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남(盧基南, 창씨명: 岡本鐵治, 1902-1984)
▶ 천주교 수원교구장 역임.
천주교: 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장,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장(1940), 조선종교보국회 천주교 대표(1943), 만주국건국축하식 참석(1942), 총력연맹 주최 지도자 간담회(1942.3.16), 논산지원병훈련소 방문(1942.4.28), 천장절기념식(1942.4.29), 신궁봉고제 선서식 참석(1942.5.11), 고이소총독관저방문(1942.6.2), 총력연맹5주년 강론(1942.7.7)
기타행적: 1930년 사제 서품. 종현성당 보좌신부, 조선인 최초의 주교, 경성교구장(1942)
노기남 [盧基南, 1902~1984.6.25]
요약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주교.
별칭 세례명 바오로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평안남도 중화군
주요수상 프랑스 최고문화훈장(1959), 대한민국 국민훈장(1963), 이탈리아 문화훈장(1965)
주요저서 《나의 회상록》(1967) 《당신의 뜻대로》(1978)
본문
세례명 바오로. 평안남도 중화군 출생. 1925년 서울특별시 용산에 있는 성심신학교(聖心神學校) 철학과, 1930년에 동 신학과를 졸업, 그 해 10월 사제로 서품되었다. 1942년 1월4일, 명동성당 보좌신부의 신분으로 경성교구장(京城敎區長)에 임명되어 일제강점기의 한국교회를 지도하다가, 그 해 12월, 교황 피우스 12세에 의해서 주교에 임명되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주교(主敎)가 되었다. 그 후 1945년 춘천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가 되었고, 1946년에는 일제에 의해 강제폐간 되었던 《경향잡지》 《가톨릭청년》을 복간한 데 이어 새로 일간신문 《경향신문》을 창간하였다. 1948년에는 대구교구장 서리를 지냈다.
1962년 대주교 및 서울대교구장이 되어 로마에서 개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公議會)에 참석하고, 1967년 3월 24일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 지내며 신자들의 영신(靈神) 생활을 돌보았다. 1959년에 프랑스 최고문화훈장, 1963년에 대한민국 국민훈장, 1965년에는 이탈리아 문화훈장을 각각 받았다. 저서로 《나의 회상록》(1967) 《당신의 뜻대로》(197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