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책을 읽냐고 묻는다. 글쓰기 학교를 1년 가까이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면 더 놀라워한다. 도대체 어떻게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생기냐며 고개를 젓는다.
시간이 없다면 없고 있다면 있는 것이 전업주부의 삶이다. 절대적인 시간이 적은 직장인들도 작정하고 시간을 내면 낼 수도 있다. 직장인이나 주부나 다 마찬가지이다. 시간을 쪼개거나 짬짬히 나는 시간을 활용하면 뭐든 할 수 있다. 어쨌든 그런 시간을 휴식으로 보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책을 읽으려고 할까. 또한 책만 읽고 그냥 넘어가면 별로 남는 것이 없어서 글을 꼭 써야한다 생각에 짧은 요약이든 밑줄 그은 문장이든 조금이라도 글을 적으려고 한다. 왜 그럴까.
첫째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키우다가 둘째를 낳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5년 동안 아이 키우고 집안 일 한다고 너무 갇혀서 지내는 내 모습을 보았다. 생활 범위가 좁아지는 만큼 생각의 폭도 좁아지고 소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슨 책을 읽을지 잘 몰라서 책 권하는 책들을 읽으면서 책목록을 만들었다.
스스로 읽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시작한 것도 크지만 나중에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학창시절에 받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난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교육을 받기를 원했다. 아이들을 잘 도와주기 위해서는 내가 달라져야했다. 내 안에 남아있는 과거 교육 방식의 흔적들이 여전히 많이 있음을 발견했다. 책을 통해서라도 사고의 폭을 넓히고 다양하고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능력을 기르고 싶었다.
한마디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동시에 아이들 교육도 보란듯이 잘 하고 싶은 욕심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종의 자기 계발 차원이었다. 그러다 셋째를 낳았다. 24시간 아이들에 둘러쌓인 채 1년 넘게 살다 보니 정말 우울했다. 그 때부터는 탈출구 혹은 치료제로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 셋 돌보는 틈틈히 책을 읽다보니 앞부분은 열심히 읽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러다가 로고스 서원에 등록을 했다. 세 아이를 맡기는 문제, 양산 서창에서 부산 수영구까지 왕복 세시간 거리 등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글을 썼다. 매주마다 읽어야할 책이 있다는 사실이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고 매주 글을 써야한다는 부담감은 쓰고 난 뒤 맞이하는 그 뿌듯함 때문에 다음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정 도서들은 꼬박꼬박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글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쥐어짜기도 하고 내면의 이야기를 쓰면서 펑펑 울기도 했다. 모임 전날까지 한 줄도 못써서 모임을 빠져야하나 고민하다가 막판에 부리나케 글을 써서 달려간 적도 많았다. 모처럼 미리 썼던 글을 전부 다 지우고 역시나 모임 직전에 다시 쓴 적도 있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다고 해서 아예 글을 못쓰는 것도 아니였다.
세 아이 육아라는 삶의 무수한 핑계거리를 지긋히 누르고 어쨌든 무슨 수를 써서 마감 직전(모임 직전)까지, 읽은 책이나 자신의 삶에 관한 어떤 글이든 써내는 것은 폭풍우 같은 일주일의 모든 삶을 관통하여 작은 결실을 맺도록 만드는 훈련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내 안에 많은 치유가 일어나고 새로운 시각들이 생겨나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내연과 외연을 넓힐 수 있었다.
로고스 시작 당시 10개월 겨우 잡고 서기 시작했던 막내딸은 지금 뛰어다니며 "엄마 책 읽어줘" 라고 혀 짧은 말을 할 정도로 많이 자랐다. 이 아이의 자람이 나의 성장으로 여겨도 될 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처음에 자기 계발로서 책을 읽다가 로고스 과정을 거치는 동안 독서 수준 뿐만 아니라 삶의 질 차원에서도 큰 성장과 발판을 마련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로고스 과정을 마치는 지금 나는 또다른 차원의 독서 생활을 이어가려고 한다. 로고스 4학기 지정 도서들은 기독교 고전 뿐만 아니라 동서양 고전들도 이루어져있다. 제목은 알고 있으나 감히 혼자서 읽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은 고전을 꾸역꾸역 읽어가면서 왜 고전을 읽어라고 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지금 당장의 어떤 목표나 결과를 위해서 책을 읽는 차원을 뛰어넘어 길고 긴 삶의 여정 속에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은 친구같은 느낌의 독서 체험이었다. 앞으로 이런 경험을 더 하고 싶다. 책 읽는데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도 고전 읽기를 계속 해 볼 생각이다.
팍팍한 육아의 삶 때문에 소외받고 연약한 이들의 힘겨운 상황과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은 읽기가 어려웠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고 그런 현실을 분노하며 행동하는 것에 '과연 바뀔까?' 라는 회의적인 마음도 많았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해 공감하고 말로는 많이 떠들었는지만 실천은 전무했다. 관심 있는 척 했지만 실제로 귀를 기울여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러다 약한 자들의 소리를 대변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어느 작가의 고백은 큰 울림을 주었다. 사회 현실을 반영한 책들,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들의 외침이 담긴 책들을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참 역설적이게도 고통과 억압 속에서 더욱 빛나는 것이 생명력이며 진실을 향한 몸부림이 더욱 생생하다는 것이다. 마음에 부딪히는 묵직한 것들이 많아서 좀 버겁기는 하지만 애써보고 싶다.
넷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은 소위 멘붕을 일으켰고 이제 꼼짝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겠구나 자조섞인 한숨이 나왔지만 상황을 넘어서서 좋아하는 일을 1년 동안 해왔던 나 자신을 돌아보니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였다. 물론 아기를 낳고 키우는 과정은 정말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였다. 네 아이 엄마로서 또 어떤 책들과 동행하게 될까? 그 삶에서 묻어나는 향기가 담긴 글들은 또 어떨까? 만만찮은 생활이 예상되기 때문에 막연한 기대감보다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그 자체를 글로 풀어내고 좋은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닥치지 않는 현실을 두고 너무 앞서서 걱정도 기대도 하지 말자. 전업주부의 삶을 책과 함께 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을 돌아보니 나름 조금씩 자라고 있었고 그것은 하루 하루의 삶이 모여서 이루어졌다. 그 하루를 오늘 또 보내면 된다 책과 더불어. 책을 읽는 이유가 이제는 딱히 없다. 삶의 일부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것이 로고스의 목표 중에 하나이자 책의 힘이리라.
첫댓글 세아이의 육아.
매주 한 권의 독서와 글짓기. 글짓기를 못해 빠질까 궁리하던일.
다쓴글을 직전에 고쳐쓰고 허겁지겁 달려갔던일.
세아이의 엄마는 아니었어도 님의 사정이 눈에보이듯 그려집니다. 졸업을 축하축하드리고 더불어 주신 귀한생명과 님의 서가에 꽂혀지는 책의 더하기에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니시기를 기도하며 슈퍼한 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