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돌핀스의 해양동물 이야기 12] 다시 돌고래쇼 오른 '태지'의 기구한 운명
한국 수족관에는 큰돌고래와 흰고래 벨루가 등 40마리의 고래류가 사육되고 있습니다. 모두들 이름도 있고, 기구한 사연도 제각각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돌고래를 뽑자면 태지가 아닐까 합니다. 태지는 2008년에 일본 다이지에서 반입된 이후부터 2017년 6월까지 서울대공원에서 사육되어온 수컷 큰돌고래입니다. 사람 나이로 치자면 한창 물오른 20대 청년에 해당합니다. 가장 활발하게 바다를 헤엄치며 돌아다녔을 태지가 지금은 제주 퍼시픽랜드에 갇혀서 쇼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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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남방큰돌고래 금등, 대포, 큰돌고래 태지
서울대공원에서 태지와 같이 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금등과 대포는 야생방류 결정이 내려져 제주도 함덕항 앞바다에 마련된 자연적응 훈련장으로 이송됩니다. 수조에 혼자 남게 된 태지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이상행동을 하였습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든가, 콘크리트 바닥 위로 올라온다든가, 분기공이 메말라버리는 등 온전한 건강상태를 가진 돌고래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동료들과 강제로 헤어진 아픔, 그리고 넓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혼자 낡은 수조에 버려진 아픔이 그대로 묻어나왔습니다. 저는 마음이 무척 아팠고, 무엇이 태지를 위해 가장 좋은 결정일까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 태지를 바다로 돌려보내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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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시절의 태지
하지만 태지는 일본 다이지마을에서 수입되어온 돌고래입니다. 일본은 돌고래 학살과 포획을 정부가 용인하고, 방조 및 장려하고 있습니다. 핫핑크돌핀스가 2015년 가을 잔인한 돌고래 포획과 학살로 유명한 다이지에 갔더니 일본 경찰들이 돌고래 감시 활동조차 못하게 막아섰습니다. 태지가 잡혀온 고향 바다는 지금도 여전히 돌고래 피로 물들어 있고, 일본 정부는 돌고래 학살을 매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지를 원서식처인 일본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큰돌고래의 서식 범위 안에 드는 동해바다로 방류하는 것은 어떨까? 문제는 태지를 방류해도 같이 돌아갈 돌고래가 곁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10년간 사육해온 돌고래를 원래 살던 곳도 아닌 매우 낯선 곳에, 그것도 방류 후 다른 큰돌고래를 만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사회적 동물인 돌고래를 혼자 방류한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가, 태지를 그냥 바다에 버리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습니다. 남방큰돌고래와 종이 다른 큰돌고래 태지를 제주 바다에 방류하는 것은 개체수가 겨우 100여 마리 정도인 이들의 생존에 자칫하면 혼선을 일으킬 수 있어서 역시 가능한 대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와 큰돌고래 무리가 섞여 사는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제주 돌고래는 세계에서 가장 개체수가 적은 집단이고, 큰돌고래와 같이 지내지 않았는데 인위적으로 인간이 그곳에 다른 종을 방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혼자 수조에 남겨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바다에 방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태지를 위한 최선의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나쁜 선택지들만 있는 상황에서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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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에서 제주 퍼시픽랜드로 이송되는 태지
그 결과 태지를 서울대공원 수조에 혼자 남겨두는 것보다 일단 임시로 다른 돌고래들과 지낼 수 있도록 다른 곳으로 이송한 뒤, 앞으로 바다와 같은 환경에서 돌고래가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바다쉼터를 만드는 것이 그나마 앞으로 추구해야 할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애초에 태지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일부 사람들이 그를 바다에서 잡아와서 머나먼 곳으로 강제로 보내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습니다.
이제 태지는 위탁 사육 계약을 맺고 2017년 6월 20일 제주에 있는 퍼시픽랜드로 이송됩니다. 이곳에서 태지는 위탁 사육이 끝날 때까지 돌고래 쇼를 하지 않고 지내면서 차츰 건강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퍼시피랜드는 작년 11월부터 태지를 비롯해 모두 다섯 마리의 돌고래들이 사육 중인 수조 주변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핫핑크돌핀스의 현장 모니터링 결과 이 공사는 엄청난 소음과 분진과 진동을 발생시켰고, 수조의 물도 오염시켰지만 돌고래들은 제대로 된 보호조치를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서울대공원 수의사도 현장에 내려가 돌고래들의 상태를 확인하였고, 해양수산부와 환경부 그리고 제주도 공무원들이 현장 점검에 나서서 이 문제를 시정할 것을 업체에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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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랜드로 반입되는 태지
리모델링 후 재개장한 퍼시픽랜드에서 태지는 잘 지내고 있을까요? 핫핑크돌핀스가 다시 현장을 찾아 모니터링한 결과 태지는 다른 돌고래들과 함께 쇼를 하고 있었고, 쇼가 끝난 후에는 많은 관람객들과 일일이 지느러미 만지기를 하면서 사진을 찍는 노동에 동원되고 있었습니다. 물 위로 솟구쳐 올라 꼿꼿이 서서 한쪽 지느러미를 인간에게 건네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불편한 자세를 반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과연 태지를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쓴 결과인가 생각하니 씁쓸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기구한 사연의 주인공 태지를 우리 인간이 앞으로 대하는가는 제돌이 야생방류로부터 비롯되어 지금까지 총 일곱 마리의 수족관 돌고래의 자연 방류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동물복지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다음 단계가 될 것입니다.
태지가 지금처럼 하염없이 돌고래 쇼장에 갇혀서 인위적인 동작을 반복하며 냉동생선을 받아먹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넓은 바다와 같은 자연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돌고래 쇼장이 아니라 한국 바다 적당한 곳에 바다쉼터를 만들어 추후 다른 돌고래들과 함께 이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영국, 캐나다,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현재 돌고래 바다쉼터 만들기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돌고래는 바다에서 살아야 한다’는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동물복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태지를 바다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전례 없는 생태계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공존과 생명의 메시지를 가장 분명하게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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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후 재개관한 퍼시픽랜드에서 태지 등 다섯 마리 돌고래가 쇼에 동원되고 있다.
*사진은 모두 핫핑크돌핀스가 촬영했습니다.
네이버 동물공감 기사 원문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2488289&memberNo=38419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