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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신인 우수 작품
⬤ 시 부문
-한설아(본명: 한은아)
-당선작 「선풍기」 외 3편
-전북 정읍 출생
-다울문학 동인
-E-mail: hea1016@hanmail.net
-백근화
-당선작 「봄 진립선약을 처방받다」 외 3편
-서울 출생
-단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E-mail: namanary@naver.com
선풍기 외 3편
한설아
페달을 밟으며 전장의 트랙을 돌고 있습니다
부른 적 없는데
불현듯 날개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프로방스의 라벤더 향기가 만발하게 핀 계절
그 계절을 따라온 것일까
곳곳을 돌다 제자리로 돌아간 부메랑 같은 사람
바람에 가면이 벗겨진 의문의 여자
네 발로 빠르게 도주하는 켄타우로스*
날아다니거나 영영 날아갔거나
바람에 쉽게 꺾이지 않는 먼지는
만발의 준비를 갖춘 그들만의 언어라 해두자
강풍에 날려 온 이들이 어딘가에 부딪혀 떨어지고
기웃대며 자리를 찾는 날개와 날개
원하는 곳에 원하는 속도로 공기는 늘 머물곤 한다지
잠깐씩 뒤척이는 잠꼬대는
그들의 몽환 속에 내가 날고 있을지도 모를 일
고르지 못한 화질에 간간히 따라붙는 메아리
그들의 눈에서 나를 빼내 오다
목이 길어진 바람
하루를 또 넘기고 있는 바람, 바람
*켄타우로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怪物,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이다.
발톱
오늘도 구덩이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아치형으로 하강 중인 너는 내향성 발톱*
하루의 반나절은 악어가 물고 있는 거 같아요
당신은 당당한 11자 걸음이신가요
우린 특정한 곳에
혈흔 하나쯤을 숨긴 내향성 발톱이 되어 가는 사람들
축축한 장화 속에선 새살이 차오르지 않아요
윤곽이 흐린 어설픈 발도장이지요
치켜뜬 그 무엇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할 때
악어 이빨에 끼인 비척거리는 오늘을 빼내야 해요
케케묵은 이야기는 전동 드릴로 스케일링하고
부목 댄 발톱이 원형이 되기까지
부드럽게 삭제, 삭제, 삭제, 파일링을 하세요
사자를 독수리를 아니면 고양이를 원하시나요
정수리에 당신만의 캐릭터를 그려 보세요
구덩이 속은
불투명한 여백이거나 덜컹이는 소란입니다
지리멸렬한 장화는 우주로 던져버리세요
새살 돋는 솔기들이 봉합이 되어갈 때
족적에 붙을 수식어는 잘 익은 오늘이고 앞날입니다
이 밤
전깃줄을 둥글게 움켜쥔 발톱들, 새들은
유연한 편자를 신었나 봅니다
산책로 따라
환승한 구두가 뛰어갑니다
*내향성 발톱: 발톱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염증과 통증이 발생하는 질환.
펑키 타운*
빠르게 재단된 단어들은 어딘가에 꼭 박히는
티타늄 총알 같아요
눈과 귀가 가려워요
도시 반대편에 진균들이 번져갔거든요
가짜 상영관에 진짜 펑키족들이 관람을 하고
기울어진 짝다리로 거만하게 떼창을 불러댔어요
부식을 모르는 말들은
가늘고 길게 찍어대는 뿔난 첨자들이죠
수수한 전두엽에 총구를 겨누지 마세요
반대편의 소리는 세상의 소리와 노래가 될 수 없어요
묶음의 변방은 발밑이 자유로워요
아이스크림 가득 담아가는 저 청년도
앞장서서 달리는 저 운전자도
우리는 우리라서 괄호에 쉽게 갇히지 않았어요
어제와 오늘은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출몰해요
당신의 발끝은 어디를 향해 있나요
모두 모두 도시 중앙으로 나오세요
영혼의 말들을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려야 해요
번갈아 발끝을 모으고 아득해진 거리를 당겨야 해요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노래로 불러져야 하니까요
스카프 매듭이 목을 따갑게 스치는
벌써 여름이 왔나 봐요
*펑키 타운: 파격의 도시 (80년대 팝송을 인용함)
쇼윈도
롤스크린이 올라가면 망상은 청아하게 감겨요
언제나 투시하며 북적이는 시선들
출입문에 들어서면 달달한 머스크 향이 나요
보이지 않는 거인이 호객하는 것만 같죠
노을이 슬금슬금 이마를 넘어가면
앞뒤가 잘린 줄거리만 외쳐대는 3D 전광판
롤스크린 내리고픈 날은 잉여인간들이 많은 날
거만한 언어가 핑퐁처럼 튕겨오면
부드럽게 연결 타를 날려야 속들을 내놓는 평정
송곳니 같은 발언은 기운이 빠져요
덜미에 들이대며 피를 쪽쪽 빨아대는 드라큘라 같죠
성에꽃은 별꽃과 닮았지만 전혀 상이해요
칼바람에 시퍼렇게 질린 겨울 하늘을
입김을 쏘아 올려 살살 녹여야 별꽃은 피거든요
튕겨 나간 눈들은 나를 외면하고 걸어요
검은 안팎을 닦다 밖으로 시선을 던져보는 그녀
등 뒤, 다육식물 초록 뿔들은 다정히 돋아나는 중이죠
몇 개의 별들이 지갑에 누운 날은 어둑어둑한 밤
풍경 추가 조곤조곤 딸랑이다 번져요
동공들이 점점 커지는
시 부문 당선 소감
이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는 꽃
한설아
나의 체온의 도달점은 언제나 미약했다 치유와 아픔을 반복하며 이쪽도 저쪽도 쉬이 끈을 놓을 수 없는 고달픈 경계였고 늘 외로웠다. 가난이 그러했고 풀리지 않는 경제 활동이 그러했다.
따스한 햇살 한 줌 받고자 담벼락 밑에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민들레가 되어 꼼지락거렸던가, 그때마다 나의 허기를 달래주고 위로를 해준 것은 시였다. 무슨 말을 털어놔도 언제 어디서나 항상 경청해줬으니까, 늦여름 태양이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 한 통의 전화는 민들레에겐 보슬비였다. 소심하고 여린 민들레가 질기고 질긴 영원한 개화를 드디어 시작했다.
항상 낮은 자세로 소명의식을 갖고 시를 노래하겠습니다. 멀리 높이 푸르게 날아서,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민들레꽃을 피우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그리고 모태와도 같은 ‘다울문학’ 동인들, 늘 응원해 주시고 시심에 불을 지펴준 ‘시납’ 문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무한한 기회를 주신 시와 경계 관계자 및 심사위원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랫동안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봄 전립선약을 처방 받다 외 3편
백근화
아궁이에 불을 넣다가, 굵은 장작 하나를 더 넣을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장작을 팰 때 턱 밑까지 찼던 숨을 생각하다가, 얼마 안 가 떨어질 삶의 불쏘시개들을 걱정하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데, 꽃이, 매화가, 가지치기도 마치지 못한 매실나무의 꽃이, 점묘법으로 하늘을 나는데, 꽃잎을 프로펠러 삼아 떠다니다가, 수천수만의 만개滿開가, 한날한시에 몽롱한 내음을 뿜어대는데, 카메라가 나를 노리고, 둘러싼 레일 위를 달려가는데, 눈을 감고야 마는데, 팔을 벌리고야 마는데, 허파 가득 향을 들여 머금고 숨을 멈추고야 마는데, 다시 돌아보니 아궁이의 불이 역류하는 것이다 몇 개 안 남은 장작을 집어삼키고 벽을 타고 기둥을 타고 보를 타고 서까래까지 삼키는 것이다 타오르는 것이다 지붕이, 집이 타오르는 것이다 아직도 한참을 더 꽃피워야 하는데, 철쭉은 아직도 멀었는데, 조금만 견디면 유채도 찔레도, 어쩌면 쑥부쟁이도 코스모스도 피울 수 있는데, 피울 수 있는데, 피울 수 있는데, 잿더미 속 그을린 숟가락 하나 힘겹게 집어 드는 것이다
족발 프랜차이즈
구제역 파동으로 매몰된 돼지들이 지하로 파고 들어가 돼지들의 나라를 세웠대
요즘 돼지들의 나라에서는 인간의 발을 쌓아 놓고 파는 족발 프랜차이즈 사업이 인기래 족발들은 영혼의 힘줄을 완전히 제거해 놓지 않아서 거북 대가리 같은 발가락들을 계속 꼼지락거리고 있대
처음엔 특공대를 파견해서 걸어 다니는 인간들의 발을 지하로 잡아당겨 납치해서 요리하곤 했대 이른바 자연산이지 그런데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나중엔 족발용 인간을 집중해서 양식하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대
수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돔구장 모양의 전천후 사육장을 지어놓고, 발만 에스키모 부츠처럼 부풀리는 기계 장치를 갖춰 놓았대 발바닥에 수액을 꽂아 집중적으로 영양을 공급하고, 발을 잘라낸 자리에 다시 발이 돋아나게 하는 유전자 조작 기술도 개발했대
발을 자를 때 마취를 하면 족발의 탱글탱글함이 없어진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마취 없이 쌩으로 발을 커팅 하는 법이 돼지 의회를 통과했는데, 그 때문에 인간보호연대에서 활동하는 돼지들이 프랜차이즈 본사 앞으로 몰려가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는 거야
식사를 하러 온 돼지들이 쌓인 족발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초이스 하면 주방장 돼지가 즉석에서 살코기를 발라 접시에 담아주는데, 발톱은 바삭하게 튀겨서 함께 내주지만, 새우젓 소스나 상추가 필요하면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대 그리고 접시 맨 앞에 발가락 다섯 개를 플레이팅 해주는데, 입에 넣으면 산낙지처럼 꿈틀거리는 식감이 미각을 자극해서 서로 먹으려고 싸운다는 거야
참고로 크기는 작아도 부드러운 여성 족발이 조금 더 비싸게 팔린다는군 함께 담아주는 정강이뼈는 포장해 가서 돼지들이 키우는 애완견들에게 던져주면 환장을 한대
실제로 먹어 본 돼지들에 의하면 와인이나 막걸리보다는 소주에 더 잘 어울린다고 해
다음 달부터는 전자레인지에 3분만 데우면 먹을 수 있는 반조리 음식으로 만들어져서 편의점에도 입점이 된다니 더욱 생활 밀착형 먹거리가 되겠군, 어때 기대되지?
오감도五感度 시 제1호
13인의아이가길을가오.
(길은막혀있는것이좋겠소.)
제1의아이의엄마가시크릿노트를들고앞장서달리오.
제1의아이가엄마를따라빨리달리오.
제2의아이의엄마가제1의아이엄마의시크릿노트를노리고전속력으로달리오.
제2의아이가제1의아이를앞지르려전속력으로달리오.
제3의아이의엄마도제1의아이엄마의시크릿노트를노리고전속력으로달리오.
제3의아이도제1의아이를앞지르려전속력으로달리오.
엄마가없는제4의아이는혼자걷소.
제5의아이는등록금을대출받아걷소.
제6의아이는편의점알바를하며걷소.
제7의아이는유효기간지난삼각김밥을먹으며걷소.
제8의아이는고시원월세를밀리고걷소.
제9의아이는업비트와영웅문계좌를개설하고걷소
제10의아이는배달라이더를하며거꾸로달리오.
제11의아이는연애를포기하고기어가오.
제12의아이는결혼을혐오하며쓰러지오.
제13의아이는컨테이너에깔려죽소.
13인의아이는달리는아이와달릴수없는아이와그렇게만모이었소.(다른사정은있을수가없었소)
그중에1인의아이가달리는아이라면혼자달리면되오.
그중에2인의아이가달리는아이라면경쟁하며달리면되오.
그중에2인의아이가달릴수없는아이라면그건그들의사정이오.
그중에1인의아이가달릴수없는아이라면우리가그것까지걱정할일은아니오.
(길이뚫려있다손쳐도달라질건없소.)
13인의아이가함께길을달려갈일은절대로없소.
한강 변의 문학 쟁투
한강 변 둔치에서는 - 한쪽에선 이걸 선진국식 표현 고수부지로 순화하자고 신문에 칼럼을 썼다 – 강변 문학 내기 축구시합이 한창이다 그들은 모두 어느 강변 태생이지만 좋아하는 술집 분위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적이 되었다 오늘 이기는 팀이 강변 문학을 차지하기로 했다 경기 규칙을 정하는 것부터가 순조롭다 심판을 각기 자기편에서 맡겠다고 점잖게 서로를 타일렀다 등단하지 않은 자를 선수로 인정할 것인지를 놓고는 사다리 타기를 했다 등단의 기준도 서로 달랐는데 유수 문예지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떤 청원경찰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러자 신춘문예 출신 나부랭이는 사계절 내내 문인을 뽑는 건 인정할 수 없다며 묵찌빠를 제안했다 룰도 심판도 정하기 전에 관객 없는 경기가 시작되었다 문인구가 투입되었다 누군가 문인구를 멀리 강물 쪽으로 차버렸는데 가지러 가려는 사람이 없어 작가구로 대체되었다 모두들 작가구를 들고 뛰려해 시합은 럭비로 바뀌었다 작가구를 차고 뜯고 빼앗고 하다가 작가구가 니주가리 씨빠빠가 되었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었다 아, 그런 상투적인 표현은 견딜 수 없다며 핸썸한 작가 돕기 밥상 겸 상패 트로피 세트 판매를 시작했다 등단한 사람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을 누르고 유수 출판사에서 책을 내야만 구입 자격을 주자는 의견이 통과되려는 찰나 차버린 문인구를 동경하던 신춘문예가 허스키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유수고 지랄이고 최소한 서울대 문창과 정도는 나와 줘야 어디 가서 문학합네 할 수 있는 거야 모두들 입을 다물고 콤플렉스를 궁구하고 있는 사이 백아무개가 느자구 없이 뇌까렸다 나는 하바드 궁문꽈 나왔는디 그러자 옆에 있던 오아무개가 지극히 상투적으로 꽹과리를 쳐대는 것이었다 조지나 탱탱 조지나 탱탱
시 부문 당선 소감
시, 그 아슬아슬한 경계
백근화
시 없이도 잘 살았습니다. 피에로를 꿈꿀 때도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할 때도 시는 남의 일이었습니다. 말로만 국가에 저항하며 막상은 주민등록번호를 알뜰히 챙기고 살 때도 시는 곁에 없었습니다. 그땐 시가 어느 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끌벅적해야 살맛이 나던 시간이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시는 일반 병실로 옮기더니 곧 퇴원했습니다. 내가 혼자 걷는 것에 조금 재미를 붙인 때였을 것입니다. 왁자지껄한 생활이 거북해질 무렵엔 시가 슬그머니 내 방에 눌러앉았습니다. 눈치를 줘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엔 마누라도 내보내고 시랑 둘이서만 동거했습니다. 시와 온전히 몸과 마음을 나눴다고 느꼈을 때, 그러나 시는 ‘진부함’을 입에 물고 마을 앞 저수지로 뛰어들어 버렸습니다. 시의 규범을 의심하고 그 법칙을 끊임없이 거부해야 오히려 시에게 인공호흡이라도 해줄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시의 교류와 단절에 대해 고민할 때 ‘아슬아슬함’이라는 화두를 던져준 민석 형, 형으로서는 언급한 기억조차 가물거릴지 모르지만, 시를 끌고 오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시 감상 동아리 ‘詩간여행’, 시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중년들이 주축인 이 모임은 내가 소통의 불편함에 매혹될 때 불통의 부당함으로 맞서는 균형추입니다. 병상에 계신 어머니, 자랑스러운 동생 창화, 철없는 남편을 눈감아준 사랑하는 노루에게도 고맙습니다. 부족한 사유로 쏟아낸 것을 시로 여겨준 심사위원들께는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문학의 길을 열어준 《시와 경계》에 경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벤트의 허망함을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꾸준히 시를 쓰고 있는 나를 기대합니다. 적어도 고분고분 시의 허울에 억류되지만은 않도록 애쓰겠습니다.
시 부문 심사평
현대성의 징후와 알레고리
우리가 신인에게 기대할 것은 무엇인가? 기존에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긴장하고 시 쓰기를 돌아보는 일이 아닐 것인가? 그러나 우리의 그러한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킬 만한 작품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이번 공모도 그랬다.
그래도 그들의 작품 속에 있는 가능성에 신뢰를 보내기로 하면서 한설아, 백근화 두 분을 당선자로 내보낸다. 두 분의 시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그 나름의 개성으로 거친 시단의 기류와 현실에서 살아남을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그들이 제출한 시편 여기저기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설아 시인의 강점은 발랄하고도 신선한 언어의 구사와 시적 전개능력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가 현대성의 징후들을 바탕으로 하는 주제의식을 배경에 깔면서 적절히 전달하는 능력 또한 가졌다. 「선풍기」에서 보이는 인간관계에 대한 상상력의 교직능력도 신선하였고, 「발톱」에서 보이는 자신의 발톱에서 새들로 이동하는 순발력, 결구처리의 신선함이 볼 만했다. 「펑키타운」의 “괄호 속에 쉽게 갇히지 않”은 젊은 세대들의 삶에 대한 옹호, 「쇼윈도」에서 보이는 빛나는 현대성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도 눈여겨 볼만했다. 이 분의 시에서 그래도 약간 아쉬운 점은 시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이거다! 하는 결정적인 언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일상성을 뒤집는 날카로운 인식과 그것을 풀어내는 섬세한 묘사능력을 키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백근화 시인은 알레고리를 통한 당대성의 풍자가 돋보였다. 그것은 여러 양상에서 폭넓게 나타나는데, 구제역 파동에 대한 풍자를 통해 인간에게 복수하는 돼지들 이야기(「족발 프랜차이즈」)를 상상력으로 더욱 깊이 풀어내는 능력, 또 독자들 없이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되고 있는, 그러면서도 섹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 시단에 대한 신랄한 풍자(「한강변의 문학 쟁투」), 이상의 오감도烏瞰圖를 패러디하여 우리나라 교육현실과 청년실업의 문제에 대한 입체적인 풍자(「오감도五感度시 제1호」)는 이 분의 강점이다. 재밌는 점은 이런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역발상으로 성공하고 있는 시가 「봄 전립선약을 처방받다」라는 것이다. 이 시는 역류하는 아궁이의 불을 통해 집이 잿더미로 내려앉고 겨우 숟가락 하나 집어 드는 상황을 육체의 문제로 치환한다. 다른 시에서 보이지 아니하는 긴장과 탄력이 있다는 점은 무엇을 말하는가? 풍자도 중요한 미적 전략이지만 그것이 언어의 밀도를 떨어트릴 때 시적 완성도는 감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두 신인은 선자의 이러한 바람이 기우라는 것을 보기 좋게 증명하는 작품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를 바란다.
글:손진은(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