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운길산 수종사를 다녀와서!
높이 610.2m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 북서쪽 지점에
솟아 있다.1890년(고종 27)에 지은 《수종사중수기》에는 운길로 나오고,
그보다 오래된(동국여지승람)에는 조곡산이라고 적혀 있다.
산수가 수려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가족산행이나 가벼운 주말산행지로 널리 알려졌다.
주변에 정다산마을·팔당호·서울종합영화촬영소·금남유원지 등의 관광지가 있고 산중턱
에 수종사(水鐘寺)가 있어 볼거리도 많은 편이다. 특히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팔당호의
모습은 일찍이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전망이 제일이라고 격찬했을 정도이다.
서쪽의 적갑산(561m)과 예봉산(683m)을 함께 종주할 때 기준점이 되는 산이기도 하다.
산행은 송촌리나 진중리에서 시작한다. 송촌리에서 송성골마을로 들어가 수종사
(水鐘寺)에 들른 뒤 산신각 옆으로 500봉을 거쳐 정상에 오르거나, 요사채 앞에서
200m를 내려가 오른쪽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 서면 예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적갑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행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린다.
수종사창건설화(水鐘寺創建說話)
수종사는 세조(世祖)와의 깊은 관련을 빼고서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절의 설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하고 있다. 세조가 만년에 병을 치료하고자 강원도 오대산에
갔다 돌아올 때였다. 뱃길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중에 밤이 되었으므로 이곳 양수리
에서 물 위의 야경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 때 옆에 있는 운길산에서 때 아닌 종소리가 들렸다.
세조는 신하를 보내 숲 속을 조사해 보도록 하니 천년 고찰의 폐허가 있었고, 바위 벽에는
16나한상이 줄지어 앉아 있는데 그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들은 세조는 매우 감동했고, 마침내는 발심하게 되어 지금의
이 자리에 절을 복원케 하고 절 이름을 수종사라 하도록 했다.
조선시대의 불상군.
수종사석탑내금동불상군[水鐘寺石塔內金銅佛像群]
내용
15구(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종사의 팔각오층석탑의 1층 탑신석(塔身石) 및 기단
중대석(中臺石) 안에서 각각 발견된 것으로, 이 15구의 금동불상의 양식은 크게 조선
전기와 후기의 것으로 나누어진다. 조선 초기의 작품은 모두 3점으로, 본존인 금동불좌상과
반가사유형(半跏思惟形)의 보살상, 손에 구슬을 들고 머리에 두건을 쓴 보살좌상이 삼존불의
형태로 금동불감(金銅佛龕)안에 봉안되어 있었다.이 가운데 본존불은 복장문(腹藏文)에
의하면 1493년(성종 24년) 명빈 김씨(明嬪金氏)가 시주한 석가불상으로, 좁은 무릎 폭,
사각형적인 상체, 작아진 머리, 각이 진 어깨와 어깨의 옷주름, 팔의 Ω자형 주름, 평행적인
군의(裙衣)의 상단, 몇 번 감은 띠 매듭 등 고려시대 불상 양식에서 진전된
조선 초기 불상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뾰족한 육계(肉髻)에 정상 계주(頂上髻珠)의 표현은 새로운 양식으로 중국 명나라의
양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 불상과 같이 봉안된 반가보살상도 이와 비슷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 두 불상이 크기라든가 존명(尊名)에 있어서 서로 일치
하지 않으므로 한 조로 제작된 것은 아닌 듯하다.이 삼존불 외의 불·보살상은 모두
조선후기의 작품이다. 1628년(인조 6년) 정의대왕대비(貞懿大王大妃)가
주조하였다는 명문이 뚜렷이 새겨진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기단
중대석에서 발견된 불상 8구와 1층 옥개석에서 발견된 4구 등 모두
12점이 이에 속한다.
이 중 1628년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은 머리와 상체의 크기가 비슷하고, 상체는 뒤로 젖히고
목은 앞으로 쑥 내민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기묘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사각형적인
풍만한 얼굴에 눈은 거의 감다시피 하고 만면에 웃음을 띤 명랑한 얼굴은 일반적인 조선시대
불상의 근엄한 표정과는 달리 친근한 느낌을 준다.육계가 구별되지 않는 두루뭉술한 머리
모양에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가 함께 주조된 점, 밭은 목, 법의(法衣)의 표현 등은 1482년
작인 목조불좌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비슷하다. 그리고 손의 모양, 낮은 삼각형 대좌
등은 불회사건칠비로자나불좌상(15세기 중엽)과 비슷하여 조선 전기 불상의 영향을 받은
후기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밖에 다양한 형태를 지닌 나머지 11구의 불·보살상들도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비로
자나불상과 같은 양식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이 15구의 금동불상들은 조선시대 전기와
후기의 불상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조선시대의 억불정책 아래서 왕실의
비빈(妃嬪) 들에 의하여 불사(佛事)가 성행되었음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종사금동불감불화(水鐘寺金銅佛龕佛畵)의 고찰」(류마리,
『미술자료』 30, 국립중앙박물관, 1982)
「조선전기조각양식의 연구」(문명대, 『이화사학연구』
13·14, 이화사학연구소, 1983)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모른체하네
이채연 노래
불타는 내마음을 왜몰라 줄까
그데만은 내마음을 아 말도안돼
지난가을 처음으로 그사람을
만났을땐 밉지도 곱지도 않던사람
그사람이 지금은 내마음
불태우고 모른체 하네
♥
*꽃피는 이마음을 왜몰라 줄까
그데만은 이마음을 아 말도안돼
지난가을 처음으로 그사람을
만났을땐 좋았다 싫었다 하던사람
그사람이 지금은 내마음 불태우고
모른체 하네 모른체 하네 모른체 하네
.
2015-09-06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