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순엄마

[안창목]

영순엄마

  그 해 가을、나는 명륜동으로 하숙집을 옮겼다.

부동산 아저씨와 성균관대 정문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니 동네가 조용하고 담너머 비교적 나무들이 많이 우거진 단독주택들이 있었다. 두 번째의 집을 거쳐 세 번째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문이 열리자 눈이 크고 부산사투리를 쓰는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녀는 부동산 아저씨와 몇마디 말도 나누기 전에 나를 쳐다보더니 그냥 나의 손을 덥석 잡으며

『학생、우리 같이 삽시다』

라고 말했다. 나는 갑작스런 호의에 놀라면서도 그 사이 몇 년 동안 하숙집이라고 전전했지만 손을 잡고 같이 지내자고 맞이하는 하숙집 주인은 그 어디에도 없었던 터라 나는 방 구경도 아니하고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며 동의했다.

  그 날 오후 나는 바로 짐을 옮겼다. 저녁밥은 주인집 안방에서 모두 같이 먹는 주인과 하숙생의 구분이 없는 집이었다. 그러나 온 가족과 3명의 하숙생이 모였음에도 주인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물어보았더니 그 분은 시내버스 운전기사라고 했다. 그래서 식사시간대를 잘 맞추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둥글게 둘러 앉아 밥을 먹었고 먹고 난 후에는 한쪽 구석에 놓인 TV를 좀 보기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주인아저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좀 일찍 돌아와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TV를 보기도 하고 말없이 꽃 몇포기 심어져 있을 뿐인 마당과 하숙생들의 방문쪽을 바라 보기도 하다가 부부가 며칠 만에 함께 밥상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주인아저씨의 직장에서의 일이란 하루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하는 「운전」이었지만 그는 긴장하는 모습없이 그냥 편안한 얼굴에 말이 없는 정적인 사람이었다. 얼핏보면 항상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을 갖게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그에 비해 아주머니는 활달하고 억센 사투리를 거침없이 써가며 유어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성균관대학 앞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당을 경영하면서 집안일을 돌보는 힘들고도 바쁜 사람이었으나 항상 웃고 말하기를 좋아했고 흥이 날 때는 즐겨 노래도 불렀다. 주인의 부부사이는 참 좋았다. 주인의 모습이 밝으니 하숙집의 분위기도 덩달아 좋았다. 집안에 사람이 없을 때는 평화로운 정적이 흘렀고 사람이 많아지면 이 방 저 방에서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들렸다. 성장한 아들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멀리 직장 부근에서 거주했고 집에는 고3의 딸과 중2의 남동생이 있었다. 그 외동딸의 이름이 「영순」 이였고  영순이는 저녁 시간이 되어 얼굴을 마주 할 때면 오늘은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고 그저께는 저런 일이 있었고 국어시험에 김진섭의 『백설부』가 출제되었다든가 시인 이호우의 『바위』가 출제되었다든가 그런류의 이야기를 즐겨 해 주었다. 

  어느 날 운전비번인 주인아저씨가 외출했다가 이른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따라 뭔가의 이유인지 두 부부는 말다툼을 하는 듯 하더니 급기야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싸움의 발단이었는지 건너방에 있던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내가 처음 목격하는 부부싸움이었다. 싸움은 부부 어느 누구도 한발의 양보없이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건너 방에 있었지만 내가 한 집안에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울 만큼 그들의 싸움은 지속되었다. 밖으로 나가 자리를 피할까 생각하고 있던 중 갑자기 영순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아주 크게. 그녀는 그것도 모자라 방바닥을 치면서 아예 깔깔깔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참다 못해 터뜨린 그녀의 울음소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소리가 너무나 소리가 컸고 그 상황에서 웃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마당으로 내려가 여름의 열린 방문을 통해서 멀건히 바라보았더니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는 박장대소하고 있는 자기 처의 모습을 좀 놀란 눈으로 한참 동안을 움직이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사람、싱겁기는』

하고 한마디 던지며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고 밖으로 어디론가 외출해 버렸다.

  영순엄마는 남편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없을 듯 하면 번번히 이런 폭소작전으로 남편의 허를 찌르며 싸움을 끝내버렸다. 부부싸움은 말꼬리싸움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라고 할까. 그러자 다시 하숙집에는 웃음과 평화가 깃들게 되었다/

[유영례]

재밌습니다.

[안창목]

감사합니다. 집밖에 눈이 녹지 않아 나갈 수가 없으니 하루종일 책보고 tv 보고 군것질만 합니다. 추운 밖을 피해 집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이 다행인지 따분한 건지 구분이 안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