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아!
박성무(명예교수, 건축학부)
1. 퇴임 후 정체성 혼돈의 한 해
2017년 2월 정년을 맞아 정든 캠퍼스를 떠난 지도 벌써 5년 하고도 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퇴직을 하자마자 고맙게도 제자들이 운영하는 건축구조 안전기술원에 자리를 만들어 주어서, 학교에 있을 때처럼 매일 출근하며 바삐 지낼 수 있어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퇴직하고 첫 한해는 바깥사회와 교수사회의 삶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현상으로 많은 고뇌로 한해를 보내게 되었다. 구조안전기술원의 실무업무에 대한 마음의 자세와 대학에서의 교수로서의 업무에 대한 마음의 가짐의 차이였다. 해 마다 새 학기면 드넓은 캠퍼스에서 부푼 꿈을 안고 희망찬 젊은 후학들에게 강의를 하고, 새로운 기술과 공법을 연구를 하는 일을 천직으로 살아온 교수에게는 건축물 구조설계와 안전진단이나 지진 보강 업무와 같은 반복된 실무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건축구조 전문가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업무에 대한 사고의 괴리현상이었다. 또 하나는 모든 평가의 기준이 물질인 바깥 사회와, 명예와 자존심을 중시하고 살아온 교수로서의 삶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었다. 퇴직하고 바깥 사회에 뛰어들어 보니 교수사회는 바깥 세상을 너무도 모르는 참 특별한 집단임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되었다.
지금은 교수로서 늘 고민하며 어렵게 끌고 온 나의 업은 저 멀리로 흘려보내고, 바깥 사회와 교류하며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현업에 익숙해져서. 다시 대학에 돌아가 교수직을 수행하라고 해도 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나의 젊음을 바친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아직은 필자를 00대표 혹은 00사장이라 불러 주는 것 보담 00교수라 불러 주는 것에 익숙하고,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 같다. 어떤 분들은 굳이 이제 퇴임했으니 교수가 아니라고, 꼭 00대표님 혹은 00사장님이라고 불러준다. 바깥에서 보면 교수란 직은 부러움의 대상이란 생각을 해 본다. 공자님 말씀에 “人不知不慍이면 君子也”라 했는데, 종심(從心)의 나이에도 아직 군자가 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명예로운 교수직이 그리워서인지, 아직도 필자는 00 대표님이라 칭하는 것보단 00교수라 불러주기를 더 기대한다.
2. 亦樂이란 號
대학 재직 시절에는 강의와 연구로, 지역사회의 봉사활동으로, 그리고 학회활동으로 곁눈 짓할 사이 없이,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개인의 삶보다는 학교와 바깥 사회를 바라보며 그렇게 달려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일과 자식들 교육문제는 집사람에게 떠넘긴 것이 늘 미안하고 죄스럽다. 거의 대부분의 교수들이 그렇듯이 교수직분만 충실하려다가 35여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리고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會者定離요 去者必還이라고, 만남이 있음은 헤어짐은 예견된 일이고, 간 사람은 필히 돌아온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이별이란 서운한 일임은 어쩔 수 없는 인생사다.
퇴임을 몇 년 앞둔 어느 날 철학과 모교수가, “형님 이제까지 학생들과 즐겁게 잘 살았으니, 퇴임 후에도 또 즐겁게 잘 사세요.”라고 하면서, 亦樂형님이라 불러줬다. 亦樂이라 ‘또 역, 풍류 락.’ 퇴임하고는 공돌이로 살지 말고 풍류를 즐기며 사람답게 살아보라고 마음에 와 닫는 호를 지어줬다. 철학과 후배교수께 감사를 드리며, 제2인생도 즐기면서 사람답게 살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100세를 넘긴 노 철학자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생의 황금기는 65세부터 80세 사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필자는 요즈음처럼 한가하고 즐거울 때가 없었다. 논문 쓰느라 머리 싸매고 연구할 일이 없어져서 좋고, 강의준비로 쫒기지 않고 마음 편히 주말을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좋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범어산 둘레 길을 걷기도 하고 조기회 벗들과 스트레칭도 하며 세상 돌아가는 애기도 하고 학교 재직 때에는 상상도 못할 일을 바깥 사회와 교류하며 보낸다. 회사출근은 직원들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는 늦은 오전 시간에 하여 후배들과 오전 업무를 마친다. 점심시간에는 오랜 친구들과 오찬을 즐긴다. 월요일은 회사직원들과, 화요일은 대학친구들과 오찬을 같이 한다. 수요일은 체력단련을 하거나 가족과 하루를 즐기고, 목요일은 고향친구들과 오찬으로 우정을 다진다. 그리고 금요일은 취미생활을 하는 등으로, 요일별로 정해 놓고 한 달에 한번쯤은 보고 싶은 얼굴들을 보며 지금까지 못 다한 우정을 쌓아 간다.
필자는 공자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공자님의 인생 3락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
인생 제1락: 學而 時習之면 不亦悅乎아(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喜悅을 느끼지 아니한가).
인생 제1락은 인생 초년에 모르는 학문을 알고 나니 좋아서 미칠 정도로 喜悅을 느끼는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님도 춘추전국 시대에 천하를 주유하고, 60세 이후에 정치에는 마음을 비우고 고국에 돌아와 후학을 가르칠 때, 친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와 학문과 인생을 논하고 맛난 음식과 풍류로 인생을 즐기면서 말년을 음미하셨을까?
인생 제2락: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아(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제2락은 공자님이 60세 이후에 천하를 주유하고 난 후에 공자님의 전성시대 때의 공자님의 삶의 애기가 아니겠는가라고 유추 해본다. 철학과 모교수가 퇴임 이후에는 공자님처럼 마음을 비우고 현업에서 물러나 제2의 삶을 또 풍류하며 즐기며 살라고 인생 제2락 ‘不亦樂乎아’에서 두 자를 따와 亦樂이라고 불러줬다.
이제 현직에서 물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뒤를 돌아볼 종심의 나이에 어릴 때 뒷동산에서 놀던 동네 친구들, 입시를 위해 경쟁하던 학창시절의 친구들, 또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친구들, 그리고 형제들을 초청하여 맛난 음식도 나누며 사람답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집을 수선해 놓고 亦樂齋라는 당호를 붙여 놓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귀향하여 옛 친구들과 지인들과 옛날을 회고하며 사람답게 즐기며 살고 싶다.
3. 고전공부
정년퇴직을 하고 인생을 보람 있게 살고 있는 교수님들이 많이 있다. 어떤 분들은 농사일을 하거나 아예 귀촌해서 농부가 된 분도 있고, 선친을 위해 박물관을 짓고 선친의 유작을 관리하는 분도 있다. 세상을 유람하며 친구도 사기고 유유자적 하며 즐기는 분도 많다.
시골 중학교 동기인 한 친구는 경남 모 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퇴직하고 대구의 신학대학 박사과정에 등록하여, 매주 목요일 새벽에 대구에 올라와 하루 종일 신학공부를 하고 밤 늦게 창원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이 친구는 재직 시 바빠서 못했던 신학 공부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한다. 이제 신학을 공부해서 신부가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닐테고, 평생 책을 가까이 했으니 싫증도 나련마는 또 어려운 신학연구라니 대단한 용기라 생각하며, 제2인생을 열심히 하는 친구가 정말 존경스럽다.
선배님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하지만은 이제 古稀를 넘기고 보니 인생살이는 사람의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부터라도 인생을 사람답게 사는 길이 뭘까 고민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는 바깥 사회와 교류하면서 마음 맞는 분들과 주역과 논어 공부를 매주 하루 금요일에 하기로 했다. 어찌 보면 자연과학을 대상으로 공학을 전공한 공학도가 타 분야인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공학도가 인문학 강좌를 수강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큰 마음먹고 올 한 해는 열심히 하기로 했다 .
헤르만 헤세의 저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ss und Goldmund)를 학창시절에 읽은 적이 있다. 지성을 대변하는 나르치스와 감성과 부를 상징하는 골드문트는 서로가 이루지 못한 것을 상대를 통하여 부러워하는 내용이라 기억이 된다.
주역은 복희씨와 문공의 대를 이어 공자님 대에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또한 수학이 주역에서 나왔다는 것도 새롭게 접하였다. 단순히 점보는 것이요 잡학이라고 생각했던 주역이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게 더 더욱 새롭다. 동양학을 통해서 지금까지 멀리서만 바라만 보던 바깥세상과 더 많이 교류하며 사람답게 숙성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