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論語 : |
공자(孔子)가 제자들이나 당시 사람들과 논란(論難: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논하는 것) 하고 힐문(詰問: 잘못된 것을 따져 물음) 한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
集註 : |
주자(朱子)가 서술한 주(註)를 명칭하는 것으로 송유십일가(宋儒十一家)의 주석(註釋)에서 좋은 점을 초출(抄出) 하고 논어 주소본(註疏本)에서 주(註)를 모아 자신의 학설을 덧붙여서 집주(集註)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
大全 : |
명(明) 나라 성조(成祖)가 영락 년(永樂年) 중에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를 근간(根幹)으로 하여 국가에서 발간을 한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이다. 이 영락대전본은 명나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로 채택했다. |
|
★ 공야장(公冶長) 이하는 당시 사람들에 대한 논평이고, 공문자(孔文子) 이하는 고인(古人)에 대한 논평이다.
★ 格物窮理의 격(格)은 궁구(窮究)의 뜻이 있고, 물(物)은 사물의 이치(理致)를 말하므로 격물(사물의 이치를 궁 구함)과 궁리(이치를 궁 구함)는 같은 말인데 겹쳐서 나온다. 아마도 주자가 주를 달고 수정을 할 때 미쳐 못한 것으로 보인다. |
|
[二十三章]
子曰 孰謂微生高直고 或 乞醯焉이어늘 乞諸其鄰而與之온여。
자왈 숙위미생고직고 혹 걸혜언이어늘 걸제기린이여지온여。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고 말하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리려 왔는데 이웃사람에게 식초를 빌려서 그에게 주었다.
人來乞時에 其家無有라 故 乞諸鄰家하여 以與之라 夫子言此는 譏 其曲意徇物하고 掠美市恩하니 不得爲直也라.
사람이 와서 <식초를> 빌릴 때에 그 집에 <식초가> 없었다. 그러므로 <식초를> 이웃집에서 빌려서 그에게 주었다.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가(미생고) <자신의> 뜻을 굽혀서 남의 <뜻을> 따르고, 칭찬을 빼앗고 은혜를 샀으니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나무란 것이다.
|
【章下註】
程子曰 微生高所枉雖小나 害直爲大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미생고가 굽힌 것은 비록 작으나 정직을 해친 것은 큰 것이다.
范氏曰 是曰是요 非曰非요 有謂有요 無謂無 曰直이라 聖人 觀人於其一介之取予하여 而千駟萬鐘을 從可知焉이라 故 以微事斷之하니 所以敎人不可不謹也라.
범 씨(范祖禹)가 말하기를 옳으면 옳다고 말하고, 그러면 그러다고 말하고, 있으면 있다고 말하고, 없으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인은 사람을 일개(하찮은 물건)를 주고받는 것을 살펴보아서 천사(말 4천 필)와 만종(곡식 8만 섬)을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일을 가지고 단정을 내렸으니 사람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 이유이다.
子曰 巧言令色足恭을 左丘明이 恥之러니 丘亦恥之하노라 匿怨而友其人을 左丘明이 恥之러니 丘亦恥之하노라。
자왈 교언령색주공을 좌구명이 치지러니 모역치지하노라 익원이우기인을 좌구명이 치지러니 모역치지하노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말을 듣기 좋게 잘 꾸미며 얼굴빛을 보기 좋게 잘 꾸미며 공손(恭遜)이 지나친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었는데, 나도 역시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원망을 숨기고 그 사람을 벗하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도 역시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 丘(언덕 구)는 공자의 휘자(諱字) 이기 때문에 구(丘)를 모(某)로 읽는다. 원래 군사부(君師父)의 이름은 피하여 바로 부르지 않는다. 공자의 글을 배우는 입장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
程子曰 左丘明은 古之聞人也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좌구명은 옛날에 명망이 있었던 사람이다.
謝氏曰 二者之可恥는 有甚於穿窬也어늘 左丘明이 恥之하니 其所養을 可知矣라 夫子自言丘亦恥之라하니 蓋 竊比老彭之意요 又以深戒學者하여 使察乎此 而立心以直也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두 가지의 부끄러워할 만한 것은 도둑질하는 것보다 심한 것이 있다.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으니 그가 수양(修養) 한 바를 알 수 있다. 공자께서 스스로 나도 역시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삼가 <우리> 노팽에게 비유한다는 뜻이다. 또 이 말로써 배우는 사람들을 깊이 경계시켜 이장을 살펴보게 하여서 정직(正直)으로써 입심(마음을 지킴) 하고자 한 것이다.
|
[二十五章]
顔淵季路侍러니 子曰 盍各言爾志오。
안연계로시러니 자왈 합각언이지오。
안연과 계로(자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었는데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각각 너희들의 뜻을 말하지 않느냐?
子路曰 願 車馬 衣輕裘를 與朋友共하야 敝之而無憾하노이다。
자로왈 원 거마 의경구를 여붕우공하야 폐지이무감하노이다。
자로가 말하기를 거마를 타고 가벼운 갖옷(가죽 옷)을 입는 것을 붕우와 공유(共有) 하여 거마와 경구가(之) 떨어진다(해진다)고 해도 유감(遺憾)이 없고자 합니다.
《皇本, 石經本 해석》
자로가 말하기를 거마와 의구(의상 :朝服 또는 祭服)를 붕우와 공유하여 거마와 의상이 떨어진다고 해도 유감이 없고자 합니다. [皇本, 石經本에는 “車馬 衣裘”로 輕 자가 없다.]
顔淵曰 願 無伐善하며 無施勞하노이다。
안연왈 원 무벌선하며 무시노하노이다。
안연이 말하기를 <자신의> 유능함을 자랑하는 것이 없으며, 공로(功勞)를 과장(誇張)함이 없고자 합니다.
《古註 해석》
안연이 말하기를 <자신의> 유능함을 자랑하는 것이 없으며, 수고로운 일을 베풀기를 없고자 합니다.
子路曰 願 聞子之志하노이다 子曰 老者安之하며 朋友信之하며 少者懷之니라。
자로왈 원 문자지지하노이다 자왈 노자안지하며 붕우신지하며 소자회지니라。
자로가 말하기를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노인들이 편안하게 여기도록 하며, 붕우들이 믿게 하며, 젊은 사람들을 회은(懷恩: 은혜로써 품어줌) 하는 것이다.
★ 일반적으로 논어에서 안연과 계로가 나왔을 때 안연이 앞에 있고 계로가 뒤에 있는 것은 스승을 모시고 있을 때 연치(年齒: 나이)의 차례로 쓰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앞에 쓰고 적은 사람을 뒤에 쓴다. 그런데 스승의 앞이 아니고 학문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도학(道學)이 높은 사람이 앞에 있고 낮은 사람을 뒤에 쓴다. 학문을 이야기할 때는 안연, 계로라고 이야기하고, 스승의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계로, 안연이라고 이야기한다.『顔淵季路侍는 논어를 기록한 사람이 도학의 높이로 기록한 것이고, 子路曰이 먼저 나오는 것은 연치(年齒)의 순서로 대답을 하기 때문에 그 순서로 쓴 것이다.』
|
或曰 勞는 勞事也니 勞事는 非己所欲이라 故 亦不欲施之於人이하니 亦通이라.
어떤 곳(古註 : 皇侃의 疏)에서 말하기를 노는 수고로운 일이니 수고로운 일은 자신이 하고 싶은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역시 남에게 수고로운 일을 베풀고자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뜻은 통한다.
老子 養之以安하고 朋友를 與之以信하고 少者 懷之以恩이라 一說에 安之는安我也요 信之는信我也요 懷之는懷我也라하니 亦通이라.
노인을 편안함으로써 봉양해 드리고 붕우를 신의(信義)로써 함께하며 젊은이를 은혜로써 품어주는 것이다. 일설에 안지는 나를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고, 신지는 나를 믿는 것이고, 회지는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뜻은 통한다.
【章下註】
程子曰 夫子는 安仁하고 顔淵은 不違仁이요 子路는 求仁이니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공자는 인을 자연스럽게 행하였고, 안연은 인을 떠나지 않았고, 자로는 인을 추구한 사람이다.
又曰 子路 顔淵 孔子之志는 皆 與物共者也라 但 有小大之差爾라.
또 말하기를 자로와 안연과 공자의 마음은 모두 상대와 더불어 공유하는 것이다. 다만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又曰 子路는 勇於義者라 觀其志하면 豈可以勢利拘之哉아 亞於浴沂者也라 顔子 不自私己라 故 無伐善하고 知同於人이라 故 無施勞하니 其志可謂大矣라 然 未免於有意也라 至於夫子하야는 則如天地之化工이 付與萬物이로되 而己不勞焉하니 此 聖人之所爲也라. -- 이하 생략 --
또 말하기를 자로는 義를 실천하는 데에 용감한 사람이다. 그의 뜻을 살펴보면 어찌 권세와 이익으로써 그를 구속할 수 있겠는가? 욕기(沂水에서 목욕한다는 뜻. 自得於中) 하는 사람의 다음이 된다. 안자는 자신의 유능함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유능함을 자랑함이 없었고 자신이 남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수고로운 일을 베푸는 일이 없고자 하였으니 그이 뜻은 <자로의 뜻과 비교하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을 갖고 행하는 것을 면치 못하였다. 공자에 이르러서는 천지가 화공(化工:만물을 造化 하는 일들)을 만물에게 부여해 주었는데 천지 자신은 수고롭게 여기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하는 것이 성인이 행하는 바이다. -- 이하 생략 --
|
[二十六章]
子曰 已矣乎라 吾 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케라。
자왈 이의호라 오 미견능견기과이내자송자야케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그만두어야겠다! 나는 아직까지 자신의 잘못을 알고서 내면(內面)으로 자송(스스로를 꾸짖음)할수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人有過而能自知者 鮮矣요 知過而能內自訟者 爲尤鮮이라 能內自訟이면 則其悔悟深切하여 而能改必矣라 夫子自恐終不得見而歎之하니 其警學者深矣라.
사람들은 잘못이 있고서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드물고 잘못을 알고서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꾸짖을 수 있는 것은 더욱 드물다. 마음속으로 자신을 꾸짖을 수 있다면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깨우치는 것이 깊고도 간절해서 잘못을 반드시 고칠 수 있다. 공자께서 스스로 끝내 그러한 사람을 볼 수 없게 될 것을 염려해서 탄식한 것이니 공자께서 배우는 사람들을 깊이 깨우쳐준 것이다.
[二十七章]
子曰 十室之邑에 必有忠信如丘者焉이어니와 不如丘之好學也니라。
자왈 십실지읍에 필유충신여모자언이어니와 불여모지호학야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10호(戶)가 사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충신(진실함)이 나와 같은 사람은 있으나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 않다.
★ 丘(언덕 구)는 공자의 휘자(諱字) 이기 때문에 구(丘)를 모(某)로 읽는다. 원래 군사부(君師父)의 이름은 피하여 바로 부르지 않는다. 공자의 글을 배우는 입장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
夫子生知而未嘗不好學이라 故 言此以勉人이라 言 美質易得이나 至道難聞이니 學之至則可以爲聖人이요 不學則不免爲鄕人而已니 可不勉哉아.
공자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데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말씀하시어서 사람들을 면려(勉勵) 시킨 것이다. 좋은 자질은 얻기 쉬우나 지극한 道는 알기 어려우니 학문이 지극하면 성인이 될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지식이 없는> 시골 사람이 되는 것을 면치 못할 뿐이니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