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2:46-50>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육신의 혈육, 믿음의 혈육, 죄의 혈통, 무죄의 혈통, 진정한 형제 자매의 개념
<내용 설명>-병행구절 막 3:31-35, 눅 8:19-21
구약교회와 신약교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구약교회는 유대인이라는 혈연으로 구성된 교회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하여 형성된 이스라엘이 바로 구약교회공동체인 것입니다.
반면에 신약교회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혈통과 상관없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입니다.
구약교회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노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약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교회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혈연에 의해 이미 그들의 사역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약교회는 믿음으로 침노하는 자가 하늘의 것을 얻게 되는 교회입니다.
[마태복음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육신적인 혈연과 상관이 없이 오늘날 우리들은 인종과 언어, 국가를 넘어 제사장도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침노”(비아제타이)는 수동태로서 무슨 힘에 의해서 강요를 당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천국은 믿음을 가진 자들의 능동적인 믿음 생활로 침노를 당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신약교회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신약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육신의 혈연관계인 부모와 형제. 자매에 대한 개념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내용 설명>
예수님께서 사역 중에 어머니와 그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밖에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동생들”이라고 한 것은 원어적으로 “형제들”(아델포이)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신약교회에서의 어머니와 형제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당연히 어머니는 우리를 낳아 주신 분이며 형제들는 어머니를 통해서 한 배에서 태어난 사람들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혈연관계로 형성된 분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정의를 하고 계십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교회에서의 어머니와 형제들의 정의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곧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야곱의 후손들이기에 그 속에서 부모가 되고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 아니야!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육신의 피가 썩여서 어머니, 형제, 자매가 아니라 우리 속에 믿음으로 예수의 피가 흘러서 형제. 자매.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믿음 안에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형제. 자매가 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자식으로 낳은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고전 4:15).
▶만약 예수님께서 육신의 혈통 안에 갇혀서 사역을 하셨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날까요?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지만 마리아의 젖을 먹고 양육되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동생들도 태어났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이며 형제관계 속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래서 동생들도 에수님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요 7:5)
그리고 동네 사람들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마태복음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충분히 예수님은 그 혈연의 관계속에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들이 보기에는 부모, 형제들에게 너무한 것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무리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쁜 사역을 하고 계시지만 (막 3:20) 웬만하면 다른 사역을 멈추고 어머니와 그 형제들과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혈육의 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신 것입니다. 육신의 혈연에 따라 움직였다면 예수님은 제대로 사역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은 친족이라는 이유로 또는 형제들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진리의 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나오지 않지만 눅 3:21절을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 형제들이 친족들과 함께 찾아온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들이 찾아온 목적이 예수님이 귀신들려 미친 것으로 알고 (마12:24, 막 3:22) 붙들려고 온 것입니다.
[눅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수님께서 부모, 친족들의 권위에 밀려 그들에게 붙들려 갔다면 사역을 못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것입니다.
▶ 신약의 교회는 장유유서에 따라 영적 질서가 세워지는 교회가 아닙니다. 육신의 부모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남편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형의 권위도 마찬가지입니다.
▶ 예수님의 부친 요셉이 일찍 죽은 것도 어쩌면 이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라는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 자꾸 간섭을 하고 코치를 한다면 예수님의 사역에 어렵습니다.
[누가복음 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요셉과 마리아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아들인 예수님을 그저 찾는 수준입니다. 육신의 아들로만 보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 집 성전에 있어야 될 줄 아시는 분입니다. 이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께서도 친척과 나사렛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배척을 당합니다.
자라난 배경을 훤히 다 아는 처지라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눅 4:24) .
이 모든 것이 혈연 중심의 사고 때문인 것입니다. 혈연중심은 낳은 자에게 권위가 주어지고 태어난 순서대로 권위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혈연중심에 빠져 있으면 본인도 주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가족들도 방해꾼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남편이 때로는 아내가 때로는 자식이 주의 일에 방해꾼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날마다 여기 저기 불려다니는데 그의 남편은 자기 아내의 차원으로만 그를 바라본다면 방해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귀한 주의 종인데 자신에게는 남편이요 아내에 불과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사역도 방해하고 말도 함부로 하고 아무렇게나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아들 딸들을 건드리면 여호와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슥 2:8] ~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하물며 하나님의 종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를 자기 아내라는 이유 때문에 또는 자기 남편이라는 이유 때문에 또는 자기 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함부로 대한다면 더구나 사역을 방해한다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나와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앞선다는 것입니다.
혈통관계이기 때문에 가볍게 여지기 말아야 합니다.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버럭 버럭 화를 내시면 안됩니다.
이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 바울은 로마서에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하라”고 했습니다 (롬 2:28-29)
유대인의 혈통을 가졌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의 피가 흐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과 관련지어 본다면 이제는 표면적 혈통속에서만 사로잡혀 살면 안됩니다.
육신의 혈통관계는 아담으로부터 죄악의 피가 흘러내려오는 것이므로 죄의 혈통입니다. 죄를 짓게 하는 혈통입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는 믿음을 가진 자와는 원수가 되는 혈통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혈통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됩니다.
[마태복음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구약교회에서는 구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약교회에서는 구원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약교회의 믿음의 형제. 자매들은 오직 무죄의 혈통인 예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의 피로 예수안에서 새롭게 형성된 믿음의 형제. 자매들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구약교회에서는 이방인은 유대인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예수임의 친구까지 된 것입니다. 육신의 혈통에 의한 피가 아니라 예수의 피로 주어지는 은혜인 것입니다.
구약교회인 혈연교회에 계속 머물것입니까? 아니면 예수의 피로 신약교회의 형제 자매가 될 것입니까?.
이제 예수의 피로 맺으신 부모, 형제, 자매가 되어 육신적인 혈통관계를 뛰어 넘는 온전한 신약교회의 일원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