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진정한 품성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실 수 있는 원리를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 비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선택할 때, (우리의 모든 죄를 버리기로 선택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주인으로 임재하시며 모든 사단의 권세를 몰아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아무런 투쟁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 개인에게 이러한 결정이 이루어질 때, 사단은 자기의 포로를 잃게 되는 것이니까요. 사단은 한 명의 영혼도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는 결단코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심각한 투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투쟁의 요지는, 과연 "나'를 포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모든 주도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아 굴복 혹은 자기 부정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모든 권한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결정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아 굴복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결코 순종할 수 있는 사람 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드리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 모든 일을 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는 사람 들은 누구든지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가장 싫어하는 일입니다. 결국 사단과의 싸움이 본질은 나를 굴복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대신 일할 시도록 맡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잇 여사가 말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포기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요지이다."(소망 523)
우리가 이것만 할 수 있다면 사단은 우리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매일 우리의 삶에 지속적인 자아 굴복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자아 굴복을 통해 지속적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첫 번째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아를 굴복하는 것은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100% 우리의 결정이고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여기서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지속적인 "자아 굴복"의 선택을 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을 처음 믿기로 선택 했을 때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 순간 끊임없이 이 선택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 선택을 유지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모본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셨는데, 바로 우리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본을 통해서 그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연약한 육신은 자기 부정의 길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굴복하기로 결심하시고,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서소"(마26: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그 결심을 변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고통의 순간에 왜 십자가에서 내려오고 싶은 충동이 없으셨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끝까지 자기 뜻을 굴복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눅 23:46)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에 자신을 맡기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생명까지 맡기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분명할 때, 우리는 자아 굴복을 고민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아를 굴복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하지 않으면 나의 삶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내 뜻대로, 내 자아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맡기면 가장 최선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동일한 말로 로마서에서 복음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마지막 고백이자, 우리로 자아를 굴복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우리의 삶 전체를 맡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그분께 우리의 삶의 주도권을 맡겨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승리의 길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싸워야 할 가장 중요한 싸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우리 안에 깊이깊이 새기고, 그 사랑을 굳세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시들어지면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그분께 맡기려고 하지 않고, 우리가 주인이 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사랑이 확실하면 할수록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분께 우리의 삶을 맡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시들지 않고 자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저는 저의 삶을 통해 이 방법을 매일 실현하고 있고,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임을 경험으로 배워가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매일 아침잠에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 예수님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에서 뜨는 첫 순간에, 우리의 의식이 돌아오는 첫 순간에, 하나님께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2000년 전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죄를 이미 용서해 주신 것에 대한 믿음을 감사로서 표현해야 합니다. 이 일이 온종일 지속되어야 합니다.
둘째,
온종일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자기 모습을 예수님의 삶에 비교해야 합니다. 내 행동 하나하나, 나의 말씨 하나하나가 예수님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지 않은 모습이 나타날 때마다 예수님께 나의 부족을 고백해야 합니다. 결코 다른 사람의 부족과 연약함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만을 고백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경우라도 내가 그를 사랑으로 대하고 있지 못하다면 나의 부족만을 예수님께 고백하면 됩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이미 2000년 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온종일 되풀이 될 때, 우리의 마음은 지속적인 감사와 은혜로 충만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께서 죄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들은 빨리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죄와 씨름해서 승리한 사람은 이제껏 예수님 외는 아무도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죄와 씨름해서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내 자아가 올라 올 때마다 예수님께로 무조건 뛰어야 합니다. 죄를 범한 자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도피성을 향해 무조건 뛰었던 것처럼, 우리도 즉시로 예수님께로 얼굴을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이미 2000년 전에 나의 이런 연약함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이미 나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감사함으로 취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은혜로 부드러워지고, 우리의 죄를 포기하기로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기도의 시간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 모습을 보면 하루에 30분조차 개인 기도를 하지 않는 성도 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친밀한 시간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금세 상실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기도로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결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이것은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들이 그리고 성도 들이 개인기고를 매우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는 이유 중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오늘날의 새벽기도회 들은 대부분 설교하거나 말씀을 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합니다. 그런데 정작 기도하는 시간은 매우 부족합니다. 그것은 "새벽예배"나 혹은 "새벽 말씀"은 될 수 있겠지만 "새벽기도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춘계기도 주일이나 연말기도 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매우 짧습니다. 왜 우리가 이토록 기도하지 않는 백성들이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많이 보라고 권면하신 부분보다, 기도하라고 하신 권면이 훨씬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은혜 안에 머물게 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보본으로 매일 새벽에 기도하시며 하나님과 교통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변화가 없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기도를 등한히 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배가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엔진과 방향키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엔진에 해당하고 말씀은 방향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많이 보는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배가 파도에 출렁이며 방향이 바뀔 때마다 저마다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엔진이 돌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에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대로 살 수가 없는 것 아닐까요? 우리의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결국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미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놀라운 선물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항상 우리 마음속에 솟구쳐 올라오도록 예수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항상 기쁨과 감사로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에 우리는 지속해서 반응하게 되고,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거하심으로 우리 마음은 평안과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연약함으로 실패하고 넘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우리를 용서해 놓으신 그 사랑을 바라보고 잘못을 바로잡고, 용서를 취하며 즉시로 일어나서 다시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매일 매일 우리의 신앙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자라남을 품성 변화라고 이야기하기 좋아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설명한 이 원리 들은 품성의 변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품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습니다. 품성이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변하는 것입니다.
품성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첫째 품성이 변하려면 먼저 습관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둘째 습관이 형성되려면 행동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행동이 반복되려면 마음과 감정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마음이 달라지려면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한번 다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죄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좌절과 실망이 찾아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좌절과 실망에 머물러 있게 되면, 마음과 감정이 우울한 모드로 변하게 되고 그에 따르는 행동 들(화를 내고 인내하지 못하고 우울한)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 들이 반복되면 그에 걸맞은 품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품성 형성의 기초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까? 생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위 과정을 다른 방향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죄의 문제 발생했습니다. 이전에는 좌절과 실망이 나를 엄습하도록 허용했었습니다. 그러나 바대로 즉시로 2000년 전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서 나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이미 베푸신 용서를 취합니다. 그리고 나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만일 내가 그 십자가의 용서를 믿는다면(믿음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나의 마음은 즉시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바뀌고, 용서받은 것에 대한 감격이 올라오게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을 취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좌절과 우울로 향하지 않고, 마음이 기쁨과 감사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과 감사에 걸맞은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고, 그 행동이 반복되면 그에 따르는 품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어디에 달려있는가? 끊임없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용서가 자비하심과 사랑을 신뢰하고 붙드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감정과 마음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며 1년 10년 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의 품성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품성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의 품성은 매일 자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십자가에서 눈을 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를 이미 용서하시고 받아주신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찬양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감사 속에서 우리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드리기로 매 순간 결심해야 하며, 우리의 모든 삶이 그분의 뜻과 일치하도록 모든 죄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매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삶이 될 것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늦은비를 위해 준비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함께 나눠봅시다.
1. 화잇여사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의 요지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2. 예수님께서 끝까지 자기를 포기 하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3. 우리가 자아를 지속해서 굴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4. 품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세요.
5. 그동안 나의 품성은 올바른 방향으로 형성되고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