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국 가정으로
장인자
우리집 가족 구성은 부부 그리고 세자매로 5인 가족이다. 2004년도에 가나가와현 하다노에서 오사카로 이사를 했다.
남편 회사에서 인사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오사카는 남편의 고향이자 시댁이 있어 환고향한 셈이라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2007년에 또다시 남편이 동경 본사로 이동발령을 받았다. 이 인사 발령을 놓고서 아이들은 동경으로 이사하기를 완강하게 반대했다. 몇며칠 고민 끝에 남편만 가기로 결정하였다.
언제나 쇼핑 일을 도와주던 남편의 부재로 인해 나는 자전거 타는 법부터 배워야 했었다. 푸르름과 함께 자전거 경기 트랙을 갖춘 넓은 자전거 공원에서 하루종일 남편이 지도해 주었다.
남편은 월 2,3회 정도로 주말이면 오사카에 내려오는 생활을 5년쯤 할 무렵이었다. 나 혼자론 아이들의 정신적인 성장 케어까지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남편한테 오사카로 재발령 받을 수 없는가를 타진해 보면 좋겠다고 제의 하였다. 남편도 이제는 가족이 같이 살아야 함을 느끼고 있었던 상황이라 공감 하는게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남편은 상사와의 면담과 인사과의 면담을 통해서 2012년 4월부로 오사카로 다시 인사 발령을 받게 되었다. 새롭게 이사까지 하여 새 보금자리 환경을 갖추어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2013년 기원절을 맞아 하늘부모님께서 축복 가정에 임재하시는 생활을 하게 되는 시대를 맞아 "가정에서의 신앙의 주체는 남편이자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당신에게 우리 가족 신앙의 모든 것을 이임하겠다"고 선포하고서는 남편에게 바톤을 넘기게 되었다.
남편은 며칠을 생각하더니 "5년 동안 당신 혼자서 수고가 컸다면서 앞으로 가정적 신앙 생활을 내가 중심이 되어 하겠다"고 하면서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흔쾌히 받아 주었다.
아침 훈독회는 물론, 안시일 경배식, 8대 명절 경배식, 교회 예배 생활 등을 중심으로 남편이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니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로는 매주 성일 예배 꾸벅꾸벅 졸던 모습이 없어지는 것이다. 허리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말씀 듣는 모습이었다.
둘째는 교회에서 시행하는 여러 교육에도 메모까지 해 가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공부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교회의 모든 이벤트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나는 흐뭇하기도 하면서 신기하기만 했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까 매일 아침 훈독회 땐 말씀을 훈독하고 해설은 물론 아이들의 질문에 응답을 해야 하니 남편의 자존심에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가정 신앙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은 2015년경으로 기억된다. 과학적으로 휴대폰 성능의 발전에 힘입어 「유대인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유대인들의 전통 상속이 어떻게 교육 되어지고 이어져 가는가 하는 내용에 관심도가 높아졌다.
참아버님의 성화 이후, 통일가 전통 상속에 대해서 매우 고민하고 있었던 터라 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니 유대인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한국에서 40여 권 구입해 당장 공부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일본 협회 가정국 소속으로 차트 원리 강사로 활동하면서 가정 부장님으로부터는 유대인 자녀 교육에 대한 내용을 레포터로 작성해 보내 달라는 부탁까지 받았었다.
책을 읽고서는 요점을 정리하여 일본어 번역기를 돌렸다. 또한 번역된 일본어의 수정 작업을 남편과도 같이 하였다. 처음에는 마다 하지 않고 했었지만 기간이 길어지니까 서서히 힘들어 하기 시작하는데 그런 남편을 얼래고 달래면서 작업을 했었다.
작업 수당을 받으면 남편 조상 해원 축복에 쓰이니 힘내자고 응원하면서 2년여간 이 작업을 했는데 이것이 남편에게는 큰 공부가 되고 신앙에 큰 자극이 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유대인 자녀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통일가 전통 상속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있어서 안시일 경배식을 새롭게 바꾸고, 8대 명절에 대해서는 그 동기와 배경과 말씀 당시 참아버님의 기도 내용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8대 명절 중, 참부모님의 성탄절과 참아버님 성화절 그리고 추석절에는 제단상을 차리고 경배식을 갖는다. 그 외의 명절에는 간소하게 제단상을 차려 경배식을 하고 있다.
몇년전의 일이었다. 신학교 동문방에 성화절 상차림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은사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성화절에 왜 상을 차리느냐고? "육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는 제사상을 차려 경배하며 그날을 기념하는데 하물며 천주의 아버님이신데 어찌 가정에서 기념 안 할 수 없지요." 하면서 답신 메일을 보냈다.
은사님께서는 "선배 가정으로 크게 회개한다." 하시면서 "오는 추석부터 제단상을 차려야 하겠다"고 하시며 "다른 대선배님들도 너의 상차림을 보고 은혜를 받으면서 회개하고 있다"고까지 전해 주셨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참부모님의 측근에 계신 분들이 가정에서 제단상을 안 차렸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를 통해 그나마 자극을 받았다하시니 감사했었다.
특히,우리 가정에서는 참부모님 성탄절에는 성탄 트리를 만들고 제단상을 경제적으로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풍성하게 차리면서 아이들에게는 성탄 축하금을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주위에 혼자 지내는 식구가 있으면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식사가 끝나면 음식을 담아 이웃집에 함께 나누는 시간도 가진다.
작년 7월에 장녀가 가정출발을 했다. 오붓한 신혼기를 보내면서 각 명절 때마다 엄마의 뒷모습에서 배워 온 명절을 부족한 정성이지만 예를 갖추어 경배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장녀의 가정출발을 기점으로 참부모님 성탄절과 참아버님 성화절 그리고 추석절에는 본가를 떠나 생활하는 자녀도 불러 함께 예를 갖추어 경배식과 화동회를 가질 예정이다.
자녀가 가정출발을 함으로써 하늘부모님의 모심의 문화가 가정의 뿌리로 서서히 상속되어 가는 것은 부모로서의 기쁨과 감사임에 하늘 앞에 영광 돌려 드린다.
이렇게 실천함으로써 아이들에게는 참부모님의 성탄의 기쁨을 체험케 하면서 더 나은 전통 상속을 위해 언제나 연구하면서, 횡적으로 다른 한 가정이라도 실천하기를 바라며, 천일국 가정의 참모습을 갖추어 전진해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