로 묻혀가 버렸다 해야 할 실정이다.
전쟁발발 후 거의 반세기만인, 지난 2000년도에 이르러서야 처음 전사자유해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이었고 부끄러운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이다. 그나마 당시엔 한시적인 사업으로 시작하였다니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전사자나 유족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를 지켜보는 전 세계인들에게도 부끄럽고, 나라 체면도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세계 곳곳의 전장(戰場)에서, 전사한 자국병사들의 유해를 찾는데 기울이는 미국의 국가적 노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는, 물론 제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치적 사회적 또는 과학적인 여러 문제가 많고도 많았겠지만, 부끄러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2007년에 이르러 ‘전사자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되었다.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고, 해마다 동절기를 피해 본격 시행해가고 있다. 뒤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거기다 전사자 유해발굴감식전문부대가 창설된 것도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하니 그동안의 부끄러움을 상쇄해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올해로써 전쟁발발 66년! 어느덧 전쟁의 참상을 겪어보지 않은 전쟁 미 체험세대가 우리국민의 90%이상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많은 국민들이 6.25전쟁을 아득한 옛 역사속의 전쟁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노파심이겠지만 어쩌면 사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전쟁, 이른바 임진왜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뚱한 생각이 들 정도다.
따라서 6.25전쟁 희생자 유족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야 이러한 전사자 유해 발굴 문제가 아예 관심 밖의 일일 수도 있는 일이고 생소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아직도 6.25전쟁의 후유증들이 넓고 깊게 남아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해마다 6월 현충일이면 할머니들의 소복(素服)차림을 너무도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조금만 관심 있게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도 6.25 전상으로 침상생활을 이어가는 중상이자들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모습들에 대한 익숙함 때문인지 무심하게 간과해버리기 일쑤다. 그런 무심함의 연장선에서 해마다 들려오는 전사자 유해 발굴 소식도 별다른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가 전사한 분의 유족들이 유해마저 돌려받지 못한 채, 두 세대가 바뀌는 세월이 지나갔으니 그 슬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이미 타계하셨거나 아직도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유족들에게는 그야말로 천추의 한으로 남을 일이다.
거기다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유해 발굴 작업의 어려움은 훨씬 더 배가된 실정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기록조차 없는지라, 당시 참전자들의 증언에 의한 위치 파악 문제라든가, 각종 개발 사업으로 지형이나 지표의 변화 등이 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원확인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유전자 시료채취도 어렵기 짝이 없는 문제라고 한다. 많은 세월이 흘러버린 탓에 유족들이 대부분 고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유전자 사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현재 약 3만여 명으로 6ㆍ25전사자 17만여 명 중 유해가 미확인된 13만 3천여 명과 비교 시 23% 수준이며, 신원확인율은 약 1.2%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연말까지의 실적은 9,100여위를 수습하였고, 이중 109위는 신원이 확인되어 유족에게 인도했다는 소식이다.
비록 난관이 많다할지라도 하루속히 더 많은 유해가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그들의 유해를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리는 임무는 우리 후손들의 소중한 책무인 만큼 국민 모두가 관심과 응원을 보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전사자유해발굴사업은 잊혀져가는 6ㆍ25전쟁을 요즘의 전쟁 미 체험세대에게 상기시키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부끄러운 일도 치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라사랑과 전쟁의 비참함을 일깨워줄 수 있는 산교육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부산 수필문학 여름호 2016. 6. 30 )
< 투고자 인적사항 >
- 부산문협, 한국문협회원, 공무원문학회원, 연제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