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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1회에 한해 3주간의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대강 하고 다음 주부터 다시 백두대간으로 가려 합니다.>
(21)
Pro.와 Ama.의 차이
관광 비자를 현지에서 유학생 비자로 전환하는 과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되는 게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땅이라서 인지 설(說)도 많았다.
참으로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며 희망과 실망을 번갈아 안겨 주는
말 말 말, 설 설 설....
요구하는 모든 서류에 대해 적잖은 돈들여 공증 절차를 완벽하게
마쳤음에도 자국 공증인(notary public)의 본인서명 확인공증을
또 다시 요구하다니....
높디 높은 불신의 벽을 의미하는 것인가.
女공증인 눈에는 내 미국비자의 핸썸한 사진과 지저분한 수염의
영감이 아무래도 동일인이 아닌 듯이 느껴진 건가.
불필요한 질문들을 던지던 그녀는 첨부된 만기 갱신 여권의
사진을 확인하고 나서야 수긍을 하는 듯 했다.
환전하러 들린 한국의 은행에서 힐끗거리며 싱겁게 웃음짓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
Bin Laden과 흡사해서라 했다.
소위 9.11 테러 이후 공항마다 살벌하기가 전시를 방불케 하고
있어 혹 봉변당하는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그다지 편치 않은
기분이었는데 기우임을 확인했다.
"눈동자만 본다"는 입국심사대 직원이 나를 안도케 했으니까.
아무리 훌륭한 변장술도 눈동자만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 이 공증인이 사람 보는 일에는 아직 Ama.의 수준이어서
그러했던가 보다.
이 분야의 진정한 Pro.를 들라면 역시 국제공항 입국심사대
직원이 아닐까.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예외 없이 무표정에 과묵하고 만만띠다.
그러나 그들의 눈만은 매섭다.
인종 전시장의 감별사라 할까.
어딜 가나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미국의 성수대교
진인사는 했으니까 이제는 대천명하는 마음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 뿐이었다.
평상심을 되찾고 다시 학업에 열중하던 현아는 학교의 휴강
기간을 이용하여 부모를 위해 특별한 스케줄을 만들었다.
Texas 주기(州旗) Lone Star애 얽힌 San Antonio 관광에 이어
Padre Island 로 3일간의 피서 여행까지.
미국과 Mexico 국경 멕시코만에 위치하며 새로 개발중인 관광
휴양섬으로서 동으로 헤쳐 나가면 남부 휴양지로 유명한
Florida의 Miami와 Cuba에 이르게 된다.
계속 나아가면 Bahama의 제섬과 서인도 제도를 만나고
대서양으로 진출하게 되어 있다.
전에 한 번 다녀 온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으나 그 때는 2월이라
물놀이에 이른 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피서 인파가 대단했다.
동서로 길게 뻗은 해안가를 빌린 자전거로 답사도 하고 모처럼
망중한을 보내는 기분이었다.
위 / 파드레 섬
아래 / 바다를 지키는 성상
이 섬에 가려면 꽤 긴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런데 이 다리가 어느 날 무너졌단다.
밑으로 지나가던 배가 교각을 들이받아 그리 되었다는 것.
현아 일행이 섬에 도착하여 여가를 즐기다가 뉴스를 들은
친구들로 부터 안부 전화를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고.
이른 바 알릴 의무 때문에 마지 못해 전하는 정도여서 인명피해나
자세한 건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국의 압력이 작용한 것일까?
자기네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뉴스거리가 되지 못해서 였을까?
그리고 보니, 성수대교 때를 돌이켜 보니 우리 나라의 언론 자유와
뉴스를 쫓는 기자 정신이야 말로 과연 세계 제일 아닌가.
사람을 문 개건, 개를 문 사람이건 붙들고 늘어지는 집착력이...
나는 이 다리를 파드레 아일랜드교가 아니라 미국의 성수대교라
명명했으나 관심 갖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Pocket Book이 잘 팔리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현아는 충분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가난한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학업과 잡(job)을 함께 하는 이른 바 고학생이다.
오래 머무는 것은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거니와 워싱턴 쪽을
거쳐 귀국하기로 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도 서둘러야 했다.
1992년 Spain Sevilla에서 처음 외국생활을 시작할 당시엔 전화가
연결돼도 우느라 정작 필요한 말을 하지 못했던 그녀가 이렇게
많이 변했지만 헤어지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것.
눈가에 이슬 맺히는 것을 비행기 이륙 지연으로 2시간여 늦추게
되어 당장의 우리에겐 차라리 잘 된 셈이었으나 Washington까지
연쇄작용하게 된 것이 문제였다.
이 날은 지연의 날인가.
Dallas 국제공항(DFW) 사정은 더욱 엉망이었다.
모든 전광판은 'Delay' 일색이고 따라서 북새통이었다.
게다가 검색의 과격함은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그러나 아무도 아무런 항의나 소요 없이 모두 순한 양일 뿐이었다.
더러는 앉아서 혹은 선 채로 Pocket book 한 권씩 펴들고 있을
뿐이었다.
육로와 달리 항공로선에는 의외성이 빈번하며 따라서 연발착이
다반사일 수 밖에 없다.
경유를 많이 하게 되는 노선에서는 도미노 현상이 불가피하다.
약속시간의 준수보다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진국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라 더욱 심한 것 같다.
우리 국적의 항공사들은 양호 이상이다.
환승과정의 예정된 5~6시간 대기(갈 때의 DFW ~ McAllen이
그랬다)와 연발착으로 인한 그만한 시간대의 기다림은 마음
가짐에서 부터 다르다.
그러나 그 책의 내용이 어떠하던 조그마한 책 한권에 모든 것을
묻고 의연히 기다리는 저들에게 Pocket book이야 말로 필요
불가결한 해결사가 아닐까.
미국에 한한 게 아니라 명실 공히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공항 모습이다.
같은 상황이었을 때의 우리 나라 공항 풍경을 그려 보았다.
고소를 지울 수 밖에 없었다.
외제 선호도가 지상 최고라는 우리는 집단 항의나 소란 대신
이런 자세는 왜 수입하지 않는지....
의식주만 선진 수준일 게 아니라 머리와 가슴이 그래야 하는데.
김기옥과 홍성민의 환대,
관광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김기옥의 West Virginia와 홍성민의 Maryland 사이를 번갈아
가며 그들에게 끌려 다녀야 했다.
Washington D.C.를 비롯하여 Potomac강 상류의 국립공원
Great Falls Maryland에 이르기 까지 샅샅이 세심하게 안내했다.
아파라치아산맥(Appalachian Mts.) 동쪽 끝에 형성된 Blue
Ridge의 수려한 산, 국립공원 Shenandoah 정상에서는 멀리
아스라한 쉐난도강 상류를 거슬러 높이 오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야 했다.
위 /링컨 기념관
아래 / 포토맥강 상류의 매리랜드 국립공원
이런 극진한 안내를 하고도 성이 차지 않는다는 건가.
그들은 우리 부부에게 기필코 Niagara 폭포를 다녀가라는 것.
여비까지 보태겠다는 그들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김기옥과 홍성민
심중의 깊은 사연에 까지 접근할 수는 없지만 자식들의 교육이
표방한 이민의 이유다.
편한 생활이 보장되어 있는 자기 나라를 버리고 곤고한 길을 택한
걸 보면 지극한 자식 사랑을 소홀히 평가할 수 없겠지만 교육환경
뿐만 아니라 교육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국내의 월드 컵 경기 개최를 목전에 둔 때문이라나.
수월치 않은 귀국 일정의 변경이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결국 2박 3일의 Niagara와 New York을 두루 도는 관광길에 나섰다.
계속 가야 할 백두대간을 남겨 놓은 채 현아의 긴박한 문제 때문에
미국으로 날아 갔지만 이 곳까지 다시 날아 온 것은 그들의 간곡한
권유로 인해서 였는데 관광을 이유로 귀국을 또 연기하다니...
불법 체류자의 비애
거의 하루 해를 달려 Niagara에 도착했다.
세계 굴지의 폭포로서 Canada Ontario주와 미국 New York주가
공유하고 있으나 빼어난 경관을 보려면 국경을 넘어 Canada로
가야 한다.
풍문에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미국을 통해 오기 때문에 알짜 수입은
미국이 챙기고 Canada는 실속 없는 치닥꺼리만 하게 되어 볼메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호사가들의 말질일 뿐 실속 챙기는 미국인들 보다
내색 없이 친절하다는 인상이었다.
위 / 폭포 아래에서 바라본 스카이론 타워
아래 / 미국쪽의 나이아가라 폭포 : 바로 밑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비옷을 뒤집어 써야 한다
Skylon Tower의 관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폭포는 장관이다.
가시거리가 멀리 129km 에 이른다는 높이 236m의 관망대에는
폭포의 야경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보다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형형색색 야간 조명이 점등되면 황홀하다.
그러나 이런 장관과 황홀한 야경을 외면해야 한 일행이 있었다.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기 때문에 국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넘을 수는 있으나 재입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념해야 한
그들의 비애가 내 가슴을 후볐다.
내가 미국 땅을 밟은 이유가 바로 내 딸을 불법 체류자로 만들지
않기 위함이 아닌가.
그들은 언제까지 이런 제한된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생활 마저도 항상 조마조마한 상태에서 말이다.
적극적인 범법 행위가 없는 한 특별한 제재는 없다지만 그들의
운신의 폭은 이처럼 좁기만 하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 것을 알고 나서는 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는 현아에 비해선 그래도 간 큰 이들이다.
비정한 商魂
Hudson강 하류 대서양 접경은 육해공이 공히 난리였다.
마침 거대한 항모 함대가 진입중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9.11 이후 제 2의 폭탄테러 첩보를 입수해서라 했다.
양말은 물론 허리띠 안쪽까지 샅샅이 뒤지는 요란을 피우면서도
돈은 벌어야겠다는 것인가.
그처럼 겁이 나면 아예 문을 닫아버릴 것이지.
Manhattan의 Empire State 빌딩, U.N. Center, New York만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Liberty Island 등등...
위 / 교회 담장에 전시된 희생자 유품들
가운데 /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가는 선상
아래 / 유엔 센터
상혼은 여기에서 머무는 게 아니다.
사라진 쌍동이 무역센터 건물 옆 교회의 담장에 희생자들의 선혈이
낭자한 유품들을 걸어놓고 구걸(모금)을 하는가 하면 아직도 복구
하지 않은 채 경각심용(?) 구경거리로 남겨 두고 있는 빌딩들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건물 자리의 볼 거리를 놓고 자리값을
요구하는 비정한 상혼임에랴.....
부러운 것 하나
드넓은 남부의 여유로움에 비해 조밀한 New York의 혼탁하고
살벌한 분위기는 나를 질식케 하려는 듯 했다.
Philadelphia와 Baltimore 하이웨이를 질주하면서 숨통이
트이고 단 한 가지 부러운 것을 확인했다.
죽죽 그어진 굵고 가는 선 위에 지명과 도로의 번호만 표기된
운전자용 지도다.
매리랜드에서 시작하여 나이아가라, 뉴욕, 필라델피아,
볼티모아를 거쳐 웨스트 버지니아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운전하는 기분으로 미리 도상 운전을 했는데 초행임에도
거의 맞게 찾아왔으니 이보다 더 부러울 게 어디에 있겠는가.
도로망 또한 표기된 지도와 한 치의 오차 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초행자가 지도 한 장만 들고도 어디에나 갈 수 있는 것.
지도 한 장 달랑 지니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도 지도 보며
운전은 할 수 없는 잘못된 지도와 도로망의 우리 현실이 언제쯤
선진화 될 수 있을까. <계속>
蛇足16 :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의 가치가 있지만 개가 사람을
물었을 경우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단다.
당연한 것은 뉴스의 속성상 가치가 없다는 뜻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