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Re:종범스님금강경 1-2
작성자發菩提心|작성시간17.05.05|조회수52목록댓글
[스크랩] 금강경 1-2/종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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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會因由分 第一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 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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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를 열게 된 연유를 알리는
바로 이 부분,
제 1분이
금강경의 서분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금강경을 주해하신 많은 선승들께서는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부처님 최상의 설법이라고 하였다.
32분까지의 모든 가르침이
사실 이 제 1분에서 다 설해 마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실만큼
제 1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 것도 설한 것이 없고,
우리가 공부해야 할 만한
그 어떤 가르침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그저 평범한 부처님의 일과를
잠깐 이야기 한 것을 가지고
그렇게 거창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수 있다.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이러한 부처님의 일과를
단순하게 겉모습만 본다면
깨달음의 한 줄기 작은 빛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이러한 하루 일과를
●●●온전히 살고 계시는 💎💎💎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면
수많은 선사 스님들의
●●●그러한 고결한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음을 제가 들었습니다.]
아난존자가 하는 말이다.
[다음과 같음을 내가 들었습니다.]
‘여시아문’
경전을 몇 번이라도 독경하고,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경전의 앞부분에 늘 등장하는 이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 말은 경전이 부처님께서 스스로 쓰신 것이 아니라
법문을 들은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들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경전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분이신
아난존자에 의해 암송되고 옮겨졌다.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시고
●●●20여 년 간을 💥💥💥
●●●홀로 전법의 길을 걸었다. 💥💥💥😭
그 수 세월이 지나
가르침을 배우려는 제자들도 나날이 늘고,
또한 부처님의 연령 또한 많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자들이
시자를 둘 것을 간곡히 권유하였고,
부처님께서는 이윽고 허락을 하셨다.
☸아난존자는 총명하며 💎💎
기억력도 뛰어나고 💎💎
성품도 온화하였다.💎💎⭕⭕‼
☸더불어 외모도 출중하고
또한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라
부처님을 곁에서 시봉하기에는 적임자로 판단되었다.
부처님께서 29세에 출가하시고,
35세에 성도하셨으며,
☸55세 즈음에 비구 아난존자를 시자로 두었다.
아난은 부처님께서 80세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약 25년간을 곁에서 시봉하였다.
가장 오랜 기간 부처님 시봉을 하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아난존자가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열반을 하시자마자
상수제자,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와 우파리존자를 위시하여
500아라한을 모아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게 되었다.
물론 그 때 부처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던
아난존자의 역할이 중요하였을 것임은 분명하다.
부처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던 아난존자가
가르침, 법을 담당하고, ⭕⭕‼
출가하기 전에 이발사였던 우파리존자가
☸처음 출가하는 수행자들의 머리를 깍아 준 인연으로
☸율에 대하여 가장 많이 들었기에 ⭕⭕‼
☸☸율을 담당하여 결집을 이루게 되었다.
💎☸경전을 결집하는 방법은
아난존자가 먼저 일어나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여러 대중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 때 아난존자는 언제라도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라고 시작함으로써
💎☸내 생각대로
부처님 가르침을 함부로 이야기 하지 않고,
부처님께 들었던 사실만을
온전히 대중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였다.
이 사실은
불교 경전들이 비교적 지금에 이르기까지
큰 혼란됨 없이 잘 이어져 내려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한 가지 말을 들었을 때,
백이면 백
✳✳✳다 제각기 자기 색안경으로
걸러 알아듣기 마련이다.
자기 판단과
고정관념이 개입되기 쉽고
그렇게 되면
특히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는 데 있어서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아난존자는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판단이 개입됨이 없이, 💎💎💎
아무런 가감도 없이
그대로
부처님께 들은 것들만
있는 그대로 말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말할 때
대부분 ‘내 말’인 것처럼 이야기하기 쉽다. ⭕⭕‼
물론 내 말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말은
사회에서, 학교에서, 책에서,
스승님들에게서 얻어 들은 말이다.
그런 것들을 우린
오직 내 잣대,
색안경에 비추어 걸러내어
‘내 식대로’
조합하는 역할 정도를 할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얻어 들은 것을
‘내 생각’이라고 고집하며,
‘내 말’인 것처럼 이야기 하곤 한다. ✅
물론 자신 스스로도
그것이 온전한 내 생각인 줄로 착각하고,
옳은 생각인 줄로 착각한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나
혹은 부처님 말씀을 누군가에게 들려 줄 때는
아난존자의 이런 겸손함과 💎💎
진실함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 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고,💎☸
말을 순수하고 전달할 수 있으며,
‘내가 옳다’라는
아집과 아상이 비워진💎☸⭕⭕
텅 빈 진실을 말 할 수 있다.⭕⭕‼
현실은
그저 입가에 떠오르는 말을
아무런 걸러짐 없이 💥💥💥
그것도 자기 생각인 양 💥💥💥
마구 끄집어내다 보니 💥💥💥
여러모로 번거롭고
복잡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에게 주워들은 내용을
내 말인 양 마구 토해 내다보면,💥💥💥
자신 내면에서
침묵과 명상을 통해 ⭕⭕⭕‼
향기롭게 피어오르는 진실을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팔만대장경이라는
수많은 경전을
이렇게 생생한 부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던 데는
아난존자의 역할이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가감 없고 ⭕⭕💎💎‼
진실한 아난존자의 음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일시에,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큰 비구 스님 1,250인과 함께 계셨다는 내용이다.
그때 사시(巳時)에
부처님께서 공양 시간이 되었는데,
💎☸부처님은 한 끼, 일종식(一種食)을 하셨다.
별도로 다이어트 할 필요가 없다.
💎☸가사와 발우를 수하시고
사위성, 사위국 수도에 들어 가셨다.
기원정사는 사위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인도는 사원이 산중에 있지 않았다.
도심 가까이에 있다.
☸절이 어떻게 산 속에 있습니까?
라고 하면서
태국 사람들은 우리 나라 절을 보고 깜짝 놀란다.
태국 사람들은
한국의 사원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한다.
태국은 이웃이 바로 절이다.
차례차례라고 하는 것은
지역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가 중심인 지역도 있고,
음식이 중심인 지역도 있고,
유흥가가 중심인 지역도 있다.
부처님 제자들은 그 지역을 가려서 다녀야 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전부 가리지 않는다. ✅✅⭕⭕💎‼
💎☸부자 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신분이 높은 집이나
낮은 집을 가리지 않는다.⭕⭕⭕‼ㅡ정등
인도사회는 독특한 차별주의가 있다.💥💥💥
사성제 계급이 있어서
그것이 인종차별도 되고,
계급차별도 되고,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많았다.
아리안 족은 피부색이 깨끗했을 것이다.
💎☸평등이란 있을 수 없었다. 💥💥💥
💎☸고질적으로 정착된
차별주의와 계급주의를 💥💥💥
부처님이 다 깨었다. ⭕⭕⭕‼
그것은 아주 무서운 것이다. 💥💥💥
그러니까.
💎☸세계 민주주의의 원조는 부처님이다.⭕⭕⭕‼
🙏🙏🙏
부처님은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
💎☸
조상이 누구인가?
부모가 누구인가?
잘사는가? 못사는가?
를 일체 인정하지 않고
[지금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 ⭕⭕⭕‼✅✅
그 행동만 중요시 하셨다.☸☸☸💎💎
그것이 인과다. ✅✅⚡⚡⚡🔥🔥🔥
그 인과 밑에는 평등이다.💎💎☸☸✅✅🔥🔥🔥
🌿🌿평등없는 인과는 없다. 💎💎☸☸⭕⭕⭕‼⚡
기본적으로는 다 평등하다. 💎💎☸☸
💎☸그 차별은 어디서 나오는가?
자기 행동, 업에서 나온다.
💎☸그래서 업보만 있지 불평등은 없다. ⭕⭕⭕‼
💎☸업보는 있지만 불평등은 없다. ⚡⚡⚡
☸☸왜 차별이 나오는가?
💎☸그것은 하는 행위가 달라서⭕⭕‼
차별이 나오는 것이지,
신분이 달라서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그 신분과 계급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평등과 인과만
인정한 분이 부처님이다. ⭕⭕‼💎💎💎☸☸☸
그것을
차제걸이(次第乞已)라고 한다.
차제걸이(次第乞已),
차례차례(순서대로)로
탁발(걸식)을 다해 마치고
환지본처(還至本處),
본래 계시던 자리로 돌아 오셨다.
그리고
반사흘(飯食訖),공양을 하셨다.
식(食)자인데,
먹는다고 하면 먹을 식(食)이 되지만
밥이라고 하면 밥 사(食)가 된다. 흘
그래서 밥 반(飯)자가
먹을 반(飯)이 되어서
공양을 마치시었다.
수의발(收衣鉢),
가사와 발우를 거두어 제자리에 놓으시고
세족이(洗足已), 발을 씻었다.
부처님도 맨발로 다니셨다.
그리고 부좌이좌(敷座而坐),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이것이 금강경 제일 첫 번째 나오는 경문이다.
첫댓글 부처님은
💎☸그 신분과 계급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평등과 인과만
인정한 분이 부처님이다. ⭕⭕‼
🌿🌿평등없는 인과는 없다. 💎💎☸☸⭕⭕⭕‼
기본적으로는 다 평등하다. 💎💎☸☸
💎☸그 차별은 어디서 나오는가?
자기 행동, 업에서 나온다.
💎☸그래서 업보만 있지 불평등은 없다. ⭕⭕⭕‼
업보는 있지만 불평등은 없다.
왜 차별이 나오는가?
그것은 하는 행위가 달라서
💎☸평등 없는 인과는 없다⚡⚡⚡
업보만 있지 불평등은 없다⚡⚡⚡🌿
인과와 평등만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업보는 있지만 불평등은 없다⚡⚡⚡🌿
인과 업보 자체가 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