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고개의 박경리 생가, 삼도수군통제영, 문화동 벅수, 청마거리, 동피랑벽화마을
20210928
시간의 여울에 기대어서
순식간에 어둠이 깊어진다. 서피랑문학동네 조형물 앞을 지나 세병관 입구까지 갔다가 박경리 생가 골목으로 되돌아오니 어둠이 깊어지고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밀어낸다. 서문고개 박경리 생가 골목은 <김약국의 딸들>에서 이렇게 묘사된다.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한실댁은 코를 풀고 멍멍한 소리로 말하며 마당으로 내려와 용란의 손을 잡았다. 어두운 골목을 빠져 나와 그들은 서문고개를 넘는다. 물 긷는 처녀, 각시들로 밤길은 어수선하였다. 용란이 친정으로 올 때마다 이 고개를 울먹울먹 넘어가는 한실댁은 양지기만 같았다. 대밭골을 지났다. 인적은 끊어졌다.』
소설 소 묘사처럼 인적 없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거리의 어둠과는 달리 서문고개 골목은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빛난다. 박경리 생가가 있기 때문일까? 박경리 생가 벽에는 현재 박경리 선생과는 연고가 없는 일반 시민이 살고 있기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서문까꾸막'이라 속칭되는 서문고개로 올라가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쓸쓸한 길이다. 삶의 우수가 몰려왔다. 통영의 빛나는 예술문화를 감상하면서 삶의 우수와 고적감이 밀려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삼도수군통제영을 목표로 잡고 세병관 골목길을 들어서 망일루와수항루 앞으로 나왔다. 문화동 일대의 야경이 반짝거린다. 충무교회 십자가탑은 솟아서 불빛을 토해내고 문화동 석장승은 불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퉁방울 눈을 부릅뜨고 있다. 벅수의 쩍 벌어진 입을 보고 있으니 시장기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통영 서피랑 나들이에 정신이 팔려서 저녁을 먹지 않은 탓이다. 그렇지만 청마거리까지 구경하고 저녁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청마거리로 향하였다.
"나는 영락(零落)한 고독(孤獨)의 가마귀/ 창랑히 설한(雪寒)의 거리를 가도/ 심사(心思)는 머언 고향의/ 푸른 하늘 새빨간 동백에 지치었어라."(향수 1연) 청마 유치환은 고독한 방랑자 그렇지만 언제나 머언 남쪽 바닷가 고향의 새빨간 동백을 그리워한다.그는 거제도 둔덕면 방하리에서 출생하여 2살 때 통영으로 이사했다. 그래서 거제와 통영에 청마기념관과 청마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청마의 흉상과 <향수> 시비가 세워져 있는 쉼터에서, 사후 세간에 화제를 뿌린 연인 이영도를 비롯하여 여러 문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 통영중앙우체국 앞으로 갔다.
통영우편국 설명안내판과 <행복> 시비, 빨간 우체통이 어둠을 밀어내는 불빛을 반사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행복'에서)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사랑은 오직 사랑함으로써만 성립한다. 그래서 사랑을 받느니보다 사랑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사랑했기에 이 순간에 목숨이 끊어져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여항산 북포루의 불빛이 내게 빛을 보낸다. 북포루의 무한한 사랑의 빛을 받아 내 사랑의 마음은 더 환하게 불밝힌다.
중앙활어시장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회덮밥을 먹는데 마음 착한 여주인이 매운탕을 서비스로 준다. 공기밥 하나를 추가하여 저녁밥을 먹고 나니 포만감이 밀려와 이대로 숙소로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몸은 벌써 계획한 동피랑벽화마을 입구로 향하고 있다. 동피랑벽화마을에 두 번째로 온다. 동피랑벽화마을의 지리 감각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긴장을 풀고 골목길을 돌아서 동포루에 올랐다.
한 여인이 동포루 담장에 앉아서 통영 앞 바다를 조망하고 있다. 그녀는 홀로 왜 이곳에 왔을까? 미적 취향이 발동하여 통영의 야경을 홀로 즐기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삶의 고뇌, 이 시대 세상 살아가기의 고통, 청춘의 통과의례에서 마주친 힘겨움, 이런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건너기 위한 다짐의 시간을 이곳에서 홀로 보내고 있을까? 북포루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북포루를 나가려는데 그녀도 상념의 시간을 끝내고 북포루를 빠져 나간다. 그녀는 북포루에서 왼쪽 방향으로 내려갔다.
동피랑벽화마을을 내려와 강구안 해변 북서쪽 산책로를 돌았다. 가을날의 저녁은 순식간에 밤의 시간으로 변하여 가로등 불빛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자신을 더 불태우는 모습이다. 조각작품 '시간의 여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한 여인은 벤치에 앉아서 강구안을, 다른 여인은 벤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서 서피랑 방향을 바라보는, 두 여인이 반대 방향을 살피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시간은 물살 빠르게 흐르는 여울처럼 흘러간다. 인간은 시간의 여울을 타고 흘러간다. 가끔씩 시간의 여울에 기대서서 흘러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나, 지금, 시간에 기대어서, 통영 강구안을 감싸고 있는 서피랑과 동피랑을 회상하며 시간의 여울을 따라간다.
서문고개는 옛 통영성의 4대문 가운데 하나였던 서문(西門), 즉 금숙문(金肅門)이 있었던 고개이다. 토박이 지명으로는 서문으로 오르는 가파른 고갯길이란 뜻으로 일명 '서문까꾸막'이라 속칭했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서문고개 관련 구절을 박경리 선생의 육필원고로 새긴 표석이 세워져 있다.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한실댁은 코를 풀고 멍멍한 소리로 말하며 마당으로 내려와 용란의 손을 잡았다. 어두운 골목을 빠져 나와 그들은 서문고개를 넘는다. 물 긷는 처녀, 각시들로 밤길은 어수선하였다. 용란이 친정으로 올 때마다 이 고개를 울먹울먹 넘어가는 한실댁은 양지기만 같았다. 대밭골을 지났다. 인적은 끊어졌다.
1962년 발표된 <김약국의 딸들>은 1894년부터 1930년 사이 통영 바닷가를 배경으로 약국을 운영하는 한 부유한 집안이 욕망에 얽혀 다섯 딸이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비극적인 몰락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박경리(1926~2008)
한국 현대문학의 어머니. 대하소설 <토지>를 쓴 소설가로 1926년 통영군 명정리에서 출생하여 2008년 5월 5일 타계. 고향 통영시 산양읍에 모셔졌다. 주요작품으로는 <김약국의 딸들><시장과 전장><파시><토지> 등이 있다.
이곳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집입니다.
현재는 박경리 선생님과 연고가 없는 일반 시민이 살고 있으므로 내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박경리 생가를 살피고 삼도수군통제영 앞으로 간다.
2021 통영문화재 야행 '달빛 아래 통제영' 조형물이 달빛이 아닌 전깃불 조명을 받고 있다.
청마 흉상과 함께 그의 <향수> 시비가 새겨져 있는 작은 휴식공간에서부터 시작되는 약 200m 거리이다. 청마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이 젊은 시절 수많은 문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던 우체국과 <행복> 시비가 있어 청마의 시향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향수(鄕愁) - 청마 유치환
나는 영락(零落)한 고독(孤獨)의 가마귀
창랑히 설한(雪寒)의 거리를 가도
심사(心思)는 머언 고향의
푸른 하늘 새빨간 동백에 지치었어라.
고향 사람들 나의 꿈을 비웃고
내 그를 증오하여 폐리(敝履)같이 버리었나니
어찌 내 마음 독사 같지 못하여
그 불신(不信)한 미소와 인사를 꽃같이 그리는고
오오, 나의 고향은 머언 남쪽 바닷가
반짝이는 물결 아득히 수평(水平)에 조을고
창파(滄波)에 씻긴 조약돌 같은 색시의 마음은
갈매기 울음에 수심(愁心)져 있나니
희망은 떨어진 포켓트로 흘러가고
내 흑노(黑奴)같이 병들어
이향(異鄕)의 치운 가로수 밑에 죽지 않으려나니
오오, 저녁 산새처럼 찾아갈 고향길은 어디메뇨.
*폐리(敝履) : 헌 신발
뒤쪽에 여항산의 북포루가 불 밝히고 있다.
행복 - 청마 유치환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왼쪽 큰길로 가서 남쪽에서 전망대 방향으로 오르는 방법이 있고, 오르쪽 골목길로 들어가 자유롭게 볼 수도 있다.
동피랑을 내려가는 길에 전시된 통영사투리와 설명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