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기념비
감사는 기억에서 오는 것이기에 우리 세대는 물론 후세대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살기를 권면하는 글입니다.
기념을 강조하는 민족
예루살렘에 가면 독일의 나치에게 학살당한 대학살(the Holocaust)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야드 바셈"이라는 유대인 박물관이 있다. ‘야드 바셈’ 이란 말은 ‘이름을 기억하게 하다’ 라는 뜻이다. 그 박물관 입구에 “망각은 추방의 길이지만 기억은 구속의 비밀이다(Forgetfulness leads to exile while remembrance is the secret of redemption)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유대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기억’(記憶)을 강조하는 민족이다. 기념에 익숙한 역사를 통하여 그들은 과거를 기억함이야말로 현재와 미래의 생존의 길임을 교훈받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4장에 이 기억과 기념에 관해 교훈을 주는 열 두 기념비 사건이 나온다. 여호수아 3장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넜고 이제 남은 것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원주민들과의 전쟁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에 앞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일을 선행하라 하셨으니 바로 열 두 기념비를 세우라는 명령이다. 요단강은 시발점에서 사해까지 약 900미터나 낮아 지기 때문에 중간에 폭포 비슷한 급류가 많아 유속이 아주 급한 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4, 5월은 북쪽 헬몬산의 눈이 녹고 또한 봄비가 내리기 때문에 요단강 물은 크게 불어 그 깊이가 3~4m나 된다고 한다. 비록 폭은 짧지만 유속이 빠르고 깊은 물을 건너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은 처자식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단강 물줄기를 멈추게 하셨고 마른 땅같이 된 요단강을 백성들이 손쉽게 건넜다. 이제 제사장들만 강에서 나오면 상황 끝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열 두 지파에서 한 명씩 뽑아서 강 복판에서 돌을 취하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돌 열 두개를 쌓게 하셨고, 또 열 두개를 메고 나와서 그들이 머무르게 될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게 하셨다. 이 일이 끝나서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을 건넜고, 역사적인 요단강 도하 사건이 종결되었다.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기에
왜 하나님께서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모습을 기뻐하신다. 기념비는 가나안 땅 정복의 장애물이었던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두고 두고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기에 기억하게 하는 기념비가 필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과거의 교훈을 잘 가르치지 않는 민족이다. 그저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만 가르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남다른 기독교적 역사안목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신앙은 과거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해야 감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생각하다’는 think 와 ‘감사하다’의 thank는 같은 어원이다. 생각해야 감사가 나온다.
Think and thank 이다. Remember and remodel 기억해야 신앙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라’고 자주 말씀하고 있다. 그저 스쳐가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느끼는 깊은 생각이다. 깊이 생각하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지난 날의 삶을 깊이 기억하는 것이다. 과거 내게 베푸신 은혜를 회상할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손길을 느끼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46장 8-9 말씀하신다.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기억하고 다시 생각하고 기억하라.”
이스라엘 민족이 죄를 지었을 때는 멸망했고 회개하였을 때는 구원받은 역사를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지난 날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실 것을 확신으로 바라보며 감격한다. 이름하여 ‘주 안의 안전신앙’(security in Jesus)이다. 지쳐있을 때 과거 나에게 도움을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면 힘이 생긴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신앙이 과거보다 약해지는 이유는 생각하는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시간 그 생각과 기억이 감사와 재헌신의 기도로 승화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후세대를 위한 신앙교육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신 또 다른 목적은 후세대를 위한 신앙교육에 있다. 여호수아4장 6-7절은 말씀한다.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이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여기서 ‘기념’이란 히브리어 ‘직카론’이 출 12:14에 다시 나온다.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출애굽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수천 년 전의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고 자기들이 누구이고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새롭게 다짐하고 고백하고 있다. 미 남침례신학교의 디모데 존스(Timothy Jones) 교수는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 “우리는 미래를 행진하기에 앞서 반드시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인간으로,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게 해주는 필수작업이기 때문이다”(We must remember the past to move ahead to the future. Recalling the past is essential for knowing who we are as persons and as Christians).
요단강에서 돌을 취하여 열 두 기념비를 세운 목적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가르쳐 주는 신앙의 전수에 있다.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수4:21~22). 후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섬기며 살아야 할 지를 잘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참으로 귀한 신앙의 도전을 하신다.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이 무슨 뜻이뇨 하거든” 내가 너희 조상들을 어떻게 인도하고 도와주었는지 가르쳐 주어라. 소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은혜의 기념비를 세우라는 것이다. 가장 큰 상속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믿음을 계승해 주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어른들이 자녀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도전한다. 나는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고 있는가? 그들이 먼 훗날 기억할 신앙의 기념비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기념비를 남기고 있는가? 물질인가? 사업인가? 우리의 인생은 생각하고 바라는 것처럼 마냥 긴 것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귀한 일을 하기에 많은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다.
은혜의 벽
‘The 300’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원제는 The 300: remember the Spartans 이다. 이 영화는 기원전 480년 제3차 페르시아 전쟁 중 '테르모필레 전투'가 배경이다. 그리스를 침략하는 100만 명의 페르시아 군사를 막기 위해 스파르타에서 떠난 군사는 단 300명이었다. 비록 왕을 비롯한 모든 용사들이 죽음에 이르지만 덕분에 페르시아의 그리스 원정은 차질은 빚게 되고, 스파르타의 장렬한 희생에 고무된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로 부터 그리스를 지키게 된다.
그리스로 들어오는 마지막 관문인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300명의 정예병사와 함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수 천개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는 스파르타 왕인 레오디나스가 남긴 말이 있다.
“우리는 결코 후퇴하지 않고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이렇게 용감하게 싸운 스파르타를 기억하라”(Remember the Spartans)이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최상의 교육임을 보여주는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 찾아올 임종을 맞아 자녀들에게 무엇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말하겠는가? 아니 우리의 후세들이 우리가 남긴 무엇을 기억하고 살겠는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사는 존재이다.
나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내게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다시 기억하는 일이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신앙이란 주께서 과거에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성령을 통해 현재화 시키는 작업이라고 그의 성령론에서 말했다. 신앙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매 순간 생각하고 분발하는 것이다. 거실에 진열된 홀인원 컵이나 골프대회 우승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기념비이다. 언제 어디서 주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다는 은혜의 기념비가 많아져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을 재현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은혜의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그래서 자신은 물론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르쳐야 한다. 힘들 때마다 과거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기억하면서 새 힘을 얻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해야 한다. 식은 열정과 말라버린 감동을 새롭게 하고 재가동시키는 한 가지 비결은 우리의 가슴에 은혜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감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노력으로 되는 일이기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다(골3:15). 그래서 감사는 의지이자 신앙인 것이다. 감사는 선택이다. 은혜의 기념비는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감사와 불평 중 감사를 택하는 자가 세우는 의지적 신앙의 결단이다.
어떤 감사의 징표가 있는가? 어떤 신앙의 기념비가 있는가? 어떤 은혜의 기념비가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그 기념비를 기억하고 사는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후세들이 영원히 기념하는 믿음의 유산을 마련하자. 영원히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나 기억하고 바라보는 신앙의 유산을 남기자. 우리의 가정에 ‘은혜의 벽’ 혹은 ‘은혜의 방’을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자.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은혜의 벽에 전시된 하나님의 도우심과 용서와 축복의 흔적들을 볼 때마다 믿음이 새로워지고 힘이 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이어질 것이다. 더 귀한 것은 그 은혜의 벽에 남겨진 기념비들이 후세에 가장 고귀한 유산이 될 것이다.
첫댓글 주님의 은혜를 자주 망각하고 있는데, 더욱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감사..또 감사하렵니다...
은혜로운 주일 보내셨지요?
힘찬 설교로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끼치신 줄 압니다.
매일 기도합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낮예배 2,3부를 제가 설교하는데, 금번에 총회파송을 받은 선교사가 모레 출국하기에 설교를 하였고, 찬양예배는 헌신예배로 외부강사가 왔습니다. 오늘은 낮예배때 사회만 보았네요...아주 가끔 이럴 때가 있습니다...지난 한주간은 아주 평화로웠습니다. 이제 다음주일 설교구상에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