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丑/故監察李孝根妻安氏, 參議安九經之妹也。 九經死, 安往九經妻洪氏第, 欲分其父壽山家財, 乃被毆打出門外, 赤身臥地, 觀者坌至。 安以洪氏子好問捽髮歐打訴憲府。 憲府劾啓, 更下義禁府鞫之, 安氏洪氏安置京畿, 好問杖八十。
世宗 92卷, 23年(1441 辛酉 / 명 정통(正統) 6年) 4月 23日(己丑) 1번째기사
판중추원사 “안수산”의 졸기
◆ 조선왕조실록인 세종실록(세종 65권, 16년(1434 갑인 / 명 선덕(宣德) 9년) 8월 20일)에 기록되어진 순흥안씨 휘(諱) 자미(子美)시조로부터 8세이신 “휘 수산”선조에 대한 내용이다.
시호는 소간(昭簡)이니, 용모와 행동이 공순하고 아름다움이 소(昭)이요, 마음이 평이(平易)하여 남을 훼방하지 아니함이 간(簡)이다.
판중추원사 안수산(安壽山)이 졸하였다.
수산은 경상도 순흥(順興) 사람이니, 중궁(中宮)의 외삼촌이다.
감찰·지평(持平)으로 여러 번 옮겨 판통례문사에 제수되고, 기해년에 첨총제(僉摠制)에 임명되어 동지돈녕부사에 나아갔으며, 공조·형조의 판서를 거쳐 정미년에 지돈녕부사가 되고, 갑인년에는 판중추원사가 되었다.
수산은 관후근신(寬厚謹愼)하였으나 정처(正妻)를 소박하고 기첩(妓妾)의 사랑에 빠져서 집을 다스리기에 법이 없으니, 시대의 논의가 그르게 여겼다.
죽음에 미쳐 2일 동안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관에서 장사를 다스리며, 특별히 후한 치조(致弔)와 치부(致賻)를 행하였다.
시호는 소간(昭簡)이니, 용모와 행동이 공순하고 아름다움이 소(昭)이요, 마음이 평이(平易)하여 남을 훼방하지 아니함이 간(簡)이다.
아들이 하나이니, 안구경(安九經)이다.
중궁이 외조부 천보(天保)의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수산이 가장 두터운 은혜를 입었다. 수산이 종기(瘇氣)가 나서 장차 죽게 될 때에, 양전(兩殿)2390) 이 연달아 중관(中官)을 보내어 문병함이 길에 끊이지 아니하였고, 위하여 품계를 올리고 특이한 은총을 더하였다. 의원 박거(朴居)는 종기에 뜸질을 잘못한 까닭으로 사는 고향에 안치(安置)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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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전(兩殿) : 중전(中殿)·대전(大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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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中樞院事安壽山卒。 壽山, 慶尙道順興人也, 中宮之舅也。 累遷監察持平, 除判通禮門事。 己亥, 拜僉摠制, 進同知敦寧府事, 歷工刑兩曹參判。 丁未, 知敦寧府事, 甲寅, 判中樞院事。 壽山寬厚謹愼, 然疎薄正妻, 溺愛妓妾, 治家無法, 時議非之。 及卒, 停朝市二日, 官庀葬事, 行特厚致弔致賻。 諡昭簡, 容儀恭美昭, 平易不訾簡。 一子九經。 中宮養於外祖天保之家, 故壽山蒙恩最厚。 壽山發瘇將死, 兩殿連遣中官問病, 絡繹於道; 爲開轉動政, 陞秩寵異之; 醫朴居以灸瘇失誤, 安置于所居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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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
2대 |
3대 |
4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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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문 安好問 |
안구경
安九經 |
안수산
安壽山 |
안천보
安天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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