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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통합검색>통합검색결과 (nl.go.kr)
이 책은 1931년에 박인순(朴寅淳)에 의해 2권 1책의 납활자 인쇄본으로 편찬된 경상남도 안의(安義)의 읍지로서, 1930년대에 편찬된 경상도의 읍지 편찬 성과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의 표제 이름은『화림지(花林誌)』이다. 화림(花林)은 안음(安陰)과 함께 안의의 다른 이름이었다.
조선 시대 안의현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서상면과 거창군 마리면·위천면·북상면 일대에 있던 고을이다. 안의현은 1767년에 안음현에서 개칭된 이름이다. 태종 17년(1417)에 안음현이 되었으며, 1896년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경상남도 안의군이 되었다. 1914년의 군면 폐합에 의해 안의군이 폐지되고, 현내면·황곡면·초참면이 안의면으로 개편 통합되었다. 이러한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된 사실은 이 책의 현명(縣名)과 방리(坊里) 항목에 반영되었다.
이 책은 서문, 화림지 목록, 그리고 본문으로 편제되었다. 책머리에는 정오표가 있고, 이어서 1930년에 정종술(鄭鍾述)이 쓴 서문이 수록되었다. 책의 편제 형식은 조선후기 관찬지리지의 일반적인 틀에 따르고 있으며 변화된 시대환경에 맞추어 근대적인 읍지 체제와 형식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을 항목의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상권은 건치 연혁(建置沿革), 현명(縣名), 관직(官職), 진관 및 도로(鎭管及道路),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요역(徭役), 군액(軍額), 성지(城址), 임수(林藪), 창고(倉庫), 학교(學校), 공해(公廨), 누정(樓亭), 단묘(壇廟), 총묘(塚墓), 불우(佛宇), 교량(橋梁), 도서(島嶼), 언보(堰洑), 시장(場市), 역원(驛院),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문과(文科), 생진(生進), 무과(武科), 음사(蔭仕), 인물(人物), 충의(忠義), 충노(忠奴), 효자(孝子), 효녀(孝女), 열녀(烈女), 증직(贈職)으로 구성되었다. 하권은 제영(題詠), 비판(碑板), 책판(冊板)으로 구성되었다.
기존의 조선 후기 안의읍지와 비교하여 이 책에서 새로 신설된 항목이나 증보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현명(縣名) 항목에서, 행정구역 폐합으로 인한 새로운 면의 명칭이 소개되고, 면의 면적, 마을의 개수, 그리고 호수와 인구가 설명되었다. 성씨(姓氏) 항목이 해당 성씨의 인물 설명 등 기존의 읍지와 비교할 때 대폭 증보되어 상세히 기재되었다. 방리(坊里) 항목에서는 안의의 관할 12개 면을 나열하고 면의 위치와 소속 마을의 개수 및 이름을 소개하였다. 호구(戶口) 항목에서는 1831년의 신묘식(辛卯式) 원호(元戶)로 4,565호이며 인구는 19,311명이라고 하였으니, 기존『경상도읍지』(1832)에 수록된「안의현읍지(安義縣邑誌)」의 호구 내용을 그대로 수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임수(林藪) 항목에는 송정수(松亭藪)가 새로 추가되었다. 창고(倉庫) 항목의 내용도 개개의 명칭과 함께 대폭 증보되었다. 학교(學校) 항목에서도 재(齋), 정사(精舍), 서당 등의 명칭과 위치 등의 정보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형승(形勝) 등의 항목에서도 새로운 내용을 더하여 보완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기타 환적(宦蹟) 항목에서도「안의읍지(安義邑誌)」(1895년경) 이후의 사항을 해당 시기까지 새로 추가하여 증보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조선 후기에 안의에는 여러 읍지들이 편찬된 바가 있었다. 대표적인 읍지로서는 19세기 전반기에는『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에 수록된「안의현읍지(安義縣邑誌)」가 있고, 이어 19세기 후반에는『영남읍지(嶺南邑誌)』에서 수록된「안음읍지(安陰邑誌)」(1871년)와「안의읍지(安義邑誌)」(1895년경) 등의 편찬 성과가 있었다.
1931년에 편찬·간행된 이 책은 조선후기의 읍지 편찬 성과를 계승하고 1930년까지의 변화된 시대환경에서의 지역사정을 반영한 안의(安義)의 읍지로써, 시계열적인 역사지리적인 변천 사항뿐만 아니라 당시의 지역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서 활용될 가치가 있다. (최원석)
安義邑誌(안의읍지)
安義邑誌 凡例
[誌]
凡例
安義邑誌
6 面
凡例
一、本鄕有誌於英廟朝所編而滄桑累變正本無 傳雖有寫本幾處內容不同而往在庚午印布花林誌雖曰博採强記拘於時政不得記詳不可無損益而旣經三十有餘年地域沿革人物繁榮古今不同故竣發公議更修本誌
一、本誌稱號依舊誌稱安義邑誌
一、本誌以花林誌爲準然有誤記疎略處則依證公議釐正
7 面
一、本誌修單依花林誌記載次之而入單序次修錄
一、官公署及各種團體記載本鄕發展之表現
一、本誌紀年中國朝廟號及檀紀西紀等幷書之
一、花林誌文廟漏記又學校編幷記于院祠書堂 而本誌則各分編修錄
一、本誌編目中墓閣壽職贈職學行文行行誼儒林旌閭志士名筆議員學位現職等新設修錄
一、本誌編首地圖及鄕校寫眞添付
一、本誌附錄舊官職及年代考以備考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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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어
안의현읍지(安義縣邑誌) |
내용
1832년(순조32) 경상도 안의현에서 편찬한 읍지이다. 본 책은 필사본이며, 1책 27장으로 되어 있다. 안의현의 채색 지도 1장이 첨부되어 있다. 안의현은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과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에 해당하며, 읍치는 안의면 금천리, 교북리 일대에 있었다. 안의군은 신라 때 마리현(馬利縣), 이안현(利安縣)이었다. 고려 때 부곡(部曲)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이안현이 되기도 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 안음현(安陰縣)으로 개칭되었다. 영조 때 안의현(安義縣)이 되었다. 본 읍지를 통해 안의군의 역사, 소속 고을의 이름, 거주 성씨 및 군의 풍속, 자연 환경, 물산, 각종 시설의 위치 및 내력, 지역 인물 관련 정보, 인구수 및 토지 면적, 조세 및 환곡 등의 재정 내역 등의 정보를 상세히 살펴 볼 수 있다. 본 읍지에 기록된 호구와 전결의 수로 볼 때 안의는 조선의 지방 고을들 가운데 규모가 작은 고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안의군은 동쪽으로 거창과 20리, 서쪽으로 전라도 장수와 57리, 남쪽으로 함양과 5리, 북쪽으로 거창과 50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으며, 서울과의 거리는 752리였다. 이 책은 지역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항목을 빠짐없이 설정하여 19세기 초반 안의현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본 읍지 이전에 편찬된 세종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영조대의 『여지도서(輿地圖書)』, 본 읍지 이후에 편찬된 고종대의 『안의읍지(安義邑誌)』 등 본 읍지 편찬을 전후로 한 안의 지역 여타 읍지들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동시기 안의 지방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관련자료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奎 666〉, 『영남읍지(嶺南邑誌)』〈奎 12173〉, 『안의읍지(安義邑誌)』〈奎 108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