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가을! 땅위의 온갖 꽃들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어서 후손을 번성시키는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는 잎새들은 때깔 고운 빛으로 익어 떨어지며 겨울맞이 채비하는 때 비로소 차꽃(茶花)은 하얗고 가녀린 꽃봉오리를 맺는다. 선녀의 살결같이 뽀얀 꽃잎, 유난히 빛나는 황금빛 꽃술, 그리고 푸른 잎 사이에서 다소곳이 풍겨오는 그윽한 향기. 꽃말과 같이 한 번만이라도 차꽃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추억에 젖게하는 꽃이 바로 차꽃이다.
차나무(학명 Cammellia Sinensis(L))는 차나무과(Theaceae)에 속하는 교목 또는 관목으로 차 잎의 크기에 따라 중국 소엽종과 대엽종, 인도 대엽종(아샘종) 버어마 샨종의 4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동남부, 일본 등지에서 자생, 재배되는 대부분의 차나무는 잎의 크기가 4~5cm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중국 소엽종에 속한다. 차나무는 동백나무와 같은 사철나무 종류라 사시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고, 추운 겨울에 푸른빛을 더 발하는 나무이다.
차꽃은 금년에 자란 햇가지 끝부분이나 줄기의 잎과 가지 사이에서 1~3송이가 핀다. 한송이의 꽃에는 180~240개의 수술이 있고 꽃 받침은 5개이다. 6월경 꽃망울이 서서히 맺기 시작하여 9월 하순 ~10월 하순까지 꽃망울을 피우며 그후에도 꽃망울이 생기나 기온이 낮아져 꽃이 피지 못한다.
흰색 차꽃을 두고 옛사람들은 백의민족(白衣民族)을, 군자(君子)에게는 지조(志操)를, 여자에게는 정절(貞節)을 상징해 왔다. 또한 차나무는 뿌리가 직근(直根)이여서 일반 나무와 다르게 곁가지가 없어 지조와 정조를 상징하였고, 뿌리가 한 줄기로만 땅속 수직으로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래의 자리에서 옮겨 심으면 십중팔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만다. 예전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일원에서 신부가 혼인할 때 다른 예물과 함께 차씨를 예단으로 선물하여 차나무의 맑고 곧은 성정(性情)처럼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차씨는 한 주머니에 여려 개의 씨를 지니는 특성 때문에 다산(多産)을 상징하여 자손이 귀했던 시대에 가문(家門)을 번창시킬 것을 약조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쯤 남녘 차밭에서는 차꽃이 하얗게 피어 마지막 꿀을 모으려는 부지런한 꿀벌의 날개소리와 이따금 톡톡 씨앗 터지는 소리가 늦가을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으리라. 차꽃은 9월에 피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 1월 한 겨울 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다소 흐드러지게 피지만 기온이 낮아지면 꽃잎이 긴장하여 더 맑고 청초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소화(素花)의 꽃으로 누구나 그와의 첫 만남에 특별한 추억이 그려지는 꽃이다. 특히 달빛 아래서 만나는 신비함은 경험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또, 차꽃은 꽃이 필 때쯤에 작년에 피였던 꽃에서 맺은 열매가 익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 하여 금년에 핀 꽃과 작년에 맺은 열매가 함께 공존하는 흔치 않은 꽃이다. 흔히들 근본(根本)을 아는 꽃으로 추앙하여 효자꽃(孝子花)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나의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볼거리이다.
우리나라의 차나무 유래에 관해서는 흥덕왕 3년(828년) 견당사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와 지리산 쌍계사와 화엄사 일대에 심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한 중국 도입설을 비롯하여 가야국의 왕비 '허황후'가 자신의 고향인 지금의 인도지역에서 국내로 들어 올 때 가지고 왔다는 설 등등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근래에 우리나라 자생설이 사람들에게서 많은 회자가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경남 밀양에서는 약 600년이 된 차나무가 발견되었다.
차(茶)나무 재배 북한계선이 서해안에 속해 있는 전북의 변산반도로부터 동해안에 접해있는 울산지역까지라, 추위에 약한 식물이라 중부지방 이북에서는 야외에서는 재배, 자생하기에 부적합한 식물이라 대부분 남부지방에서 재배, 자생하고 있다. 하동 '화계골'을 비롯한 지리산 주위와 전남 영암 일출산 부근, 보성 일원과 광주직할시 근교, 제주도 한라산 부근 등의 차밭들이 유명하다.
♣ 차(茶) 이야기 -
유비는 소년 시절에 중국(中國)의 강남(江南) 지방을 여행하던 중 한 여관에서 좋은 차(茶)를 팔고 있는 차 장수를 만났다. 유비는 문득 자기 어머니가 차를 매우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고 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차장수에게 찻값을 물으니 그 값이 엄청나게 비쌌다. 유비는 그만한 돈이 없었으므로 도저히 차를 사 가지고 갈 형편이 못 되었다. 그러나 효성이 지극했던 소년 유비는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겠다는 마음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보도(寶刀)를 허리에서 풀어 주고 사정사정하여 한 종발의 차와 바꾸었다. 이윽고 여행을 마치고 유비가 고향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반갑게 아들을 맞아 주며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유비의 여행담을 들으면서 기뻐하였다. 유비가 어렵게 구한 차를 내놓으며 어머니를 위해 산 것이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차 항아리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좋은 차를 구해 왔다며 기뻐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차는 물이 좋아야 제 맛을 낼 수 있으니 내일 강 건너 좋은 샘물을 길어다가 달여 마시자면서 차 항아리를 소중히 간수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본 유비는 여행의 피로도 잊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 어머니는 하인에게 강 건너 마을 샘터에 가서 물을 길어 오게 하는 한편 숯불을 피워 물을 끓일 채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차 항아리를 유심히 바라보던 어머니가 문득 유비에게 물었다. "얘야 내가 노자도 넉넉히 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값진 차를 구해 왔느냐?" 어머니는 의아한 얼굴로 유비를 다그쳤다. 유비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깨닫고 자초지정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정색하고 말하였다. "얘야, 네 성의는 고맙다만 그 칼은 우리 집의 소중한 가보이다. 더구나 그 칼은 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네가 이 칼로써 검술을 익혀 대성하라고 신신당부한 유촉이었느니랴. 그런데 어찌하여 그 유촉을 저버리고 그러한 경솔한 짓을 하였느냐!" 어머니는 유비의 경솔한 행동을 꾸짖으며 유비에게 명하였다. "나는 이 차를 마시지 않을 것이니, 이 길로 당장 강남으로 가서 상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 칼을 돌려 받아 오너라!" 유비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곧 강남으로 가서 어렵게 상인을 수소문하여 보도를 되돌려 받았다고 한다.
- 유비가 살았던 때의 중국에서는 칼이라는 것은, 평소에도 중요하지만 특히 집을 떠나 여행을 할 때에는 자기 목숨을 지켜주는 소중한 물건 이였다. 이렇게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을 어머니에 향한 효심어린 유비의 마음을 담을 차를 '유비차'라 하여 현대 녹차(綠茶)를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효심(孝心)을 되색이는 하는 차(茶)로 유명하다.
♣ 이용방법 -
- 차꽃 술 담는 법 -
차꽃은 잘 말려 두었다가 차맛이 떨어질 때 찻잔에 꽃 한송이를 띄워 향기를 살리기도 하고 주당들은 꽃술을 담그기도 한다. 차꽃을 딸 때는 꽃망울이 막 터졌을 때 따야 하얀 꽃잎이 깨끗하고 황금색 꽃술도 아름답다. 꽃을 따면 열매가 맺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작은 가지에도 수많은 꽃이 피기 때문에 꽃을 따줌으로 다음 해 차잎이 건강하게 돋는다고 한다.
차꽃을 오래 보관하려면 말리는 과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 꽃을 따서 바로 비닐봉지에 넣으면 꽃잎이 누렇게 떠버린다. 종이 봉지나 나무상자에 담아 집으로 가져와서 넓은 대나무 채반에 한 송이 한 송이를 떼어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야 본래의 꽃모양과 색깔을 그대로 지니게 된다. 일반적으로 꽃술을 담글 때는 젖은 꽃잎채 담그는데 생꽃으로 술을 담그면 빛깔과 향이 다 우러나오기 전에 꽃잎이 물러져 술이 탁하다. 말려서 사용하는 것이 술빚이 맑고 곱다. 다른 꽃은 향기가 많다가도 마르면 향기가 나지 않지만 차꽃은 마른 후에도 향기를 잃지 않는다. 보관만 잘하면 일년을 두어도 처음 향기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늦가을에 담근 차꽃술은 연말 연시 가족 모임에 마시면 알맞도록 익어 있다. 숙취가 적고 달작해 남녀노소할 것 없이 좋아한다. 세계 어떤 고급 칵테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과 은은한 향기의 차술은 외국손님이 왔을 때 자랑스럽게 대접할 수 있는 우리의 술이다. 1.5리터 짜리 쥬스병 가득 술을 담근다면 마른 차꽃 50g과 소주 작은 것 3병 설탕 50g이면 된다. 술을 즐기는 이들은 설탕을 넣지 않아야 제맛을 낸다고 한다. 설탕은 발효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밀폐할 수 있는 병에 꽃, 설탕 순으로 켜켜로 넣고 꽃잎이 숨 죽으면 소주를 붓는다. 설탕을 넣지 않고 꽃에 술을 바로 부었을 경우에는 마른 꽃잎은 가벼워서 위로 뜨게 된다. 하루에 한번씩 술병을 흔들어 주면 고루 우러나온다. 2~3일이 지나면 꽃이 발효되면서 황금색의 꽃술에서 물감 같은 색을 풀어내 하얀 소주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으로 변한다. 맑은 향기는 소주의 특유한 냄새도 없애준다. 꽃을 오래 담궈 두면 술빚이 탁해진다. 일주일 지나면 걸름망에 술을 바쳐 꽃잎은 걸려 내고 말갛게 바쳐진 차꽃술을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서 한 달쯤 숙성시킨다. 잠 안 오는 긴 겨울밤 차꽃술 한 잔으로 분위기를 돋우면 정분이 없던 부부도 금실이 좋아진다 해 차꽃술을 합환주(合歡酒)라고도 했다.
♣ 村 사람 생각 -
우리는 여행을 하거나, 가벼운 산책길에서 여러 가지의 꽃들과 마주한다. 삶에 있어 행복(幸福)하고, 아름다운 일도 많게 지만 꽃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조금은 다르다. 멀리 집을 떠나 여행길에서 만났던 꽃은 그 계절만 되면 가슴속 한 모퉁이에 추억으로 자리잡아 계절에 따라 생각이 나고, 가벼운 산책길에 만났던 꽃은 오늘도 그 길로 걸어가면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반기며 기다려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네 삶은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롭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고, 즐길 것이 많은 것 같다
♣ '차꽃'과 함께 하기 -
차꽃은 녹차(綠茶)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흔히 보는 꽃이 아니다. 꽃의 생김새가 꽃잎은 흰빛이고 꽃술이 매화와 비슷하여 큰 매화 종류인 줄 알고 백(白) 매화(梅花)와 혼동하는 쉬운 꽃이다. 그러나 쉬운 구별방법은 매화와 비교해서 나무의 키가 작고, 나뭇잎이 동백꽃 같은 사철나무 종류처럼 만져 보면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을 지니고, 향기는 매화 향(香)이 좀 짙으며 차꽃은 은은한 것이 확연히 다르며, 매화 보다는 꽃이 서너 배 크다. 찻꽃을 보기 위해서는, 흔하게 자생하는 나무가 아니어서 지리산 '하동'이나, 전라남도 '보성' 쪽의 차밭으로 가서 만날 수 있으나, 타인(他人)이 수익(受益)을 목적으로 하는 곳에 함부로 들어 갈 수가 없다. 차꽃을 보고 싶다면 차밭에 가서 쥔장을 만나 양해를 구하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차꽃을 본 경험으로 꽃을 본 후의 감동에 비하면 이런 수고는 꽃값(?)으로 지불해도 무방하다 싶다. 꽃을 보고 감동을 얻었다면 다시 한번 쥔장에게 정중한 부탁을 청(請)하고 꽃을 채취하여, 보관 해 두였다가 한 겨울 밖에서 피는 꽃이 드문 계절 방안에서 찻잔에 꽃이 피어오르는 경험을 해보시라. 특히 하이얀 눈이 소리 없이 소복 소복이 내리는 날에 김이 모락 모락 오르는 찻잔에서 흰 빛을 띈 꽃이 피면서 노오란 꽃술의 속을 들어내는 모습이란 말로 형연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정인(情人)과 함께 한다면 그 감흥(感興)은 더욱 할 것이다. 일률적으로 정리된 차밭에서 차나무를 재배하는 곳에서 차꽃을 만나도 좋지만 바위나 다른 종류의 나무와 들풀, 들꽃들이 함께 어울러 있는 야생차밭은 더욱 좋다.
- 차꽃과 함께 하기 좋은 차밭이 있는 곳 - ` 경남 '하동의 화계골' 계곡 좌우에 여러 곳이 있다. 여기는 산바람을 받으며 자란 차나무들에서 핀 꽃이 지리산을 배경으로 대부분 언덕에 자리를 하여 또 다른 멋을 연출한다. ` 전남 순천 '선암사' 일주문 앞에 차밭과 영산전 오른쪽의 나 있는 오솔길로 올라가면 좌측 영산전 바로 뒤 바위와 또 다른 야생화들이 차꽃과 함께 절묘하게 어울리어 노니는 모습이 좋다. ` 전남 '송광사' 부근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자라는 일명(一名) 대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 차(茶)인 죽로차(竹露茶)가 자란다. 푸른빛이 도는 대나무 숲에서 나오는 바람과 푸른 빛깔에 곧게 하늘을 향해 뻗은 대나무와 차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