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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 탄생일 12/25을 성탄절로 지킬 것인가?
출23 :14-17 요1:11-14
해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분위기에 뭔가 들떠 있으며 뭔가 나에게도 연말의 어떤 좋은 일이 오지않을까 기대를 한다. 성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흰수염을 달고 붉은 복장을 한 산타할아버지 등장하고, 교회도 크리스마스 준비로 일년 중 가장 바쁘게 보내는 연말은 으레히 맞이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해를 마무리 하는 크리스마스는 크리스챤이나 비크리스챤이나 모두가 기뻐하는 세계적인 명절인 것만은 틀림없는 날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일년중 가장 중요한 교회행사로 지키는 크리스마스가 성경 어디를 봐도 주님과 주님의 사도들이 예수님의 탄생일을 지켰다는 말씀은 찿아 볼 수 없다. 아니 그런 암시조차도 성경에는 없다는 것이다. 주님이 교회에 주신 의식은 두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주의 만찬 즉 성찬식이고
두번째는 침례식 이 두가지 의식 밖에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성찬식은 주님께서 체포되시는 날 이 땅에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주님의 살을 상징하는 떡을 먹는 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눅22:19,고전11:24,25)하시면서 전하여 준 의식이 성찬식이며
침례식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이 믿음의 고백으로서
죄에 대해서는 죽었고 예수님 안에서 부활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침례를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하는 의식이 침례식인데 이 두가지 의식이 기독교 의식 전부이다.
이 두 의식은 모두 주님의 죽으심과 연관되어 있지만 성경 어디에도 주께서 ‘나의 탄생을 기념하라’고 명하신 적이 없으며, 서신서에 나오는 초대교회 즉 예루살렘 안디옥 갈라디아 고린도 데살로니가 빌립보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사데 두아디라 라오디게아 빌라델비아 교회들 역시 주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기념한 예는 전무하다.
교회사적으로 보아도 초대 교회에서 성탄절을 지킨 예가 없다. 분명히 말하건데 3세기까지 즉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받을 때까지는 성탄절을 지킨 예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4세기 후반부터 성탄절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이때가 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가 등장하면서 크리스마스라는 성탄절이 시작된 것이다.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려는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다 있다. 그러나 성탄절은 신약 교회의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봅시다.
(갈4:8-11) 8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본래 신들이 아닌 것들을 섬겼느니라.
9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안 뒤에 혹은 하나님께 알려진 뒤에 어찌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 속박당하려 하느냐 ? 10 너희가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헛되이 수고하였을까 너희로 인해 염려하노라
위의 말씀을 통해 볼 때 교회가 날, 달, 절기를 지키는 것은 다시 말해 율법주의로 돌아가려는 성도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크리스마스는 로마카톨릭이 시작된 4세기 후반부터 지키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는데 왜 크리스마스를 지키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무엇인가 설명하고자 한다.
1. 태양신 탄생일을 크리스마스로 대체시키다
초창기 로마교회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의 유일신 사상이 로마의 다신교 신앙과 대립되었기 때문이었다.
로마인들은 태양, 사람, 나무, 사물 등 모든 것에 신성함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다신교였었고 또 정복한 민족들의 토속신앙을 인정하면서 로마에는 더욱 다양한 신들과 종교들이 번성했다. 그런 중에서도 가장 번성했던 종교는 태양신(솔)을 믿는 태양신 미트라종교이었다. 그런데 태양신 담무스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은 겨울 축제이며 동시에 동지축제로서 이 태양신 탄생의 축제가 연중 제일 큰 축제였다.
이런 시기에 등장한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은 로마의 다신교적인 종교와 대립되는 것이었다. 콘스탄틴 이전의 네로, 도미티안 같은 로마 황제들은 이런 유일신 사상때문에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여러 황제들의 박해를 받아오던 초대 교회는 3세기 이후 콘스탄틴 황제 등장이후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다. 313년 콘스탄틴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했다. 칙령의 내용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독교를 국가종교로 인정하는 콘스탄틴 황제의 정치적 목적은 로마에 새로 들어온 기독교로 인해 적지 않은 마찰을 갖고 있었지만 온갖 박해속에서도 로마 전역으로 퍼져나간 기독교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로마제국을 견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서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아 하나의 종교아래 로마 제국을 하나로 통일 시키려 했었다. 이런 콘스탄틴의 친 기독교 정책으로 인해 태양신인 미트라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안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 왔다. 이로 인해 콘스탄틴의 정치적 입장은 더욱 견고해 졌고 그동안 핍박과 멸시를 받았던 기독교는 명실상부한 로마의 종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믿음 없이 행해졌던 무분별한 개종은 오히려 이방종교의 풍습이 교회안에 유입되는 역기능을 낳게 되어 교회안에는 이방종교의 상징을 나타내는 오벨리스크, 태양숭배의식인 거양(떡을 손에 들고 태양을 향해 올리는 것), 바벨론 여신의 상징인 사자 혹은 날개달린 태양신(불사조 새)등이 자리잡게 되었다.
로마의 다신교 사상에 젖어 있던 사람들은 겉으로는 개종한 것처럼 보이나 조상때부터 섬겨온 하늘의 일월성신과 다양한 남신과 여신 숭배 그리고 그 신들에게 드리는 종교적 의식들과 제도들을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이교도들이 믿어 왔던 신들과 유사한 것을 교회안에 들여놓는 계기로 삼으면서 교회 감독들은 이전에 그리스와 로마의 이방 종교를 믿던 사람들의 종교의식들과 제도들을 조금씩 고쳐서 교회안으로 끌여 들여왔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종한 이교도들이 생각할 때는 조상 때부터 믿어온 의식들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으므로 거부감 없이 쉽사리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황제역시 그동안 핍박과 멸시를 받아왔던 기독교를 로마의 다신교 사상을 혼합시켜서라도 인정 받는 로마의 종교로 뿌리를 내리게 하고 싶었다. 교회역시 고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씩 고쳐서라도 거부감없이 교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더 많은 이교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이교 신들을 성경과 접목시켜 기독교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태양신 곧 담무스를 믿는 것이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로마 교회는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태양신을 동일시하게 인식 시켰던 것이다. 또 콘스탄틴 황제는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신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 했다. 이러한 배경속에 나온 것이 태양신 탄생날인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성탄절을 크리스마스로 부르게 하였다.
태양이 빛나는 것처럼 예수님 주위를 빛나게 하였고 카톨릭의 사제들이 태양상의 성체안치기를 들고 성체행렬 할 때도, 교회안에는 각종 태양상들이 장식되었고, 태양신을 섬기는 사상들이 교회의 진리처럼 자리잡게 되었다. 실제 유럽의 성당내의 태양문양은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이처럼 태양신 숭배 사상이 교회에 접목이 되면서 로마 교회는 초대 교회의 순수성을 잃어 버리게 되었고 로마 카톨릭 교회로 모습을 바꾸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2. 로마카톨릭교회의 탄생
(1) 태양신의 기원
태양신의 기원을 알기위해서는 노아홍수 이후 바벨탑부터 알아야 한다. “노아의 아들 함, 함의 아들 구스가 있고 또 8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가 땅에서 강력한 자가 되기 시작하였더라. 9 그가 주앞에서 강한 사냥꾼이었으므로 사람들이 이르기를 아무개는 주앞에서 강한 사냥꾼인 니므롯 같다. 하느니라. 10 그의 왕국의 시작은 시날 땅에 있는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였으며(창10:8-10)
노아 -함- 구스- 니므릇
구스-노아의 손자, 바벨탑의 건축가
세미라미스- 니므롯 아내로 바벨론의 여왕
니므롯-세미라미스의 남편, 바벨론 제국의 창건자
1 온 땅은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그들이 동쪽에서부터 이동하다가 시날 땅에 있는 평야를 만나 거기 거하니라. 3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는 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회반죽 대신 진흙을 취하며 4 자 이르되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까지 닿게 하여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 하더라. (창11:1-4)
니므롯은 점성술을 발달시켜 마법의 기초를 마련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이러 사악한 행동에 질려버린 셈(구스의 큰아버지, 노아의 아들)은 니므롯을 죽여버렸다. 니므롯이 살해당한 이후 세미라미스는 아이를 낳았는데(바로 니므롯이 환생하여온 것이라고 속였고 그녀는 자신이 처녀라고 주장했다) 그 이름이 담무스(겔8:14)였다. 이것이 바로 아기를 안은 처녀 어머니 원형의 기초가 되었고 사탄은 이를 이용하여 세계의 많은 종교들을 더럽게 만들었다(렘7장, 44장). 바벨론 이후에는 이집트에서 어머니는 이시스로 아기는 호루스로 태양 숭배가 만연하게 되었다. 세미라미스는 바벨론의 백성들에게 니므롯은 신(태양신 바알)이 되어서 아들 담무스로 환생하였다고 하며 그녀 자신은 여왕(하늘 왕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하여 세미라미스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사탄 종교를 발전시켰는데 그녀가 신에 대한 유일한 중재자라는 사상(교황 사상의 원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어머니 세미라미스와 아기 담무스를 상징하는 우상들이 나타났다(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원형); 그녀는 달을 상징(이시스, 다이아나)이었고 니므롯은 태양을 상징(호루스, 바알, 솔)하였다.
로마 제국이 힘을 잃게 되자 콘스탄틴은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고자 결정적인 사건은 로마의 장군 막센티우스와의 전투 중에 사탄은 콘스탄틴에게 하늘에서 십자가의 형상(이집트의 앵크십자가)을 보여주는 글씨가 나타나서 전쟁에서 승리하였던 것이다. 콘스탄틴은 황제가 되었고 결국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선언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비밀리에 솔(바알)을 숭배하고 있었다. 콘스탄틴은 로마 정부를 장악하고 나서 명목상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밀라노 칙령을 내렸고 그는 처음으로 수무스 폰티펙스(Summus Pontifex-가장 높은 사제: 교황의 공식 명칭)의 자리에 올랐다.
콘스탄틴이 합법화한 “기독교회”의 대부분은 일찍이 네로 시대에 거짓 신도들을 통하여 변질되었던 교회들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들 모조품 교회는 콘스탄틴의 보호 아래에서 로마 카톨릭으로 발전하였다.
콘스탄틴은 가이사랴의 주교 유세비우스(Eusebius)로 하여금 성경을 수집하도록 명령했다.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 황제의 요청을 수행하기 위해 이미 변질된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수집하여 50개의 복사본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본은 영지주의 학자 오리겐(Origen)에 의해 변질된 것이었고 이러한 성경이 로마 카톨릭교의 기초가 되었다. 후에 바티칸은 이 50권 성경으로부터 라틴 벌게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나머지 역본들은 금지시켰다.
중요한 것은 불행히도 유세비우스는 참 크리스천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인 순수한 본문을 사용하기 위해 안디옥으로 가지 않았고 대신 이집트 철학의 중심지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거기서 학자들의 수정판을 구해 온 것이다. 유세비우스는 안디옥 대신 알렉산드리아를 선택했을까? 주된 이유는 그가 이집트 학자 오리겐을 열렬히 추종했기 때문입니다. 오리겐(185-254)은 성경 본문 부패의 장본인이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오리겐을 "고대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영향력 있던 신학자 중 하나" 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리겐은 아테네 철학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한 이단자로서 판명되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창조된 하나님이다"라는 이단 교리를 퍼뜨리기도 하였다. 오리겐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로고스'로 취급하였다. 다시 말해 오리겐은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았고 하나의 창조된 신으로 믿었다. 심지어 그는 예수님이 육체로 땅에 거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다.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오리겐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기록을 부인하고 오히려 사람의 혼이 영원 전부터 계속해서 존재해온 것이라고 말했고 그는 또한 죽음 이후에 사람의 혼이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좀더 고차원의 생명이나 혹은 저차원의 생명으로 바뀐다는 윤회 사상을 믿었다. 또 그는 또한 보편적 구원을 믿었으며 악한 자들도 형벌을 받은 후에는 즉 연옥에서 고통을 받은 후에는 구원받는다고 믿었다. 또 그는 또한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별이나 달도 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에는 마귀들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같은 교리는 4세기경의 이단인 아리우스파가 교리를 정립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부유하게 살던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나이에 교사로서 크게 성공한 인물이며 천재적인 머리로 수많은 책을 저술했고 또 영지주의자였던 암브로스의 책들을 소장하면서 또한 이교도로서 신플라톤주의를 창설한 사카스 밑에서 공부했고 매우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스스로 거세했던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미 태양신을 믿는 신자이면서도 또한 기독교를 공인하였고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한 사람이다.
그는 12/25일이 태양신 sol의 탄생인 축제일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킬 것을 명령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요일을 태양을 섬기는 선데이로 공휴일로 만들었다. 그 후 교회에서는 A.D354년에 로마 교회 리베리우스 교황이 12월 25일을 공식적인 '아기 예수의 탄생일'로 제정하면서 성탄절을 기념해 오다가 지금의 크리스마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카톨릭백과사전에 의하면 이교도들의 태양신 축제일인 12/25을 예수의 탄생일로 잡은 것은 이교도인 태양신을 믿는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태양신의 축제일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태양신 탄생일 12월 25은 동지날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인데 마치 태양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제를 기념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날을 동지제 또는 겨울축제 태양신축제 등으로 불리면서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태양 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한데 합쳐서 크리스마스가 생기게 된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후 다시 율법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다시 종노릇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인데 이보다 더 황당한 크리스마스라는 것은 이교의 전통과 풍습을 교회안으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대로 믿는 다는 성도가 비성경적인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은 무지의 극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태양신의 탄생일날을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우긴다면 무식의 극치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일이다.
(2) 바벨론 종교로부터 나온 크리스마스
그러면 태양신을 말하려면 바벨론의 종교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집트나 그리스나 로마의 종교는 바벨론 종교로부터 온 것이고 이름만 다르지 본질적인 것에서는 다 같은 것이다.
만리 홀의‘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따르면 고대 바벨론 왕국을 건설했던 니므롯 이전부터 가인의 후예들은 모든 생명의 근원을 태양이라 생각하여 태양을 숭배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이 바벨론으로 흘러 들어와 바벨탑을 쌓았던 니므롯이 죽은 후에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담무스를 낳은 후 이 담무스가 바로 남편 니므릇이 환생하여 왔다고 하며 니므롯을 백성들에게 태양신으로 숭배하게 하였고, 자신은 달을 상징하는 '하늘의 여왕' 즉 여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하였다. 죽은 남편인 니므룻이 태양신이 되어 아들 담무스가 태어난 날이 태양신의 탄생일로 태양 축제일이 된 것이다.
알렉산더 히슬롭 목사도 그의 저서「두 개의 바빌론」(도서출판 안티오크 발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이교도의 축제일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을 지킨 날짜(12/25)와 그 때 행하는 의식이 그 날의 기원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바벨론에서 세미라미스에 의해 태양신으로 숭배되었던 니므롯이 환생하여 담무스로 탄생한 날을 태양신 축제의 날로 정한 것인데 이 이방신의 탄생일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대치한 것이다. 이런 바빌론 종교의 어미와 아기 이야기는 고대 바벨론에 널리 알려졌으며 고대 바벨론의 수많은 기념비들은 어미 여신 세미라미스가 자기 아들 담무스를 팔에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태양신종교는 바벨론의 종교의 중심이며 이러한 태양신이 이집트에서는 이시스 호루스라고 하고, 고대 로마시대에는 이 여신을 비너스로 그녀의 아기를 주피터로 불렀다. 이러한 태양신 숭배 풍습이 로마에서는 12월 25일이 태양신 '솔'이 탄생하였다는 날로 축제일로 삼은 것이었다. 이것은 참구원자인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수세기 전에 많은 국가들이 여러 형태로 어미와 아기를 숭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마리아 숭배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배도했을 때 그들 역시 어미여신숭배로 매우 더렵혀졌다.
삿2:13 그들이 주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고 나오는 아스다롯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잘 알려진 여미여신의 이름이다.
또 다른데서 그 여신의 칭호는 하늘의 여왕이다.
18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 붓는 일(전제)을 그만둔 뒤부터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부족하고 우리가 칼과 기근으로 소멸되었느니라 (렘44:18).
에레미야 선지자는 그 여신을 숭배하는 자들을 책망했지만 그들은 에레미야 경고를 거부하고 반역하였다.
사도바울 때는 에베소에선 그 위대한 여신이 아데미로 알려졌고 이집트에선 이 어미 여신이 이시스로 아기는 호루스로 알려졌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후 4C경이 되었을 때 교회는 믿음을 떠나 사도들이 경고했던 대로 배교로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어 이교도들의 이교주의와 기독교가 혼합하는 일이 교회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는 이교도들이 진정한 회개없이 교회로 들어와 이교의식을 행하는 것을 교회는 허락하였는데 문제는 이교의 위대한 어미 여신을 누구로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것인데 마리아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대상이 된 것이다.
당시 배교한 지도자들은 그 어미여신을 마리아라고 부르면서 그녀에게 기도하며 헌신할 수 있도록 생각했다.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은 원래 그리스챤의 믿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수태하는 일에 선택되어진 헌신적이고 경건한 여인이었음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4C초 콘스탄틴황제 때는 비로소 마리아를 여신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일부교회지도자들은 마리아 숭배를 비난하기도 하였지만 대세는 마리아 숭배로 이미 기울어진 상태이다.
드디어 431년 에베소 공회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선포됨으로 마리아 숭배가 교회의 정식 교리로 채택되었다. 하늘의 여왕은 마리아 태어나기 수세기 전부터 이교도들이 숭배하였던 여신의 칭호였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이 믿어온 하늘의 여신을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지도자들은 만일 이교도들에게 그들의 어미여신 숭배를 허락하면서 이 여신을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대체시킨다면 많은 수의 개종자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이처럼 초대교회 바울이 세웠던 에베소교회가 이교주의와 타협을 하면서 어미 여신숭배를 채택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바벨론 여신을 마리아로 대체하여 교회가 이교도들의 여신숭배로부터 발전되었다는 것은 정말로 얼마나 슬픈 일인가 !
더 나아가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자는 예수그리스도 한분밖에는 없다고 딤전2:5에 말씀하였는데
2:5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그렇지만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하늘의 여신이 되고 나니 성경적 근거가 없이도 마리아도 중보자라고 가르치면서 마리아에게 기도드리는 것을 로마카톨릭 교회의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로마카톨릭 교회는 교인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마리아를 생각하도록 가르쳐왔으며 이교도들이 가지고 있는 어미 여신상을 마리아 숭배사상으로 만든 것이다.
3. 성탄 크리스마스
성경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육신을 충족시키는 일에 골몰했던 저들은 12월 25일의 축제를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교도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지만 골수까지 개종한 것이 아니라 단지 교회에는 나와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 믿기 전에 믿었던 태양신 탄생을 그대로 지킨다는 것이다. 또 그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이 누구냐 하면 태양신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배경중에 나타난 것이 바로 카톨릭이다. 카톨릭백과사전에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초기 축제일에 들지 않았다. 이레니우스(150년대 사도요한의 제자)와 터툴리안(220년)은 축제일의 목록에 크리스마스를 넣지 않았으나 콘스탄틴황제 국교 후에 여러 지역교회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성탄축하를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은 4세기 이후부터 행해진 것이며 로마 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한 것은 A.D354년에 로마 교회 리베리우스 교황이 12월 25일을 공식적인 '아기 예수의 탄생일'로 제정하면서 지금의 크리스마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한것만 지켜야지 성경에 없는 것을 굳이 지킬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 볼 문제이다.
갈1:8 :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사탄의 목적은 진리와 오류를 섞어서 기독교를 혼잡시키면서 점진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침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2월 25일 예수님을 이 땅에 구세주로 보내신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날이 아니라 태양신을 숭배하였던 날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절로 축하하기 오래전부터 이교도들은 성대한 태양신 축제일을 지켰으며 이제는 이 태양축제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결합시킨 것이 크리스마스이다.-두산 세계 백과 사전에서 발췌-.
(1) 크리스마스의 정의
'크리스마스'라는 용어의 정확한 어원과 뜻을 살펴본다면 매우 반성경적인 의미란 것을 쉽게 알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 그리스도 + 미사 Christmas = Christ + Mass”입니다. 쉽게 말해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입니다. '미사'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사'를 일컫는 말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미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단지 요한복음 4장 24, 25절에 있는 말씀대로,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릴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크리스마스'의 어원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제사하는 아주 불경건한 날이라 것을 알게 된다.
오늘날의 많은 개신교회들이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그것의 비성경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냥 교회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날'(day)의 문제에 있어서, 어떤 한 날을 다른 날보다 중히 여겨 매번 정기적으로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모든 날을 같게 여기므로 특별한 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음식을 먹는 문제에 있어서도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을 만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채소만 먹는 연약한 사람도 있다(롬14:1-5). (롬14:5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날보다 귀히 여기고 다른 사람은 모든 날을 같에 여기나니 각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확신할지니라).
하지만 성경대로 믿는 신자가 비성경적인 풍습과 유래를 성경적인 것으로 알고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교도의 풍습을 성경적인 전통으로 안다면 이는 무지의 소산이요, 죄악입니다. 경기하는 자가 규칙에 따라 적법하게 경기를 해야하듯이(딤후 2:5), 믿는 사람들도 각자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한다.
(2)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고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상록수나무)는 풍요와 다산을 가져온다고 믿었던 Yule(태양신으로 알려져 있다)신 숭배와 관련이 있는데, 이것 자체가 ‘남근’을 상징하며 또 크리스마스 장식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식물인 holly(서양호랑가시나무의 붉은색 열매는 하늘의 황후로 알려진 Diana 여신이 흘린 ‘생리혈’로, 또 겨우살이(mistletoe)와 그 열매인 whiteberry는 태양신이 흘린 ‘정액’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들을 집 문에 걸어두면 풍요와 다산의 복이 임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holly와 붉은색 열매로 가지고 만든 크리스마스 장식인 holly는 여신 Diana를 상징하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남신인 yule을 상징한다 .
(3) 산타 클로스
예수님을 몰아내고 성탄절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고 있는 산타 클로스는 4세기 미라(Myra)의 감독이었던 니콜라스(Nikolaas)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과 성탄의 의미도 산타클로스의 이야기처럼 그저 철없는 아이들을 위해 꾸며낸 동화와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몰아내고 크리스마스의 주인이 된 산타(Santa)라는 용어 자체가 Satan(사탄)이라는 단어에서 글자의 순서만 바꾼 것이기도 하다.
(4) 크리스마스는 세미라미스와 담무스를 기념하는 절기
음녀 바벨론으로 지목되고 있는 로마 카톨릭의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 보다는 바벨론 종교의 세미라미스와 담무스를 기념하는 절기로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카톨릭의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보다는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니므롯이 죽은 뒤 그의 아내였던 세미라미스가 태양신이 된 니므롯의 기운을 받아 담무스를 낳았다고 전해지는 바벨론 신화를 연상시키고 있다. 아기예수보다 마리아가 강조되는 크리스마스는 바벨론 종교의 세미라미스와 담무스의 신화를 통해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5) 크리스마스는 알고보면 마귀적인 발상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용어는 Christ와 로마 카톨릭의 미사를 의미하는 합성어이다. 그런데 Mass(미사)는 본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그러기에 Christ Mass라 하면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한다'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한다하면서 실제로는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을 행한다니 얼마나 마귀적인 발상인가? 예수님의 탄생일을
‘크리스마스’ 라고 지키고 있는 오히려 예수님의 탄생을 모독하고 왜곡하는 이교적인 풍습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탄 마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알리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사명 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성탄절의 의미를 퇴색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써 온 것이라고 본다.
(6) 크리스마스 유래는 성경과는 별개이다
초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였지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1:26(너희가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 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대영백과사전」도 "크리스마스는 초기 교회의 축제들 중에는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카톨릭 백과사전」(1911년판)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가장 초기에 있었던 초기 축제일에 들어 있었던 축제가 아니라... 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이다.
로마 교회는 4세기 후반에 고대 로마의 태양신 솔(Sol)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정하여 지키기 시작하였고, 「대영백과사전」도 그 기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신제 및 태양 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한데 합쳐서 생기게 된 것이다. 로마 세계에서는 12월 25일을 신비로운 신, 미트라(태양)의 탄생일로 여긴다.
만리 홀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따르면
고대 바빌론 왕국을 건설했던 니므롯 이전부터 가인의 후예들은 모든 생명의 근원을 태양으로 믿어 숭배했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이 바빌론의 니므롯 시대로 흘러 들어와 바벨탑을 쌓았던 니므롯이 죽은 후에 그의 아내이였던 세미라미스가 니므롯이 환생하였다고 한 담무스를 백성들에게 태양신으로 숭배하게 하였고, 자신은 그의 아내로서 '하늘의 여왕'으로 달을 상징하는 여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그 태양신이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Osiris), 가나안 땅에서는
'바알'(Baal)로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태양신 숭배 풍습이 로마에서는 12월 25일을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탄생일'로 지켰고 태양신 '솔'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로마에서는 12월 22일 동짓날이 해가 가장 짧은 날이므로 이 날은 태양이 죽은 날로 믿었으며, 12월 24일은 해가 다시 길어져 태양이 살아나는 것으로 믿어 12월 25일을 해가 다시 살아난 날, 태양의 탄생일로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빌론에서 세미라미스에 의해 태양신으로 숭배되었던 니므롯의 죽음과 재탄생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 이래로 인간은 타락해서 어느 신이 진짜 신인지 모르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우상은 거짓이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드신 분은 바로 이스라엘을 선택한 분이 이스라엘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여러 곳에서 알려주셨는데 예언에 따라 예수님은 이세상에 임마뉴엘 하나님으로 오셨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축제가 이교도 국가인 바빌론의 풍습에서 유래되었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잘못된 절기라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를 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4.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시기
성경은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나 그분의 탄생년도 관해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해서 우리가 알기를 원치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탄생은 이 대속을 위한 과정입니다. 더 중요한 구심점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그분의 재림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탄생을 기억하는 것도 그분의 구속의 과정을 되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제시하지 않은 사실을 우리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꼭 그분의 탄생 시기에 대해서 알아야겠다고 한다면 알 수는 있읍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처럼 결코 12월 25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특성과 유대인들의 관습, 그리고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들판에 있던 양떼들이...
우리는 누가복음 2:8에서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그분의 탄생을 알려주었던 때에, 목자들이 넓은 들판에서 밤까지 양떼들에게 풀을 먹였으며, 밤에는 들판에서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겨울 밤은 상당히 추우며 비가 오는 계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1월 이후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자신들의 양떼들을 먹이고 지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3월 하순이나 4월 초순경부터 양떼들을 들판에 방목하다가 10월경 첫 비가 내릴 때쯤에는 추위로 인해 모든 양떼를 집으로 몰고 돌아와서는 우리 안에서 겨울을 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위 사실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늦어도 10월말 이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만삭된 여인이 한겨울에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에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속한 고향에서 조세등록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길고 오랜 여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한겨울은 여인들과 아이들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 만삭의 몸인 여인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마태복음 24장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의 도피하는 일이 겨울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겨울이 유대인들에게 있어 도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라면, 아이들이나 여인들이, 특히 아기를 밴 여인이 갈릴리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약170km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2천여년 전의 도로사정으로 한쪽은 족장들의 길이고, 다른 한쪽은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갈릴리로 돌아서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부정한 사마리아 땅을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그래서 갈릴리 호수를 돌아서 여리고와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에 올라가면 약230km정도의 거리이다. 만일에 하루에 33km를 이동한다면 약8일정도가 소요된다. 곧 출산이 임박한 여인이 한 겨울에 이 먼거리를 여행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본다면 12월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3) 베들레헴에 있는 여관에 그들이 있을 방이 없어...
유대인들은 일년에 세 차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출 23:14-17).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는 유대인의 7대 절기 중에서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을 지키러 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던 그 시기에 예루살렘 근교에는 각처에서 올라온 많은 순례자들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던 날 저녁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조차도 거할 장소가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을 구하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짐을 풀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가 짐작을 할 수가 있다 즉, 마리아와 요셉이 아우구스투스 칙령에 의해 조세 등록하려했을 뿐 만 아니라 이 유대인의 절기 중 하나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상경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예루살렘의 총독을 통해 유대인들의 이러한 풍습이 있음을 듣고 이 시기에 맞춰 호적등록을 하라고 칙령을 내렸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지만 요한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하면서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에서 '거하시니'(tabernacled, 장막을 치시니)라는 예상외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위 구절에 나오는 "거하시니" 라는 말은 영어로는 "dwelt"이고 그리스어로는 "tabernacled"로서, 이 "tabernacl"이라는 단어가 바로 장막절을 나타냅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분께서 장막절에 출생하셨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장막절은 지금의 월력으로는 대략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경으로 우리의 추석과 거의 일치합니다. 또,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3년 반으로 보고 예수님이 30세 되던 때로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신 사실과 유월절 직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실을 근거로 날짜를 계산해보면 대략 예수님의 탄생일이 초막절인 10월 초 쯤으로 계산된다.
이런 성경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틴 대제가 태양신 탄생일인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선언한 것은 태양신 담무스와 예수님을 동일시 보았기 때문이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로마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저들이 오랜동안 지켜오던 태양신 절기를 기독교의 절기로 모양새만 바꿨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지키는 추석명절은 성경에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는 초막절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날짜는 물론이고 명절놀이자체가 일치하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예수님이 이 초막절에 오셨다면 당연히 성탄을 지킬려면 추석절에 지켜야 하는데 2천년 동안 12월 25일 태양신 탄생일에 지켜온 성탄절을 하루 아침에 부인한다는 것이 웬만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지나 2천년동안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믿음의 선혈들은 어느 누구도 12월 25일 태양신 탄생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키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연구한다면 예수님이 초막절에 탄생하셨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초막절이며 우리의 추석절이 예수님 탄생하신 성탄일이고 성경이 말하는 추수감사절임을 믿는 지혜를 구하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