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경고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6장 19절)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가 교만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사건이 나온다. 이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교만에 대해 너무 심하게 정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교만이란 죄의 항목을 무겁게 다루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저 교만하면 안되지 하는 원론적인 생각만 하고 무심히 넘어가곤 했던 것이다. 평화시장에서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해지기 시작했다. 자녀도 남부럽지 않게 2남1녀를 두었으며 크게 걱정거리를 가진 것도 없이 세상에서 말하듯이 잘나가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하나님이 나의 바쁜 형편을 아실 것이라 생각하며 주일 밤, 수요일 밤 예배에는 결석을 많이 했다. 그때 교우나 목회자들을 만나면 왜 그리 부끄럽고 미안한지 고개를 못 들고 얼버무려 피하려 애를 썼다. 그래서 그때마다 이제는 교회에 봉사도 하고 출석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매번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았다. 내가 먼저 예수를 받아들여 아내를 전도하고 집안을 전도하였는데 이처럼 사업을 핑계로 교회에 열심을 내지 못하자 아내가 옆에서 핀잔을 주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축복을 받았는데 교회에서 봉사도 하지 않고 예배 참석도 소홀히 하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교회 일에 다시 열심을 내었다. 자연히 집사, 장로의 직분도 받게 되었고 서서히 교회에서 중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차츰 나의 교회요, 나의 일이라는 의식이 들게 되고 그러면서 더 열심히 충성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주장을 많이 하게 되고 독주하는 경향이 생겼다. 교회 일에 양보를 하지 않을 만큼 믿음의 교만도 생겼다.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거나 행동할 때에는 일도 안 하고 헌금도 안 하면서 자기주장만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내 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꼭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등 믿음의 교만이 날로 더해갔다.
그러던 중 1979년 늦여름에 담임목사이신 홍순우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심방을 함께 가자는 전화였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 교회로 갔다. 아침 10시경부터 창신동 달동네를 비롯하여 신당동, 이문동 등 열세 집을 심방하는 데 하루를 다 보내고 오후 3시경에서야 시간을 내서 점심으로 냉면을 먹게 됐다. 냉면을 맛있게 먹는데 이상하게도 혀가 잘 돌지 않고 음식물들이 혓바닥 밑으로 자꾸 끼었다. 그래서 제대로 씹지 못하고 냉면을 훌훌 마시고 집으로 오려고 차를 탔다. 목사님과 다른 일행은 다 교회에 내리고 혼자 차를 몰고 오는데 이상하게도 왼쪽 발과 팔이 자유롭지 못하고 안면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하다 싶어 즉시 자동차 백미러로 내 얼굴을 보았다. 그 순간 너무나 놀란 나는 온 몸에 힘이 싹 빠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쳐다 보아도 믿기지 않을 만치 안면 아래턱이 옆으로 틀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안면뿐 아니라 혀도, 팔도, 다리도 모두 왼쪽이 잘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중풍이었다. 풍에 걸린 것이었다. 차를 운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집으로는 가야 했기에 속도를 줄이고 석관동으로 차를 돌렸다.
그때 내 나이 48세, 이것으로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지나온 삶이 필름처럼 눈앞에서 돌아갔다. 소년기로부터 그때까지의 일생이 눈앞에 떠오르는데 예수를 잘 믿었어야 했다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집에 가는 30여 분 동안 48년간의 삶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토록 잘살아보려고 동분서주했던 세월이 안타까웠으며 지난날의 잘못이 연이어 떠올랐다. 앞으로 교회와 사업, 가정은 어찌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순간 뒤에서 경적을 울려댔다. 경적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장딴지를 꼬집어가며 집까지 차를 몰고 와서 문 앞에 차를 멈추고는 쓰러졌다. 멀쩡히 집을 나간 사람이 쓰러져서 돌아오니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나는 곧바로 경희의료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먼저 침과 뜸, 그리고 양방치료를 받으며 회복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병은 의사의 처방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정신적인 치료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퇴원 후 물리치료도 열심히 한 결과 약 3개월 만에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그동안 사업에 열중하느라 나는 너무나도 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기 위해 그런 병을 주신 것 같았다. 건강도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또 인간의 욕심과 아집이 모든 사건과 사고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일에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그런 사고가 생긴 것이었다. 쓰러지기 2, 3일 전부터 이상하게 음식물을 씹고 삼키는 것이 불편했는데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그런 예고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마도 그 이외에 여러 가지의 경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에 욕심을 부리느라 그런 경고에 무심하였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나의 탓이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피할 길을 주신다. 아무리 크고 어려운 일이 닥칠지라도 피할 길은 있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치료를 받으며 나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6, 7개월 만에 완전히 회복을 하였다. 질병에서 회복된 후 그 동안 하던 프린스주택㈜을 정리하면서 사업도 축소시켰다. 질병이 아니었으면 프린스주택㈜을 확장하여 재물은 많이 얻었을지 몰라도 건강과 신앙은 다 잃었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나 스스로 욕심을 억제하지 못하니까 이런 비상수단을 동원하여 나를 욕심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깨닫고 보니 이제까지 나는 교만한 사람이었다. 사업도 잘되고 교회에서도 인정을 받고 집과 이웃에서 사랑을 받으니까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지나고 보니 교만은 정말 무섭고 무거운 죄이며 인간들이 부지중에 짓기 쉬운 죄이다. 교만이 지나치면 사람을 멸시하게 되고 미워하게 되기도 한다. 큰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교만이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늦게라도 돌이킬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