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만능 천재.
- 1452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에 있는 빈치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 그의 그림은 명암이 확실하고 입체감도 잘 살아있고 구성이 훌륭했다.
그의 아버지는 공증인 세르 피에로의 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농사꾼의 딸 카테리나이다.
바자르에 의하면 어릴 때 수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학문을 배웠고, 음악에는 신동인양 재주가 뛰어났고,
더불어 그림 그리기를 즐겨하여 그의 부친의 친국인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사사하면서 자연히 입문하게 된다.
그 후 20세 때 피렌체의 화가조합에 가입하였고, 그 후에도 계속 베로키오의 공방에 남아 수련하다가
1478년에 독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 최후의 만찬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서는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이다. 원래 이 테마는 수도원의 식당에 그려지는 수가
많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의 식당 벽화로 그려졌다.
화면 전체의 손상이 심해서 레오나르도 자신의 필치는 20내지 30% 밖에 남아 있지 않으나 구도, 공간처리,
각 인물의 배치, 색채 같은 것에서 레오나르도의 흔적이 역력하다. 제작 연대는 1493년부터 1497년에 걸쳐 있다.
이 장면은 신약성서 요한 복음 제 13장 22절부터 30절에 이르는 내용을 조형화하였다고 한다.
"너희들에게 고하노니 너릐 중의 하나가 나를 팔게 될 것이다"라고 그리스도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산타 마리아 수도원 식당의 북벽 높은 곳에서 하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수도자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동안 그들 머리 위로 예수와 열 두제자의 영적 존재감이 살아나게 된다.
레오나르도는 창문을 총해 들어오는 빛이 예수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다른 인물들 보다 예수를 더 크게
그리는 방식으로 예수의 위상을 교모하게 강조했다. 레오나르도는 제자들이 누가 배신할 것인지 예수에게 묻는 순간을 그려냈다.
각 제자들의 반응으로 각각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아 볼 수 있게 했다.
* 모나리자
이 그림의 제목 '모나리자'는 19세기부터 사용되었던 것이다.
원래 바사리의 초기 기술에서 유래한 이제목은 그림의 모델이었던 여자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모나리자라는 리자 게리르디니라는 여자로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라는 길크 상인과 결혼하였다.
이 여자의 남편은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아내의 초사화를 주문하였던 것이다.
* 수태고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20세에 그렸다는 <수태고지>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예수를 잉태할 것이라고 알리는 성경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원근법의 원리에 맞지 않아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는데,
다 빈치의 초창기라서 미숙한 그림이라고도 하고, 다빈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공동 작품이라
통일성이 떨어진다는 추측도 있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상한 곳이 많이 보일 것이다.
마리아의 오른팔은 왼팔에 비해 지나치게 길고, 탁자는 마리아 앞에 있지 않고 그림의 앞쪽으로 튀어 나와 있다.
또한 우측의 벽돌을 각도에 따라 선으로 연결해 보면 그림 중앙의 소실점으로 들어맞지 않는다.
또한 대천사 가브리엘은 살찐 것 같고 자세가 이상하다.
< 비행연구 >
1985년에 “어떤 물체라도 공기를 잘 이용하면 공기가 물체에 주는 것과 같은 크기의 힘을 얻을 수 있다.
바람을 향하여 움직이는 날개의 덕택으로 독수리도 높은 하늘을 날 수 있듯이 인간도 인공의 큰 날개를
이용하여 공기의 저항을 훨씬 상회하는 힘을 만들어 내면 하늘을 비행할 수 있다” 고 인간의 비행 가능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두 가지 비행방법을 구상했다. 하나는 새가 나는 방법을 휴내내어 움직이는
잠자리 모양의 날개를 몸에 달고 새처럼 날개를 흔들어서 나는 날개치기 비행기계 오니씹터(Bow-String Powered Ornith- opter)
와 나사의 원리를 이용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헬리곱터(Clock work-Powered Helicopter)를 구상했다.
대예술가 답게 그가 구상하여 스케치한 비행기계는 그 모양도 매우 아름답다.
그의 연구는 두 가지 형태의 비행기계를 탄생시켰다.
하나는 사람이 중앙 부분에 가슴을 밀착하여 누운 채로 끈을 이용하여 손으로 돌리고 발로 밟아서
날개를 움직이게 하는 비행기계였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선 상태에서 복잡한 크랑크와 전동 장치를 이용하고
손과 발을 사용하여 날개를 움직이게 하는 비행기계였다.
< 앙기아리 전투 >
<앙기아리 전투>는 1440년 6월 29일 피렌체군이 밀라노군을 무찌른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이 작품을 통해 기병전의 잔인함과 폭력성, 광기 등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그림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말과 인간이 서로 뒤엉켜 물어뜯고 때리는 잔인무도한 접근전(接近戰) 장면이 인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나아가 레오나르도는 고대 연극에 나오는 가면들과 비슷하게, 경악, 폭력, 광기와 같은 감정 표현이 얼굴들에서
잘 나타나도록 그리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레오나르도는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루벤스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루벤스는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에 담긴 사상을 파악하고 낯선 양식을 습득하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주로 이탈리아 풍의 스케치를 다량 확보해서, 새로운 실험적 기법들을 써서 변형하고 확대하고 개선했다.
루벤스는 “앙기아리 전투”에 열심히 몰두하여 스케치를 제작했는데, 이것은 현재 파리의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문가들은 루벤스가 레오나르도의 밑그림에 대한 오래된 모사품을 보고 자신만의 기법으로 손수 모사한 작품이라 보고 있다.
[레오나르도의 다른 작품들]
살바토르 문디 (세계의 구세주)
암굴의 성모
라파엘로 산치 (Raffaello Sanzio)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는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작가 의 한 사람으로 조숙한 천재였으며, 우르비노 지방화가에서 바티칸
교황청 궁정화가까지 최고의 사회적 영예와 세속적 성공을 누린 예술가이다.
짧은 생을 살다 간 그는 벽화를 그린 벽화가이자 또 초상화가이기도 했다. 라파엘로의 예술은 명석과 조화,
정밀과 전아 라는 고전양식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동시에, 감성이 풍부한 자연주의와 이지적 추상화,
섬세 우아한 요소를 융합한 회화예술의 완전함의 전형이라고까지 보여진다. 그의 작품은 각 국의 왕후귀족이나
수집가들의 손에 의해 서유럽에 퍼져 마니에리즘에서 바로크, 신고전주의까지의 근세 서구 회화에서 권위 있는
미적 규범 및 관학적 학풍의 원천으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계속 미치고 있다.
* 라파엘로
* 마달레나 도니 초상화
*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26세 때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개인도서실에 그린 것으로 지금은 바티칸 성당에 있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이나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벽화>, <천지창조>에 비길 수 있는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을 그린 이 그림은 엄격한 원근법과 대칭구도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화면배치를 하고 있다.
그림의 각 인물들은 서로 쌍을 이루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작은 모자 성 모자
* 마리아의 결혼
* 산 마르코 수도원 피렌체 성 모자와 아기 성 요한
* 베일을 쓴 여인
* 예수의 변용
북유럽 르네상스 (Northern Renaissance Art)
프랑드르지방(벨기에)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북유럽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르네상스의 사상과 북유럽의
독자적인 정밀한 표현이 결합하게 되었다.
'북유럽'이라는 알프스 북족에 있는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를 가르킨다. 그 중심이 되는 플랑드르 지방에서 색상을 풍부하게
사용하기 위해 일찍부터 유화가 이용되었고, 풍경 같은 자연의 모습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기법이 확립되었다.
반 에이크 형제는 사물의 멀어짐에 따라서 공기층의 영향으로 푸르고 엷게 보인다는 공기 원근법 원리를 처음 시도하였다.
* 반데르 웨이덴
<십자가에서 내리심>
* 후고 반데르 후스
<포르티나리 제단화>
* 한스 멤링
<성 카타리나의 결혼>
* 홀바인
<대사들>
세부 묘사가 뛰어난 ‘대사들’은 왼쪽에 있는 영국으로 파견된 프랑스 대사 장 드 댕트빌의 주문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오른쪽에 있는 인물 역시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영국으로 간 조르주 드 셀브 주교다.
두 사람은 당시 영국이 가톨릭 교회로부터 탈퇴를 선언하기 직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외교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실물 크기로 제작된 이 작품에서 커튼을 배경으로 두 남자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보통 초상화에서는
인물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는데 홀바인은 이 작품에서 탁자를 화면 중심에 배치, 다른 작품들과 차별을 두었다.
그것은 홀바인이 초상화 인물보다는 탁자에 펼쳐진 사물들의 의미를 더 중시했음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화면 중앙에 있는 비틀린 해골이다. 이러한 기법은 왜상이라고 하는데
극단적인 각도에서 봐야만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왜곡된 해골을 제대로 보려면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리 실린더나 홀바인 시대에 유행했던 유리잔을 통해 봐야 제대로 된 해골이 보인다.
- 해골의 의미는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죽음은 가까이 있으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암시한다. 화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왼쪽 커튼 뒤로
은빛 삽자가 상이 보인다. 해골과 마찬가지로 초상화의 인물들이 사회적 지위와 지적 수준이 높다 해도
그들 역시 언젠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탁자에 기하학 무늬의 양탄자로 덮여 있는데
양탄자는 아나톨리아 서쪽에서 수입된 물건으로 이들의 부유함을 상징하고 있고 탁자 위에는 천구와 전체를
관측할 수 있는 기구들이 놓여 있다. 이는 두 사람이 탐구하는 지식인임을 암시하면서 지식인들의 활동은
수세기 동안 사회의 틀을 깨고 발전해 왔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 홀바인은 그림 속에 두 인물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장치를 해놓았는데 탁자 위 주교 드 셀브 팔꿈치 아래 있는
라틴어로 쓴 책에 쓰인 글은 주교의 나이 25세라는 뜻이며 대사가 들고 있는 단검에 새겨져 있는 숫자 29도 대사의 나이다.
탁자 아래쪽 선반에는 지구본과 류트 악기 그리고 찬송가책이 놓여 있다.
목이 부러져 있는 류트가 암시하는 것은 신구교 간의 종교 갈등을 의미하지만 찬송가책이 펼쳐져 있는 것은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사회에 홀바인은 통합된 교회를 지지한다는 자신의 열망을 나타낸 것이다.
한스 홀바인은 이 작품에서 여러가지 물건을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힌생의 무상함을 강조했다.
* 반 에이크 형제
<결혼 초상화> 아르놀피니의 결혼
15세기의 이 걸작에는 프랑스와 라인지방의 조각, 시에나파의 색체와 빛의 기법, 유럽의 궁정예술의 영향이 뚜렷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 가운데 선적, 장식적인 측면은 이 작품 가운데서 힘 있는 생명력에 의하여 대표되어 있다.
그것은 같은 화가에 의한 보다 초기의 아르놀피니의 초상화에 있어서도 뚜렷하다.
엄숙한 분위기의 이 두 초상화에 있어서 각 부분은 중앙거울 밑에 촛점을 가진 원근법 속에 잘 짜여져 있다.
시각적 진실의 강렬함이 아주 작은 부분까지 걸쳐 있으며 모든 구도가 맑고 깨끗한 순수성을
가지고 뜻깊은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그림 가운데에는 종교적인 상징이 많이 보인다. 거울테에 있는 작은 원반,
의자 받침대의 장식 등, 모두가 그리스도교와 관계가 있다. 샹들리에의 초 또한 결혼의 상징일 것이다.
작은 개는 충성를 나타내고 있다. 학자들은 이 상징주의와 작품의 의미에 대하여 계속 논쟁해 왔는데 이 그림이
거울 속에 보이는 두 사람의 입회인 밑에서의 결혼의 정경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통설이다.
중앙거울 위 벽에 쓰여진 라틴어는 거울 속 둘중 한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