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와 번데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들에 속하는 우리의 한복, 일본의 기모노, 인도의 사리 같은 옷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많은 경우 이 옷들의 소재는 실크라는 것이다.
‘비단옷 입고 밤길 가기’란 속담은 밤에는 아름다운 비단 옷도 어둠에 묻혀 그 빛을 잃는다는 뜻으로 애쓰고도 보람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고운 피부나 마음씨를 두고도 비단결 같다고 한다. 비단은 곱거나 아름다운 것의 대명사인 샘이다.
보통 우리는 고급 옷감을 통 털어 비단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따지면 누에고치에서 뽑아 낸 명주실로 짠 견직물, 즉 실크를 비단이라고 한다. 섬유의 여왕이라는 실크. 레이온이나 나일론 같이 값싸면서도 품질도 우수한 합성섬유가 대량 공급되는 중에도 고가의 실크가 섬유의 여왕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합성섬유가 흉내 낼 수 없는 미려한 윤택과 매끄럽고 부드러운 촉감과 시각적 우아함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실크는 비싸지만 중국이 생산을 독점했던 시절엔 같은 무게의 금값보다도 더 비쌌다고 한다.
예전엔 실크는 오직 중국에서만 생산되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실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지 못했으며 알 수도 없었다. 누에에 관한 비밀을 누설하는 중국인은 누구나 반역자로 처형될 만큼 철저한 보안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중국의 서릉 황후가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자신의 찻잔에 뽕나무에서 떨어진 누에고치가 빠져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을 건져내려고 하자 그 고치에서 하얀 비단실 한 가닥이 풀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시작된 실크 생산은 오랫동안 중국에 크나 큰 부를 안겨 주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비밀 임무를 띤 수도사 두 사람을 중국에 파견하였고 2년이 지난 뒤 귀국하는 수도사의 대나무 지팡이 속 빈 공간에 누에알을 숨겨 와 드디어 중국의 실크 독점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문익점이 붓대에 목화씨를 숨겨온 일화와 더불어 대나무 대롱에 의해 중국의 국부가 유출되었다는 공통점이 흥미롭다.
철저한 보안 속에 오랜 기간 독점한 중국의 실크 생산은 동서 가교 역할을 한 실크로드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의 동서 교역로로서 중국의 특산물인 비단이 이 길을 통해 서쪽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쪽에서는 보석 유리 포도 참깨 모피 악기 등의 서구 물건들이 중국으로 들어 왔으며 또한 종교 문화 기술 등, 다양한 문물이 이 교역로를 통해 상호 전해지며 교역로로서 뿐만 아니고 동서 문화의 전달로로서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인류문명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실크로드가 번데기의 희생으로 인하여 가능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가 어릴 적 유일한(?) 단백질 원으로 즐겨 먹었던 번데기. 이 번데기의 희생으로 실크는 탄생한다.
지금은 노동집약적인 잠업이 사양화되었지만 그 시절엔 시골 어디에나 잠실이 있었고 양잠은 우리 농촌의 크나 큰 소득원이었다.
번데기는 애벌레에서 성충인 누에나방이 되는 중간 단계이다. 암컷 누에나방은 500개 정도의 좁쌀만 한 알을 낳으며 20일 정도 지나 부화한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들은 오로지 뽕나무 잎만 먹고 자란다. 밤낮 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뽕잎을 먹은 애벌레는 단18일만에 처음 크기의 70배까지 자라며 다 자랄 때까지 네 번 허물을 벗는다. 잠실 안에서 수십만 마리의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는 마치 숲 속에서 듣는 빗소리 같다.
누에가 다 자라면 약 60시간에 걸쳐 무려 1500미터에 달하는 가늘고 긴 하얀 실을 토해내어 타원형 고치를 만들어 낸다. 누에가 2.5g의 고치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려 15만 번 정도, 씨줄 날줄 사방으로 목을 휘둘러야만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치는 가벼우나 단단하다. 누에는 그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되고 시간이 지나 번데기가 나방으로 변할 때는 이 고치를 뚫고 밖으로 나온다. 번데기는 나방이 되기까지 안전하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고치라는 집을 짓고 그 속에 머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번데기는 나방이 되기 전에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인간은 번데기가 나방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오기 전에 (구멍 뚫린 고치는 쓸모가 없으니까) 먼저 뜨거운 열을 가하여 번데기를 죽인다. 그런 후에 고치들을 수거하여 명주실을 뽑아내는 것이다.
녹색 뽕잎을 먹고 하얀 비단실을 토해내는 누에는 마술사 같다. 어렸을 적 대바구니에 오붓이 담겨있는 고치를 처음 보았을 때, "어쩜, 세상에 저렇게 예쁠 수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흰눈처럼 깨끗한 유백색, 홑 땅콩 껍질처럼 갸름하고 앙증맞은 사랑스런 모양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매끄러운 광택. 저것이 오로지 뽕잎만 먹은 누에가 만들어 놓은 작품이라니 자연의 오묘한 조화는 외경스럽다.
우리가 먹는 번데기는 제사 공장에서 명주실을 다 뽑고 난 뒤, 나방이 될 꿈을 무참히 짓밟힌 체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해 그 속에 갇혀 있던 그의 주검이다. 결국 인간은 번데기들을 죽이고 그 집을 약탈하여 비단을 만들고 그들의 주검마저 먹어치우는 비정하고 철저한 약탈자인 샘이다.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비단 누에뿐이겠는가. 모피 식료품 목재 등. 우리의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자연계의 희생 위에서 얻어 지는 것이다.
실크 한복을 곱게 입은 여인에게 ꡒ당신은 8000에 달하는 생명들이 희생한 결과물을 걸치고 있다.ꡓ고 한다면 아마 대단히 놀랄 것이다. 실크 스카프 한 장 만드는 데 100개, 실크 넥타이 한 개 만드는데 140개, 실크 한복 한 벌 만드는 데는 무려 8000개 정도의 고치가 소용된다.
인간은 알게 모르게 자연계의 은혜를 입고 있으면서도 단지 자기들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그것도 자기네들의 자만적 인식이지만) 이유만으로 감사하거나 미안해 할 줄도 모른다.
그 옛날 중국의 부를 위해 희생된 번데기들을 실크로드에 쌓는다면 몇 겹이 될지도 모른다. 중국 당국은 자기네들의 부를 위해 희생 된 번데기들을 위해 실크로드 어디 쯤 그들을 위한 위령비라도 하나 세워주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