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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몸치의 댄스일기24 (빗속의 왈츠향연)
2003. 8. 23. 토요일. 하루 종일 비. 그리고 밤에도 퍼붓는 빗줄기.
이날의 날씨를 기억하기 힘들면 기상청에 확인해보면 틀림없이 서울지역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음이 확인될 것이다. 그리고 밤에도 많은 비가 쏟아 부었다.
단체강습을 받는 동호회의 회원들과 만나서 필라에서 8월 30일 파티행사에 시범을 보일 팀끼리 연습을 했다.
그날 디어댄스에서 시범을 보일 파티 날의 내 시범 짝꿍과 왈츠의 초급 기초 루틴을 연습하는데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에 한강 둔치의 잔디밭에서 연습을 한적 있는 다른 학원에서 모던을 개인레슨 받는 숙녀 분이었다. 내가 [콘트라첵]을 처음 배우자마자 한번 시험해보려다 한강 둔치 잔디밭에서 함께 넘어져 뒹군 사건이 있는....
열흘 정도 일본으로 휴가를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면서 시간되면 잠깐 얼굴이나 보고 싶다며 차 한 잔 하자는 제의였다.
어쨌든 나를 찾아주고 보고 싶다니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숙녀가 일부러 찾아주는데 싫다고 할 이유는 없으니까....ㅎㅎㅎ
필라 근처로 오라고 요청하고 난 연습을 좀 더 하다가 밤9시쯤에 나와서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니까 이미 근처에 와서 기다린다고 했다.
내 차에 일단 숙녀 분을 모시고 휴가 갔던 얘기는 서로가 관심도 없었다. 어차피 왈츠 때문에 알게 된 인연이다 보니 지난번 한강 둔치의 잔디밭 연습 이후에 첫 만남이었지만 다른 얘깃거리는 서로가 관심도 없었고 그저 왈츠와 모던 댄스 얘기가 중심 화제가 되었다.
자기는 열흘간 쉬다가 오늘 레슨 받는 학원에 나갔는데 몸이 굳어서 잘 되지도 않는다면서 하소연을 해댔다.
그리고는 난 얼마나 더 기량이 향상되었느냐며 그게 가장 궁금한 듯 했다.
그래서 난 최근에 새롭게 연마한 몇 가지 왈츠의 고급 기술 예를 들면 [앤]과 [원] 박자에서 푸쉬할 때 가슴부터 다리로 활용하여서 길고 곧게 다리를 내뻗어서 시원스럽게 푸쉬 및 스윙하는 기술. 글구 상체의 세련된 스트레칭에 관한 몸 늘림 기법 등. 내가 최근에 연습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 얘기를 듣고 물러날 숙녀분이 아닌 줄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놀러간 동안에 난 많이 배웠다며 부러움과 호기심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그 외에도 동작은 서툴지만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왈츠의 고급 기법들을 익혀보려고 애를 먹으며 노력하는 중이라고 하니까 당장 어디 가서 그걸 몸으로 좀 보여 달라고 했다.
바깥에는 비가 퍼붓고 있어서 차창도 내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미 밤9시가 넘었고 이 시간에 문을 열어놓은 연습장소가 없는 건 뻔한 현실. 별수 없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소는 딱 한 군데뿐이었다.
왈츠를 배우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그 숙녀분도 왈츠에 대한 열정은 뒤지지 않는 매니아 광이랄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글구 나도 그분에게 새로운 걸 알게 된 기술을 자랑하고 뽐내고 싶은 마음이 넘쳐났고....
늦은 시간에 갈 곳이라곤 딱 한군데 또 별수 없이 한강 둔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곳이 그분의 집근처여서 모셔다 줘야할 입장이었고. 더군다나 지난번에 이미 길도 터놓은 상황이었다.
차가 가는 방향만으로 그분도 말하나마나 먼저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짐작을 한 듯 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또 그곳으로 가려는 거죠? "
그분이 먼저 선수를 치며 미소 짓고 있었으니까...!
두말하면 잔소리. 이 비오는 밤중에 왈츠 연습하러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24시간 개방된 개인전용 연습장이 없는 현실에서...
지난번에 간 경험이 있어서 헤매지 않고 그곳을 찾아갔는데 비가 퍼붓는데도 차를 주차시킬 장소가 없을 정도로 많은 차들이 이미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겨우 주차를 시키고 우리는 지나오면서 봐둔 7호선 전철이 지나가는 한강 다리 밑으로 우산을 각각 받쳐 들고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한강둔치의 간이매점에서 음료수와 주전부리감까지 준비해서...
막상 7호선 뚝섬 근처의 전철 다리 밑에 가보니까 비를 피해서 군데군데 교각 아래에 이미 다른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자리를 점령하고는 소주잔들을 기울이고 있었다. 비를 피할 곳이라곤 다리 밑이 가장 적합한데.
각 교각 밑을 둘러보아도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은 모두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군데는 오토바이 폭주족 청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굉음을 울리고 있어 공연히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곳은 도저히 우리가 왈츠를 가지고 놀 곳은 못된다고 판단 들어서....
다시 차를 주차해둔 방향으로 걸어오니까 강변북로에서 한강다리를 건너는 자동차의 회전식 나들목 다리가 나타났다. 각각 우산을 받쳐 들어도 옷도 젖고 신발도 젖었고...
전철 다리 밑은 그래도 비를 피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자동차용 나들목 회전식 다리는 폭이 좁아서 그 아래는 비를 피할 공간이 충분하지 못하고 비가 뿌리고 들어왔다.
그렇지만 맨 하늘 아래보다는 의지가 될 것 같아서 우리는 그 아래에 자리를 정했다. 그곳에는 비가 들이치니까 사람들이 없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만 간간히 있었다.
회전식 자동차 나들목 다리 아래였지만 비를 피하기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그냥 비가 오는 대로 내리쳤지만 그래도 마음적으로는 맨 하늘 아래의 잔디밭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내가 요즘 새로이 습득한 가슴 아래부터 내뻗는 다리로 이용해 굽히지 않고 다리를 쭉 뻗어서 푸쉬와 스윙하는 걸 자랑하면서 이건 어지간한 여자들은 받아줄 수도 있네 없네, 키가 맞지 않거나 기량이 안 되면 글구 다리와 발목에 힘이 안 붙으면 한쪽 다리로는 체중을 받쳐주지도 못하고 어쩌고 자랑 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옮기면서 실컷 뽐내며 떠벌거리니까...
그 분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빨리 해보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자기한테 한 번 시험해보라며... 그리고 어떻게 하는 건지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 자세와 동작을 보이기 위해서 내 우산을 그분이 받아서 내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비를 받쳐주었다.
그렇지만 빗줄기가 제법 강해서 우산 하나로 받쳐주는 것 가지고는 바깥에서 왈츠의 스텝 동작 시범을 보이는데 충분하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분은 자기 우산은 자기가 받쳐 들고, 내가 동작을 취하는데 따라 다니면서 내 우산으로 나를 받쳐주는 시늉만 보였지 내가 한 스텝을 뻗으면 최소한 몇 미터씩 진행되는데 그 우산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막아주기에는 무리인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우산 들어주는 시늉만 할 뿐이었지.
바닥은 보도블록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모래들이 약간 있었다. 그래서 비가와도 아주 맨 흙바닥이나 콘크리트 바닥보다는 감각이 구두 발에 좀 나았다. 잔디밭은 비에 흠뻑 젖어 있어서 처음에는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었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몇 가지 동작을 혼자서 구분해서 보여주다가 왈츠의 기본 루틴을 처음 부분만 연결해서 그 동작들을 응용해서 해보였다.
그 분은 우산 두 개를 편 채로 사들고 간 음료수와 간식거리 비닐봉지와 함께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기와 홀딩해서 한 번 해보자고 했다. 지금껏 내가 익힌 새로운 기술들을.
그래서 그 분과 홀딩을 하고서 함께 가슴 아래부터 내뻗는 다리를 일직선으로 쭉 뻗고 푸쉬 스윙을 천천히 해보기도 하고 각 동작에서 다운과 라이징의 묘미를 논하면서 계속 각 동작을 해보았다.
비는 내리고 있어도 공간 폭이 좁았지만 자동차 나들목 회전 다리 밑도 전혀 없는 곳보다는 아무래도 비가 덜 내리쳤지만 그래도 우리의 옷과 얼굴은 비에 점점 젖어 들었다.
각각 동작을 홀딩해서 간헐적으로 해보다가 비 때문에 아무래도 계속 할 수가 없어서 숙녀 분은 다시 우산을 받쳐 들고 나 혼자만 뽐낼 목적으로 얼마 전에 만났을 때보다 좀 더 기량이 늘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루틴 시범을 했다. 발동작은 보도블록 위라서 제대로 안되었지만 그래도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었다.
그 분은 대단한 칭찬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기 학원에서 배우는 남성들은 나보다 몇 개월 아니 기간으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선배들인데도 아무도 나 정도도 못하고 자세도 그렇게 안 나오고 홀딩해보니까 팔에 힘도 안 들어가고 어쩌고...
하여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과 감탄의 연발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쭐하지 않을 내가 아니었다. 더욱 신이 나서 비에 옷이야 젖건 말건 이미 양복 윗도리는 벗어서 차에 두고 온 상태였다.
비가 오는데도 동작을 하니까 얼굴이며 온몸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내 몸에 물기가 땀인지 빗물인지 분간도 어려웠다.
숙녀분의 칭찬에도 기분이 고조가 되었지만 언제나처럼 나 혼자 또 왈츠의 기본 루틴 자세를 잡으니까 나 자신도 슬슬 기분이 고조되고 무언가에 끌리듯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각각 동작 몇 번 해보다가 기본 루틴을 연결해서 서서히 라이징을 해보니까 업상태가 되니까 평소처럼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들이키며 상체가 쭉 늘어남을 느꼈고 그 순간 희열감과 환희를 맛보았다.
될 수 있으면 비를 적게 맞으려고 교각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으려고 의식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환각증세가 일어나니까 비를 의식하지 않게 되어갔다. 땀이 많이 나서 끈적거렸는데 비를 맞으니까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함까지 느껴졌다.
루틴을 따라가다 보니까 점점 약간이나마 의지가 되던 자동차 나들목 교각 바깥으로 어느새 벗어나게 되었다.
이미 와이셔츠는 홀랑 젖어서 맨살에 찰싹 붙어 버렸다. 구두는 다 젖어서 양말까지 질퍽거렸다. 바지도 비에 젖어서 다리에 달라붙었다.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몸을 사릴 필요도 없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식의 작은 다리교각을 벗어나서 난 자유로운 공간 잔디밭으로 나갔다. 내가 의식하고 나간 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내 몸은 빗물로 질퍽거리는 잔디밭에서 미친놈처럼 왈츠의 기초 루틴을 돌고 있었다.
마룻바닥처럼 매끄럽게 발이 뻗쳐지지는 않았지만 비에 젖은 잔디밭도 물 묻은 구둣발로 발을 내미니까 그런대로 쭉쭉 뻗쳐졌다. 그리고 [투우~] 카운터의 끌어당겨 올리는 라이징 동작은 아무 무리 없이 실현할 수 있었다.
천천히 느리게 끌어당기면서 올라가는 그 환희. 나도 모르게 호흡은 최고의 업 상태에서 이미 내 가슴을 터지도록 팽창시키고 있었다.
다리의 교각 밑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서있던 그 숙녀 분은 처음에는 비 맞는다고 그만 하라고 말렸지만 나중에는 무어라고 하는 소리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분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리지 못했다. 나중에는 그냥 내가 하는 대로 멍 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산을 받쳐 들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도 힐끗힐끗. 비가 와서 그런지 산책로에는 사람이 그리 많이 지나가지는 않는 듯 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노골적으로 나를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상한 흥분에 말려들었다. 그냥 미친놈이었다. 누가 보아도 미친놈이 아닌 담에야 비가 내리쏟는 한밤중에 그 짓거리를 할리가 없을 테니까....
내 생애에서 내가 느껴본 이상한 황홀감이었다. 제 정신이 아닌 듯 했다. 단순히 약간의 개별동작을 해보이다가 이런 사태가 발생하리라곤 나 자신도 몰랐다. 그냥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어 버렸지만 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면 순간적으로 뛰어내리고픈 야릇한 충동을 느끼듯 그런 심정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다.
빗물은 내 머리카락을 타고 얼굴을 온통 땀과 함께 범벅을 만들었다. 내 몸에 걸친 모든 것들은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막 건져낸 사람처럼 홀랑 젖었지만...
나의 기분은 이때 것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묘한 쾌감 흥분감 환각증세 정신병자가 된 듯 했다.
빗속에서 난 흠뻑 젖은 잔디밭 위를 내 몸도 흠뻑 젖은 채로 계속 몇 바퀴 돌았다.
나의 마음도 흠뻑흠뻑 아주 많이 젖어 들었다. 나의 시선은 내 머리위로 지나가는 자동차 나들목의 회전다리에서 내리비추는 가로등으로 향했다.
내 가슴은 터질 것 같은 환희에 부풀어서 라이징과 업을 할 때는 숨을 들이키고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멋에 취해서 내 몸은 가뿐했다. 새털인양 자꾸 공중으로 날아 오를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들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환희의 눈물이 어느 때부터인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솔직히 그것은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내 귓가에는 내가 왈츠를 처음 배우면서 가장 먼저 연습곡으로 선택한. 패티패이지의 [체인징파트너]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환청이었지만 오늘 낮에도 댄스 학원에서 정상적인 템포 말고 아주 느리게 편곡된 [체인징파트너]에 맞춰서 약 두 시간을 나 혼자서 음악에 맞춰 돌았던 그 곡. 그것이 내 귀에 들리는 듯 했고 내 가슴속까지 스며들었다. 낮에도 느린 아주 느린 그 음악에 맞춰서 아주 느리고 천천히 라이징하며 나 홀로 환희에 젖어 들었었다.
나의 환희의 눈물과 빗물과 내 땀은 섞여서 무슨 물인지 구분 없이 내 몸과 마음과 가슴과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대로 계속 지쳐 스러질 때까지 이 희열감을 느끼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마약중독이 되면. 이런 기분일까?
단 세 개밖에 모르는 왈츠의 초급 기본 루틴을 가지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우산을 받쳐 들. 숙녀분이 샌들 신은 발이 잔디밭에 고인 빗물에 푹푹 빠지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지켜보다가 몇 번이나 소릴 질렀지만 내가 중단을 않으니까 그 분은 웃으며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그제야 나도 제 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멋쩍게 씨익 웃으며 중단했지만... 내 눈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빗물인지 땀인지 환희의 눈물인지 그 분도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동행자가 그런 행동을 했으면 미친 줄 알고 기겁을 하고 도망갔을 텐데...
그분도 만만치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있는 내가 부럽다나. 자기도 신발 벗고 함께 동참하려는 충동이 일었는데 도저히 빗속에서 그럴 용기가 안 나더라고 고백했다.
글치만 자기도 왈츠 매니아 측에 속한다고 자부했지만 내 앞에서는 무릎 꿇는다고 했다. 둘 다 씨익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사실은 처음에는 그분을 홀딩하고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여성분을 빗속에서 그렇게 하기도 뭐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내 정식 댄스 파트너도 아니고 속된 말로 내 여자도 아니고...
그런 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게고 무엇보다 서로 호흡이 잘 맞지도 않을 테고... 둘 다 숙달된 오랜 댄스 경력자들도 아닌데 서로 서툴게 홀딩하고 하는 것 보다 평소대로 나로서는 익숙한 솔로로 내 맘껏 쭉쭉 뻗어나가고 한없이 올라가고픈 희열감을 느끼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쨌든 괜한 객기로 숙녀 분을 함께 미친(ㄴㅕㄴ) 안 만든 게 잘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내 몸은 전체가 이름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지만.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난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내가 왜 이 지경까지 되었나 싶어서.... 이러다가 마약중독자처럼 폐인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어서였다.
제 정신으로 돌아와서 교각 밑으로 나와서 숙녀분이 건네주는 음료수 캔을 마셨다. 그리고 차 안에서 필라에서 연습하면서 땀으로 흠뻑 젖었던 상의 옷을 비닐 쇼핑백에서 꺼내어 위에는 대충 갈아입었는데 바지는 갈아입을 옷도 없고 해서 그냥 에어콘을 켠 채 온도만 따뜻한 쪽으로 돌려서 강하게 틀어놓고 말렸지만 돌아 올 때까지 축축하고 꿉꿉해서 매우 불편했다. 구두는 흠뻑 젖어서 물컹물컹 했고.
차안에서 옷을 말리는 동안 그분은 자기도 계속 [왈츠매니아]라고 주장했다.
난 그냥 웃었다.
난 왈츠를 배우면서 별 기이하고 해괴한 짓거리까지 다 해본 것 같다.
이제 안 해본 짓은 물속에서 왈츠를 안 춰봤고 불속에서도 안 춰본 것 같긴 하다.
근데 갑자기 이런 상상이 들었다.
만약에 내가 큰 왈츠 홀에서 왈츠에 도취되어 제 멋대로 추다가 갑자기 큰불이 났다.
그러면 난 그 불길이 다 사그라질 때까지 그 속에서 뛰쳐나오지 않고 그 불과 함께 왈츠를 추면서 함께 사그라질 것 같다.
비는 그치지 않고 잠깐씩 빗줄기가 약해지는 경우는 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후련하고 통쾌하고 조금 전에 지나간 환희의 순간을 되새기며 쌓였던 공해와 찌든 때가 벗겨진 듯한 상쾌한 감정을 느꼈다.
비 내리는 밤 속으로 발길을 돌렸다.
[댄사모] 댓글
영우
대단하십니다....그정도면 머지않아 세기적인 모던댄서가 되실 겁니다....보증합니다... 03.08.24 12:22
답글 b.s.s.
강변마을님 해도해도 너무 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초보들인 우리c반 회원님들을 남겨두시고 혼자서...... 빠른 시일에 뵙고 싶네요 03.08.24 12:38
답글 라인...♡
항상 느끼지만 정말 댄스사랑이 대단하신 분이세요.. 멋진 댄스스타일...댄스라이프를 기대해 봅니다.
cbm님
강변마을님께 댄스다이어리 게시판 하나 분양 해 주셔야 할 것 같은걸요...물론 공짜로요...ㅎㅎㅎ 03.08.24 18:51
답글 Jay Chang
반갑씁니다. 댄사모 호흡씩을 완전 득도하신 것 같씁니다. 많은 분들이 이를 모르고 댄스를 하시지요. 장하십니다. 방문시 이 분과 한번 상면할 기회가 있어면.. 03.08.26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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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2. 3 다음카페 [사즐모]에 “예전글”이란 제목으로 재탕으로 올렸던 댓글.
댓글
겨울나그네 07.02.03 13:07 첫댓글
왈츠에 대한 정열이 엄청나시네요..... 저도 열심히 열공하렵니다요....
슬픈날의왈츠 07.02.03 17:29
꺄~~ 청노루님!........왈츠의 환상에 빠져서 비몽사몽 꿈같이 감미로운 체인징파트너에 맞추 황홀한 춤을 ,,,,너무 환희에 젖어서 나중엔 눈물인지 빗불인지....구별조차 없는 무아지경에 빠져서 왈츠를 추시는 모습---입이 안 다물어 지네요........ 한번만이라도 그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게 왈츠 추시는 모습 보고 싶네요......! 빗속의 왈츠,,,,,,와우~....슬픈왈츠-->에서 빗속의 왈츠로 바꿔야 할까 봐요!.....글고 체인징파트너도 제닉인데....아무튼 너무 반갑네요^^........춤에 빠지면 정말 미처 버릴 수도 있겠다싶네요.....님의 글을 보면...왈츠 뿐 아니라 글도 상당한 수준이네요....뜨거운 열정에 박수 보냅니다....^^
눈동자2 07.02.03 22:15
청노루님의 왈츠의 열정 아무도 못 말리지요..왈츠의 멋과 왈츠 일기의 멋은 예술 자체입니다. 왈츠 일기를 보면 나 자신도 그 환상에 빠집니다. 달려가 그 환상에 빠저 보고 싶지만 감히 손 한번 못 내밀어 봅니다. 청노루님의 일기에서 댄스가즘을 대신 느껴 봅니다.. 다음 일기 기다릴게요. 좋은 글 감사하며 좋은 일만 있으세요..*^&^*애버에서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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