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하고
또 속죄하는 독일 사회 |
2013.07.19 | |
이웃
나라 일본을 다녀온 이들은 그들의 생활환경이 청결하고 사람들이 친절할 뿐더러 정직하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개인 관계를 넘어선 일본 사회는
우리에게 멀고도 먼 거리감을 안겨줍니다.
근래 일본 사회의 역사 및 죄의식을 거론할 때면 독일 사회가 보여주는 아주 다른 예가
종종 대조적으로 부각되곤 합니다. 필자는 ‘풀뿌리 예술 행위’에서도 그런 사례를 보았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e
Wege fhren nach Rom)”는 말도 있습니다만, 아주 오래전부터 로마로 향하는 도로에는 사각형 포장용 포석(鋪石)을 촘촘히
깔았습니다. 그 옛길이 지금도 일반 교통 도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돌의 귀퉁이가 마모되어 얼핏 둥근 뚜껑을 입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차 바퀴와 말발굽이 만들어낸 세월의 흔적입니다.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승차감이 좋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유럽 도시에서는 포석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도 포석길이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내는 데 더없이 좋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전 독일의 작은 도시 마르부르크(Marburg)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13세기에 건립한 고딕(Gothic)풍의
대성당이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 옛 도시에도 예외 없이 포석이 깔려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보도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걷기가 많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고도(古都)에서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동행하던 친구가 여느 포석과
같으면서도 반사광을 발하는 다른 모양의 철제 구조물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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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9.5×9.5cm 크기의 네모난 철 주물(鑄物)에 새긴 글귀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1885년 여기에서
태어난 레오폴트 마르크스하이머(Leopold Marxheimer)는 1941년 강제로 끌려가 리가에서 살해되었다(Hier Leopold
Marxheimer Jg 1885 Deportiert 1941 Riga Ermordet).” 짧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글이었습니다. 그 옆
‘포석’에도 다른 희생자의 이름과 살해된 연도와 장소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형물을 설치한 곳은 희생자가 끌려 나간 골목길 앞 또는
희생자가 살던 바로 그 건물 앞이었습니다. 섬뜩하고 안타까운 생각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동행한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을
‘발을 헛디디게 하는 도로 포석(Stolpern-Pflastersteine)’이라고 부른답니다. 일명 ‘발을 헛디디게 하는
프로젝트(Projekt Stolpernsteine)’라는 이름으로 독일 예술가 귄터 뎀니히(Gnter Demnig)가 1992년부터 독일
전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민운동의 하나입니다. 프로젝트 기획자는 지난날의 ‘유대인 학살 사건’이 서서히 잊히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운동은 이웃 나라 네덜란드와 폴란드에서도 호응을 얻었고요. 그런데
‘발을 헛디딘다(stolpern)’라는 단어에는 매우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작은 주물에 담긴 뼈아픈 이야기를 읽으려면 가까이 가서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그런 행동을 통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사죄하는 마음을 갖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랍니다.
물론 위의
프로젝트에도 찬반이 엇갈리긴 합니다. 극우적인 사람들은 ‘우리는 언제까지 죄인이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으로 반대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 사회도
썩 달가워하는 분위기는 아닌 듯싶습니다. 보행인이 본의든 아니든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포석’을 ‘짓밟아’ 희생 당사자에게 수모를 안긴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 사건에 대한 반성은 오직 속죄하고 다시 속죄하는 길밖에 없다”는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에
힘입어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2만 개가 넘는 주물 조형물을 독일 전역 보행로에 깔아 이제는 작은 마을이나
도시의 보도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부끄럽고 무겁디무거운 과거사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또다시’ 속죄하려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회
공동체의 예술 행위이자 가치 있는 조형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고로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개인적으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정직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가 정직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반듯한 나라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 나라 독일 사회와 이웃 나라 일본 사회가 걷는 길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그래서 마음이 한없이 답답합니다.
아쉽고 또 아쉽긴 합니다만 그럴수록 우리는 묵묵히 ‘정직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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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 |
이성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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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평론가,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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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교수님! 다리를 헛디디게 하는 도로 포석은 정말 예술이네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겼는데, 포석의 내용을 읽기위해선 무릎을 꿇고 읽어야하는데 그런 행위가 띠고 있는 메세지는 정말 놀랍네요. 이 밤중에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일본의 에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이 일본이 과거사 관련해서 헌법을 고치려는 것에 대해 일침을 놓은 기사를 봤습니다. 일본이 빨리 죄를 인정하고 사죄를 해야한다는 주장하는 내용이였는데, 괜히 높은 자리에 올라간게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의 모습을 본받아서 일본도 얼른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위안부로 인해 고통받으셨던 할머니분들도 어떠한 보상보다는 진실된
사과를 원하고 계실텐데 말이시죠. 살아생전 이런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그들이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좋으실까요.....
덕분에 인상적인 칼럼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 참 마음에 들더니만...역쉬 그런 사람이었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