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의 '진보 교육' 행보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6월 29일 취임 2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부터 야간 자율학습에서 학생들을 해방시키겠다"며 야간 자율학습 폐지를 천명했다. 이 교육감은 2014년 취임 이후 그해 2학기부터 등교시간을 9시로 늦추며 사실상 0교시를 폐지했다.
이 교육감은 "'야자'를 폐지하고 그 시간에 학생들이 진로 탐색이나 관심분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학생들이 잠재력을 일깨우고 상상력을 발휘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 교육감의 '야자 폐지' 선언은 학생 인권을 보호하고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우며 획일적인 입시 위주 교육 풍토를 진로 교육 중심으로 옮기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도교육청은 기존 야자 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이 원하는 진로와 관심분야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대학과 연계한 '예비대학 교육과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무턱대고 야간 자율학습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진로 탐색을 위한 대체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의미다.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운영되는 이 교육과정에는 경기도와 서울 외곽 소재 대학이 참여할 수 있다. 참여 대학은 인문학, 예술 분야는 물론 새로운 IT의 인공지능 분야까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진로 탐색 기회와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 교육감은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 대학에는 좋은 홍보 기회가 되고 학생들에게는 유용한 진로 탐색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경기도내 고등학교의 야간 자율학습은 학생과 학부모의 요청이 있을 때 학교장의 판단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도교육청이 밝힌 도내 고교의 야간 자율학습 참여율을 살펴보면 1학년이 19.3%, 2학년이 17.9%, 3학년이 23.8%로 10명 중 2명이 야자에 참여하는 셈이다.
▲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사진 제공=경기도교육청>
그동안 도내 고교 대부분이 자율적으로 야간 자율학습을 운영해 왔지만, 일부 고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반강제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야자'가 아닌 '야타'"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학생들의 꿈과 끼, 진로 중심의 대입 제도가 자리 잡아야 하는 시점에서, 입시 학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자기주도 학습 능력과 진로 교육을 공교육에서 더욱 강화해 가겠다는 도교육청의 이번 결정은 교육적으로 진일보한 것이라는 반응이 크다.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이성권 대표(서울 대진고 교사)는 "학습은 자기주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학생들을 수동적 학습 문화로부터 해방시키고 학교문화를 좀 더 자유롭게 학생 중심으로 이끌 수 있어 야자 폐지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야자 폐지는 성적 위주의 수동적 교육 문화를 폐기한다는 선언적인 의미가 있다. 야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어울려 놀 시간과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학력으로만 평가하는 학부모와,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야자 폐지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학교가 야자를 꼭 필요로 하는 아이들까지 강제로 학교 밖으로 몰아내는 식의 기계적 대응을 해선 안 되며, 저소득층 학생 등 야자가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학교 도서실을 개방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조치로 사교육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학원에 갈 아이들은 야자 시간에 이미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며 "모든 아이들이 다 야자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교육 시장에 미칠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야자 폐지를 찬성한다는 누리꾼 A씨는 "현재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지식은 과학의 발달로 앞으로 10년만 지나도 필요 없어질 것"이라며 "학생들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탐구심과 호연지기, 자신감, 도전정신을 키우고 더 나아가 인성과 철학, 인문학적 사고를 가르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누리꾼 B씨 역시 "지구상에 늦은 밤까지 애들을 책상 앞에 앉혀놓는 나라가 어디 있나. 야자와 야근이 당연시되는 황당한 나라가 우리나라"라며 "야자 때문에 고통 받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위해 야자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능과 내신성적의 위력이 여전히 막강한 현재의 입시 체제 아래에서 '야자 폐지'는 결국 사교육만 확대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은 2011년 야간 자율학습을 폐지하려 했지만 "야자 폐지 이후 사설 독서실을 이용하느라 사교육비만 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야간 자율학습 폐지를 백지화했다. 한편에서는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누리꾼 C씨는 "사교육 시장에서는 야자 폐지를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야자가 있을 때는 보통 7시부터 학원 강의가 시작되는데, 야자가 폐지되면 학원 시작 시간이 앞당겨지면서 학생들의 사교육 부담감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자신을 교사라고 밝힌 누리꾼 D씨는 "우리 학교는 자율적으로 야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야자를 하는 학생들 중 상당수는 학원이나 독서실을 다닐 여유가 없는 학생들"이라고 지적했다. D씨는 "야자가 사라지면 그 학생들은 어디로 가나. 입시 제도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야자를 없앤다는 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기회를 뺏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기도교육청의 야간 자율학습 폐지 발표는 기본적으로 학생 인권 보호와 진로 교육 확대라는 취지에서 환영할 만한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야간 자율학습 폐지로 인해 야자를 필요로 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불편도 발생함에 따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을 바로세우기 위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선구안과 함께, 당면한 교육 문제 역시 적극 해결하려는 교육 당국의 의지가 적극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