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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생지 황허 강 유역 산동반도를 다녀와서
(2006.08.10∼2006, 08,19. 김기일. 이영순 글)
산동성(山東省) 소개
산동 반도 (山東〕半島 )중국 산동성 동부에 뻗어 나온 반도. 길이는 약 350km이고, 최대 너비는 약 130km이다. 황허강의 하류 유역이 넓게 펼쳐있는 산동인의 삶의 젖줄이며 오늘도 말없이 황허의 강물은 황해로 흘러간다. 대체로 구릉성 산지가 많고, 남쪽 해안은 따뜻하나 북쪽 해안은 추위가 심하다. 연안은 중국에서 손꼽히는 어장이며, 연태, 청도, 위해, 석도(적산법화원 : 장보고), 일조 등의 항구가 있다. 농산물로는 밀, 목화, 담배, 옥수수, 복숭아 등이 많이 나고, 석탄, 철 등의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산동성은 한반도와 인연이 많은 곳인데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화교의 대부분이 산동성 사람이며 한국인들이 먹는 중국음식 가운데도 산동음식이 많다. 또한 산동성에 있는 태산은 한국인들이 시조를 통해 접했던 지역으로 한 번쯤은 구경할 만한 곳이다. 취푸는 공자가 태어나고 학문을 가르치든 곳이며 우리의 생활문화의 뿌리가 되는 유교(仁) 정신의 발상지이다. 특히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청도맥주를 원산지에서 맛볼 수 있고, 청도는 중국의 나폴리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휴양도시다.
첫째날 (2006.08.10. 목)
1元=130원정도 , ( ) = ( )말은 중국발음
청도승선요금(로얄석:150,000원, 비즈니스 :130,000원, 이코노미 : 110,000원)
세 번째 떠나는 배낭여행 낯선 땅을 밟아보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구선생님 내외분과 인천 국제 2 여객 연안부두(인천 ⇔ 청도)을 향해 09:40 인천 행 버스에 올랐다. 청주 ⇒ 인천 종합터미널까지는 2시간(8400원) 소요 된다.
갑문식 도크를 빠져나가기 위해 도크 갑문에 도착한 위동훼리는 갑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갑문이 열리며 훼리는 인천항 갑문식 독크를 빠져나가 산동반도 청도를 향해 움직인다.
위동훼리 여객선 4인실 204호 열쇠를 찾아 우리가 몸을 편히 쉴 곳을 찾아갔다. 시설도 마음에 들고 더운 날씨에 피서를 배안에서 편하게 보냈다. 배안에는 다양한 편의 시설이 되어있고 음식도 입맛에 맞아 좋았다. 승객들의 방도 다양하게 있어 기호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지루하지 않게 쉴 수 있다.(소요시간 17시간) 저녁을 배안에서 백반으로 반찬은 뷰페로 기호에 맞는 것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선상에서 그 옛날 해상 왕 장보고가 해적을 다스리며 왕래한 황해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 먹으며 망중한을 즐겼다. 오늘밤은 편히 선상에서 잠을 청해본다.
둘째날(2006. 08. 11. 금)
. 청도(칭다오)
선창가에 누워 둥근 달을 바라보면서 선조들의 해상활동을 생각하는 사이 동창이 밝으면서 청도 항에 도착(오전10시)하였다. 2시간 정도 걸려 입국수속을 마치고 청도 역을 찾아 시내버스를 타려다 택시를 이용하여 청도 역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삐끼라는 사람이 다가와 여의대하 30층 건물을 가리키며 안내 한다. 날씨는 살인적 더위로 한 발짝도 걷기에 힘들다. 방 한 칸에 250元 요구하는 것을 200元으로 결정하고 숙소를 나와 청도 관광을 시작하였다. 점심 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을 찾아서 7元. 12元 하는 음식(채소와 고기 국물)을 주문하였다. 밥(미판)을 주문하여 주린 배를 채우고 청도 여행을 시작한다.
중국은 하루하루 놀랍게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아직도 버스에는 잘 씻지 않은 사람들이 꼬지지한 냄새를 풍기기도 하지만 그 밑에 깔려있는 무서운 힘은 놀랍습니다. 청도는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와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정말 중국다운 모습에서부터 독일풍의 건물들 일본 점령기의 잔재들과 구시가지는 그 차체만 보는 것으로 관광이다.
택시비=기본(7元), 시내버스=1元, 에어콘 시내버스=2元, 물(1,5 =3∼4元). 숙소=200元
♣. 잔교(잔차오)
청나라가 해군의 화물 접안 기지로 건설한 다리, 칭다오의 역사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현재의 잔교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창다오에서 철수하며 폭파시킨 것을 재건한 것이다.
잔교의 끝에는 24개의 붉은 기동이 받치고 있는 회란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남쪽의 황해와 북쪽의 칭다오 구시가지가 한편의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 보인다.
♣. 루쉰 공원(루쉰궁위안) 입장료=5元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는 대문호 루쉰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2008년 북경 올림픽 종목인 윈드쇼핑을 할 곳이란다. 많은 현지인들이 휴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고 우리는 너무 더워 소나무 그늘에 앉아 콜라(5元) 맥주(5元)를 먹고 편하게 쉬었다.
♣. 팔대관
산동성 최대의 휴양지 칭다오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에 위치해 각국의 부호들이 지은 별장 건물이 즐비하고 200여 채의 각국의 건물이 있어 ‘만국 건축 박람회’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모양의 집이 울창한 숲 속에 있다. 날씨는 무덥고 매미소리는 큰소리로 울어댄다.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 누워 휴식을 가져 본다. 또한 많은 신혼부부들의 웨딩촬영 장소로 촬영이 한창이다.
♣. 해수욕장(하이수이위창)
중국이 나폴리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칭다오에는 6곳의 해수욕장이 있어 600만 칭다오 시민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제6해수욕장은 기차역과 잔교 사이의 해변으로 모래사장보다는 바위가 많아 산책하기에 좋다.
♣. 성당(텐주 자오탕)
독일이 남기고 간 대표적인 유산, 쌍둥이 첨탑이 인상적이다. 내부에는 볼만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문화혁명 때 모두 파괴해 남아난 것이 없었다고 한다. 1981 개방화 정책으로 복원했고 예배도 허용되고 있다.
♣. 슈퍼마켓(초시)
어느 곳이나 숙소(주점, 빈관, 반점) 근처에는 슈퍼마켓(초시)이 있다. 이곳은 물건 값을 정가에 살수 있고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는 매우 편리한 곳이다. 우리는 과일의 왕 두리안과 여러 가지 물건을 구입하였다.
칭다오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 올때 칭따오 역 지하상가에는 다양한 물건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 부근에 해산물을 먹는 식당 골목을 찾지 못하여 길거리에서 식사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주문했지만 현지 언어 의사소통이 생각보다 이해하기 어렵다. 배낭여행 할 때 마다 느끼는 의사소통 언제나 마음에 들을 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메뉴판을 보아도 도무지 알 수 가 없다. 이것저것 현지인이 먹는 음식을 손으로 시켜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오며 길거리에서 파는 복숭아를 구입하였다. 무능도원이라고 할 만큼 복숭아 과일이 제철이며 값도 싸다. 숙소는 건물에 비해 형편없이 열악했다. 창문도 없고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아 냄새가 많이 나지만 하루 밤을 지내야한다.
셋째날(2006. 08. 12. 토)
. 제남(지난 濟南), 택시=7.5元 시내버스=1元, 숙소=80元
칭다오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지난으로 이동하기 위해 칭다오 역 관광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08:00출발 미니버스(100元) 청도⇔ 지난(5시간소요) 고속도를 달리는 도로 옆에는 미루나무 종류의 숲이 형성되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수수, 복숭아나무가 넓은 땅을 덮고 있다. 청일전쟁당시 알꼴 폭탄(빽알 주정)을 만들어 일본군에 저항하든 곳이란다.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의 촬영장소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미니버스는 도로노면이 울퉁 불통한 곳을 지날 때는 문이 열려 승무원을 하는 아주머니가 문 닫는 수고를 하고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차는 많이 다니지 않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폐차했을 차인데 잘 도 굴러간다. 지난이 가까워지며 버드나무 가로수로 바뀌었다. 칭다오를 출발한 미니버스는 세계의 연 날리기 대회를 하는 고장 유방, 치박를 지나 산동반도의 성도인 지난에 도착했다. 넓은 대륙을 거미줄 같이 도로 망은 잘 정비 되어 있다. 고속도로 주행료(190元) 오후1시에 시외버스 주차장에 도착하여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쾌찬)에 들어가 점심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었다. 비교적 음식이 짜다. 더운 지방이지만 생수가 좋지 않아 차 문화가 발달 되어 있다.
택시로 지난 역까지 이동한 다음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숙소를 찾았지만 방이 없단다 다른 곳을 찾았지만 없다고 한다. 뒷 골목 쪽으로 숙소를 찾는 데 호객하는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사진를 보여주며 80元이라고 한다. 아주머니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숙소건물이 있어 들어가 방을 확인하고 80元에 결정했다. 칭다오 보다 방이 마음에 들었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황허 강을 찾아간다.
♣. 황허 강
숙소에서 황허 대교(택시로 30元)까지 가서 도보로 황허 대교 중간 까지 걸어 보았다. 강물은 황토 빛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현지 관광단체들이 우리와 같이 황허 대교를 걷고 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자 중국 초기 문명(4대문명 발생지) 발상지인 황허 강 대부분이 너무 오염되었다. 중국 13억 인구의 12%와 농지의 15%에 물 공급원이 되는 황허 강은 강의 대략 4분의 3이 하수 오물, 산업 쓰레기 그리고 다른 오염물질들에 의해 극심하게 오염되어있다.
돌아올 때는 시내버스(1元)로 숙소로 돌아왔다. 현지인에게 버스노선 도를 보고 가르쳐 주는 대로 한번 갈아타고 숙소까지 돌아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깨끗한 식당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는 데 정말로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로 알아듣기를 바라는 우리가 답답할 뿐이다. 추천할 만한 음식을 주문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옆 테이불에서 식사 하던 현지인 아가씨가 지갑을 잃어 버렸다고 야단이다. 그때 옆 자석에서 남녀 한 쌍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사람이 저지른 일 같다. 그 상황을 보니 남 일 같지 않다. 중요한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하겠다. 중국은 모든 물건을 저울에 달아 팔고 있다. 숙소로 돌아 올 때 과일을 저울에 달아 구입해서 맛있게 먹었다. 오늘밤은 칭다오 숙소 환경 보다 좋아 편하게 피로를 풀어본다.
넷째날(2006.08.13. 일)
♣.대명호(다밍후) 입장료=20元
지난(濟南)하면 물의 도시로 72곳의 샘물이 모여서 만들어진 대명호는 가뭄에도 수위가 일정하다고 한다. 지난 시민들이 휴식처로 놀이 시설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이 있다. 오늘도 날씨가 숨이 막힐 정도로 후덥지근하다. 조금만 걸어도 짜증이 날 정도로 무덥다. 이곳이 교과서에 소개된 시인 이백과 두보를 비롯해 수많은 문인들이 글을 남겼다고 한다. 넓은 자연호수와 늘어진 수양버들나무 연꽃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기분이다. 호수 안에 마련된 정자에서 맥주(6元) 한잔 마시며 잠시 망중한을 보내며 연못가를 산책해 본다. 날씨가 도와주었으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바람도 없고 짜증이 나서 발걸음을 돌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표돌천(바오투취안) 입장료=15元 택시비=10元
택시를 이용하여 표돌천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난의 72개의 샘 중 가장 빼어난 천하제일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지하에서 솟아나는 용출량이 볼만하다 오늘도 쉬지 않고 원기 왕성한 상태로 많은 양의 물이 나오고 있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이청조 기념당이 있어 방문해 볼만한 곳이다. 기념당은 이청조가 살았던 송나라 시대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 천성광장(취안 청광)
천성광장은 표돌천 입구 맞은편에 있다. ‘물과 샘이 도시’인 지난의 특성을 살려 야외분수대가 볼만하다.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며, 우리는 너무 더워 사진 한 장 찍고 다음 장소인 산동박물관을 찾아 택시를 탔다.
♣. 산동박물관(산동성 보우관) 입장료=10元 택시비=15元
유구한 지난의 역사답게 볼거리도 무척 많은 편, 국보급 3점을 비롯하여 21만 점을 보유하고 있다. 산동성 박물관 전시관 한곳을 독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나무배가 인상적이다. 관심이 적어 대충 돌아보는 것으로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대형 시장을 구경하기 위해 택시로 이동하였다. 도착한 시장은 옷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시장이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마음에 드는 여성용 반바지를 구입하고 시장 구경을 끝내고 저녁을 먹기 위해 대형 식당(쾌찬)을 찾아보았다.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호에 맞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맛있게 먹고 있다. 우리도 마음에 드는 여러 가지 음식(빵, 꼬치, 맥주 등)을 주문하여 배부르게 점심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다 골목에서 과일을 사서 맛있게 먹고 휴식을 가졌다.
♣.김덕기 쾌찬 56호점(저녁식사 : 지난역 앞 공정빈관 앞에 있음)
휴식을 한 다음 지난 역 주변 슈퍼마켓(초시)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열차시간을 알아보고 김덕기 56호점 쾌찬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많이 내려 숙소로 돌아 갈수 없어 구선생님께서 숙소에 가 우산을 가져와 신발이 빠질 정도의 빗물을 걸어 숙소까지 돌아왔다. 오늘은 여러 가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맛있게 저녁을 먹고 지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길거리 모습
6, 7십년 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모는 듯 하다 거리 곳곳에서 구두를 닦는 사람 자전거 및 생활용품을 수리하는 기능공의 모습이 옛 우리사회상을 보는 듯 했다. 우리나라는 정말 깨끗한 나라 잘 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다섯째날(2006.08.14, 일)
. 타이안 (泰安)
숙소=100元, 택시비=5元. 시내버스=1元, 미니버스(지난⇔타이안=15元)
♣. 타이산
태산은 예로부터 중국 국민의 숭배 및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중국 역대 왕조의 국가적 행사 가운데 가장 장엄한 의식이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봉선(封禪)으로 불리는 이 제사는 왕조의 번영이 완전히 확립된 것을 상징했다. 이 제사는 왕조의 번영을 하늘과 땅에 고하는 의식이었다. 이 밖에도 산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어서 사람들은 봄에 타이 산에 풍년제를 올렸고,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감사제를 올렸으며, 홍수가 나거나 지진이 일어날 때도 이 산에 제사를 올렸다.
타이산은 또한 2,000년 동안 중국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철학인 도가와 결합된 광범위한 민간신앙의 본산이 되었다. 타이산은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양(陽) 원리의 중심으로 여겨졌고, 후한시대 이후로는 타이 산의 신령이 인간의 모든 운명을 지배하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심판을 받으러 타이 산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숙소를 나와 숙소 골목 식당에 간단히 아침식사(물만두=2元, 빵=1元 ,계란=1元)를 하고 태안을 가기 위해 지난 역 옆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태안(15元)가는 버스를 타고 태안을 향해 출발 태안까지는 잘 만들어진 고속도로를 달려 타이안 역 미니버스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위해 새로이 단장되었다는 타이산 역 광장은 태산을 바라보며 넓게 조성되어있다. 태산을 올라가기 위해 택시(10元)로 천외촌 까지 이동하였다. 이곳이 태산을 올라가는 가장 쉬운 코스였다.
♣.타이산 트레킹, 입장료=100元, 셔틀버스=20元 보험=2元, 케이블카=왕복(90元)
우리는 배낭을 가지고 중천문으로 올라가려고 생각했다가 상점에 배낭 4개(보관료=20元)를 맡기고 셔틀버스(20元)보험료를(2元)내고 중천문까지 올라갔다. 이곳에서는 케이블카(중천문⇔남천문 왕복90元)로 남천문에 도착
산이 높아 날씨가 변덕스러워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비옷을 구입하여 입고 하늘천 길을 걸어 정상을 향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남천문에서 도교의 성지인 벽하사를 지나 옥황봉(정상)까지는 30분정도 걸린다. 학창시절에 교과서에 배운 시를 생각하며 정상까지 느린 걸음으로 올라갔다.
태산 오르는 길 :
중천문 ⇒ 남천문 ⇒ 하늘길 ⇒벽하사 ⇒공묘 ⇒ 오악독종 ⇒ 옥황봉(태산정상)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노력하지도 않고, 하는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신세한탄만 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뜻이죠
"시작이 반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다." 란 속담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태산은 중국의 5대 명산인 오악(동쪽에는 태산, 서쪽에는 화산, 남쪽에는 형산, 북쪽에는 항산 그리고 중앙에는 숭산이 있다)중에 하나입니다. 그중에 동악이라고 부른다. 실지로 공자의 호연지기를 보여준 태산은 약 1545m로 서민들은 태산에 오르면 수명이 10년 연장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중국 제일의 명산입니다
태산을 생각보다 웅장하지도 않고 빼어나지도 않아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만 못한 느낌이 들었다.
태산에서 내려와 맡겼던 배낭을 찾아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타이산 역 까지 왔다. 역 주변에서 큰 태안빈관(100元)에 숙소를 정하고 휴식을 가졌다. 지난 숙소보다 조금 좋은 편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 옆 식당에서 그림을 보고 주문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어찌 합니까 대체로 음식 맛은 우리 입맛에 맡기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 대묘(다이무) 입장료=20元 택시비=7元
역대 황제들이 봉선을 거행하던 곳 넓은 대지위에 세워진 웅장한 건물군이다. 봉선이란 하늘에 자신의 치적을 보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오늘날의 대묘 자리에 제단을 쌓고 자신의 천하통일을 하늘과 땅에 알렸다고 한다. 진시왕을 비롯해 한무제, 현종 등 72명이 봉선의식을 이곳에서 거행했다고 하는 군요
. 대묘방
대묘관광의 시작점. 현존하는 석방중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눈여겨보자.
. 정양문
대묘의 정문. 황제가 대묘에서 봉선의식을 드릴 때만 문이 열렸다고 한다.
. 대송동악천제인성제비
정양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비석 비석뒤에 오악독종(오악중 타이산이 최고라는 의미로 고대인들의 타이산 숭배를 뜻한다)
. 배천문
대묘의 제2문
. 동어좌
대묘를 참배하던 청나라의 황제와 고관대작들이 쉬던 장소. 지금은 봉선의식을 행하던 제구들을 전시한 진열실로 사용하고 있다.
. 천황전
대묘의 정전으로 베이징 자금성의 태화전, 취푸의 대성전과 함께 중국 3대 건축물의 하나다.
천황전 내부의 거대한 벽화는 ‘동악대제계필회란도’라는 그림으로 동악인 타이 산의 신이 순시를 나가 돌아 올 때까지의 과정을 그린 것이다. 명화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주의 깊게 감상해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재이다.
기차표 예매 (타이산 ⇒ 일조 = 44元)
대묘관광을 마치고 타이산 역에 가서 16일 일조로 가는 쾌속 열차표를 예매를 하였다. 언어 소통이 힘들어 필답으로 날짜, 행선지, 매수를 적어 제시하니 외국인으로 간주하고 친절하게 표 예매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중국은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택시, 대형 시내버스 기사를 여성들이 하고 있다.
.저녁식사
숙소 주변에서 시장구경(가죽제품, 구두, 악세사리, 모자 다양한 물건 등)을 하기 위해 길거리를 걷다가 태안의 명과자인 땅콩을 썩은 울긋 붉긋한 과자를 판위에 놓고 손님이 요구하는 대로 잘라서 파는 것인데 2元어치만 요구하니 많은 양을 잘라서 돈을 6元을 더 내라고 한다. 나는 요구한 대로 응하지 않아 갈려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현지인들이 모여들어 돈을 더 내라고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기에 2元만 주고 발길을 옮겼다. 시장구경을 하고 여러 종류의 꼬치(10元)를 사고 길거리에서 빈대떡(1元 )같은 음식과 과일을 사서 숙소에 돌아와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어둠이 짙어가는 태안에서 휴식을 가져본다.
. 曲阜(취푸)
미니버스( 태안⇔취푸=15元) 택시=5元
. 아침식사
취푸로 가기위해 아침식사를 취푸로 가는 미니버스 주차장 앞 길거리에서 아침식사를 좁쌀죽(1元), 순두부(1元), 빈대떡(1元)으로 간단히 하고 6:40분발 미니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취푸를 향해 가는 도로 옆에는 임시 간이상점이 공자에 관계되는 내용의 물건을 진열하여 판매하고 있다. 요금소를 빠져나온 미니버스는 취푸에 도착했다(1시간 30분 소요)
공자가 태어난 곳으로 유교의 본산이다. 지금은 작은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춘추시대에는 노나라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고 유교의 발생지라는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중국의 근대화 이후 공산화를 거치면서 긍지가 수치로, 성인이 청상 대상으로 뒤바뀌는 기막힌 세월을 경험하기도 했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도시전체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취푸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자전거 인력거꾼의 호객이다. 우리는 택시(5元)를 이용하여 공묘로 이동했다.
♣.공묘(콩마오) 입장료=52元
공자를 기리는 사당 오늘날은 남북 1Km 어마어마한 크기로 조성되어 있다. 공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당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다.
. 앙성문
높다란 장벽으로 둘러쳐진 공묘의 바깥대문. 공자를 우러러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금성옥진방
5.6m의 높이를 자랑하는 공묘의 전문 금성옥진이라는 말은 맹자가 공자의 가르침을 칭송한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 영성문
공묘 제 1 문 영성은 고대 중국인들이 학문의 수호성으로 숭상했던 별 이름이다.
영성문을 지나면 태화원기방과 지성방을 지나게 된다. 태화원기방의 태화원기는 우주만물을 창조한 에너지를 표현하는 말 즉 공자의 가르침은 천지창조의 에너지와도 같다는 어마어마한 표현이다.
. 성시문
공묘 제2문이자 중정으로 통하는 입구다. 성시문을 지나면 공묘의 정원인 중정이 나온다. 참배로 좌우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서 있는데 평균 수명이 500년 이상이라고 한다. 참배로 북쪽에 벽수교가 있다. 벽옥 같은 맑은 물이 흘러 붙은 이름이다. 지금은 더러운 물이 조금 흐를 뿐이다.
. 홍도문
벽수교를 건너며 공묘 제 3문인 홍도문으로 연결 된다. 홍도란 논어에 나오는 ‘인능홍도 비도홍인’이라는 말을 줄인 것 ‘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가 사람을 넓힌다’는 뜻이다.
. 대중문
공묘 제4문으로 당시에는 대중문이 공묘 제1문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공묘가 세월 따라 확장된 공간으로 지금은 공묘 중간에 위치하게 되었다.
. 동문문
공묘 제 5문 동문문은 출입구로서의 문만 있을 뿐 동서로 길게 뻗은 담장이 없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문의 좌우에는 객사가 있다. 공묘에서 제사가 행해질 때 제례를 담당하는 사람이 머물며 몸을 깨끗이 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 규문각
공묘 제 6문
높이 23m에 달하는 3층 목 누각으로 중국 10대 명루중 하나다. 1000년이 된 단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지어진 규문각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궁전 건축으로 도 유명하다. 호아제가 하사한 서적이나 붓글씨를 보관하는 도서관이었다. 지금은 문화혁명의 광기 속에서 한낱 불쏘시개가 되어버렸다고 하네요.
. 13비정
규문각을 지나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13개의 정자를 볼 수 있다. 역대 황실은 공묘를 방문할 때마다 비석을 세워 자신의 공덕을 남긴 흔적이랍니다.
. 대성문
공자의 사당인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용이 여의주를 들고 희롱하는 모습을 새긴 생동감 넘치는 돌기둥 2개가 압권이다.
. 행단
공자가 직접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자리에 세운 단. 금빛 지붕과 붉은 기둥이 인상적인데 궁전건축에만 쓰이는 기법을 적용했기에 유명하다.
. 대성전
공묘의 본전. 처음에는 선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가 남송의 휘종 황제가 대성전이라는 친필 편액을 하사하면서 대성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궁전 건물로도 유명하다.
노란색은 황제의 색으로 일반인이 노란 색을 사용할 경우 극형에 처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공묘 대성전은 노란색 지붕을 가지고 있다. 대성전 가운데 공자상과 공자의 4대제자로 증자, 맹자, 안희, 자사의 상이 있다. 7m에 달하는 돌기둥 운룡석주는 2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볼만하다.
. 성적전
공자의 발자취를 기록한 그림인 성적도를 조각해서 보존했던 건물. 가장 유명한 조각은 모두 3점으로 진의 고개지가 그린 선사공자행교상, 당의 오도자가 그린 공자위로사구상, 송의 미불이 그린 공자상찬 이다.
. 노벽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피해 공자의 저서를 벽속에 숨겨 보관한 일을 후손에 전하기 위해 공묘에 표석을 세워 놓았다.
♣.공부(쿵푸) 입장료=32元
공자의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던 곳으로 총 463간의 방으로 이루어져있다. 미로처럼 배치되어 화살표 표시대로 따라가면 길을 잃을 일은 없다.
. 전원
중광문을 들어서면 죄우에 이. 호. 예. 형. 병. 공의 6부가 있던 청이 있다. 관청을 뜻하는 연성공에 의해 취푸지역에 대한 통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 후원
연성공의 사저. 연성공의 집안만이 출입하던 금단의 지역이다.
전원과 후원을 나누는 내택문을 지나면 전상방이 나온다. 전상방은 연성공 집안의 관혼상제를 거행하던 곳 전상방 뒤로 가면 연성공의 거주 공간인 전당루와 후당루가 나온다.
. 연성공
공자의 후손에게 임명한 세습적 벼슬의 이름인데 취푸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인정하는 실제로 권력이 있던 직책이다.
♣. 공림(쿵린) 입장료=22元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묘. 현재에는 200만㎡에 이를 정도로 확장을 거듭하여 부지내에는 3,600여 개의 석비 10만 그루의 나무가 있어 식물원인지 공동묘지인지 모를 정도이다. 한가한 여행자라면 산책을 하면 좋다. 우리는 자전거 아주머니들의 등쌀에 10元하는 자전거 임대료를 5元에 임대하여 넓은 공림을 자전거로 한바퀴 돌아보았다.
. 공자묘
공림은 원형의 참배로를 따라 순환하게 되어 있어 어디로 가든 한 바퀴 돌게 된다. 공자묘를 먼저 보려면 왼쪽 참배로로 들어서면 된다. 막상 공자묘에 도착하며 3개기의 무덤이 있기 때문에 공자묘라는 특별한 표식도 없지만 ‘대성지성선공묘’라고 쓰인 금간 비석이 있는 무덤을 찾으면 그게 바로공자묘다. 벌초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기 때문에 깔끔하게 정돈 된 무덤만 보던 우리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덤 외쪽에는 중용을 지은 자사의 움막 기념 집이 있다.
. 공자
[타이산은 무너지려 하고 기둥은 쓰러지려 하여 철인은 시들어 버리는구나 ] 동양의 위대한 스승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자는 주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임금이 임금 같지 않고, 신하가 신하 같지 않으며, 백성이 백성 같지 않아서 일어나는 혼란이라고 했다. 공자는 평생 덕 있는 임금을 찾았고 현실 참여와 정치 개혁에는 실패한 공자였지만 교육과 학문에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인(仁)으로 대표되는 그의 사상과 철학은 오늘날 세계인의 가슴속에도 큰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 자사
공자의 손자인 자사는 공자가 죽은 후 6년간을 움막을 짓고 생활했으며 중용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체계적으로 저술한 책이란다.
. 안묘(옌마오)
공자가 가장 신임하던 제자 안회의 무덤. 무덤 자체는 그리 볼 것이 없지만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공부에서 도보로 10분소요
. 공부채(점심식사)=60元
공림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길거리에서 복숭아(4개=5元)를 사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서울에서 온 스님들이 우리와 함께 복숭아를 사서 헤어졌다. 복숭아를 먹고 태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로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취푸의 먹거리 공부채를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서 6가지(고기, 해산물, 야채, 탕, 감자채, 콩깍지튀김)가 나오는 공부채를 주문하고 공기밥(미판)과 맥주(2元)등을 맛있게 먹었다. 마침 조선족을 만나 현지 정보와 대화 중 한국에서 8년이나 생활했는데 그곳이 나의 고향이 음성 대소라니 지구촌이라는 것이 실감 나는 구나 길림에 살고 있는데 방학이 되어 가족 여행을 왔다는 조선족과 잠깐이지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우리는 취푸의 관광을 마치고 다시 태안으로 돌아왔다.
. ‘子貢手植楷’ (자공수식해) 비석
공자가 죽자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스승의 죽을 애도하며 장례를 도맡아 치르고 심은 나무(黃連木)가 지금은 죽어 나무등걸만 남아 있다 후손들이 이것을 보호 벽을 세우고 옆에는 비석을 세워 그의 거룩한 뜻을 후세에게 전하고 있다.
. 숙소 결정 할 때
어느 여행지라도 도착하면 사전 정보를 충분히 활용하도록 침착하게 생각하고 꼼꼼히 확인하고 결정한다. 가격은 너무하다 할 정도로 깍아야 한다. 여러 곳을 돌아보고 결정하면 도움이 된다.(확인사항은 에어콘, TV, 화장실 구조 등 청결 상태 등을 확인하고 결정)
태안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한 다음 저녁을 식당에서 주문하여 맛있게 먹고 내일 일조로 기차여행을 떠나야 한다. 오늘 밤은 마지막 태안 빈관 숙소에서 편히 쉬어 본다.
일곱째 날(2006,08.16. 수)
쾌속기차(태안 ⇔ 일조 =44元), 일조 숙소=80元, 오토바이 인력거=3元
. 기차여행
아침 일찍 일어나 일조로 기차여행을 하기 위해 숙소 옆 길거리식당(쾌찬)에서 아침식사대용으로 젠빙(2元) 밀가루 전병, 과일을 사서 숙소에 돌아와 맛있게 먹고 야진(보증금)을 찾아 8시 56분발 기차를 타기위해 역으로 갔다 이곳에는 기차를 탈 때도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배낭을 검색대에 올려놓고 통과하여 10분이 연착된 9시 6분에 태안을 출발한 기차는 일조를 향해 달리고 있다. 2층 기차여서 우리는 2층 31번 자리를 찾아가서 자리를 잡고 많은 중국 현지인들의 다양한 문화를 보며 시간이 흘러간다. 시끄럽게 대화하는 여행객, 젊은이들은 포커를 즐기고 기차판매원들은 좁을 통로를 통하여 물건을 팔고 있다. 2시간정도 소요되는 줄 알고 간식을 준비하지 않아 심심했다. 12시가 되니 현지 인들은 준비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는다. 우리도 컵 라면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었다. 넓은 들판을 4시간 30분 달려 일조에 도착했다.
우리는 일조역 앞 식당(쾌찬)에서 음식을 주문하여 먹고 택시를 이용하여 시외버스터미널(20元)로 갔다. 식당에서 구선생님 께서 식당에 있는 학생에게 영어로 소개받은 관광지(만평구) 정보를 얻었다. 시외버스 주차장 가는 신시가지는 구획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잘 정비되어 있는 일조 시내였다. 숙소를 찾아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관광 해변가(만평구)로 가기로 결정하고 택시를 이용하여 만평구로 갔다 가면서 적당한 숙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니 어느 숙소를 안내해 주었다. 숙소를 정한 다음 우리는 만평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일조(日照) :(르자오)
일출 후의 햇빛이 가장 먼저 비추는 지역이라 하여 日照라는 도시명을 얻게 되었다. 중국에서 제일 깨끗한 도시입니다. 해양교통은 평택에서 황해훼리가 주 3회 운항하며 해변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편의 시설을 만들어 놓고 중국인들의 휴양도시로 손색없는 곳이랍니다. 올림픽을 대비하여 다양한 시설 및 편의 시설을 지금도 만들고 있다.
. 만평구 자연관광구 개발
만평구는 아늑하고 배들이 바람을 피하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경성으로 쌀을 운송하던 상선이 잠시 머물다가 가던 곳이었다고 한다. 배들의 쉼터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으며 해마다 만 여척의 배들이 편안하게 머물고 가는 쉼터라 하여 이름을 만평구라고 하였다 지금은 배는 보이지 않고 해수욕을 하는 현지인들이 수 만 명이 휴가를 즐기고 있다.
일조 신도시의 동쪽 끝에 있는 생태관광공원으로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푸른 대지와 쪽빛바다, 금빛 모래톱을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답다.
. 관광
숙소를 나와 조금 걸으니 너무 더워 걷기가 힘들다 지나가는 오도바이 인력거(3元)를 타고 만평구 노점상가(목걸이 구입 : 현지인은 우리를 보고 또 골라 외쳐댄다)에 도착하여 구경을 하고 간식으로 찹쌀 인절미 2개(4元)사서 먹으며 해변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만평구 큰 바위 표석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커피숍에 들어가 30元 짜리 프랑스 맥주 2병을 주문하여 한잔씩하고 휴식을 한 후 해변공원을 한바퀴 돌고 임시 주차장에 들여 청도 나가는 시외버스를 알아보니 없다. 여름휴가철에는 임시로 여러 도시에서 이곳까지 운행을 하는 것 같다. 인력거를 타고 숙소부근 식물원에 와서 식물원을 돌아보니 지금 한창 조성 중에 있다. 서쪽으로 지는 일몰 사진 한 장 찍고 저녁식사로 해산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음식과 맥주(빽알)를 주문(저녁식사:51元)하여 맛있게 먹었다. 처음에는 음식을 주문 할 줄 몰라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스스로 터득이 되어 제법 음식 주문하는 여유가 생겼다.
. 돌발사건
만평구의 해변 밤바람은 시원하였다. 숙소 앞 노천카페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이 저녁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노천카페에 않아 오징어 꼬치를 한 마리에 5元씩 2마리를 주문하였다. 잠시 후 맥주 2병 주문하고 지금까지 여행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값을 지불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옆집에서 맥주를 1병에 5元씩 2병을 먹고 왔기 때문에 당연히 이곳에서도 5元씩 계산하여 20元을 지불하니 40元을 내라고한다. 우리는 언어소통이 되지 않아 20元만 지불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까지 떼를 지어 와서 소란를 피우며 돈을 40元을 내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마침 숙소에 근무하는 조선족 아가씨가 있어 자세하게 중국어로 설명해 주어 문제는 끝이 났지만 일조의 좋은 느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하루 더 휴식을 하려다 일정을 취소하고 청도로 올라가기로 하고 일조 만평구 밤은 깊어 간다.
여덟째 날 (2006,08.17. 목)
. 일조 만평구 출발
시외버스(일조 ⇔ 청도 : 50元) 택시비:( 만평구 ⇔ 시외버스터미널 20元)
일조는 계획적인 도시 정비가 잘 되어있다. 도시와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연결되어있다. 일조 만평구 부근에 투숙했는데 조선족 아가씨가 청도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여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출발하려는 데 작은 미니버스가 우리를 기다리며 요금 50元 요구한다. 우리는 또 사기를 당하는 기분이다. 아마도 승객을 모아 대형버스에 인계하는 중계를 하는 시스템인 듯하다.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큰 길로 걸어 나갔다. 마침 택시가 있어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기사는 명함을 보이며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계속 이야기를 하는 사이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내려주지 않고 정류장을 지내 계속 택시를 운행한다. 우리는 아차 이 택시기사도 우리를 청도가는 버스승객 모집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택시를 되돌려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와 청도행 고급 시외버스를 표를 구입하여 7시 20분 청도행 버스에 올랐다. 일조를 출발한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30분정도 달리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풍경 바닷가 풍경 중국의 생활모습을 보면서 청도에 도착했다. 600만 도시 청도 역 거리는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많은 차량들이 신호등도, 차선도 없는 길을 잘도 다닌다. 관광버스 주차장에 도착하여 점심을 식당(쾌찬)에서 맛있게 먹었다. 청도 도착한 첫날 숙소를 잘 못 정하여 고생을 하여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기 위해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금해대주점을 찾아가 숙박요금을 저렴하게(100元)흥정하니 180元을 요구하여 청도 역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여러 곳을 방문했으나 흥정에 자신이 없어 결국 처음 찾았던 금해대 주점에 180元을 주고 마지막 청도의 밤을 지내기로 했다.10층 1016호에 여장을 풀고 휴식을 가졌다. 오늘도 폭염은 조금 누그러졌으나 무척 덥다. 휴식을 가진 후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돌아왔다.
. 저녁식사(135元 : 4명)
청도는 신선한 해산물(조개, 새우, 오징어, 게, 우럭 등)을 저렴하게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길거리 여기저기에서는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도 숙소 앞 거리에서 해산물, 맥주와 이판(밥) 주문하여 맛있게 먹었다. 저녁때는 인도가 노천카페로 변하여 인도를 걷기가 어렵다. 마침 단속 경찰(꽁안)이 와서 인도에 놓여있는 의자, 식탁을 치우라고 한다. 거리에서 복숭아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숙소는 기차역 부근이라 조금 시끄럽기는 하지만 피곤한 몸을 달래며 청도 앞바다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지막 청도의 밤을 보내고 있다.
아홉째 날(2006. 08. 18. 금)
.휴식
폭염 속에서 산동반도 여행은 힘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태산과 맞먹는 노산을 가고 싶었으나 오후에 출항 준비를 위해 오전에는 숙소에서 편히 쉬기로 했다.
중국인의 아침식사는 간단히 한다. 칭다오 역 부근에 있는 식당(쾌찬)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그림으로 전시되어있어 기호에 맞는 음식을 주문하여 간단히 하고 옆에 있는 백화점에서 여러 가지 간식을 오후 5시에 승선하여 먹을 것을 준비했다. 백화점에서 복숭아 말린 과자제품을 1kg에 27元 하는 것을 6Kg를 구입했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하다가 11시 40분에 퇴실하고 인천으로 떠나는 국제여객 항구로 택시(7元)로 이동했다. 항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출항을 위하여 모여들고 있다. 작은 짐을 준비하여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80%정도이다.
. 점심식사
국제여객선 항구 앞에는 부산식당이 있다 이 곳은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비하여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순두부, 김치찌개, 갈비탕을 등 다양한 메뉴가 제공된다. 나는 갈비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 승선
예약한 배표를 제시하고 귀국하는 배편의 자리를 배정 받아 항만 이용세(30元)를 구입하여 입국수속을 하고 위동훼리 302호 35번 36번 자리를 찾아 짐을 놓고 출항시간을 기다렸다. 50명이 한 칸에 잠을 잘 수 있는 침대식 칸이였다 생각보다 환경을 나쁘지 않았다. 배는 오후 5시에 출항하여 인천을 향해 움직인다. 청도 해안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선창에서 준비했던 간식을 시원한 바닷바람부는 벤취에 앉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지만 8시에 식사시간이 끝나 9시에 시작되는 간식시간에 국수를 먹기로 하고 잠시 휴식을 하고 국수를 맛이게 먹고 깊어가는 황해 바다의 밤을 위동 훼리 침대에서 잠을 청해 본다.
열흘째 날(2006. 08. 19. 토)
. 하선
17시간의 뱃길을 순항한 위동 훼리는 황해를 건너 인천항에 진입하고 있다. 인천항은 갑문식 독크 항으로 서서히 접근한 배는 갑문식 독크 항에 도착하여 갑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갑문이 열리면서 연안 부두로 천천히 접안하였다.
많은 승선인원이 하선하는 데 1시간 이상 지난 후 입국수속을 한 후 폭염속의 산동반도 여행을 마쳤다.
. 귀향
택시비(여객선 터미널⇔인천시외버스터미널)=10,000원
. 입국수속을 마치고 환전을 하기 위해 임시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고 인천 시외버스터미널로 택시로 이동하였다. 11시 40분 출발 청주행 버스에 올라 2시간지난 후 오후 2시경 청주에 도착하였다.
. 점심식사
10일 동안 우리 부부를 위해 고생한 구선생님 내외분에게 감사드리며 점심을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고 여행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 왔다.
. 알아두면 좋은 것
1. 중국어를 전문적으로 학습하지 않은 한국인은 한자로 적어(택시기사)보여 주는 것이 제일 좋다.
2. 도착하는 곳의 지도(3원)를 구입하여 여행에 길잡이로 활용하자
3. 숙소나 물건을 구입할 때 최대한 값을 다운 시켜 정해야 한다.
(고시 가격은 요식 행위다 )
4. 서두르지 말고 여러 곳을 비교해 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숙소, 물건 등)
5. 외국인은 모든 것을 현지인들보다 3∼4배 값을 부른다. 최대한 다운시켜 결정할 것
6. 산동반도 택시요금은 취푸=5元,태안=6元, 칭다오=7元,지난=7,5元 지역별로 차등이 있다.
7. 여행정보는 가이드북, 인터넷 등에서 수집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
8. 배낭여행은 미지의 땅을 밟아보고 현지인들의 삶을 체험하는 일이다.
생각을 했으면 행동으로 옮겨보자.
9. 산동반도의 음식은 우리 입맛에 맞는다. 사전에 식사 주문 방법을 알고 가자
. 산동반도 이동경로
첫댓글 여행내내 늘 우리팀의 관광가이드역을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공부도 많이 되었구요 늘 든든했고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