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은사(泉隱寺)
전남 구례군 광의면 노고단로 209
구(지번) 주소 광의면 방광리 70
1. 사찰 연혁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 중의 하나다.
천은사는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다.
신라 중기인 828년(흥덕왕3)에 인도의 덕운(德雲) 스님이 천은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천은사 중건 당시 지어진 극락보전 상량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당 희종 건부2년(875년)에 연기(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하였고 후에 덕운이 증수하였다.”
이 기록에서 창건주 연기는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의 별호다.
그런데 인근 화엄사의 창건 연대(544년)와 비교해 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기보다는 중창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창건주에 대한 기록은 밝혀진 바 없어 그 시기와 유래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 충렬왕 때(1275~1308)에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 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는 등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1610년(광해군2), 주지 혜정선사(惠淨禪師)가 소실된 가람을 중창하고 선찰로서의 명맥을 이끌어 나갔다.
1679년(숙종5), 단유선사(袒裕禪師)가 절을 크게 중수했는데, 절이름을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바꾸었다.
현재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은사 설화와 전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다.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한 필체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썼다. 그리고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
2.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극락보전(보물 제2024호)
극락전 아미타 후불탱화(보물 제924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목조대세지보살좌상(보물 제1889호)
삼장보살도(보물 제1888호)
천은사 금동불감(보물 제1546호)
천은사 괘불탱(보물 제1340호)
* 이 자료는 천은사 홈페이지(http://www.choneunsa.org/) 내용을 참고로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