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21일(금) 전도서 11:9-12:7 찬송 373장
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개역 개정)
5절)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3-5절은 인체의 노화(老化) 현상을 여러 비유로 표현하는 내용이다.
즉, ‘집을 지키는 자들’은 두 팔과 손을,
‘힘 있는 자들은’ 몸을 지탱하는 다리 또는 척추를,
‘맷돌질하는 자들’은 이를, ‘창들로 내다 보는 자’는 두 눈을,
‘길거리 문들’은 입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음악하는 여자들’은 발성 기관을,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은 노쇠 현상에 따른 백발 현상을 나타낸다.
이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인체의 노화를 다양한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잘 보면 여기에서도 핵심이 되고 중심이 되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집’이다.
이렇게 인체를 집에 비유하는 일 자체는 성경에서 그렇게 드물지 않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자체가
인체를 영혼이 잠시 거주하다가 가는 장막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체를 집에 비유하는 솔로몬이 맺은 작은 결론은,
바로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 인체를 빌려 쓴다고 해서
집이 무너짐과 함께 영원히 망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돌아갈 집’이 별도로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자기의 영원한 집’이란
‘무덤’ 내지는 고대 사람들이 지하 영혼의 감옥으로 생각한 ‘하데스’를 가리킨다.
아직 성경의 계시가 완성되기 전, 고대 근동 사람들의 영향 아래 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무덤을 문을 삼아서
지하 감옥과 같은 하데스로 끌려가서 그곳에 갇혀 산다고 믿었다.(시88:3-12)
솔로몬은 바로 이것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된 지금의 언어로 말하면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천국에 마련하시는 거처를 말한다.(요14:2-3)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 있는 우리의 ‘주택 건설’ 재료들이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보화와 봉사들이 될 것이라고 표현하였다.(마6:20; 고전3:10)
그런데 70년, 80년 살다가 벗을 육체를 위해서는
그렇게 온갖 투자를 다하면서 영구히 살 처소를 위해서는
투자도 하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세상 사람도 여름휴가 때 잠시 사용할 텐트를 위해서는
자기가 사는 집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는다.
짧게는 하루나 이틀 길어야 일주일 사용하고 말 텐트이기에 조금 불편해도 참고 산다.
하지만 집을 위해서는 조그만 문제가 생겨도 바로 수리하며
보다 좋은 아파트에 이사 가기 위해 젊음을 바쳐 일한다.
그러할진대 영구히 살 하늘의 집을 위해서는 관심조자 없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또 이웃을 위해 섬김의 삶, 희생의 삶을 살며 믿음으로 살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가?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처소를 마련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편이다.
이를 마음에 간직하고 실제 우리의 삶을
더 영구한 것을 위해 투자하고 헌신해야 한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