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펌핑맨
지난번에 주급 때문에 1주일 만에 그만둔 야채가게의 후유증은 금방 찾아왔다. 그날 저녁 소식을 들으신 외삼촌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냥 묵묵히 그분의 일을 하시고 계신다, 그 분의 일자리는 조그마한 그로서리(註; 그로서리,grocery는 우리나라의 작은 동네슈퍼 쯤으로 보면 됨)인데 브루클린의 가장 위험한 지역의 지하철역사 안에 있다. Caton Station은 아주 작은 지하철역인데 내부에 작은 그로서리가 있다. 새벽에 나가시면 우리 형제의 야채가게 일이 끝나고 퇴근한 후에야 들어오신다.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가보면 지하철역사 건물 내부의 그로서리 외부유리가 전부 철창으로 되어있고 주인이 일하는 계산대 역시 철창으로 상품구역과 분리되어 있다, 당연히 계산대 아래엔 경찰서와 직결된 비상벨이 있고 그 옆엔 권총이 얌전히 놓여있다.
그 다음날 일요일 저녁 조금 일찍 들어오신 외삼촌의 옆구리엔 일요판 뉴욕타임지가 끼어 있었는데 처음 본 나는 그것이 신문인지 몰랐다. 신문이란게 약250~300페이지로 두께가 어마어마했으니…쩝! 신문뭉치에서 Clasified 섹션을 열심히 보시며 빨간펜(하! 하! 하!, 그때부터 빨간펜이 사용 됐었다)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계셨다. 한참 작업(?)을 마친 외삼촌은 이젠 전화기를 붙들고 열심히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뭐라고 시부렁, 쏼라~쏼라! 옆에서 처음보는 T.V.(‘티비’라고 하면 안된다고 함, ‘텔레비전’이 맞는 말 임)를 보며 도대체 광고를 하는지 본 방송을 하는지 구분이 안 가는대도 열심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외삼촌이 “빙고”하고 외치신다.
영문을 몰라 물끄러미 쳐다보는 내게 외삼촌은 야! 월요일부터 네가 일 할 곳을 찾았다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아침 더 일찍 일어난 나는 외삼촌이 써 주신 일 할 곳 주소와 가는 길이 적힌 쪽지를 들고 길을 나섰다. 생전 처음 타보는 뉴욕의 전철을 타기 위해….
집에서 나온 후 전철역으로 가서 일단 전철을 탔다. 그리고 브루클린의 큰 환승역인 풀톤스트리트에서 맨하튼 가는 전철로 갈아타고 맨하튼의 42번가의 그랜드센트럴역에서 목적지인 퀸즈블바드65가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복잡한 전철역내 환승루트를 찾기 시작 했는데, 한심 할 정도의 영어실력과 뉴욕시 특유의 약식표기로 인해 도저히 환승루트를 찾을 수가 없는게 아닌가?
외삼촌께서는 지하철 토큰을 3개 주셨는데, 왕복 한 개씩 2개와 혹시 잘못 됐을 때를 대비하여 한 개를 더 주신 것 같았다. 첫날이라 8시까지 목적지에 인터뷰 겸 출근을 해야 하는데, 벌써 시간은 7시반을 넘기고 있었다. 지하철 내부의 환승루트를 찾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나의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보고 있구…, 시간에 쫒기며 필사적으로 환승루트를 찾다보니 나도 모르게 환승루트에서 빠져나온게 아닌가? 그때 눈에 띄는 지하철경찰관 2명, 문뜩 못하는 영어이지만 살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그 두명 중에서 내게 친절을 보일 것처럼 보이는 한명을 가늠하며 말이다. Officer! Can you help me out? What do you need? I wan~t to find the train to Q’ns boulevard 65th street. What’s you said? Um, I wan~t to find the train to Q’ns boulevard 65th street! Oh! Follow me son~(제기랄, 속으론, 내가 왜 네 자식이냐?)하며 친절히 내게 토큰을 받아 개찰기에 넣어주며 환승역플랫폼으로 데리고 간다. Thank you officer!
간신히 탄 퀸즈행 지하철, 65가에서 내려 방향감가을 총동원해 찾아간 Amoco Gas Station! 9시 이었다. 다행히 사장은 한국사람이었다. 간단히 나의 소개를 하고 일할 것을 듣고 바로 시작했다. 이집은 가스펌프가 총 12대가 있는데, 각 펌프에는 양쪽의 주유기가 있으니 총24개의 펌프를 나 혼자 하는 것이었다. 그 중의 4대는 택시전용이고 8대가 승용차용인데 2종류의 휘발유를 판다. ‘레귤러’와 ‘하이테스트’ 다행히 디젤유는 팔지 않는다. 그리고 암만 바뻐도 ‘만땅’을 채우는 차에게는 꼭 Would you like to wash your car at no charge? 하고 물어야 하는데….(이것이 나중에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게 된다)
첫 주급을 받을 때 인데, 주유기에는 일반인이 볼수 없는 눈금이 하나 더 있는데, 예를 들면, 주유기엔 3.19라고 표시되어도 주유기 눈금 속을 들여다보면 1센트의 1/10 눈금이 더 있다. 따라서 주유를 할 때, 손님이 2달러라고 하면 1.99달러 + 7~9/10센트로 주유를 해야 당일 정산을 할 때 밑지지 않는다. 이렇게 쌓이는 돈이 하루에 3~5달러 정도 되는데 주급을 받을 때 항상 그 부분 만큼 주급에서 빠진 돈을 받던 난 어느 주급날, 그 부분만큼의 절반이라도 주급에 얻어서 달라고 하였다가, 주인에게 엄청 혼난 적이 있다. 주인 왈, 넌 내 기름으로 내게 장사하자는 거냐? ㅎㅎ
가스스테이션엔 사무실과 가라지(Garage – 정비업소가 있는데 기름 넣는 손님이 없을 땐 도와줘야 한다) 워낙 단순한 일인지라 금방 익숙해 졌다. 시간당2달러50센트의 주급이 180달러나 돼었다. 야채가게 보다 40달러를 더 벌다니, 난 스스로 내가 대견 해졌다. 거기다 형보다 자그마치 30달러 더 벌고 말이다. 별안간 사는게 재미있어졌다.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자동차도 항상 많이 있고, 운전도 가끔 주유소 내부에서 수리가 끝난 차를 가라지(어떨 땐 ‘거러지’라고도 함)에서 주차장까지 옮겨 놓을때도 많고. 왜 재미가 있었냐고? 생전 처음 보는 미국차들(참 종류도 많고 크기도 장난이 아니게 큰 차들은 운전 할 때 멋도 있고 재미있다.
그곳에서 일한지 1주일하고 반이 되었을 때 그곳에서 정비를 마친 후 일정기간 찾아가지 않는 포드 차를 한대 샀다. Wow~, 드디어 내차가 생겼다! 그리고 밤11시 옷을 갈아있은 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펌프에 가서 하이테스트 기름을 ‘만땅’으로 넣었다. 집으로 꼴갑하며 시내 고속도로를 통해 도착한 나는 땀으로 훔뻑 젖어있었다. 몇일 그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보니 나도 이젠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있었다.
그 주유소는 시내 맨하튼에서 퀸즈 주택가로 가는 퇴근길에 있었는데, 꼭 비슷한 시간에 오는 70대의 노신사가 있었다. 당연히 누군지 모르고, 이제 당연해 가는 ‘팁’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무렵…., 그때의 기름값을 갤런에 39.9~41.9센트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손님이 와서 2달러! 혹은 3달러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만땅, Fill her up please하면 1.95달러, 2.90달러만 넣어주고 닉클(5센트의 이름), 다임(10센트의 이름)을 거의 팁으로 챙기는 것에 익숙 해져 있을 때. 그 노신사는 꼭 2달러, 2달러50센트하며 내게 팁을 만들(?) 재주를 부릴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고 주유가 끝나서 돈을 받을 때면 주유한 돈을 꺼내주며, 따로 동전지갑에서 1센트짜리 ‘페니,(1센트짜리 이름)을 꺼내주며 “디스 이즈 포유”하며 준다. 몇 번 그렇게 받었던 나는 어느날 노신사가 또, “디스이즈 포유” 하며 동전지갑에서 1센트를 꺼낼 때 돌아서 다른차를 향해 걸어가며 외쳤다! 댓이즈 포유~, 낫미!, 그러자 그 노신사는 다시 1센트를 동전지갑에 소중히 넣고 “Penny makes a million dollar”라고 하며 시동을 거는 것이었다. 노신사가 간 다음 난 사무실에 앉아 씩씩거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거 뭐야? 내가 여기에서 일하고 동전 팁이나 받는다고 사람 무시하는 거야 뭐야? 하며 말이다.
하루는 출근후 정말 한가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사람들이 노동절휴가를 떠나고 한가해진 것이었다. 바뻤던 주유소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는 내게 주인이 말한다. “저기 세차기 안의 바닥을 한번 청소해 주겠나” 하고 말이다. 그럼, 뭘 그런 말을 뜸을 들여가며 어렵게 말씀하셔~?하며 난 빗자루를 들고 세차장으로 들어갔다. 빗자루질을 시작하며 가만히 보니 세차장 바닥이 기름과 흓으로 새까만 뻘이 되어 뒤범벅이 되어있는 거 아닌가? 죽을똥 살똥하며 맨발로 바닥까지 깨끗이 청소를 마치자 주인은 파인세척제를 가져와서 마무리를 이것으로 하란다. 이런 젠장, 일을 끝내고 맨발바닥의 까만 기름을 비누로 씻어내려고 하는데 영, 발이 깨끗이 닦이지 않는다, 하! 하!, 결국 이렇게 난 깜둥이 발을 가지게 됐다.
몇 달이 흐른 어느날 출근을 해보니 경찰이 주유소에 와있고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왜 그래요? 하며 묻는 나에게 주인은 오늘 새벽 강도가 들었었다고 알려준다. 오~잉? 강도?, 권총강도란다. 경찰이 돌아간 후 주인은 내게 말을 했다. ‘만약, 만약에 권총강도가 들면 돈을 지키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돈을 주란다. 다만 얼마를 주었는지 꼭 기억하고, 될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덜 줄 수 있다면 좋겠다’란다.
그러던 어느날 밤 10시, 주유소에 권총강도가 들었다. 한시간만 있으면 교대시간인데, 3놈의 백인 젊은이가 탄 머슬카가 들어와 한놈은 운전대에 앉아있고 만땅으로 기름을 넣어달라고 한다. 차에서 내린 두놈은 사무실로 다가오며, 한놈이 묻는다. Where is rest room? 그리고 두번째 놈이 내게 동전을 바꿔 달란다. 허리에 매달린 동전교환기로 고개를 숙여 동전을 빼는데 고개 숙인 머리에 딱딱한 금속이 닫는 느낌이 왔다. 고개를 들을라는 순간 목과 머리의 중간부분에 둔탁한 충격이 왔다. 사무실바닥으로 꺼구러진 내게 그놈이 소릴 친다. “This is hold up!!, Give me the Fucking money”, 영문을 몰라 멍해진 내게 그놈이 일어서라고 권총을 들이대며 지시한다. 엉거주춤 일어선 나의 주머니를 뒤지며, 뭐라고 씩씩거리는 그놈. 마침 그 놈들이 오기 조금 전 700달러를 지하실에 전표와 함께 투입했거든. (註; 지하실로 떨어뜨리는 돈은 고무밴드로 똘똘감아 전표와 같이 콘크리트로 된 일방향 투입구로 넣으면 주인 이외엔 다시 꺼낼 수가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비상벨을 누른 후 약 30초 흐르자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경찰사이렌 소리, 결국 내게 몇십달러 밖에 못 챙긴 그놈은 밖의 한패들과 같이 그냥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 놈들이 도망가자마자 들이닥친 경찰차,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주유소 마당. 그놈들은 차 뒷꽁무니 번호판 안에 있는 주유구에 꽂혀있는 주유기 노즐을 뽑지도 않고 그냥 출발하는 바람에 주유기 노즐은 끊어지고 끊어진 주유호스를 통해 휘발유가 엄청나게 새고 있었기 때문에….그리고 경찰의 신문, 마치 영화의 한장면과 같았다.
다음날 난 서둘러 출근하여 주인에게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은 조금만 더 일하다 이따 오후에 새 사람이 나오면 그때 가라며 주급을 계산 해준다. 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