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02. 21:34 http://cafe.daum.net/absoul/EAUV/26
Q 께달음은 누구에게 오는가요? 왜 사람들은 누구든지 쉽게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가요? 갓 태어난 아기들과 깨달은 이들과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요? 무명과 깨달음 사이를 갈라놓는 벽이라도 있는 건가요? 무명이 있고 깨달음이 있다면 깨달음의 방법도 있을 수 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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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주심에 감사드리며, 나름의 부족한 답변 드릴까 합니다.
Q 깨달음은 누구에게 오는가요?
사람이면 누구나 존재함과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깨달음의 의식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겠으나, 사물의 현상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통찰의식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통찰의식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사물이 현재의 싯점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의식여행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의 현상이나 심리적 현상 등 어떤 현상으로서 무엇이라도 좋겠으나, 좋은 예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밥상위에 반찬으로 올라 온 멸치 한 마리를 보고도, 오늘 날 내 앞에까지 오게된 지난 시간을 쫒아서 더덤어 시간을 잃고 의식여행을 하여 본다면 종국에는 우주의 시작과 만나지게 될 것입니다. 그 점은 우주의 바닥이 될 것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의미가 현재로 귀속이 되어 회복 또는 부활하게 되는 의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1. 왜 사람들은 누구든지 쉽게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가요?
우리는 보편적인 가치관이라는 두터운 벽을 통하여 그 속에서 보호받으며 살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먹고 사는 물질적 삶과 관련한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 범위 내에서 주로 일상의 사고가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 가치관의 범위에서이기 때문에 일상을 벗어난 사고의 기회가 쉽지 않은 이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유지하여 가는 일상의 중에도 잠시 휴식의 시간은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시간은 그 잠시의 시간으로서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일상의 모든 사고가 기존의 지식에 매여서 출발하기 때문에 의식여행의 그 한 순간 만큼은 기존의 지식된 정보에 의하지 않고 세상을 문득 처음 바라보는 소년의 마음으로 자유로운 의식여행으로 가능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일상 중에 문득의 시간에 깨달을 수 있거나, 또는 이러한 기회를 의도적으로 시도 하더라도 처음의 의도된 바 조차 잊어버리고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거나와 무관하게 깨달음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겠습니다.
2. 갓 태어난 아기들과 깨달은 이들과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요?
만약, 깨달음을 얻은이가 있다면 그는 자신이 잠자리와 같고 벌레와 다를 바가 없고 우주의 모든 존재와 다를 바가 없이 여기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갓 태어난 아이와 자신이 다를 바 없는 동일자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연의 이야기이지만, 개체로서 자신의 생각 내부에서도 조상과 가족과 이웃과 아이들이 있을 것이며, 부모형제자매가 현실세계 못지 않게 동등히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조상된 기존의 가치관에 너무 얽매여도 불편할 것이며, 이웃된 정보에 너무 의존되어도 불편할 것이며, 아이와 같은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생각에 현혹되어도 불편할 것입니다. 때로는 소극적이어도 불편할 것이며, 너무나 적극적이어도 불편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로의 사랑으로 갓 태어난 아이는 미래의 성숙된 나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지식이 없고 표현이 부족하여 백지와 같을 것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 본성은 어른과 다를 바 없이 똑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의 편리대로 아이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그 과업은 반성되고 개선될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전해져 일상 속에서 대립의 관계로 늘 자신의 주위를 맴돌게 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