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르게 생활한다. (正命)⌟
올바른 생활은,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에 있습니다.
중도란
불교에서 말하는 색심불이(色心不二)입니다.
색심불이의 생활은,
조화있는 정신적, 육체적 생활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생활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부조화가 되고 맙니다.
예를 들면, 번뇌를 멸각(滅却)하고 싶다고 해서 육체 고행에 몰두하여,
폭포수를 맞고, 단식을 하고,
자신의 육체를 소홀히 하면 결국은 건강을 해쳐,
자신의 마음을 또한 잃어 갑니다.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마(魔)에 침범되어,
일반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 고행은, 정신만으로 무게를 두고, 육체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신에 대해서도 올바른 정신의 자세가 있습니다.
정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그것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또 정신을 무시하고 육체 중심의 생활에 비중이 치우쳐 가면,
오늘날과 같은 혼란한 사회가 되어, 가정도, 남과의 유대도 와해되어 갑니다.
그러면 올바른 생활이란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그것은 팔정도의 목적인 중도를 기준으로 해서,
자기 자신의 카르마를 수정하고,
중도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카르마(업)는 우리들의 성격, 성질 위에,
그 사람의 단점이라고 하는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의 단점은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 대해서도,
좋은 결과를 끼치지 않습니다.
노여움, 어리석음, 우유부단, 독선, 거드름, 탐욕, 중상, 시새움,
조야(거칠고 세련되지 않음). 다변, 배타,
증상만(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았다고 생각하여 자만함.)
매사에 소극적인 성격, 자폐, 주제넘게 참견함, 증오, 나태......
이러한 성격은 자기 자신을 고립시켜,
자신의 운명을 불행하게 합니다.
올바른 생활은,
우선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장점이란, 밝고 명랑하고, 솔직하고, 남과 협력하고 서로 돕고,
서로 보완해 가는 조화의 성격입니다.
인간은 모두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으나,
환경, 교육, 사상, 습관 등의 영향을 받아
여러 가지의 카르마(業)를 만들어내고 마는 것입니다.
카르마(業)가 몸에 붙으면, 업(業) 자체가 회전을 시작하기 때문에,
노여움의 장면에 맞부딪치면,
습관적으로 그만 '벌컥'하고 화를 내고 맙니다.
즉, 카르마(業)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윤회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도 그만 멈출 수가 없다.⟩
고 하는 것이 카르마(業)입니다.
사람의 결점의 3분의 2는 금생에서의 것,
남은 3분의 1은 과거세의 업(業)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따라서 3분의 1의 업(業)은,
반성하여도 좀처럼 그 원인을 잡아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금생의 3분의 2의 업(業)이,
전생의 업(業)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고 있는 것이므로,
3분의 2의 업(業)을 수정하는 것에 의해,
(전생의 업을) 수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자신의 결점을 올바르게 하는 것은, 자신의 안심으로 연결되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이 안심하고 밝게 되면, 자신의 주위도 밝게 됩니다.
올바른 생활은,
이렇게 해서 우선 자기자신부터 수정하고, 비로소 가능한 것인데,
그것에는 팔정도의 규범인
⌈정정(正定)⌋에 의한 올바른 반성이 중요하게 됩니다.
중도에 반(反)한 생활은,
전부 자기보존이라고 하는 상념 행위가 원인이고,
자기중심의 에고, 원죄인 것입니다.
원죄(原罪)란,
육체 오관에 의한 육근, 미혹, 번뇌에 있는 것이니까.
우선 육근을 청정하게 하는 반성의 생활이,
자신의 업(業)을 수정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정명(正命)의 목적은,
정신적, 육체적인 조화를 목표로,
업(카르마)으로 화(化)한 여러 가지의 원죄(자기 보존의 상념)를
올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도(道)에 정진한다. ( 正進)⌟
우리들 인간의 길(道)은, 중도에 따른 조화의 생활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올바른 보편적인 법이 있는 것입니다.
법(法)이란, 순환의 법칙이며,
순환의 법은 이 지상계의 여러 가지 면에 적용되어 있습니다.
정도(正道)의 생활이란,
이런 의미에서 순환의 법에 따른 생활이며, 올바른 생활입니다.
올바른 생활이란,
앞의 설명과 같이 중도의 생활이며,
중도의 생활은,
사람들로 하여금 조화의 생활로 인도하여 가는 것입니다.
중도의 생활은 자비와 사랑의 생활이며,
그 상념 행위는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회전하여 오는 것입니다.
자기보존으로 기울어진 독선의 생활은,
이 지상계가 상호부조의 조화를 축으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 반작용으로서 괴로움을 초래합니다.
순환(循環)의 법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진의 목적은,
인간관계의 조화에 있습니다.
정명의 목적이 자신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니까.
그 다음으로 오는 것은, 사람들과의 조화인 것입니다.
인간관계란,
부부, 부모 자식, 형제, 친구, 이웃사람, 개인과 사회의 관계이며,
그것은 우선 자신의 발밑부터 시작하여,
전체로까지 발전하여 가는 조화의 리듬이며, 파동입니다.
부부의 관계는,
서로가 부족한 것을 서로 보완하고, 좋은 자손을 키워가는 것이며,
부모 자식의 관계는, 과거세의 연(緣)에 의해 생긴 것이므로,
부모는 자식을 귀여워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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