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1.
머레이 겔만이라는 입자물리학자가 있다. 그는 교만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이런 말을 했다.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보다 더 크다.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은 금붕어와 전혀 다를 바 없다.”
듣고 보니 애들 말로 ‘졸라’ 기분 나쁘다. 최소한 우리는 기억력이 3초에 불과하다는 금붕어에 비견되는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양자역학을 알아야겠다. 아니, 이 <수학과 문화>, <수학의 세계>, <이산수학>, <미분방정식>, <선형대수> ... 를 따라가기도 바쁜데 어느 세월에? 그런데 양자역학의 노대가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을 보아도 머리가 어지럽지 않다면 비정상이다’고 단언한 바 있다. 우유선전에까지 나올 정도로 브랜드 파워가 막강한 현대과학의 대명사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의 예측과 결과는 인정하지만, 그 핵심사항인 중첩과 측정에 관한 해석에서는 죽을 때까지 양자론자들과 일치를 보지 못하고 논쟁을 했다. 아인슈타인이 무덤에 갈 때까지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입장은 “나는 신이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음을 하진 않을 것이라 봅니다”는 말에 녹아 있다. 그렇지만 양자론 진영의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시지요”라고 맞받았다. 이쯤 되면 아무튼 겔만의 교만에는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다.
내친 김에, 지금 당장 양자역학을 모르더라도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위로가 되는 말 한 마디 더. 정보이론의 창시자 클로드 새논이 ‘정보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그 발단에는 폰 노이만의 권유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준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엔트로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걸고넘어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럼 그럼, 폰 노이만이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 아무도 모르지.
정반대의 마찬가지 논리로, 천학비재인 나 같은 사람도 주절거리는 양자컴퓨터에 대한 몇 마디쯤이라면, 세상 누가 못 알아들을 것인가. 그럼 그럼, 하물며 믿음직한 우리 <수학과 문화>, <수학의 세계>, <이산수학>, <미분방정식>, <선형대수> ... 수강생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사설이 길었다.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그 이전의 역학은 이름을 고전역학이라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기존의 컴퓨터는 고전컴퓨터라 부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추산하기를 15년 후에 그렇게 되리라 전망하는데, 우리도 소급해서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사설이 길었던 관계로 오늘은 양자컴퓨터를 생각하게 만든 배경 중 소극적인 배경에 해당하는 고전컴퓨터의 한계만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하루가 다르게 대형화되는 정보에 대한 보다 빠른 처리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추세다. 그런 일은 인간의 수작업을 떠나 아예 컴퓨터에 맡긴지 오래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도는 컴퓨터를 개선시키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과 같은 폰 노이만 방식의 고전컴퓨터 체계로는 ‘개선 자체’에 피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보자.
양자컴퓨터의 등장을 15년 후로 추산하는 근거는 반도체 업계에서 이야기하는 무어의 법칙,
즉 메모리용량이나 CPU속도가 1.5년 만에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에 따른 것이다.
(1) 동일한 추세를 가정하여 계산할 때 기존의 고전컴퓨터는 2020년이 되면 일정면적에 비해 커진 메모리용량 때문에 한 비트 저장하는 메모리의 크기가 대략 원자 하나 크기로 아주 작아져야 한다.
그런데 메모리의 크기가 그만큼 작아지기 훨씬 전인 수십 나노미터 정도일 때부터 이미 고전적 방식의 메모리는 작동할 수 없다. 이유는 ‘양자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양자효과란 극미시적 세계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으로 거시적 일상세계에서는 검출되지 않는 판이한 현상들이라 해 두자.)
(2) 동일한 추세를 가정하여 계산할 때 기존의 고전컴퓨터는 CPU가 사용하는 에너지 또한 엄청나게 커진다. (요즘?) 펜티엄칩의 연산속도는 기가 헤르츠, 즉 1초에 10억 개의 연산 작업을 한다. 2020년이면 연산속도가 1000배가량 빨라지므로 초당 발생하는 열도 1000배가 된다. 컴퓨터를 녹여버릴 열이다. 지금도 발생에너지를 줄이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그 미진한 부분은 냉각장치를 통해 근근이 해결하고 있다. (예전 PC는 몸체에만 냉각 팬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CPU칩 자체에도 냉각 팬이 붙어 나온다.)
(3) 운 좋게 열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여 컴퓨터가 녹아버리는 사태는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문제가 기다린다. 에너지도 계속 지수적으로 줄여서 나감으로써 발생 총열량이 지금과 같은 정도로 유지하게 된다면, 2020년에는 CPU가 연산 하나를 수행하는 데 드는 에너지는 분자 하나의 운동에너지에 불과해진다. 그런데 이 말은 주변의 조그만 잡음신호에도 연산이 부정확하게 되고, 연산을 하지 않을 때에도 잡음신호 때문에 엉뚱한 연산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 역시 달갑지 않은 양자효과의 하나! (하물며 냉각 팬이 주렁주렁 달릴 경우라면, 그 굉음(극미시적 세계에서는 분명 굉음)으로 인하여 컴퓨터의 본유 덕목인 정확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상 간단히 요약해 본 고전컴퓨터의 한계도 알고 보면 비현실적으로만 보였던 양자역학적 극미세계마저 우리 일상으로 편입되어가는 소위 현대과학의 ‘비신화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비신화화는 역사 속에 늘 있었다. 지금 당면하여 진행 중인 우리의 비신화화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양자컴퓨터일 따름이다. 글을 원샷에 올리고 털려다 보니 자꾸 늦어져서 쪼개 싣기로 했다. 한동안 감질나게 글이 이어진다고 해도 짜증난다고 컴퓨터를 박살내진 말도록. 아직은 고전컴퓨터 시대니까! ^..^
- 곧 이어집니다. -
첫댓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