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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쉘비 스퐁의 [만들어진 예수, 참 사람 예수]
제3부 비종교인들을 위한 예수
4장 예수 : 부족 경계선의 파괴자
모든 유신론적 종교 체계가 부족적 사고방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종교는 결국 모든 인류의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될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자라난 노쓰 캐롤라이나 주는 북쪽으로는 버지니아와 남쪽으로는 사우쓰 캐롤라이나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그 때 나는 우리 주의 명성을 높이는 일에 동참하면서 노쓰 캐롤라이나를 "절망의 두 골짜기 사이에 있는 희망의 봉우리" 또는 "자만의 두 봉우리 사이에 있는 겸손의 골짜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주와 관련된 이런 자부심의 자기_확대가 소위 부족주의(tribalism)라는 인간생존 기능의 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정의상 부족의 인간이다. 자의식이 생겨날 때, 부족주의는 생존의 지름길이었다. 우리는 부족주의를 선택했고 그것에 근거해서 인간을 정의했다. 유신론적 하나님은 부족의 하나님이 된 것이다.
부족적인 사고방식은 국제적인 것에서 지역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차원에 존재한다. 오늘날 미국은 수많은 부족들로 구성된 다인종 다문화 국가이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미국이 다른 나라와 문화의 테러리스트들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 국민들은 한 민족처럼 뭉쳤고 또한 전통적인 부족적 방식으로 대응했다. 가정과 직장에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성조기가 휘날렸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한 세대 이전에 성조기가 불에 타고 반미주의가 예외가 아니라 원칙이던 바로 그 대학 교정에서 자동차와 자전거에는 성조기가 나부꼈다. "하나님은 미국을 축복하신다"(God bless America)는 노래가 모든 공식 집회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이것이 기도였는지 아니면 명령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간 미국의 집단적 목표가 공격자들을 처벌하고 심지어 박멸하라는 통일된 의지로 표명되었던 것이다.
월드컵과 같은 국제경기에서 여러 참가국들이 부족적 사고방식은 관중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 국가를 상징하는 색깔로 물들인 옷을 입고 얼굴과 몸에 색칠을 하고 정열이 넘쳐난다. 중남미에서는 축구경기의 패배가 전쟁 선포의 원인이 된 적도 있었다. 부족주의는 민족국가의 차원에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동시에 낮은 차원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주(州)에 대한 충성과 지역 간의 경쟁도 부족적 열정으로 넘쳐난다. 우리는 뉴욕 양키즈 대 보스턴 레드 삭스의 야구경기가 얼마나 부족적 감정이 짙은 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심지어 같은 지역 안에 있는 대학 간의 대항전은 이런 감정을 조장하는데 이것은 관중석을 온통 메울 뿐만 아니라 동문들까지 그 감정의 절정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이든 졸업생들이 젊은 시절의 부족적 충성심을 결코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들 중에 몇 개만 소개하자면, 케임브릿지 대 옥스퍼드, 하버드 대 예일, 버진지아 대학 대 버지니아 공대, 노쓰 캐롤라이나 대 듀크, 혹은 텍사스 대 텍사스 A&M과 같은 전통적 대학 간의 대항전은 부족적 수사로 넘친다.*1) 버지니아 대학 학생이 버지니아 공대 야외 운동장에 인조 잔디를 깐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홈커밍 퀸이 잔디를 모두 먹어버렸기 때문이다."고 했다는 것이다.
부족주의는 우리가 원수들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부각된다. 어떤 뉴질랜드 운동복에는 "나는 두 팀, 뉴질랜드 팀과 또한 오스트렐리아와 맞붙는 어느 팀이나 응원한다."고 쓰여 있다. 전쟁 때 부족감정이 격화되면 부족적 선전은 항상 우리 원수를 비인간화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없이 손쉽게 증오하고 살인하게 만든다. 우리는 전쟁에서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희생자는 어느 사람의 자녀나 배우자나 부모가 아니다. 우리는 헝가리놈들, 독일놈들, 일본놈들, 베트콩, 반란자들, 광신자들 혹은 테러리스트들을 죽이는 것이다. 인간의 부족적 본질에 대한 이런 통찰력 없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난징 대학살(1937년 12월에서 1938년 1월 사이에 일본군이 중국인 34만여 명을 잔인하게 학살한 사건), 베트남 전쟁의 미라이 학살(1968년 3월 16일 미군이 베트남에서 주로 여성과 어린이 등 347-504명을 학살한 사건)*2), 혹은 제2차 아랍전쟁 때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사건(미군 점령 후 7,000명까지 수용했던 이곳에서 미군 헌병대와 CIA에 의한 조직적인 고문과 학대가 있었다)등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부족중심의 사고방식은 모든 인간 속에 깊이 깃들어 있다. 우유부단한 편견에 사로잡힌 서구인들은 아프리카의 부족 전쟁이 마치 전근대적이거나 또는 개명되지 못한 것처럼 치부한다. 그들은 서유럽이 항상 부족의 혈통에 따라 분열된 것과 거의 모든 인간의 분쟁이 부족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즉 영국은 앵글로 색슨 족에 의해 지배되었고, 프랑스는 프랑크 족의 나라이며, 독일은 게르만 족들, 특히 프로이센 족들의 연합으로 세워진 나라이며, 헝가리는 훈스 족의 나라인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 자신과 다른 부족들에 대한 기본적, 지배적, 본질적 공포와 그들에 대해 방어하고 그들을 배척하고 그들을 공격하고 심지어 그들을 죽이려는 성향이 있다. 이런 부족전통은 우리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생존의식에서 일어나며 또한 그것은 우리의 불안전한 인간성 중심에 파괴적인 공격성을 키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부족적 인간들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독교를 포함한 세계종교들은 우리의 부족적 사고방식에서 연유되었고 또한 그런 사고방식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종교들은 모두 부족의 유신론적 보호자를 숭배하는 부족적 사고방식의 심오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적 태도에 빠지면 빠질수록, 우리의 삶은 증오로 인해 더욱 소진된다. 그 직접적인 결과는 우리가 비인간화되는 것이다. 부족적 갈등 시대에는 우리의 자연적 생존충동이 지배적이었고 그것이 우리 원수들에게 투사되었다. 공동의 적이 있을 때는 우리의 증오심이 항상 외향적이다. 정치적 단합은 부족적 공포를 증폭시키는 동시에 증오의 대상인 적을 확인함으로써 형성된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에 대한 독일인의 잠재적 증오심을 나치 운동의 정책으로 활성화시킴으로써 권력을 장악했다. 미국에서는 눈에 보이는 공동의 적에 대한 인종적 또는 성적인 공포가 정치적 승리를 쟁취하게 만들었다. 원수를 섬멸하는 것은 생존의 지름길이며 원수에게 패하는 것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부족의 분열은 항상 우리의 증오와 편견, 방어의 정도를 더욱 높게 만든다. 이런 부족적 사고방식은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당연히 인간의 생존투쟁을 위한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극복되지 않으면 보다 심원한 인간성은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
우리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들을 증오하는 한,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없다. 최근에 폭탄 자살자들의 현상은 이런 의식을 충분히 밝혀주었다. 참된 인간성은 항상 부족의 생존 욕구와 부족주의 사고 방식의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는데, 부족주의 사고방식은 자의식이 생긴 이래로 인간 사회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만일 예수의 목적이 과거나 지금이나 생명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부족적 사고방식과 부족적 공포를 정면으로 다루기 전에는 그 목표가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수는 본래 부족의 하나님이었던 유신론적 신이 성육신한 사람이라는 견해는 이 문제를 다루지 못할 것이다. 모든 민족의 모든 종교 체계와 부족의 증오를 정당화하는 그들의 유신론적 하나님 묘사에는 이와 같은 요소들이 지나치게 많다.
부족적 증오는 그 희생자의 인간성을 파괴한다. 그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부족적 증오는 증오하는 자들의 인간성도 파괴한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유신론적 종교체계가 부족적 사고방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종교는 결국 모든 인류의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될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경우에서와 같이 유신론적 종교의 능력으로 포장된 예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부족의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가 살았던 1세기 유대 사회에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므로 참 사람인 예수가 이 부족적 사고방식과 대결한 것은 불가피했다. 이제 우리의 첫 과제는 예수 체험에는 무엇이 있었기에 제자들로 하여금 그에게서 변혁적인 하나님_현존을 만났다고 확신하게 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부족적 사고방식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또한 제자들이 부족의 경계선을 넘어서 예수의 삶이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인간의 완전성을 지향하도록, 예수 체험이 어떻게 제자들에게 능력을 부여했는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다.
예수가 대결한 부족의 경계선은 인간의 궁극적인 단층선, 곧 유대인의 세계관을 형성한 단층선에서 볼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세계를 둘로 나누어, "우리"라는 자기들의 작은 나라 구성원들과 "그들"이라는 이방인들로 나누었다. 모든 유대인들은 이 구분을 원칙으로 삼고 살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었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지 못한 백성"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확신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그들에게 토라를 주면서 살아가는 법과 예배하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유신론적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또한 방어하게 하는 방편이었는데, 이것은 부족 신들이 창안된 목적이기도 했다. 반면에 이방인들에게는 토라도, 하나님의 계시도 그리고 율법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결하고 할례 받지 못했으며 불결한 음식을 먹고 사는 백성으로 간주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먹지 않았다. 이방인들과는 결혼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방인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도 않았다. 예수 시대에 유대인들의 인간성은 이런 부족의 경계선을 그 특징으로 했다. 여기서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다. 즉 만일 그들이 비_유대인들을 모두 배척하는 데 몰두했다면 어떻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1세기 유대인 사회가 당면한 부족의 딜레마였으며, 참 사람 예수는 그 딜레마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그 다음 우리의 과제는 예수가 가시적이고 공개적으로 행사한 변혁적 능력의 메아리들을 복음서 전승 속에서 추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메아리들을 통해 예수의 삶 속에 현존하는 능력, 곧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일시하기 시작한 능력을 가리키는 일관된 초상화를 발견할 것이다.
비록 예수의 지상 생활이 기원후 30년경에 끝났다고 할지라도, 예수의 능력은 여전했기 때문에 바울이 50년대 초에 편지를 쓸 당시에도 그렇게 놀라운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마치 외계에서 온 메시지처럼 그의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줄 정도였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가진 그리스도 체험을 통해 그들의 부족적 장벽은 모두 무너졌다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유대 사람도 이방 사람도 없었다(3:28). 몇년 후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예수 체험에 대해 같은 의미를 전했다. 그는 거기서 구원은 예수의 인격 안에 임재하는 하나님에게서 오고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1:16)까지 이른다고 했다. 바울은 몇 구절 뒤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2:11)라고 말했다. 나중에 바울은 이렇게 주장한다. 즉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0:12-13). 이것은 실로 놀라운 선언이다. 예수의 능력은 바울의 부족적 경계선을 확장시켰고 바울을 통하여 예수의 추종자들은 세계를 포용하도록 만들었다.
골로새서에서는 바울 혹은 그의 제자 중의 하나가 부족의 정체성을 척결하는 똑같은 초월적 메시지를 진술한다. 그는 기록하기를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심을 받았으면"(3:1) "거기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도,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않은 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3:11). 이런 주장들은 온전히 이해가 된다면, 여전히 그리스도 체험에 대한 강력하고도 심원한 진술인 것이다. 이처럼 예수에게는 우리로 하여금 백만 년 이상 묵은 부족적 정체성의 특성인 인간의 생존본능을 물리치게 하고 새로운 차원의 인간성으로 초대하는 그의 음성을 듣게 하며 삶을 변혁시키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타락한 자를 구원하기 위해 침입하는 신의 초상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의미에서 참 사람이 되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원시적 생존욕구를 위해 구축한 안전망에서 탈출하도록 만든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것은 인간 의식의 돌파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게 되면 신약성서 거의 모든 페이지에 나타나 있는 이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이 예수에게서 발견한 본질 자체는 새로운 인간성에 대한 총체적 변화의 의미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 체험에서 가졌던 기억 속에 깊이 간직되었다. 처음 기록된 복음서에서 마가는 레위라는 사람, 곧 증오의 대상인 이방인 정복자들의 피고용인이 됨으로써 자기의 신앙과 부족의 주체성을 저버린 유대인 세리에 대해 언급한다. 그 당시 유대인 기준에 의하면 그는 불결했으나, 예수는 그로 하여금 그 장벽을 넘고 자기의 제자가 되게 했다(마가 2:12-15). 레위는 응했고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변혁적인 예수 기억이 되었다.
마가는 나중에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예수가 갈릴리 바다를 건너 유대 지역을 떠날 때 큰 무리가 그를 따랐다고 했다. 그는 무리들이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그리고 두로와 시돈"(3:7-8)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 지역 중 여러 곳, 특히 요단과 두로와 시돈 건너편 지역들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예수는 "불결한" 이방인들에게 그의 화해의 메시지를 선포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추종자들이 부족의 경계선을 넘어 새롭고 고양된 인간성, 곧 다른 부족을 증오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폄하하지 않는 새로운 인간성의 의미를 맛보도록 촉구했다. 내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마가는 십자가 밑에 서 있던 이방인 군인이 예수 죽음의 의미를 처음 해석한 자로 보고 자신의 복음서를 마무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삶 속에서 하나의 능력으로 나타났는데, 그 능력은 남들에게 심지어 "다른" 부족들에게도 줄 수 있었던 능력이지, 부족적 증오심 배후에 숨기는 능력이 아니었다. 예수의 이런 참 사람의 모습은 후대에 예수상과 예수 기억을 압도한 모습, 즉 예수를 희생제물로 보는 사고방식을 훨씬 능가한 것이었다.
마태는 어떤 면에서 복음서 저자들 중에 가장 유대적이고 따라서 부족의 경계선에 대해 가장 민감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부족적 사고방식을 타파하고 부족의 경계선을 넘어서기 위한 틀 속에서 해석한다. 마태는 예수의 출생, 죽음 및 부활에 이르는 생애의 일관된 주제를 발견하고 격찬하면서, 인간 생활의 긍국적인 것에서부터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부족의 경계선이 어떻게 예수에 의해 변형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선포하기를, 우리 인간성에 한계를 설정하고 원시적 생존 의식에 우리를 묶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던 간에 예수 체험 안에서는 잔존할 수도 없고 잔존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한다.
마태는 예수의 출생을 알리기 위한 하늘의 빛나는 별 이야기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한다. 그 별빛은 유대 민족의 경계선 안에 사는 사람들의 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별은 모든 인간이 볼 수 있는 우주적 상징이다. 마태는 말하기를 이 별은 이방의 박사들이,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가 출생한 곳으로 오는 여정에서 공포와 위협으로 쌓아올린 부족의 장벽을 뛰어넘도록 인도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첫째 이야기가 주는 의미이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문자화함으로써 그 뜻을 놓쳐서는 안된다. 이것은 그 옛날 이동하는 별을 따랐던 사람들에 관한 실화가 아니다. 박사들은 예수를 찾아온 상징적 이방인들이라는 이해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마태의 놀라운 결론을 놓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복음서의 마지막 이야기는 똑같이 강력하고 포용적이기 때문이다. 마태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부활한 그리스도가 갈릴리에 있는 산 정상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는 거기서 부활한 예수가 그 제자들에게 한 마디의 말씀만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 저자의 생각에는 그 마지막 말씀이 확실히 의미심장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말씀은 이방인들을 유대인 예수에게 인도했던 별에 관한 역(逆) 메시지였다. 마태는 예수의 미자막 말씀이 그의 유대인 제자들을 이방인의 땅으로 가라고 촉구하는 것이었다고 선언한다. 즉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예를 들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28:19-20). 부활한 예수는 제자들로 하여금 이방인들에게로 가라, 너희의 공포의 경계선을 뛰어넘으라고 말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 곧 네가 불결하다고 규정한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경계선 없는 사랑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이 구절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중심인 선교 명령은 제국주의적인 기독교가 지난 몇 세기 동안 주장했던 것같이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당신의 하나님 이해에 맞추도록 만들라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인간성, 곧 부족의 경계선 및 생존의 본능 너머로 신장된 새로운 인간성의 체험에 동참하라는 초대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항상 드높이며 기존의 안전망을 뛰어넘게 하여 생명을 주는 사랑의 능력을 모든 사람들과 나누라는 요청이다.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예수 체험의 모든 것이다.
우리는 누가복음에서도 이처럼 참 사람이 되기 위해 부족적 사고의 안전망을 벗어버리고 모든 인류를 포용하라는 주제를 극적으로 다시 보게 된다.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예수가 그 생애와 사역을 나사렛이라는 초라한 마을, 곧 유대 사회의 변두리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창작했다. 그 다음에 예수는 유대 사회의 중심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그 도시의 종교적인 열광자들과 부족적인 사람들에게 사랑의 능력을 가르친다. 누가는 예수나 그의 제자들이 갈릴리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처럼 새롭게 떠오르는 보편주의가 이방인들의 세계 속으로 파급되고, 마침내 비유대인 사회의 수도인 로마로 확산되는 것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감한다.
누가는 그의 독자들에게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생애의 의미에 대한 증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그의 복음서를 끝내는데, 예수의 생애가 고난, 죽음, 부활을 거친 것은 오직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24:47) 모든 민족들을 초청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당신은 이제 부족에서 벗어나 인간성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누가는 사도행전 첫머리에서 예수가 이 행진 명령을 반복한 것으로 만든다. "너희는....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1:8). 땅 끝은 이방인들이 사는 곳임을 깨닫기 바란다. 그의 말은 사실상 당신의 인간성을 위축시키는 생존의식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다른 부족의 사람들, 당신의 안전을 위해 증오해야 하며 불결하다고 배운 사람들에 대한 부족의 장벽을 넘어서라는 것이다. 예수에게는 부족의 경계선을 지워버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장치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하며, 보호주의라는 장벽에 매이지 않은 새로운 인간성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했다는 심원한 의미의 차원이다.
끝으로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다락방에 몸을 숨겼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이야기를 할 때, 예수의 체험적 의미가 매우 극적으로 재차 확인된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 받는다. 이 오순절 이야기에서 성령의 임재는 제자들로 하여금 모든 부족의 경계선들을 넘어서도록 만드는데, 이런 현실은 제자들이 사용한 다양한 언어, 곧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한 것으로 상징화되었다. 누가는 그의 청중들이 이 메시지의 온전한 능력을 받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덧붙이기를, 그들은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고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행 2:9-11)으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1세기에 알고 있었던 지리학 지식의 수준을 고려할 때, 이것은 매우 인상적인 세계관으로서 서쪽에 있는 리비아와 로마로부터 그리스를 거쳐서 아랍, 페르시아 및 바빌로니아, 그리고 오늘날 이라크 중심부에 있는 티그리스오와 유프라테스 강에 의해 만들어진 계곡에 자리한 메소포타미아까지 뻗어나가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이런 모든 이야기들은 예수 체험의 의미가 사람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장벽들을 허물도록 만들고, 부족, 언어 및 공포로 가득 찬 안전지대를 벗어나게 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 성서적 증인들의 명단이 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도 삶의 의미와 하나님의 의미를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는 인간으로 변화하도록 초청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가 주려던 선물이었다.
우리가 복음서에 기록된 이 그리스도 의미를 간파할 때, 복음서 저자들이 전하려는 것은 부족적 메시지, 곧 죄인들을 구원하고 잃은 자를 찾거나 우리의 불안을 해소시키려는 부족적 메시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오히려 예수의 현존을 체험한 자들로 하여금 예수에게서 만난 온전한 인간성을 자기 자신들이 새롭고 포용적인 삶으로 살아내라는 메시지였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와 위기를 무릅쓰고 방어벽 밖으로 뛰쳐나와 예전에 미처 몰랐던 방식으로 참 사람의 길에 투신하라는 부름이었다.
이런 초청을 제안하고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이런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초대한 것은 예수의 완전한 인간성이 지닌 능력이었다. 우리의 인간성이 공포로 위축되고 스스로 구축한 안전벽 뒤에 몸을 숨길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생존지향적 인간들 사이에서 갈등을 빚게 마련이다. 우리가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완성을 추구하면서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 사람됨의 의미에 대해 매우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다. 참 사람 예수 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인간성 곧 완전한 인간성의 의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뿐이라는 사실이다. 기독교가 늘 가르친 것처럼 신성은 우리를 인간 이상의 존재로 만들지 못한다. 신성은 오히려 인간성의 충만함 곧 한계가 사라지고 증오가 가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나타나는 인간성의 완성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내가 신적 그리스도의 현존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간 예수의 완전한 인간성, 곧 유일하고 고독한 삶을 선포하는 데 있다. 예수의 인간성은 총체적이고 완전했기 때문에 영적인 영역 곧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 자체 속으로 들어가는 공간을 향해 열려진 것이다. "신적"이란 말도 인간의 체험을 표현해 내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말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예수를 볼 때,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이 인간의 형태를 취한 것이 예수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신성의 의미에 대한 극히 부적절한 유신론적 이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부족적인 생존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나는 오히려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존재 전체를 향해 열려진 인간성, 곧 생명, 사랑 및 존재를 향해 열려진 인간성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를 새롭게 생각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유신론이 완전히 붕괴되고 초자연적 하나님이 소멸될 때 환영할 만한 대안이다.
그러므로 부족의 정체성으로 우리의 인간성을 제한시키는 첫 번째 장애물은 파괴되고, 그 과정에서 예수는 부족 종교의 감옥에서 탈출한다. 우리의 인간성 속에 깊이 잠복하고 있어 우리의 인간성을 철저하게 저해시키는 부족의 한계성들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예수이다. 바야흐로 비종교인들을 위한 예수는 그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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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대표적인 부족적 감정은 영남(경상도) 대 호남(전라도)의 지역감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대학을 꼽자면 연세대와 고려대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21세기 가장 첨예하면서 가장 심각한 부족주의는 남한과 북한의 대결구도이다. 특히 남한내 개신교의 대표적인 친미보수우익집단으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북한에 대한 종교적 분노는 반공반북이데올로기에 의해 덧씌워져 부족주의와 혼합되어 나타나는 적개심으로써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발람의 나귀)
*2) 혹시 '한국군 증오비'라고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베트남 전쟁당시 한국군은 무차별적인 "묻지마 학살"을 통하여 9,000여명의 베트남 민간인들(대부분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노약자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클릭하세요. [베트남 평화기행①]"설명없이 집단학살, 그게 한국군의 특징이었다" (발람의 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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