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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의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9:9-13) 2016. 9.25 주낮
-탈무드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시골에서 농부 한 사람이 삽을 쓸려고 찾아보니 손잡이가 망가져서 쓸 수 없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옆집에 가서 삽 좀 빌려 달라고 해서 가져오라.”
-그런데 옆집에 갔던 아들이 돌아와서 이럽니다.
“삽을 빌려 줄 수 없답니다.”
“뭐야? 삽을 빌려 줄 수 없다고?”
-거절당한 겁니다.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속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옆 집 아들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삽 좀 빌려 달랍니다. 삽이 급히 필요해서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빌려 주라고 합니다. 아들이 항의?
“아니? 얼마 전에 거절당했잖아요? 그런데 빌려 줘요?”
아버지가 설명합니다.
“첫 째, 지난 번에 삽을 빌려 주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도 빌려주지 않는다면, 그건 복수다.
둘째, 만약 옆집은 빌려 주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빌려 주겠다고 하면서 빌려 주면 그건 증오다.
셋 째, 그러나 빌려 달라고 하니, 다른 생각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그저 빌려 주면 그것이 긍휼이다.”
-차를 운전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차가 확 끼어 들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1-첫째, 에이 저런 나쁜 사람 하고 달려가서 맛 좀 보라고 나도 확 끼어 들면서 깜작 놀라게 하면, 그건 복수입니다.
2-에이 형편없는 사람, 에이, 빨리 가려면 아주 빨리 가라? 그러면 증오입니다.
3-허허, 웃으면서 그 사람, 뭔가 바쁜 일이 있는가 보네. 내가 좀 양보하지 뭐 하고 십자가를 생각하면 그게 긍휼입니다.
-추석 연휴가 끝난 19일 월요일 오전 7시쯤 서울 역 광장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노숙자들, 100여명이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와서 담배 꽁초, 술명, 빈 막걸리병 등 쓰레기를 줍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250여명의 노숙인들이 방뇨하고 싸우고 쓰레기 버리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골치를 아프게 하는 서울 역전에서 기적이었다고 합니다. 서울 역 근처를 날마다 청소하는 환경 미화원들이 깜짝 놀랬다고 합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
-서울 역 파출소 경찰관이 무슨 일인가? 조사했답니다.
-청소를 한 노숙인들은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산마루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산마루 교회는 일반교인 100명, 노숙인들 100명이 모이는 교회. 그 교회 밥 얻어 먹으려고 다니다가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노숙자 100명이 우리도 뭔가를 하자, 서울 역 광장을 청소하게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국무총리 지낸 정홍원씨가 아침 식사를 대접해 주겠다고 달려 왔고 몇몇 교회 성도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이건 긍휼이 아닐지라도 긍휼을 배워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살던 노숙인들이 청소를 하면서 긍휼을 배워요.
-성경은 긍휼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긍휼이 심판을 이겨요. 긍휼이 모든 것을 극복해요.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아요.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우리가 마지막에 붙잡아야할 단어도 긍휼입니다.
-예수님이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깜짝 놀랄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세리의 집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아요. 상종도 하지 않아요. 인사도 나누지 않아요. 죄인이니까요.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로마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 뱃속을 채우는 매국노였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 마태의 집에 들어가신 겁니다.
-마태의 집에서 음식까지 잡수셔요. 잔치합니다. 그러니 마태의 친구들이 몰려옵니다. 세리의 친구들이 누가 오겠어요? 세리들이 몰려와요. 마태가 죄인이니 친구도 죄인들만 몰려와요. 버글 버글, 다 세리들이고 죄인들이예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공격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느냐?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더구나 인기가 최고이고 수많이들에게 존경받는 예수님이 이러시면, 진리가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질문한 것입니다. 이를 알고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마9:12-13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아멘
-그런데 주님의 이 대답도 충격적입니다.
-내가 제사보다 긍휼을 원한다. 긍휼을 원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긍휼부터 배우라. 바리새인들아, 너희가 성경 전문가들이고 성경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줄 안다. 그러나 먼저 할 일이 있다, 긍휼의 뜻을 먼저 배워라.
(예)성도 여러분, 복수심은 배울 필요가 없어요. 그냥 화가 나면, 누구에게 무시를 당하면 그냥 복수심이 올라와요. 따로 배울 필요가 없어요. 우리 안에 숨어 있어요.
-증오요? 미움이요? 이건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누군가를 미워하라? 언제 가르쳤나요? 누구에게 배웠나요? 아니오. 그런데 우리 안에 증오가 살고 있어요.
-그래서 복수심과 증오는 싸워야할 대상이예요.
-그냥 놔두면, 병이 되고 끔찍한 일을 저질러요.
-누가 불질렀다? 화재가 났다? 누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복수심 때문입니다. 증오 때문이예요.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나를 싫대요. 여기에 복수심과 증오심이 올라와서 끔찍한 일을 저질러요.
(예)저도 최근에 저도 제 안에 생긴 복수심과 증오심과 싸우는 중입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싸워야 해요. 그냥 놔두면 독이 되고 병이 돼요.
-그런데 긍휼은 배워야 해요. 우리 안에 긍휼이 없어요. 주님의 긍휼을 배우고 연습해서 긍휼을 창조해야 해요. 왜냐하면 우리 안에 긍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삽 좀 빌려 달라고? 지난번에 우리한테는 안 빌려 줬잖아? 나도 못 빌려줘? 이런 복수심이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그래, 빌려 주긴 빌려 주는 데 사람이 그러면 못써? 한 마디 콱 박아 주고 싶어요. 이런 증오심이 있어요.
-그런데 긍휼이란 이것 저것 생각하지 말고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그래요. 삽 여기 있어요. 그게 쉬운 일인가요? 아니오, 배우고, 연습해야 하고
-왜 긍휼을 배워야 하는가? 그건 누군가를 긍휼히 여겨야 하나님 앞에 가서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붙잡아야할 것이 하나님의 긍휼이예요.
-내가 부족해요.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어요.
-그때에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긍휼하심 때문이예요.
-그런데 누군가를 긍휼히 여겨야 긍휼히 여김을 받아요.
(예)제가 분쟁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서 실감한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긍휼히 여김이 없어요. 그럼 어쩌지요? 복수심과 증오심 밖에 없어요. 제가 답답한 겁니다. 그러면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긍휼이 없어요.
-긍휼이란, 높은 데서 쏟는 사랑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지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사랑이다, 여러 가지 설명이 있어요. 단어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오늘은 마태의 집에 들어가셔서 세리와 죄인과 식사를 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긍휼이 무엇인가를 3가지로 나누어 봅니다. 이건 배워야 해요. 연습해야지요. 나는 아직 이러지 못한다 해도 괜찮아요. 배우면 되고 연습하면 되는 거니까요.
1-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란? 덮어주는 마음이예요. 덮어주는 걸 배우고 연습해야, 긍휼의 뜻을 알 수 있어요.
-바리새인들은 세리들을 공격합니다. 너희는 죄인이다. 너희는 매국노다. 너희는 율법도 모르는 사악한 자들이다?
-공격하고 비판하고 비웃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마태의 집에 들어가세요. 그 중심을 보신 겁니다. 마태의 영적인 갈급함을 보셨어요. 심령이 가난함을 읽으셨어요.
-그래서 덮어 주세요. 허물과 죄를 다 덮어 주세요. 그게 주님의 긍휼하심이예요.
-우리가 받은 사랑도 긍휼하심이지요.
(예)저는 늘 고백합니다. 저는 목사로서는 하나님 앞에 못 가겠어요. 목사라는 명페 떼고 가야겠다, 너무 부족함이 많고 결점이 많아요. 그냥 성도로 가리라고 다짐합니다만, 성도가 좋아요.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주님은 덮어 주실 거예요. 저의 허물과 죄를 덮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저도 어떤 목사님을 만나면서 덮어주는 연습을 하지요.
(예)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머님에게 꾸중 들은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어머님은 저를 잘못했다고 혼내신 적이 없어요.
-뭔가 아버님에게 잘못해서 유성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어라. 그래서 무릎을 꿇고, 저는 거출해 버렸어요.
-갈데가 있어야지요. 대청댐, 그땐 내탑이라고 했어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깜짝 놀라세요? 아니?
-아버님은 경찰서에 신고하셔서 수배 당했어요.
-하루 만에 집에 돌아왔어요. 어머님은 괜찮아, 잘 왔어, 그리고 우셨어요. 울기만 하셨어요. 한 번도 꾸중하시지 않았어요. 제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삐딱하게 되지 않은 이유는 어머님 때문이예요. 가출해서 외갓집에 가 있을 때에도
-어머님이 걱정되는 겁니다. 어머님이 거정하시면 어쩌나?
-다 덮어 주셨어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약함을 십자가로 다 덮어 주셨다면, 우리도 이제 다른 사람을 덮어 주는 걸 연습하고 배워야지요. 이게 너무 힘들어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가능해요.
-긍휼의 뜻을 배워라.
(예)누가 잘못해요? 공격하지 맙시다. 비판하지 맙시다. 덮어 주세요. 그게 긍휼을 배우는 첫 걸음이예요.
-더구나 교회에서 하는 일은 다 잘한 겁니다.
-저는 봉사하시는 모습만 뵈도 감사해요. 시간 내서 수고하시잖아요.
-부족해도 괜찮아요.
(예)뇌내 혁명이라는 책이 있어요. 두 번 째 나온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도 의사고 아버지도 의사고 손자도 의사인 집안입니다.
-할아버지 의사가 손자 의사에게 늘 하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손자야, 환자가 오시면 그저 미안합니다, 속으로 그래라.”
-왜? 미리 알고 아프지 않게 예방했어야 하는데, 내가 부족해서 이렇게 환자를 아프게 했으니, 내가 의술이 부족해서,
-그러니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환자 대하라.
-어디 이런 의사 선생님 안계실까요?
-의사 뿐이겠습니까? 누구나 이런 마음으로 살면 얼마나?
-가족들을 볼 때, 미안하구나. 밥 제대로 못해 줘서, 좀 더 편안하게 못해 줘서, 학생들은 부모님의 소원대로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서로 덮어 주십시다. 이걸 배워요. 조금씩, 상대방에게 미안하잖아요.
-주님이 우리를 이미 덮어 주셨어요. 그걸 닮아가는 것
2-긍휼을 배워라. 두 번 째 배울 것, 참고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우리 반사적으로 말하지 마십시다. 반사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고 한 번 생각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반사적으로 말하다가 실수가 많아요. 상처를 많이 줘요. 반사적으로 행동하다가 부작용이 많아요.
(예)어느 분이 손자를 보셨어요. 얼마나 귀여운지, 70 넘은 할아버지가 손자와 같이 친구처럼 놀아요. 그런데 귀한 손님이 오셨어요. 차 한 잔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손자가 들어왔어요. 늘 하던 것처럼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요.
-그러더니 늘 하던대로 할아버지 수염을 만지작 거리더니 획 잡아 돌려요. 그러니 고개가 획 돌아가요. 할아버지가 체면이 잘이 아닙니다. 어허, 이러면 이놈 한다. 그러니까 손자가 대답합니다. 어허, 이놈이 어제와 다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참아 줘요. 기다려줘요. 언젠가 자라면, 나이가 들면 알거예요.
(예)주님이 십자가를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누가 크냐로 싸워요. 그저 누가 크냐? 누가 높으냐? 이게 문제예요.
-아니예요. 우리 교회는 누가 작으냐? 누가 낮으냐 이걸 갖고 싸워야 하는데요.
-그걸 아시고 주님은 대야를 준비하시고 제자들을 발을 씻기셨어요. 베드로가 펄펄 뛰었지만, 선생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어요.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3:6-7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지금은 모르지만 이 후에는 알 것이다. 심자가 이후에, 주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이 임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면 아하, 그렇구나, 서로 발 씻기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구나.
-그러니 참고 기다려야지요.
-너무 조급해요. 좀 기다려야지요. 좀 참아줘야지요.
-너무 잔소리하지 말래요.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잔소리 때문에 명절에 고향도 찾지 않는 대요. 잔소리 때문에 마음에 금이가요. 상처가 생겨요. 면역력이 떨어진대요.
-주님은 한없이 기다리셨어요.
(예)탕자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유산을 미리 갖고 멀리 가 버렸어요. 전화도 없던 시절입니다. 어디 가서 무얼 하는 지, 밥은 먹는지? 탕자의 아버지는 기다리시잖아요. 날마다 날마다,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잖아요.
-그게 아버지의 마음이예요. 긍휼을 품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긍휼의 뜻을 배우려면 참고 기다리는 법부터 연습해야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아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데요.
-기도하고 기다려요. 말씀을 붙들고 기다려요.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멀리서 지금을 내다 보고 나그네처럼 살아갔어요.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지요.
(예)다윗의 기다림을 보면 정말 감탄할 수 밖에 없어요.
-사울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어요. 그런데 살려요. 내가 처리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기다려요.
-하나님의 소관은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기다려요.
3-긍휼의 뜻을 배우는 일은, 그 사람과 같아지는 일입니다.
-주님이 마태와 같아져요. 그 집에 들어가고 세리들과 식사를 해요. 내 명예를 마태에게 주는 겁니다. 이것이 긍휼이지요. 이걸 배우는 것, 누구와 같아지는 걸 배우는 것, 이것이 긍휼을 배우는 일입니다.
(예)저 사람과 같아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목회자의 고민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자 점심 때, 돌 잔치가 있었어요.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고
-그런데 저녁에는 어려움을 당한 분이 계세요. 그럼 그 분과 같아져야지요. 그러니까 즐거워하는 분과 같은 마음을 가졌다가, 곧 슬픈 당한 분과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아요.
#롬12:14-15 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요?
-사실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은 괜찮아요.
-그런데 즐거워하는 자들과? 이웃이 잘됐어요? 아이가 잘됐어요? 함께 즐거워한다? 참 힘들어요.
-저는, 설교 잘하는 분들이 하는 방송이 나오면 꺼 버려요. 그랬다가 회개하고 다시 틀어요.
-같아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그러나 긍휼의 뜻을 배우려면 조금씩 연습해야지요.
(예)1950년 대, 소록도는 나병환자들이 6 천여 명이나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록도 소문을 듣고 오스트리아에서 수녀 두 분이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라렛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를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43년 동안, 나병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고름이 철철 흐르는 데 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약을 발라 줬다고 해요. 음식도 마련해 주고, 온갖 정성을 다했어요. 함께 살며 함께 먹고 함께 울고, 나병환자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셨어요.
-회갑이 되어서 잔치를 해 드리려고 했는데 기도하러 간다고 피해 버렸어요. 본국에서 오는 모든 생활비를 환자들에게 우유와 간식비로 써 버렸어요.
-그리고 은퇴할 나이가 됐어요.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어드리려고 했는 데,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고 해요. 편지 제목이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이제 나이가 들어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우리는 너무 부족한 사람들이었는데,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고, 혹시 우리가 부족해서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으면 용서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소록도에 남은 분들이 한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소록도 전체가 울었다고 해요.
-소록도에 있는 두 분이 살던 3평짜리 방문 앞에는 한국말로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합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우리가 여기에 이르지는 못해도 그 사람과 같아지는 연습은 할 것입니다. 슬픈 사람을 만나면, 즐거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아지셨으니까요. 아예 육신을 입고 오시고 십자가에 죄인처럼 죽으셨으까요. 십자가의 사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긍휼입니다.
-우리가 긍휼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제사보다 긍휼의 뜻을 배워라. 덮어 주는 연습, 참고 기다려 주는 걸 배워요. 그 사람과 같아지는 걸 배워요.
-긍휼을 배우면서 우리가 주님의 긍휼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ㅡ한용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