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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浦項) 내연산(內延山:930M)을 종주 하다.
글 쓴 이 고 학 영
3월 26일, 춘분(春分)이 5일이나 지나서인가? 새벽이 밝아 있어 준비가 수월하다. 차에 오르니 예상보다 인원이 많으시다(42명). 차례 차례로 인사를 드리니 처음 오신분이 이외로 많으십니다. 잔치가 많으실 텐데...
날씨는 포근하여 봄날이 완연(宛然) 하구나! 달리는 차창 밖으로 나목(裸木)의 줄기에는 푸른 기운이 감돌고, 연변(沿邊)에는 띄엄 띄엄 개나리 꽃이 만발하여 봄을 알리는 화신(花神)인가? 노랗다 못하여 눈이 다 부시구나...!
도동(道洞) 분기점에서 다시 20번 고속도(대구~포항)를 따라 달리니, 시원하게 뚫린 도로가 가슴을 후련하게 해 주며, 녹색의 산천(山川)들은 눈이 다 시원하다.
연변(沿邊)의 산 기슭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여기 저기 피어 있어, 가녀린 네 모습에 연정(戀情)이 다 솟는구나...! 나목(裸木)에 꽃잎만 아롱 아롱... 연분홍 나비인가? 성질도 급하기는...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오시니... 저러다간 열매부터 먼저 열리는 것은 아닐런지...
와촌(瓦村) 휴게소에서 조반(朝飯)을 드시니... 개나리 진달래가 님들을 반기신다. 뜰 앞에 매화(梅花) 향기(香氣)는 홀로 그윽 하시니... 문득 옛 시구(詩句)가 떠 오르네...
세세년년화상사(歲歲年年花相似)요
년년세세인부동(年年歲歲人不同)이라.
(작년에나 올해나 꽃은 똑 같이 피는데... 작년에나 올해나 사람은 똑 같지 않구나...!)
개나리, 진달래, 매화꽃은 여여(如如) 하건마는, 오고 가는 인걸(人傑)들은 모습을 달리하네...!
차는 어느듯 청하면(淸河面)을 지나 송라면(松羅面)으로 접어들고 있다. 물이 맑아 청하면이요, 아름다운 솔숲이 우거지니 송라면 이로구나...!
보경사(寶鏡寺) 주차장에 이르니 내연산(內延山) 산행대회를 개최한다고 많은 인파가 군집해 있으시다. 가는날이 장날 이라드니... 매표소를 지나 보경사 방향으로 진행하니 아람드리 노송(老松)들이 즐비하다. 절집의 년륜을 짐작하고도 남는구나.
청하골(淸河谷)을 따라 20 여분을 더 나아가니 계곡의 아름다움이 그대로가 수석(水石)이라...! 아침 햇쌀에 찬란히 빛나노니... 모두가 금강석(金剛石)이요! 진주보배(眞珠寶貝)로다! 저만큼 청하골 건너 솔밭에는 서운암(瑞雲菴)이 고즈넉이 진좌(鎭座) 하시고, 그 뒤로는 돌담으로 돌려 쌓은 곳에는 열반고승(涅槃高僧)님들의 적정처(寂靜處)인가?
부도(浮屠)가 여러기 모셔져 있다. 살아 백년(百年)이 어려운데... 죽어 천년(千年)을 빛내고 있슴니다. 행렬은 길고 길어 끝이 없으니... 문수암(文殊菴) 가는 길로 오르시니 경사는 가파르고 진행이 더디구나...!
후미는 어디쯤인가? 끝간데를 모르도록 이어져 오르는 행열에 남산님들은 드물게 보이신다. 최연식 산대장과 10여분을 기다리니 노장님이신 정명돌 회원님이 당도 하시는데... 아직도 여러명이 후미에 오고 있다 하신다.
뒷일은 B코스를 임시 가이드 하시는 황재덕 회원님에게 맡기고 부지런히 산 오르니, 등산로 주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여 흐드러지게 웃는구나...! 길손을 반겨 주시는가? 님의 자태(姿態)를 뽐내고 계시는가?
진달래 피었구나! 눈 녹은 산~에~...
분홍꽃 여기 저기 봄 맞이 가~자~ !
솔바람, 봄바람, 따사로운 햇볕이... 세속의 번뇌(煩惱)를 말끔히 씻어 주네...! 앞서거니 뒤서거니 20 여분을 더 오르니, 문수암(文殊菴)이 눈앞에 다가오네... 지혜제일(智慧第一)의 문수보살(文殊菩薩)님의 상주처(常住處) 이신가?
중국 산서성(山西省) 오대산(청량산)에서 1만 보살과 함께 있다는 님께서 동방의 내연산(內延山)을 오셨는지요? 암자라기 보다는 토굴(土窟)이라 함이 더 옳겠도다. 벼랑끝 언덕위에 제비집 모양으로 자리 하시니 풍수적으로 연소봉(燕巢峰)이라 !
안광(眼光)이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이니... 장부(丈夫)의 기상(氣像)을 닦기에는 더 없는 길지여라...! 문밖에서 예배(禮拜)를 드리고 물러나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행길을 서두르니 일행은 저만큼 보이지 않는구나...!
산문(山門) 밖에는 신라때 부설거사(浮雪居士)님의 오도송(悟道頌) 시(詩)가 걸렸으니...
목무소견무분별(目無所見無分別)이요
이청무성절시비(耳聽無聲絶是非)이니
분별시비도방하(分別是非都放下)하니
단간심불자귀의(但看心佛自歸依) 라
(눈에 보이는바가 없으니 분별할것 없고, 귀에 듣는 소리가 없으니 시비가 끊이는 구나, 분별과 시비를 모두 놓아 버리니, 오직 마음의 부처를 보며 스스로 귀의 하노라.)
아~아~ 님의 말씀대로 분별(分別)없고, 시비(是非)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라...! 공자(孔子) 께서는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셨으니... 성인(聖人)의 경지는 다 같은가 봅니다. 부설거사님은 이 오도송(悟道頌)을 남기고 좌탈입멸(坐脫入滅) 하셨다는 경계(境界)가 또한 그러 합니다.
거사님의 애절(哀切)한 삶을 상기(想起) 하면서 걸어 오르니, 황재덕 회원님은 최연식 산대장을 모델로 하여, 멀리 보이는 쌍폭포를 배경삼아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으시다. 날씨좋고 산수(山水)도 좋을시구...
모두들 표정이 밝으시다. 사람에게는 자연이 보약(補藥)이라! 능선길에 오르니 등산로는 평탄하고 순조로와 한결 수월하다. 이런 저런 재담(才談)으로 웃음 꽃은 만발하고, 늘푸른 산악회의 전회장님은 싱글 벙글... 언제봐도 편안하시고 자애롭습니다.
600M 고지를 넘어서는 노란 꽃잎을 단 산수유 나무들이 간혹 보일뿐 연분홍 진달래는 자취가 없다. 오를 수 록 꽃눈이 작아지고 단단하여 나목(裸木)에 가깝고, 늘푸른 소나무만 여여(如如) 합니다.
하늘 향해 열팔벌린 나목(裸木)들은 우주의 봄기운을 반기느라 윙윙 노래를 하고, 숲속을 걷는 나그네는 대자연의 향기에 취해 동심(童心)으로 돌아가네...! 문수봉(文殊峰:622M)에 오르니 포항시 6광장산악회에서 세운 조그마한 표석(標石)이 세워져 있고, 주위의 산세가 너무나 포근하고 편안하다.
문수보살(文殊菩薩)님이 상주(常住) 하시는 곳 이라 문수봉 인가? 간단한 기념촬영을 하고는 다시 삼지봉(三枝峰)으로 향하노니... 오를 수 록 산세는 더욱 순하고 등산로도 넓어있어 진행이 순조롭다.
쌓인 낙엽에 푹신 푹신 발목이 잠기고, 솔향기 봄향기가 코에 져민다. 30 여분을 더 올라 삼지봉(三枝峰=內延山:710M)에 올라서니, 선착객(先着客)들은 삼삼 오오 모여앉아 준비한 도시락을 맛있게들 드신다.
시계는 12시를 가르킨다. 그새 2시간 30 여분을 걸어 올랐으니 시장도 하시겠지... B코스는 삼지봉(내연산)에서 모여 중식후 하산(下山)하시고, A코스는 향로봉까지 가야 하니 이정표에는 아직3.7KM(약1시간40분)나 더 가야 한다고 적혀 있다.
안내판에 삼지봉(三枝峰)은 내연산(內延山)에 속하며 문수봉(文殊峰), 향로봉(香爐峰), 북동대산(北東大山) 등 3곳으로 갈라지는 위치에 있어 삼지봉이라 하며, 보경사 창건기(寶鏡寺創建記)에는 당나라의 종남산(終南山)과 산세가 닮아서 종남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에 내연산으로 고쳐졌다 하신다.
삼국(고구려,신라,백제)의 역사는 대륙(현 중국)에서 찾아야 하는데, 19C 중엽에서 해방되기 까지 일제(日帝)나 서구열강에 의해서 한반도 내로 축소되어 기록되니, 우리의 상고사(上古史)는 볼 수 록 이상하고 의문만 늘어 갑니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서둘러 출발하니, 산행에 동참한 집사람이 잘다녀 오시라며 안부가 간절하다.
호오이~ 호오이~ 낙엽을 밟으며 호젓한 산길을 걷노라니... 산내음 봄내음이 가슴에 충만합니다. 얼마를 걸어 올랐을까? 남산~ 남~산~ 몇 번을 외쳐봐도 허공에 긴 메아리만 울려 퍼질뿐... 선발대의 안재호님, 이진학회원님, 최형달회원님 등 등 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790M 고지를 지나 840M 고지 삼거리 지점에서 선발대를 만나 허기진 배를 간식(떡)으로 채우며 잠시 휴식을 하니... 안재호님은 앞서 가시고 보이지 않는다. 일행을 뒤로하고 혼자 가시다니... 경주(競走)라도 하시는가?
산행길이 좋다고는 하나 경사도 가파르고 오르락 내리락 몇 봉우리를 더 넘어 향로봉(香爐峰 :930M)에 오르니 이마에는 땀이 다 솟는다. 선착객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점심시간도 늦어 있고 시장끼도 더하여 적당한 자리에 둘러 앉으니 이진학님, 안재호님, 고장석님, 최형달님 등 등 필자와 더불어 6~7명이 둘러 앉아 막 식사를 하려는데...
후미에 최연식 산대장님을 비롯 6명이 더 당도하시는데... 집사람도 함께 도착했으니... 뜻밖의 만남이 기쁨을 배가(倍加) 시킵니다. 한생(一生) 연분(緣分)이 갈 수 록 깊어져서... 우리들의 인연(因緣)줄이 실과 바늘일세...!
미나리 밥반찬에 고추절임, 묵은김치, 젓갈류, 마늘장아치 등 등 어디로 넘어가는지 분간키 어렵구나! 시장이 반찬이라 드니... 밥맛이 꿀 맛이라! 후딱 비우고는 후식으로 사과, 오랜지, 배까지 드시니... 향로봉의 표석도 보이고 바로 옆의 무덤도 보이는 구나...!
향로봉(香爐峰:930M) 정상은 이외로 평범하여 편안하고 조망하기도 좋아서, 육산(陸山)에 육산이라! 한없는 덕(德)이 쌓여 이어진 능선일세...! 순박하기는 지리산, 무등산 보다도 더 순박하여 특색없는 것이 특색이다.
내연산(內延山)은 백두대간상의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부근에서 한 지맥이 동남방향으로 갈라져 나와 백병산(1154M), 백암산(1004M), 청송에 주왕산(721M)을 지나 이곳 구암산(807M) 부근에서 다시 동쪽으로 매봉을 거쳐 내연산(향로봉, 삼지봉, 문수봉), 북동대산(791M), 바데산(646M), 영덕의 삿갓봉(320M)에서 그 맥을 떨구고 있으며... 백두의 정기와 낙동의 정기가 오롯이 겹으로 뭉쳐 있으니...
이고장 인걸(人傑)들의 산실(産室)이 되고 있습니다. 북동방향으로 흐르는 대서천(大西川), 소서천(小西川)은 영덕의 오십천(五十川)에 합류하여 동해로 흘러들어 가며, 청하골(淸河谷)의 맑은 물은 광천(廣川)으로 이름을 바꿔 대해로 흘러드시니... 포항시 일부와 영덕 주민들의 생명수가 되고 있어라...!
아~ 아~ 님의 품은 포근하고 푸근하여 억겁(億劫)에 쌓인 덕을 만물에 베푸시니... 팔면원경(八面圓鏡)의 보경(寶鏡)을 품으시고, 문수(文殊) 보현(普賢) 보살님을 거느리시며, 상서로운 기운(瑞雲菴)을 뿜어 내심니다.
천지(天地)와 내연(內延)의 은혜로움을 어찌 필설로 다 하리오... 더 이상 논(論)하지 않음이 님의 뜻입니다.
남동방향의 천령산(775M)은 손에 닿을 듯 하고, 지나온 삼지봉, 문수봉의 능선은 승천(昇天)하는 용(龍)의 허리이며, 이곳 향로봉이 백두로 향하는 용머리(龍頭)인가 봅니다... 멀리는 남쪽의 비학산(飛鶴山), 낙동정맥상의 구암산, 무장산 등 등은 짐작은 가나 가늠하기 어렵고 이름모를 능선의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지니... 앉아 천리(千里), 서서 만리(萬里)를 조망(眺望) 합니다.
향로봉 표석 옆에는 한 묘기가 있어 살피니, 경릉참봉(景陵參奉)을 지낸 이공(李公)의 묘(墓)라고 되어있다. 안산(案山)은 겹겹하여 천리(千里)에 머무르고, 사방(四方)은 열려 있어 허(虛)하도다. 이 높은 태산(泰山)에 모신 정성이 갸륵하십니다. 옛 사람의 우직함과 끈기, 믿음은 가히 종교적(宗敎的)이라 할만 합니다.
정상을 오른 님들의 정성에 보답으로 모두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서둘러 하산(下山)하니 14시가 넘어 있다. 우리와 반대 방향에서 오른 안(安) 언니(별명)는 혼자 문수봉으로 향하시니... 집념도 대단하셔... 남산 산행에 가끔씩 참석하시는 분으로 작달막한 키에 인형처럼 귀엽게 생겨 인기도 좋을시고... 산도 잘 타신다.
경사도 가파르고 낙엽도 널려 있어 조심 조심 내려오니 여러 곳에 묘가 있다. 40여 분을 하산하여 갈림길에서 청하골로 접어드니 계곡의 경치가 이만 저만 아름다운게 아니구나...! 능선은 육산이라 평범의 진리를 보여 주더니만, 계곡미(溪谷美)는 뛰어나서 시명폭포, 복호2폭포를 지나 복호1폭포에 이르러서는 계곡도 넓어져 선계(仙界)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간 휴식하며 안재호님과 이런 저런 상고사(上古史) 얘기며,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면서 걷노라니 지루한 줄을 모르겠다.
가래골, 은태골, 긴골, 잘피골, 뿔당골, 복호계곡, 음지골, 초막골 등 등 열두골도 넘는 물이 합수(合水)하여 학소대(鶴巢臺) 부근의 연산폭포(延山瀑布)에 이르러서는 수량도 제일이요, 경치도 입이 딱 벌어진다. 금강산이 따로 없고 설악이 따로 없소...
여기 저기 석벽(石壁)에는 천연동굴(天然洞窟)이 있어 신선(神仙)들의 수도처(修道處) 인가? 놀이터 인가? 올 봄처럼 가문날에 수량(水量)도 많을시고... 구름다리를 올라 주위의 경치를 카메라에 담으려니, 연산적교(구름다리)가 자연의 경관을 해치고 있슴이 한눈에 들어 온다.
성역(聖域)은 접근치 않음이 상책이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 경치를 그대로 두고 멀리서 감상만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며... 건너편 천령산(우척봉) 가는 길의 암벽에는 석벽을 오르는 암벽 등반이 한창이다.
10여명의 젊은이 들이 로프에 대롱 대롱... 울긋 불긋, 암벽에 피어난 꽃송이 들인가? 님들의 도전은 생명을 건 모험일 테지만, 보는 즐거움이 또한 계곡미(溪谷美)를 더해 주는구려...!
관음폭(觀音瀑), 무풍폭, 잠룡폭, 삼보폭, 보현폭, 상생폭 등 등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미에 할말을 잃는구나...!
보현암(普賢菴)에 잠시 올라 주위를 조망하니, 천령산의 능선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장쾌하고 수려(秀麗)하다. 문수봉에서 흘러 내리는 능선을 사이에 두고 우(右) 보현암이요, 좌(左) 문수암이 진좌 하시니... 이곳은 내연산이 주불(主佛:석가모니불)이요, 자연 그대로가 부처님입니다.
보현보살(普賢菩薩)님이 상주(常住) 하시는 곳이니... 님은 중생 구제에 여념이 없으시며, 이덕(理德), 정덕(定德), 행덕(行德)을 맡아 인도 하시며, 또한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 고도 부르십니다.
지혜(智慧)와 덕(德)을 다 갖추신 내연산(內延山) 이여...! 항상 여여(如如) 하소서...!
보경사(寶鏡寺) 경내로 들어서니 관광객과 참배객으로 붐비신다. 도량(道場) 우측에는 감로수(甘露水)가 솟아나고, 천왕문(天王門)을 들어서니 금당탑(金堂塔)이 5층으로 앉아있다.
상승비례감이 있어 보기에도 미려(美麗)하고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경북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층 몸돌 앞뒤에는 연봉자물쇠 하나와 동그란 문고리 두개를 돋을 새김으로 조각해 놓았으니, 열쇠를 넣으면 금방 이라도 열릴것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아서 신라 성덕왕 22년(723) 이라는 설과 고려 현종 14년(1023) 이라고도 하시니 어느쪽이 옳은지 짐작하기 어렵고, 다만 탑의 형식이 나말여초(羅末麗初)의 양식이라 하신다.
금당탑기(金堂塔記)에 전하기는 후한(後漢) 영평(永平) 10년(67) 인도의 승려 마등(摩騰)과 법란(法蘭) 두 스님이 불경과 불상을 백마(白馬)에 싣고 중국으로 와 처음 불교를 전했다 하며, 이때 그들은 십이면원경(十二面圓鏡)과 팔면원경(八面圓鏡)을 함께 지니고 왔는데, 십이면원경은 낙양성 서쪽 옹문(雍門) 밖에 묻고 거기에 절을 세워 백마가 싣고 온 것을 기념하여 백마사(白馬寺)라 했으며, 팔면원경은 두스님이 제자에게 맡기며 “동쪽 조선땅의 해돋는곳, 종남산(終南山) 아래 백척 깊은 못이 있으니 이곳은 동국의 명당이다. 못을 메우고 거울을 묻은뒤 법당을 세우면 천추 만세에 무너지지 않을 곳이니라” 라는 유언과 함께 뒷날을 기약했다.
이 거울이 훗날 신라 지명(智明)스님에게 전해져 바로 금당탑 자리에 묻고 절을 세웠다 하시니... 때는 진평왕 25년(603) 이었다. 지명스님은 당시 불상과 불경을 싣고 왔던 백마(白馬)의 후신(後身)이라 하시니...
불가(佛家)에서는 거울을 흔히 진리에 비유 해 왔고, 여기서 팔면원경(八面圓鏡)은 어쩌면 불교교리의 핵심을 이루는 팔정도(八正道:正見,正思惟,正語,正業,正命,正精進,正念,正定)와 십이연기(十二緣起:無明,行,識,名色,六處,觸,受,愛,取,有,生,老死)를 각각 은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 봅니다.
다시 적광전(寂光殿)을 지나 대웅전(大雄殿)에 이르니, 정면3칸에 측면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고색(古色)어린 멋은 별로 느끼지 못하겠다. 그 뒤로 우측에는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보물제252호)가 새로지은 보호각 안에 잘모셔져 있다.
원진국사(1172~1221)는 보경사에 불사를 크게 일으킨 분이며, 1215년 대선사의 지위에 오른뒤 왕명으로 보경사 주지로 부임하여 만년을 보내시다. 1221년 팔공산 염불사(현 동화사 염불암)로 옮겨 머물다 8월에 그곳에서 입적(入寂) 하셨다.
그뒤 문도들이 다비를 마친뒤 유골을 수습하여 3년(1224)뒤에 보경사에 탑을 세웠다 하신다. 1792년 보경사에 주석하시던 회관(誨寬)스님이 쓴 보경사사적기(寶鏡寺事蹟記)에는 원진국사는 호환(虎患)으로 열반 하셨다 하시니... 살신성인(殺身聖人)의 모습을 보여 주셨는가?
법당에 들어 예배(禮拜)를 드리고 주위를 살피니 청룡(靑龍) 백호(白虎)도 포근히 감싸주시고, 안산(案山)은 포근하게 두 봉우리가 마주하나 멀어 있어 비보숲(裨補林)을 조성 하였도다. 아람드리 노송(老松)들이 절앞의 허(虛)함을 감싸 주시니 길지(吉地)중에 길지입니다.
송림(松林)숲 너머로 다가오는 안산의 두 봉우리는 어찌 이리도 편안하고 예쁘던지... 대자연 어머니의 젖무덤 같으십니다. 보경사 담장 밖에 약간 떨어진 곳에 원진국사부도(보물제430호)로 추증되는 8각원당형부도가 있다고 하나 가볼 수 없슴이 아쉽고 아쉽습니다.
훗날을 기약하며 경내를 나서니... 해는 서산에 기울고 내연산 산행대회를 마친 인파들이 행사장에 군집하여 춤과 노래로 절정을 이루는데...
보경사(寶鏡寺)의 답사(踏査)는 팔정도(八正道)와 십이연기(十二緣起)로 빛나고, 내연산의 산행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을 보여주시며, 산능선의 부드러움에서 공자(孔子)님의 인자요산(仁者樂山)을 배우고,계곡의 아름다움과 맑은 물에서 지자요수(智者樂水)를 배웁니다.
단기4339년(서기2006년) 3월 26일
포항시(浦項市) 내연산(內延山:930M)을 종주하다.
첫댓글 맑은 공기..신선한 바람....온통 내 머리와 몸은 산소 부족을 느낍니다....회장님의 산행후기에서 계곡의 아름다움과 맑은 물을 마셔봅니다.....
구슬님! 많이마시고 많이드세요! 부친께서 빨리 회복하셔서... 산행도 하시고,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셔야 할텐데... 읽느라 수고 했심더...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