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락의 시사코멘트] 여성을 섬겨야하는 사회
‘여성스러운 것은 영원한 것이다.’ 이 말은 괴테가 한 말로, 우리가 여성을 칭송하거나 찬양할 때 주로 들먹이는 속언이다. 문학이 체험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실제 괴테 주변에는 여성이 많았다고 한다. 그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도 약혼자가 있는 16세의 어린 소녀 샤를롯데라는 실존 여성을 사랑했던 괴테의 체험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괴테에게 ‘여성성’이 ‘영원한 것’이라는 인식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파우스트’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은 우리를 끌어올린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 말은 여성은 영원히 철없을(?) 것 같은 남성에 대한 인생의 인도자이자 창조적 삶의 원천이라는 주장과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최근 국내 문단에서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100만 부 판매라는 기록을 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도 바로 이 여성성(엄마)에 바친 거대한 헌사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의 뒷부분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바로 이 여성성의 위대함에 대한 작가 자신의 직설적인 고백인 셈이다.
‘너를 도시에 데려다주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탔던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네 나이와 같다는 것을 너는 아프게 깨달았다. 한 여자. 태어난 기쁨도 어린 시절도 소녀시절도 꿈도 잊은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275쪽)
자식들에게 영혼의 인도자였던 ‘여성성’이 어린 자식을 무지의 바탕에서 문명의 세계 안으로 이끌어주고 돌아갔던 밤기차와 희생으로 점철된 엄마의 일생, 그렇지만 그것이야말로 ‘세계 자체’라는 작가의 진술에서 여성성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대해 우리는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느낄 수 있다.
그저께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봤다. 큰 제목이 ‘한국 양성평등 수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기사였다. 세계경제포럼(WEF)이라는 비영리 법인 단체에서 27일 발표한 ‘2009년 세계 성(性)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134개국 가운데 115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사 이후 한국의 양성평등 순위가 해를 거듭할수록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2006년 92위, 2007년 97위, 2008년 108위로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 단체가 2006년부터 발표해온 ‘성 격차 지수’는 남성에 견주어 여성의 경제적 참여와 기회, 교육 수준, 보건 및 수명, 정치적 권한 등 네 부문을 지수화해 산출하는데, 부가적으로 모성 보호, 여교사 비율, 여성 실업률, 기본권 등도 지수에 반영한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한국 여성의 의회, 각료, 지방자치단체장 진출이 매우 적은 탓에 정치적 권한 부문에서 세계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의 여성들은 경제적 참여와 기회에서도 심각한 불평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제적 참여와 기회를 1이라고 할 때, 여성들은 절반 수준인 0.52 정도에 불과했다. 여성의 고위 관리직과 전문직, 기술직 진출이 매우 적고, 남성과의 임금 격차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조사에서 보면 남녀 불평등이 가장 적은 곳은 북유럽 국가들이었다. 아이슬란드에 이어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이 차례대로 세계 1~4위를 기록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사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이 사회`문화적인 현실과 저출산율이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아울러 21세기 미국 중심의 금융자본주의가 쇠퇴하고 인류의 새로운 국가모델로 ‘거대한 전환’이 거론되는 곳이 북유럽 국가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는 보다 분명해진다. 굳이 작가들의 상상력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여성’을 받들어 섬길 필요가 있다.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출 처 : 매일신문 2009년 10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