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강
6-2-4. 공감각적 이미지(synesthetic image)
공감각적 이미지는 하나의 감각이 이미지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감각과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정신적 이미지의 대표적인 제시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신자체가 단순하고 분석적이지만은 아니하다는 이유로 복합적인 감수성에 호소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시법(詩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시인들이 즐겨 응용하는 이미지입니다. 다양한 감각을 그 체험의 유동성을 잘 판단하여 이를 억제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혼합시킨 형태를 말합니다. 시각, 청각, 후각과 촉각 등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인 감각을 결합한 형태의 표현을 공감각적 표현이라고 하며 여기에서 추출한 이미지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을 지폈습니다. 지글지글 타는 불길 속으로 목숨 찔러 넣으면 세상은 숭숭 뚫어지는 허방이었습니다. 막소주 몇 잔에 하염없이 풀어져 꺼끄락 거리던 껍데기들 흩어졌다 모였다 흩어졌다 불티처럼 탁탁 튀는 삶 한 눈에 꿰어 쏘옥쏙 딸려 나오는 감자알 같았습니다. 뜨끈뜨끈한 세월 후우후우 불어 식히며 매운 눈물 쏟는 숨길 자욱하여 숨 막힐 때가 더 많아지고 더 이상 어떤 길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우뚝 버티던 절벽도 해가 지면 속이 벌건 그리움이었습니다.
--이기애의 「등겨」전문
이 작품에서는 시각(지글지글 타는 불길)과 미각(막소주 몇 잔) 그리고 촉각(뜨끈뜨끈한)과 다시 시각(우뚝 버티던 절벽) 등으로 공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영국의 대시인 T. S. 에리엇은 현대는 감수성을 시에서가 아니면 느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통합된 감수성이 과학의 세계가 노출하는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인 측면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는 뜻에서 공감각적 이미지의 설명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 산을 배경으로
수묵화 한 점 그리려는데
어디선가
물소리가 난다
--한기팔의 「물소리」중에서
이렇게 시각과 청각을 함께 어우러지는 이미지, 즉 한 마디로 요약해서 한 가지 감각의 묘사로서 다른 감각을 묘사할 때, 이를테면 보이는 시각적 사물에 소리를 가미하고 냄새나 색채 혹은 맛이 가미되는 등 복합적으로 작품 속에 제시되는 이미지가 공감가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에서 우리는 언어에 의해서 정신 속에 나타는 이미지 군(群)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이를 이미저리(imagery)라고도 하는데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어떤 감각이건 결합된 언어로 호소하면 이미저리가 됩니다.
6-2-5. 절대 심상
이 절대 심상은 순수 심상이라고도 하는데 관념이나 의미가 배제된 순수한 사물의 이미지를 말합니다. 이미지는 대체로 시각적이거나 감각적인 사물에서 체험한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내어 새로운 정서를 환기시키고 주관적인 해석까지도 객관화하면서 시의 회화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약간 다르게 관념이나 의식의 형상화가 이러한 이미지를 거부하거나 배제하고 이미지 자체를 무의미한 어떤 기호로 제시하여 서로 대립시켜서 형상화하는 경우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물에서 의미를 배제해 버리면 사물 자체만 남게 됩니다. 한 그루의 나무는 무슨 과에 속하고 어떤 용도로 쓰이며 어떤 꽃이 피고 열매는 어떻게 맺는가 하는 고정관념으로 의미를 해석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버렸을 때 그 나무는 자유로운 나무로서 본래의 나무 자체로 돌아가서 서 있게 됩니다.
이때 한 그루의 나무가 관념으로부터 벗어나면 새로운 해석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이 새롭게 바라보는 가운데 관념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관념 이전의 사물세계, 사물 자체로 환원시켰을 때 비로소 순수에 이르게 되고 이 순수의 이미지를 동원했을 때 절대 심상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김준오 문학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한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체는 바다에 떠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에 女子는 깨어 있었다
깨어진 여자는 구슬이었다
빛 잃은 구슬들이 뒤척이는
어둠 속엔
뱀들이 기어가고 있었다
번쩍이는 비늘
화염에 덮힌
女人네들의 머리칼이 날리는
바닷가엔
횃불 든 사나이들이 모여 있었다.
--박청륭의 「불의 假面 Ⅵ」중에서
이 시의 이미지들은 결코 실재 대상의 재현이 아닙니다. 또 이미지와 장면의 연결에도 논리성이 없습니다. 시인의 상상세계 속에만 혹은 시적 세계 속에만 존재하는 이미지들입니다. 그 대신 이미지 그 자체가 사물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미지를 절대적 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이론은 김춘수의 ‘무의미시’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일종의 언어유희가 되고 언어의 의미성이나 감각성을 모두 배제한 언어의 기호화나 사물화 같은 전위적(前衛的)인 실험성까지 동반하게 되어 초기 시 쓰기에 임하는 사람들은 좀 더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