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2.
지난번에 양자컴퓨터를 생각하게 만든 배경 중 소극적인 배경에 해당하는 고전컴퓨터의 한계만 간단히 살펴봤다. 그리고 그 한계의 핵심 요인은 열 발생 문제였음을 확인했다. 그에 대한 해결 대안을 제시한 사람은 란다우어와 베넷이다. 그들이 제시한 해결 대안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번에는 양자컴퓨터를 생각하게 한 적극적인 배경을 살펴보자. 어차피 두 배경에 대한 통일된 단일대안이 양자컴퓨터니까. 따라서 대안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꺼번에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중에 대안을 묶어서 소개할 때 언급하겠지만, 소극적 배경이 다분히 하드웨어 측면이라면 적극적 배경은 소프트웨어 측면이라 하겠다.
어떤 한계에 부딪혀서 할 수 없이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모색하게 하는 것이 소극적 배경이라면, 기존의 성능과 효용보다 엄청나게 뛰어난 개량이 가능한 특성이 있어 그것을 살리도록 모색하게 하는 것은 분명 적극적 배경이다. 이런 적극적 배경에서 그에 부응하는 발상을 처음 낸 인물은 파인만이다. (앞글에서 언급한 인물 폰 노이만과 혼동하지 말기를!) 책방에 나가 보면 파인만 관련 책이 과학서적 코너를 잠식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이 나와 있다. 가히 파인만 전성시대라 하겠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몇 마디 할 말이 있지만 절약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인물임을 밝히는 것으로 대신하자. 그와는 일면식도 없는 나 같은 사람조차도 그에게 지식적 신세를 적지 아니 지고 있는 형편이고, 파인만 선풍이 지나쳐도 그것을 굳이 폄하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양자현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기존의 컴퓨터로서는 (아무리 개량한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획기적인 연산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양자체계만이 지닌 고유특성을 적극 활용하여 환상적인 연산속도를 자랑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컴퓨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일반인들이야 연산속도가 달려 답답한 경우가 있다고 해도 얼마간의 용돈을 절약하면 해결되는 정도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일반인들에게는 속도 타령을 하는 과학자들이 마치 양산 승용차 속도가 느려 터졌다고 불평하며 펜텀기를 구입하려는 사람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특히 양자계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처리해야 할 계산량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쓸만한 결과만을 효율적으로 얻어내는 방안을 찾는 것이 관건일 정도다. 다시 말해 그들은 컴퓨터에 많이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며, 티코보다 훨씬 빠른 페라리를 보유했다고 하더라도 답답한 속도인 것은 다를 바 없다. 아예 차원을 달리하여 지면과의 마찰저항이 전혀 없는 펜텀기, 어쩌면 그것도 미흡할지 모를 판이다. 설마 그들에게 연구를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하진 않겠지?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재 반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편지는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되니까 우체국을 없애도 되냐고. (아이러니하게도, 우체국이 있으니까 편지만 부치는 이용자는 거기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계산을 해야 하는 사정을 조금 언급하면 이렇다. 적절한 대목에서 다시 설명해 보겠지만 (꼭 다시 설명해야 하지만) 중첩현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양자계에서만 발생한다. 아니, 거꾸로 양자계가 일상계와 다른 결정적인 특성이 중첩현상이 발생하는 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 양자계의 중첩현상이 병도 주고 나중에는 약도 준다. 바로 이 중첩현상이 조사대상 즉 컴퓨터기 판단해야 할 대상의 수효(=연산회수)를 증폭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어떤 대상이 있어 그 유무만 조사할 때, 중첩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대상은 하나마다 2개의 차원으로 기술되고, 그런 대상 N개면 2N차원이면 기술된다.
그렇지만 양자계의 대상이라면 중첩현상 때문에 2N차원으로 기술되는 상태를 보인다. (이 하나하나의 대상을 양자계에서는 스핀이라 한다. 스핀이란 극미시적 세계인 양자계에서만 쓰는 매우 양자적인 현상의 용어로서, 입자가 가진 중요한 성질의 하나라고만 해 두자. 이름의 유래는, 돌고 있는 물체를 기술하는 운동량은 각운동량이 유용한데, 양자계 입자들의 고유성질 중 하나로 공전하지 않으면서도 각운동량을 가진다는, 즉 자전에 의한 각운동량을 가진다는 점을 부각시켜 SPIN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 차원마다 적어도 한 개씩의 변수가 필요하므로 이를 위해 메모리를 한 바이트씩만 쓴다고 해도, 스핀이 30개짜리 대상이면 230=(1024)3>1G, 벌써 1기가바이트 이상의 메모리가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이 고작 30개의 입자로 이루어진 경우란 별로 없다. 수소원자를 포함하는 간단한 분자 몇 개만 다룰 정도, 혹은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를 하나의 입자로 센다면 구리나 아연 원자 하나 정도를 조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한 파인만의 발상은 명쾌했다. 컴퓨터 자체도 양자계로 이루어진다면 양자계 기술이 원활하지 않을까! 이론상(아직은 이론상), 스핀을 가진 입자 N개로 이루어진 양자계를 기술할 때 같은 크기의 양자계는 같은 차원을 갖게 되므로 무척 효율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더구나 그게 현실적으로 실현되어, 그런 양자컴퓨터로 고전계를 기술한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펜텀기 성능을 가진 승용차를 타고 홈플러스로 장보러 가는 격? 어쨌든 양자컴퓨터를 통해서 그런 Fantastic Capability를 보유하게 된다면, 그 근원은 결국 양자계가 파동의 중첩성을 갖기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중간요약을 해보자.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내가 환갑을 조금 넘은 시점에 봉착하게 된다는 고전컴퓨터 소자의 열발생 문제는 치명적인 골칫거리로서, 따지고 보면 양자효과 때문이었다. 일단 고전컴퓨터는 더 이상 진화가 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양자현상이 고전컴퓨터의 명운을 가로막는 격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컴퓨터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던 차에, 양자계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인 중첩현상(물론 이 역시 엄청난 숙제거리의 주범이었지만)을 잘만 활용하면 획기적인 진화가 가능해진다. 가일층 적극적으로 양자컴퓨터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 분위기는 조성된 셈이다. 그렇다면 당장 예견되는 우려는 이것이다. “양자컴퓨터는 열발생 문제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앞에서 미루었던 양자컴퓨터 등장의 소극적 배경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므로, 중첩현상과 더불어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기로 합니다..
첫댓글 "편지는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되니까 우체국을 없애도 되냐" 재밌는 비유네요 ㅎㅎ
양자컴퓨터 이름만 들어봤는데 정말 그러네요 양자컴퓨터는 열발생 문제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