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ek 21. 사르 - 딤로이 - 칠라스 / 18.4km(도보만)
Sar (2740m) - Dimroi (1610m) - Chilas (1065m)
7. 28. (목)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아침이 밝았다. 잠을 설쳤고 아침 식사는 여전히 부실하지만 어쨌든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참을 만하다. 학교 앞 마당이 장터처럼 복잡하다. 이 마을에서도 추가로 포터를 고용한 모양이다. 흰 옷을 입은 어린 소년도 포터로 나섰다. 어제 보니 이 동네 골목대장인지 꼬맹이들을 다잡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도 당연히 모두 나와 있다. 누군들 이런 구경거리를 놓칠소냐. 나라도 구경하러 나왔을 것이다. 아이들 입성도 그렇고 뭔가 배가 고픈 모양새다. 이 산골에서 나오는 식품은 감자와 옥수수, 과일은 살구와 호두 뿐이다. 목축으로 기른 염소를 팔아 쌀과 밀가루를 사서 짜파티를 만들어 끼니를 때우는 형편이니 배부르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
동네 꼬마들을 본 마음씨 좋은 대표님이 가지고 있던 견과류와 과자를 나누어 준다. 그리고 우리 앞으로 나온 치즈(원형인데 8조각으로 나뉘어져 개별포장된)를 아이들에게 주려고 한다. 대표님은 운행 중 자신의 몫으로 받은 점심용 계란이나 견과를 포터들에게 주곤 했다.
오늘도 치즈를 나누어 주려는 것을 우리가 먹을 치즈니 주지 말라고 말렸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누어 주는 것이 좋았다. 트레킹 도중 쉬는 시간에 그 치즈를 먹는 대원을 보지 못했다. 나도 받은 적이 없다. 더워서 오직 물과 에너지 보충용으로 사탕만 먹었다. 출발 전 8조각 중 대표님 몫 한 조각을 한 꼬마에게 준 것은 보았는데 남은 7조각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대표님이 챙겼으니 운행 중 포터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곳 사람들도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틈만 나면 먹는 다양한 종류의 과자를 이런 깡촌에서는 평소에는 구경조차 하지못한다. 어린 아이들은 또 얼마나 먹고 싶겠는가!
가날로 피크(6606m)
6시 35분 출발. 처음은 산비탈 오르막이다. 파키스탄은 파키스탄이다. 트레킹 마지막 날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스틱을 하나만 짚고 가니 운행이 어색하다. 낭가 파르밧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1시간 운행하여 계곡 바닥으로 내려와 계류를 건넜다. 이제부터는 완편 산기슭을 타고 간다. 계곡 바닥은 다시 아래로 점점 멀어지고 있다.
1978년 6월, 34세의 메스너는 디아미르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다. 그의 네 번째 낭가 파르밧 방문이었다.
"나는 전에 이 골짜기에 세 번이나 온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비극의 1970년, 나는 동생 귄터를 잃고 낭가 파르밧을 횡단하여 완전히 탈진 상태로 헛소리를 하며 이 골짜기를 내려왔었다. 1971년에는 동생의 시신을 찾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았다. 1973년에는 최초로 단독 등반을 시도하고자 이곳에 왔었다. 그리고 지금 네 번째로 다시 여기에 왔다. 나는 내가 태어나서 자란 휠뇌스 골짜기만큼 이곳을 잘 알고 있다.
디아미르 계곡에는 40~50세대가 살고 있었다. 나는 누가 어디에 살며 어느 애가 누구 집 아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1973년 이후 무척 많이 자란 것을 보고 놀랐다. 특히 어린애들이 그랬다. 또 1970년 당시 산에서 내려올 때 걷지 못하는 나를 부축해 준 남자들도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김영도 옮김 <검은 고독 흰고독>에서)
메스너는 1970년 낭가 파르밧 등정 후 마나슬루(1972), 가셔브럼 1(1975), 그리고 에베레스트(1978.5)까지 모두 최초로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그 중 가샤브럼 1과 에베레스트는 오스트리아 등반가 페터 하벨러와 함께 등반했다. 그리고 단 6주 후 낭가 파르밧 단독 무산소 등정을 위해 디아미르 베이스캠프로 온다.
당시 파키스탄 등반 규칙에는 베이스캠프까지 의무대원과 연락장교를 대동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원정 허가비는 1200달러. 메스너는 의무대원으로 선발한 의대 졸업반 여학생인 28세의 우즐라 그레터와 함께 파키스탄으로 온다. 두 사람은 로마에서 라왈핀디(이슬라마바드 남쪽 12km)까지 운행되고 있는 직항을 타고 라왈핀디로 왔다. 그리고 연락장교로 배치받은 육군 소령 테리(본명은 모하메드 타히르)를 만난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아직 완공되지 않았지만 차량 통행은 가능해서 라왈핀디에서 3일이면 디아미르 베이스캠프까지 갈 수 있다. 그런데 공사를 맡은 중국측이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외국인의 통행을 금지시켜 차량을 이용할 수 없었다. 메스너는 식량을 구입하여 포터 6명을 고용해 카간 계곡을 출발하여 나란을 거쳐 바부사르 고개를 넘고 디아미르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을 해야 했다.
포장이 되지 않은 거친 산길이었던 당시의 바부사르 고개는 노상강도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어서 긴장했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포터는 그 지역에서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이 바뀌면서 포터들 교체 문제로 골치를 썩기도 했다. 디아미르 계곡에 들어선 후에야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하니 낭가 파르밧 트레킹을 경험한 지금 그 기분이 이해가 간다.
베이스캠프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에 메스너는 8월 6일 정오, 10일분의 식량이 든 15kg의 배낭을 매고 홀로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고군분투하여 3일 후인 8월 9일 오후 4시 낭가 파르밧 정상에 오른다. 히말라야 8천 미터급 첫 무산소 단독등반이었다. 하산 역시 고생 끝에 8월 11일 베이스캠프로 무사히 귀환한다. 단 5일 만에 왕복을 한 것이다.
파트너의 도움과 자일도 없이 혼자 정상을 오르고 내려오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는 많은 원정대들의 캠프 구축 영상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군분투한 그의 노력은 그의 책 <검은 고독 흰 고독>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가 오른 루트는 신루트로 명명되었지만 너무 어려운 루트라 그 후 그 루트를 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62년 두 번째 낭가 파르밧 등정에 성공한 독일팀의(이 때의 원정도 헤를리히코퍼가 대장이었다) 킨스호프가 오른 루트를 노멀 루트라고 부르고 대부분의 원정대는 이 루트를 제일 선호한다. 2022년 아르헨티나 팀이 킨스호퍼 루트로 오르는 영상에서 바위벽에 여러 원정대가 설치한 로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검은 고독 흰 고독>을 읽으면서 메스너의 깊은 내면의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책에는 머메리로 시작된 낭가 파르밧 등정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번 정상 등정과정에서 힘들었던 여러 상황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혼자서 기계식 카메라로 셀카를 찍는 일도 보통 아닐텐데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책에서 한 가지 더 인상깊은 대목은 메스너가 정상 등정 전 워밍업 차원에서 베이스캠프 북동쪽에 있는 가날로 봉(6603m)을 우즐라와 함께 오른 사실이다. 메스너야 프로 중의 프로 산악인이니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의무대원 우즐라는 트레커 정도 수준이었다. 홀로 세계 곳곳을 여행했고 산악지대를 걷는 것을 좋아하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 온 경험이 있다지만, 그 정도의 경험만으로 28세의 여성이 6600m 고봉을 등정 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4200m의 베이스캠프에서 이틀만에 고도를 2400m 올리는 일은 결코 쉬운 등반이 아니다. 우즐라도 타고난 등반 체질을 지니고 있었는 듯하다.
청포도와 콜라
까마득한 계곡을 내려다 보며 걸었다. 이 길에 그늘이 있는 곳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그늘이 나오면 발길을 멈추고 땀을 식힌다. 쉴 때 사탕과 물은 필수다. 아래에서 당나귀에 짐을 싣고 올라오던 주민 두 사람이 우리가 쉬는 곳에 오자 멈추고 쉰다. 오르막이니 더 힘들 것이다. 사탕 하나씩 배급. 그들이 보조 가이드 아쉬라프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당나귀들은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다.
다시 운행. 지그재그길을 잘 못 올라가 되돌아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길이 넓어졌다. 도로 확장공사를 하다가 중지한 상태다. 바위에는 4K RD라고 쓰여 있는 걸로 보아 4km 구간을 넓히는 모양이다. 길은 곧 다시 좁아졌다. 한 가족이 올라오고 있다. 짐을 든 남편과 어린 아기를 업은 엄마. 젊은 사람들이다. 남편이 손짓으로 펜이 있으면 달라고 한다. 우르두어는 모르지만 펜이라는 말은 들린다. 가지고 있는 여분의 3색펜을 주니 고마워 한다.
이런 오지에서는 모든 것이 귀하다. 쿠티 갈리에서는 아이들이 주방팀이 다 먹고 내 놓은 빈 깡통까지 주워갔다. 예전 네팔 트레킹 때는 학용품을 가져가 산골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네팔은 이제 그럴 정도의 오지는 드물다. 아니 산간 오지야 지금도 널려 있지만 일반 트레커들이 갈 수 있는 오지는 별로 없다. 그렇지만 파키스탄은, 특히 낭가 파르밧 트레킹 중 들르는 산골 마을은 네팔 오지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외로운 곳이다. 미리 알았으면 학용품을 조금 챙겨왔으면 좋았다.
오전 10시 10분, 계곡 옆 나무 군락지에 도착했다. 그늘이 시원하다. 갑자기 수쿠르가 청포도를 가득 따왔다. 큰 나무 옆에 아주 오래된 포도나무 줄기가 있다. 그 포도나무에 달린 청포도다. 이렇게 큰 포도나무는 처음 본다. 모두들 한 송이씩 받아 맛있게 먹었다. 청포도를 보니 이육사의 시 <청포도>가 떠올랐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때는 교과서에 실려 있어 모두 외웠다(시험 때문에).
그리고 다시 20여 분 열심히 걸어 가니 누가 어떻게 준비했는지는 모르지만(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펩시 콜라가 기다리고 있다.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 아래 4시간 이상 운행을 한 터고 저지대라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나고 갈증이 났다. 그런데 콜라라니! 너무나 반갑다. 모두들 다시 환호작약한다.
한 컵 받아 맛있게 마시는데 히잡을 쓴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등에 짐을 지고 내려온다. 짐이 무거운지 허리를 숙인 상태인데 얼굴이 땀 범벅이다. 반쯤 남은 컵을 내미니 받아서 얼마나 맛있게 마시는지 보기가 짠했다. 어린 나이부터 집안 일을 도우는 것은 전형적인 농경 목축 사회의 생활방식이지만 도시에 사는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칠라스 - 원정대와 트레킹 팀의 경유지
10시 50분, 딤로이(1600m)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서 낭가 파르밧 원정대들의 카라반이 시작된다. 대부대가 이동하는 원정대들은 위쪽에 있는 할랄레이(Halaley) 다리를 건너지만 마을 사람들은 지름길로 마을 앞에 외줄 곤돌라를 만들어 다니고 있다. 2009년 7월 26일 KBS에서 방영한 <히말라야 14좌의 꿈, 고미영 낭가 파르밧에 잠들다>에서 고미영 대장이 할랄레이 다리를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다른 원정대들의 영상에도 자주 보이는 다리다.
현재 딤로이 마을 앞 계곡에 장차 큰 다리를 놓을 계획으로 교대(다리 지지대)를 올리는 공사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매달려 철근을 고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하세월이다. 그래도 시작을 했으니 언젠가는 완공되리라 생각한다. 계곡 바닥으로 내려가니 짐을 곤돌라에 실어 나르고 있다. 이어 우리들도 차례로 계곡을 건넜다.
곤돌라를 타고 건너 내리니 그곳에 있던 동네 꼬마가 내 스틱을 달라고 한다. 달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스틱이나 다른 물건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달라고 할 때는 주지 않는 것이 좋다. 버릇이 되면 아이들 성격을 구차하게 만들 수 있다.
참고로 등산 스틱(stick)을 스톡(stock)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을 최근 서울대교수산악회 K2 트레킹 책에 실려 있는 장비목록을 보고 알았다. 스틱은 영어로 막대기란 뜻이고 스톡은 독어로 나무줄기라는 뜻이다(발음은 슈토크). 독일에서 스키에서 쓰는 폴을 스키슈토크(skistock)라고 한다. 등산용어에 독일어가 많은 것은 독일이 등반과 등산장비 개발에 끼친 영향이 컷기 때문일 것이다(영국, 독일, 프랑스가 3대장이다). 아이젠, 하켄, 안자일렌, 피켈은 독어고 비박, 꿀르와르, 세락, 크레바스는은 불어다.
카고백에서 샌들을 꺼내 신고 차고 거센 빙하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찬물 족욕이다. 써니님도 동참한다. 길고 힘들었던 낭가 파르밧 서키트 트레킹이 끝났다. 이제는 마지막 4일 간 운행에 수고한 포터들과 헤어지는 시간이다. 가이드 에싼이 장부에 적인 포터 명단을 보고 호명하면 서란님의 도움을 받아 리더인 작가님이 그 포터와 악수를 하고 팁을 주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거운 시간이다.
대기하고 있던 두 대의 지프에 나누어 탔다. 앞차에는 가이드와 강경파, 뒷차에는 온건파와 주방팀이 타고 카라코람 하이웨이와 만나는 부나르 다스(Bunar das)로 간다. 역시 아슬아슬한 절벽길이다. 커브를 돌 때마다 스릴이 넘쳐 온 몸이 찌릿찌릿하다. 딤로이에서 부나르 다스까지는 거리가 13km이고 부나르 다스에서 오늘의 목적지 칠라스까지는 23km다.
부나르 다스에 가까와지니 절벽길이 끝나고 평지 아스팔트 길이 나온다. 비로소 긴장이 풀린다. 곧 넓은 카라코람 하이웨이 길과 만나 칠라스와 반대 방향에 있는 경찰 체크포스트로 가 체크를 하고 되돌아 칠라스로 향했다. 날이 엄청 덥다. 콜라와 사이다로 목을 축이며 인더스 강을 따라 나 있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려 오후 2시 이 지역에서 제일 큰 도시 칠라스에 도착했다.
칠라스는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파키스탄 히말라야 원정대/트레커팀들이 스카루드까지 항공편을 이용하지 못하면 반드시 경유하여 하루 묵는 곳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칠라스까지 최소 15시간 걸리니 더 이상 갈 수도 없다. 그러고 보면 에이전시에서 짜 준 일정표에 있는 첫날 이슬라마바드에서 아스토레까지 하루에 가는 일정은 문제가 있다. 이곳 칠라스에서 아스토레까지 114km 거리로 도로 사정을 감안하면 적어도 4시간 이상 걸린다.
칠라스 숙소는 샹그릴라 호텔. 인더스강 바로 옆에 있는 원정대와 트레킹 들의 단골 숙소다. 샹그릴라 호텔(Shangri-La Hotels and Resorts)은 홍콩에 본사를 둔 호텔체인이다. 이 호텔은 아시아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중 최대규모의 고급호텔그룹이다. 1971년에 싱가포르에서 최초로 개업한 이래 현재는 전 세계에 65개의 호텔과 리조트, 객실 규모 27000개를 자랑한다고.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에도 같은 그룹의 샹그릴라 호텔이 있다. 모두 5성급이고 묵어본 적이 있다. 칠라스 샹그릴라는 낡았다. 처음 오픈 때는 깔끔했겠지만 주로 단체 원정대와 트레킹 팀을 상대로 하는 거친 카라코람 하이웨이에 있는 호텔이라 그렇게 변한 것이리라. 에어컨이 없고 천장에 실링팬과 강력한 송풍팬이 벽에 있다. 그래도 인더스강변에 있는 넓은 리조트여서 공간이 여유 있고 방도 넓다. (사진: 위-카트만두, 아래 포카라 샹그릴라 호텔)
짐이 도착했다. 방에 줄을 치고 빨래부터 해서 널었다가 나중에 바깥 정원 난간에 널었다. 점심을 먹으라는 연락이 왔으나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고 빨래 하느라 피곤하여 그냥 침대에 누워 쉬었다.
쫑파티를 겸한 저녁식사
저녁을 먹기 전 호텔 정문으로 가니 경비원이 총을 소지하고 지키고 있다. 잠시 잘 통하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팁으로 100루피를 주었다. 마침 수쿠루도 왔길래 남은 루피가 있어 100루피 주었다. 우리 돈 600원에 불과하지만 서로 기분이 좋다.
호텔 리셉션을 지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스태프들과 함께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다. 네팔이라면 롯지에서 거창하게 춤과 노래를 곁들인 신나는 파티를 한다. 트레커와 스태프 모두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다. 또 스태프들은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팁을 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파키스탄은 그런 행사가 없어 조금 섭섭했다. 라다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처음 본 쫑파티는 네 번째 히말라야 트레킹이었던 2004년 헬람부-랑탕 트레킹 때였다. 택시를 타고 카트만두를 출발 순다리잘에서 내려 운행을 시작해 치소빠니에서 첫 밤을 맞이했다. 랑탕 트레킹은 보통 랑탕 밸리의 샤브르베시에서 시작하지만 나는 <예티존> Ian의 랑탕-헬람부 트레킹 가이드북을 따라 헬람부에서 시작해 랑탕 밸리로 들어가는 일정을 짰다. 그날 저녁 치소빠니에서 트레킹을 마친 단체팀의 흥겨운 쫑파티를 처음 보았다.
"옥상에 올라가 랑탕 히말을 한참 바라보았다. 바람이 많이 분다. 치소빠니의 뜻이 '찬물'이니 찬 바람이 많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산 능선 꼭대기에 위치한 치소빠니는 바람의 길목이다. 배고픈 탓에 저녁을 맛있게 먹고 일찍 잠을 자다가 밤중에 '자연의 부름'을 받고 일어났다. 창문에는 김이 서려 있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희미한 달빛 아래 산 전체가 운무에 싸여 있다. 아랫집 롯지 마당에서는 트레킹 마친 캠핑트레킹 팀이 모여 술마시고 노래하고 출추면서 놀고 있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2004 헬람부-랑탕 트레킹 day 1 / 11. 20)
그 때는 가이드 삼툭과 롯지 트레킹을 하던 참이라 캠핑 트레킹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러나 2년 후인 2006년 어퍼 무스탕 트레킹을 캠핑으로 하면서 마지막날 좀솜에서 쫑파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네팔에서만 다섯 번 더 캠핑 트레킹을 했고 그때마다 모두가 신나는 음주가무 춤판이 벌어졌다.
식사 전 스태프들에게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팁을 주고 함께 저녁을 먹는 것으로 쫑파티는 허무하게(?) 끝났다. 스태프들과 주고 받는 인사말도 없는 쿨한 상황이 조금 낮설었다.
21일 간의 길고 거칠었던 낭가 파르밧 서키트 트레킹을 마쳤다. 이제 더 이상 걷는 일은 없다. 고생은 끝났다. 내일은 나란까지만 간다. 날짜에 여유가 있어 굳이 무리해서 15시간 걸리는 이슬라마바드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천만 다행이다. 모두들 열심히 잘 걸은 덕분이다.
킨스호퍼 루트를 오르는 2022년 아르헨티나 원정대. 원정대들이 설치한 고정로프가 많다.
가날로 피크. 베이스캠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무타트 하이캠프에서 조그맣게 보이는 가날로 피크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출발준비로 바쁘다. 이 동네 골목대장으로 보이는 열 대여섯 살 소년도 포터로 나섰다.
환송 나온 동네 꼬마들
먼저 출발합니다.
한참 오른 후 뒤돌아 보다. 멀리 배경에 낭가 파르밧 주봉이 보인다. 아래에서 올라올 때 저 설산을 보면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미끄러운 산비탈길
고도가 낮은 질(Jil) 마을에는 옥수수가 많이 자라고 있다.
농사용 관개수로
계곡을 건너
반대쪽 산비탈길로 오른다.
당나귀도 짐을 싣고 함께 간다.
휴식시간. 비탈길이라 긱자 알아서 자리를 잡는다.
외길 교통체증
8시. 까마득한 절벽길 통과. 마지막날까지 이렇게 험한 길이 나올 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사진클릭-큰 사진)
8시 40분 휴식. 우리가 내려 온 길을 뒤돌아 보다.
아래에서 당나귀에 짐을 싣고 올라오는 주민들도 우리를 보고 잠시 휴식
무슨 얘기를 하는 지 나는 알지 못커라.
당나귀도 쉬는 김에 잠시 졸고
계곡 건너편 산비탈에도 길이 있다.
까마득한 벼랑길에 제법 넓은 도로가 나왔다.
현재 4km 확장공사 중인데 완공은 백년하청이다.
계곡 옆으로 관개수로를 만들어었다. 보조 가이드 아쉬라프가 기다리고 있다.
계곡 아래로 내려왔다. 기온이 올라 무더웠다.
10시 10분. 나무 아래 그늘에서 휴식. 큰 나무 옆 작은 나무는 포도나무 줄기
수쿠루가 포도나무에서 청포도를 잔뜩 따 왔다. 목마른 참에 맛있게 먹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이육사
산사태가 뜬금없이 일어나고
10시 30분. 다시 뜨거운 햇변 아래 걷는데 콜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단언컨대 트레킹 중 갈증에는 콜라가 최고다.
10시 50분. 딤로이 마을 도착. 계곡을 건너 저 길을 통해 내려가 부나르 다스에서 카라코람 하이웨이와 만난다.
장차 이곳에 다리를 놓을 예정으로 교대 건설 작업을 하고는 있는데, 하세월이다.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리가 놓일 것이다.
거친 물살이 흐르는 계곡을 외줄 곤돌라를 타고 건넌다.
원래는 훨씬 더 가서 할라라 다리를 건너야 하지만 주민들이 지름길을 만들었다.
2009년 원정 트레킹 시작 전 할랄라 다리를 소개하는 고 고미영 대장(<히말라야 14좌의꿈, 고미영 낭가 파르밧에 잠들다> KBS 방송 캡쳐)
도강 준비
도강 중
11시 30분. 포터들에게 팁을 주다.
지프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칠라스를 향했다.
아찔한 절벽길을 내려간다. 파키스탄 북부 산길은 대부분 이런 길이다.
아스팔트 길이 나타나니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오후 1시 50분. 경찰 체크를 마치고 되돌아 인더스 강변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내려간다.
오후 2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칠라스의 샹그릴라 호텔 도착
넓은 방은 마음에 든다. 에어컨은 없고 대신 천장에 실링팬, 벽에 엄청난 소음을 내는 강력 송풍기가 있다.
객실 바깥 넓은 정원 풍경. 인더스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빨래를 방 안에 널었다가
나중에 바깥 정원 난간으로 옮겼다. 더운 바람이 불어 잘 마른다.
오후 7시 30분. 저녁 먹기 호텔 입구로 나와 보았다. 샹그릴라 호텔 간판. 세계적인 체인 호텔이다.
호텔 입구 경비원과 잘 통하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식당으로 갔다.
오후 8시. 저녁 식사를 겸한 쫑파티
트레킹 내내 수고한 스태프들에게 팁을 주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21일 간의 낭가 파르밧 서키트 트레킹을 마쳤다.
칠라스
첫댓글 콜라를 가져온 사람은 가이드의 사촌입니다~ ^^
그랬군요.덕분에 맛있게 잘 마셨습니다.
낭가파르밧 서킷 트레킹 후기도 이제 마지막이군요. 찐한 후기를 읽으며 사진을 보며 현장에서 느꼈던 감흥을 다시 일깨워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책으로 출판해 보심은 어떨런지요. 조심스럽지만 권장하고 싶습니다.
후기를 쓰니 낭가 파르밧 두 번 도는 느낌이라 조금 힘드네요. 그래도 자료를 찾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만족합니다. 이제 낭가 파르밧이 아주 낮이 익어 친근해졌습니다. ^^
책은 제 멋대로 쓰는 후기와 달리 내용에 제약이 많더군요. 2007년 <무스탕 - 시간의 저편으로 떠난 여행>을 출판할 때 알았습니다. 후기와 출판은 무게가 다르니까요. 출판사는 독자의 구미에 맞추어야 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것은 이런 히말라야 트레킹 책은 잘 팔리지 않습니다. 등산인은 많아도 히말라야 트레킹, 특히 파키스탄 트레킹을 가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이번 후기는 그냥 인터넷 상에 두는 것이(책으로 만들면 글을 내려야 합니다) 차후 낭가 파르밧 트레킹을 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
2022년 파키스탄+북인도 이야기는 내년에 제가 책으로 낼 것 같아요. ^^
그런데 야크지기님 말씀처럼 히말라야 이야기는 책으로 낼 때 제약이 좀 많아요. 특수 분야 여행이라 받아주는 출판사를 찾는 게 쉽지 않거든요. 히말라야 가는 분들 중에 책을 즐겨 읽는 분이 많지 않기도 하고요. 저는 출판사를 잘 만나서 히말라야 책을 연속으로 내고 있지만 쓸 때마다 생각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생각보다 책이 잘 안 팔리거든요. ㅋ
여러 코스를 함께 실으면 트레커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많아지겠죠?
거작가님의 책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