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오륜의 정진(精進)
牧隱文藁卷之十
중지(仲至)에 대한 설
이색(李穡)
대이부(大姨夫) 전씨(全氏)는 정선(旌善)의 명망 있는 씨족(氏族)이다.
그 집의 둘째 아들인 오륜(五倫)이 나에게 자(字)에 대한 해설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사람의 윤리 도덕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그 이름을 오전(五典) 오상(五常) 즉 오륜(五倫))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품부 받은 것으로서 사람이 사람답게 될 수 있는 소이(所以)이기 때문에, 제가 오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인(聖人)은 인륜의 지극함이 되는 분이기 때문에, 제가 또 중지(仲至)라는 자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 지극함에 이르는 것이 저의 소망이긴 합니다만, 도(道)라는 것이 워낙 심원한 것인 만큼 제가 있는 힘을 다한다 하더라도 꼭 그 목표를 달성하리라고 감히 보장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의 앞길에 미리 한계선을 그어 놓고 그만둔다는 것도 저로서는 차마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 길을 따르면서도 아는 자가 드물고, 익히 행하면서도 자세히 살피지 못한다.[由之而鮮知 習矣而不察]’[주D-001]는 말이 꼭 저와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되니, 바라건대 선생께서 저에게 가르침을 밝게 내려 주시면, 제가 앞으로 허리띠에 적어 놓고서 잊지 않으려 합니다.” 하였다.
나는 말한다.
지(至)라는 글자 속에는 두 개의 뜻이 들어 있다. 도의 차원에서 말한다면 끝까지 도달한 그 경지를 뜻하고, 사람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 경지까지 도달하기 위한 공부를 뜻한다고 하겠다.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반 백성들의 일상생활 속에 속속들이 배어들고, 성현의 공업(功業)과 교화(敎化) 가운데에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으로 질서 정연하게 펼쳐지고, 전장(典章)과 문물(文物)로 찬란히 빛나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주D-002]
이렇게 본다면 이른바 윤리라고 하는 것도 어찌 일월을 높이 치켜들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주D-003]
그렇긴 하지만 사람마다 품부 받은 기질(氣質)이 다른데다가 물욕에 또 구애를 받는 까닭에, 형체와 그림자처럼 뗄 수 없는 하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방불하게나마 그 말단이라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기만 한 실정이다.
그러니 더군다나 정밀하고 은미하게 함축된 심오한 뜻에 대해서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아, 그 사이에서 ‘그 경지까지 도달하기 위한 공부’를 한 사람을 어떻게 많이 얻을 수가 있겠는가.
《서경》의 우서(虞書)와 하서(夏書)에 실린 격언(格言)이 매우 많지만, 그중에서도 16자(字)로 마음을 전한 말[주D-004]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위(危)’와 ‘미(微)’를 구분하고 나서 ‘정(精)’과 ‘일(一)’의 공부를 행해 나가면 도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공자(孔子)의 제자들은 한 달에 한 번이나 하루에 한 번 정도 인(仁)의 경지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D-005]
그런 가운데에서 유독 안씨(顔氏)와 증자(曾子)만이 그 종지(宗旨)를 얻고 나서, 공자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추구하며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위연(喟然)히 탄식하게 되었는가 하면[주D-005] 일관(一貫)의 말씀에 곧바로 ‘네’라는 대답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면서[주D-007] 공자의 경지가 완연히 눈앞에 보이는 듯 하였을 것이니, 비록 그들이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
그러고 보면 ‘끝까지 도달한 도의 그 경지’와 ‘그 경지까지 도달하기 위한 사람의 공부’라는 것을 과연 둘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중지(仲至)는 타고난 기질이 맑고 밝은데다가 평소부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수양해 왔다. 그리하여 성균관(成均館)에 유학(遊學)할 적에도 질의나 토론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바른 해답을 제시해 주곤 하였으므로, 제생(諸生) 모두가 그의 고매한 식견에 탄복하였다.
그리고 재상(宰相)도 이미 그의 재질을 인정하고는 그에게 백성을 기르는 정사(政事)를 맡겼으므로, 진주(晉州)와 합천(陜川)의 백성들이 이미 그 혜택을 받았던 바이다. 그러니 뒷날 그가 얼마나 성취할지 지금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가 도에 뜻을 둔 것을 내가 특히 기뻐한 나머지 이렇게 자설(字說)을 지어서 그에게 주게 되었다.
기미년 여름 윤5월 계묘일에 쓰다.
[주D-001]그 길을 …… 못한다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이 내용이 나온다.
[주D-002]도의 …… 것이다 : 한(漢)나라 동중서(董仲舒)가 천인 감응(天人感應)의 이론을 제시한 일대 명제(命題)인데, 무제(武帝)의 물음에 대해서 세 차례에 걸쳐 대답한 이른바 〈천인삼책(天人三策)〉의 글 속에 나온다. 그 글의 내용은 대개 천(天)이야말로, 하나의 흠도 없이 정의와 진리를 대표하는 절대적인 것으로서, 인간 만사가 하늘로부터 나오는 것인 만큼 인간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일을 행해야 마땅한데, “하늘이 불변하는 만큼 도 역시 불변한다.[天不變 道亦不變]”라고 하여 도의 신성성(神聖性)을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은 《한서(漢書)》 동중서전에 전문이 소개되어 있다.
[주D-003]윤리라고 …… 않겠는가 : 인간의 윤리 역시 하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윤리를 행하는 것 역시 하늘 위에 질서 정연하면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일월을 각자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과 같으니, 인륜을 행하는 것은 곧 천도(天道)를 행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장자》 산목(山木)에, 유가(儒家)의 허식(虛飾)을 비판하면서 “눈부시게 광채를 발하면서 마치 일월이 높이 치켜들고 다니는 것처럼 행동을 한다.[昭昭乎如揭日月而行]”는 말이 나오는데, 목은이 원의(原義)는 무시해 버리고 단장취의(斷章取義)한 것이다.
[주D-004]16자(字)로 …… 말 : 《서경》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에서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아야 진실로 그 중정(中正)함을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주D-005]한 달에 …… 대부분이었다 : 《논어》 옹야(雍也)에 “안회(顔回)의 마음만 석 달이나 되도록 인(仁)을 어기지 않았을 뿐, 그 나머지는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인(仁)에 이르렀을 뿐이다.”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주D-006]위연(喟然)히 …… 하면 : 공자의 경지가 한없이 크고 깊은 것을 깨닫고는 안회가 감탄한 것을 말한다. 《논어》 자한(子罕)에, 안회가 위연히 탄식하면서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다.”라는 등의 말로 공자의 도를 찬탄한 대목이 나온다.
[주D-007]일관(一貫)의 …… 되면서 : 공자가 증삼(曾參)을 불러서 “나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一以貫之]”고 하자, 증삼이 “네, 그렇습니다.”라고 곧장 대답하고는, 다른 문인에게 “부자의 도는 바로 충서(忠恕)이다.”라고 설명해 준 내용이 《논어》 이인(里仁)에 나온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 제16권
시(詩)
중지(仲至)의 자설(字說) 후미에 제하다.
넓고 깊숙한 큰 집이 바로 나의 집인데
타향에 쏘다니다가 두 귀밑이 희어졌네
처자식은 의지할 곳 없어 처량도 해라
적막한 문정엔 해가 장차 비끼려 하네
【이르기 전이다.[未至]】
고생 끝에 돌아오니 실가가 그대로 있어
창 아래 향 사르니 모두가 청화로워라
다시는 타향의 나그네 될 마음 없어져서
흥이 나면 때때로 붓 들어 시를 쓰노라
【이르고 난 뒤이다.[旣至]】
아득한 천지가 다 똑같은 내 집이거늘
동이에 살면서 중화 사모한 게 한스럽네
한 조각 마음은 우주를 능히 포괄하기에
연래엔 절뚝발이 걸음 삐딱하거나 말거나
【본원(本原)을 말한 것이다.】
[주C-001]중지(仲至) : 고려 말기에 벼슬이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이른 전오륜(全五倫)의 자이다. 고려가 망한 뒤에는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가 뒤에 다시 서운산(瑞雲山)으로 들어가 은거했다고 한다. 저자가 일찍이 그의 자설(字說)을 지어서 지(至) 자를 도(道)의 경지에 견주어 설명하였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牧隱文藁卷之十
說
仲至說 이색(李穡)
大姨夫全氏。旌善望姓。仲子曰五倫。請予字說曰。人之倫也有五。其名曰五典。天所敍也。而人之所以爲人者也。故吾名曰五倫。聖人。人倫之至也。故吾字曰仲至。夫至者。吾所望也。而道之云遠。將竭吾力。而吾未敢必。將畫吾進。而吾未之忍。然由之而鮮知。習矣而不察。吾儕之謂也。願先生明以敎我。倫將書紳焉。子曰。至有二義。爾言。所至之地也。以人言。能至之功也。夫道之大原出於天。而淪於民生日用之間。著於聖賢功化之表。詩書禮樂之秩然。典章文物之粲然。則所謂倫理者。豈不如揭日月而行哉。然氣稟之異。物欲之拘。罕有得其髣髴於形影之末者。況其精微之蘊奧也哉。嗚呼。能至於其間者。何可多得哉。虞夏書所載格言甚衆。十六字傳心之語。可見危微之辨。精一之功。所以至夫道之準的也。孔氏弟子月至日至。獨顏氏曾子得其宗。求其所以能至。則喟然之嘆。一貫之唯。如在目前。雖曰不至。吾不信也。然則所至之地。能至之功。果可二乎哉。仲至氣質淸明。蒙養有素。游學成均。問難折衷。諸生皆服其識之高也。宰相知其才。授以臨民之政。晉陜已受其賜矣。他日所就其可量乎。予喜其有志於道也。作字說以貽之。己未夏閏五月癸卯。
목은시고 제16권
시(詩)
중지(仲至)의 자설(字說) 후미에 제하다.
渠渠夏屋是吾家
客走他鄕兩鬢華
妻子凄涼無所主
門庭寂寞日將斜
【이르기 전이다.[未至]】
辛苦歸來有室家
焚香窓戶儘淸華
無心更作他鄕客
遇興時時點筆斜
【이르고 난 뒤이다.[旣至]】
茫茫天地共爲家
只恨居夷却慕華
一片心田包宇宙
年來蹇步任欹斜
【본원(本原)을 말한 것이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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藁짚 고
1. 짚(이삭을 떨어낸 줄기와 잎)(=稾) 2. 마른 나무(=槁) 3. 원고, 초고(=稿) 4. 마르다 5. 건조하다(乾燥--)
● 목은문고 (牧隱文藁)
저자 이색(李穡)
권수 20 권
序·編·跋 저자牧隱詩精選序-徐居正, 文獻書院記-李恒福, 跋-李德洙(1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