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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마누라가 누나로 변하다 "그 소식에 대해서 나는 조금도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달 리 초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그대를 훌륭한 오라버니라고 부르겠 어요." 방이는 얼굴을 붉히면서 나직이 말했다. "착한 형제, 그대는 나보다 나이가 적으니 내가 그대를 착한 형제라 불 러도 되지 않겠어요?"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훌륭한 마누라가 훌륭한 누이로 변하게 되었고 눈깜짝할 사이에 늙은 암탉이 오리로 변했군. 되었소. 그들은 구출해서 내보냈소이다." 방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대는...... 우리 유사형이 이미 구원을 받았단 말이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대장부의 일언은 한번 쏟아내게 되면 무슨 말이든 뒤쫓아잡을 수가 없 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그대에게 구출하겠다고 응낙했으니 물론 구출 을 했지." 방이는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구했죠?" 위소보는 웃었다. "그거야 물론 묘책이 있지. 다음에 그대가 그대의 사형을 만나게 되었 을 때 그가 그대에게 자연 들려 줄 것이오." 방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고 천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 다. "천지신명이여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보살께서 보살피셨구나." 위소보는 방이가 이토록 마음 깊숙한 곳까지 기뻐하는 양을 보고 속으 로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나직이 코웃음치고 더 말하지 않았다. 목검병은 말했다. "사저, 천지신명과 보살에게 감사할 줄 알면서 어째서 그대의 착한 형 제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지 않죠?" 방이는 말했다. "착한 형제의 커다란 은덕은 한 마디 고맙다는 말로 보답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위소보는 그녀의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그렇다고 뭐 보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오." 방이는 말했다. "착한 형제, 유사형은 무슨 말을 하지 않았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별 말은 없었소. 그는 그저 나에게 자기를 구출해 달라고만 했소." 방이는 음 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가 우리들에 대해서 묻지 않았나요?" 위소보는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아니오. 내가 그에게 그대가 안전한 곳에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얼 마 후에 나는 그대를 만날 수 있도록 보내 주겠다고 말했소." 방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갑자기 그녀의 두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검병은 물었다. "사저, 왜 또 울죠?" 방이는 목메인 어조로 말을 했다. "나는...... 나는 마음속으로 여간 기쁘지 않아." 위소보는 생각했다. (제기럴, 너는 유일주라는 멀쑥하게 생긴 녀석을 위해 그토록 기뻐하다 니, 저 꼬락서니를 나로서는 눈꼴이 시어서 못 보겠다. 소현자는 나에 게 자객들의 주모자가 누군지 조사해 보라고 했으니까 나는 한번 나가 돌아보는 척하고는 돌아와 보고를 해야겠지.) 그리하여 그는 즉시 궁에서 빠져나가 발길 닿는 대로 천교 일대를 거닐 게 되었다. 북경의 천교 부근은 모두가 잡화를 팔거나 요술을 부르닌 등 강호의 잡 다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기도 했다. 위소보가 그 잡상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이십여 명의 포졸들이 벌떼처럼 달려 들었다. 두 명의 포도 군관들이 선두를 서고 있었는데 손에는 쇠사슬을 들고 있 었고 그 쇠사슬 끝에는 다섯 명의 옷차림이 남루한 장사치들이 묶여 있 었다. 그리고 포졸들 손에는 칠팔개의 밀대로 얽어서 만든 짚단이 들려 있었고 그 짚단에는 빙당호로가 잔뜩 꽂혀 있었다. 아마도 다섯 명의 장사치는 모두가 빙당호로를 파는 치들인 모양이었다. 위소보는 마음속으로 짚히는 바가 있어서 옆으로 슬쩍 물러나서 바라보 았다. 그러고 보니 포졸들은 다섯 명의 장사치들을 잡아끌면서 저쪽으 로 사라졌다. 그러자 사람들 가운데서 한 늙은이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요즘 세상에는 빙당호로를 파는 것까지도 큰 죄를 짓는 것이로구나." 위소보는 정히 질문을 던지려고 했을 때 갑자기 기침하는 소리가 들리 면서 한 사람이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그 사람은 꾸부정한 허리에 옆 머리가 허옇게 센, 바로 팔비원후 서처천이 아닌가. 그는 위소보에게 눈짓을 하더니 몸을 돌리고 걸어갔다. 위소보는 그 뒤 를 따랐다. 조용한 곳에 이르자 서천천은 입을 열었다. "위향주, 정말 기쁜 일이외다."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오립신 그들을 구출해 낸 일을 벌써 알고 있었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말했다. "그것은 별 것 아니외다." 서천천은 눈을 크게 떴다. "별 것 아니라니요? 총타주께서 오셨소." 위소보는 깜짝 놀라 물었다. "우리...... 사부님께서 오셨단 말씀입니까?" 서천천은 말했다. "바로 그렇소이다. 어젯밤에 도착했소이다. 그리고 나에게 방법을 강구 해서 위향주에게 통지하여 즉시 그 어르신과 만나도록 해 달라는 분부 를 내리셨소."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네." 그는 사부님과 헤어진 지 이미 반 년이 넘었는데도 무공은 조금도 연마 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부님께서 보시면 즉시 자기에게 무공의 진도를 따지게 될 것이고 자기로서는 그야말로 허연 백지를 내밀게 될 판이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변명삼아 말했다. "황제께서 나에게 일을 시켰기 때문에 잠시 나왔소이다. 그러니 즉시 돌아가 보고를 해야 하오. 내가 일이 끝나는 대로 다시 사부님을 찾아 뵙겠다고 전해 주시오." 서천천은 말했다. "총타주께서 분부하셨소. 그 어른신네는 북경에서 오래 지체할 수 없으 니 아무쪼록 위향주는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즉시 그 어르신을 만나 도록 하시라고 했소." 위소보는 이제 더 변명을 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체면 불구하고 서천천을 따라 천지회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향했다. 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진작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 며칠 동안 궁안에서 나오지 말것을 그랬 구나. 사부님께서는 결코 궁안으로 달려들어와 나를 잡아가지는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골목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천지회의 형제들이 거리 양쪽과 골목 입구 등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총타주를 위해 경계를 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문마다 지키는 사 람이 눈에 띄었다. 후청에 이르게 되었을 때 진근남은 한복판에 앉아서는 이역세, 관안기, 번강, 현정도인, 기표청 등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위소보는 앞으로 달려나가 땅바닥에 엎드려 부르짖었다. "사부님, 어르신께서 오셨군요. 이 제자는 정말 보고 싶었읍니다." 진근남은 웃었다. "좋아, 좋아, 너는 정말 착하다. 모두들 너를 칭찬하더구나." 위소보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사부의 안색이 무척 부드러워 마 음을 푹 놓으면서 다시 인사말을 했다. "사부님께서는 그 동안 안녕하셨읍니까?" 진근남은 미소를 띄었다. "나는 잘 있었다. 헌데 너의 무공연마는 어찌 되었는냐? 어떤 부분에 있어서 모르는 점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 위소보는 사부가 자기의 무공을 시험해 보려 하면 무슨 말로든지 얼버 무리려고 했으나 사부님이 매우 똑똑한지라 좀처럼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판단했다.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읍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부님이 오시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부님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읍니다." 진근남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번에 나는 너를 위해서 며칠 더 묵도록 하겠다. 그리고 너를 좀더 지도하겠다." 바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 문을 지키던 한 명의 형제가 총총히 달려들어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총타주에게 알립니다. 방문 온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 사람들은 운남 목왕부의 목검성과 유대홍이라 했읍니다." 진근남은 크게 기뻐하며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우리 빨리 나가서 영접하세." 위소보는 말했다. "제자는 옷차림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만나는 것이 불편합니 다." 진근남은 말했다. "그렇구나. 너는 뒤에서 나를 기다리도록 해라." 천지회의 일행들이 나가서 손님을 맞게 되자 위소보는 대청 뒤로 돌아 가서 의자를 가져와 앉아서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유대홍의 시원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불초는 한평생 한 가지 소원이 있었소. 그것은 천하에서 명성 이 자자한 진총타주를 한번 만나 뵙는 것이었소이다. 그런데 오늘 이렇 게 소원을 풀게 되었으니 정말 기쁘기 짝이 없구려." 진근남은 말했다. "유노영웅께서 그토록 어여삐 보시니 불초로서는 정말 부끄럽기만 합니 다." 뭇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대청 안으로 들어와 주인과 손님으로 나뉘어 앉았다. 목검성은 물었다. "귀회의 위향주는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불초는 그에게 친히 사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위향주의 큰 은덕은 저희들 아래 위 할 것 없이 모두 고맙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진근남은 아직도 어떤 까닭인지 몰라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위소보는 나이 어린 소년에 불과한데 소공야께서 그토록 겸손해 하시 니 어린 소년을 너무 추켜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불초 사도와 이 유사질의 목숨은 모두 위향주가 구한 것입니다. 위향 주의 의리는 그야말로 구름을 찌를 듯했읍니다. 불초는 또한 귀회의 전 협사에게 귀회에서 어떤 일이 필요할 때는 이 오가 사도는 언제라도 명 을 받들겠다고 약속했읍니다." 말하는 사람은 바로 요두사자 오립신이었다. 진근남은 사연을 모르는지라 물었다. "전형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전노본은 본래 오립신 등 세 사람과 함께 목검성의 거처로 가게 되었 다. 그런데 가는 즉시 붙잡혀서는 술과 음식으로 환대를 받게 되었다. 그런 연후 목검성과 유대홍이 친히 뭇사람들을 이끌고 전노본에게 천지 회에 가서 사의를 표해야겠으니 길을 안내해 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총타주가 와 있을 줄을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때 진근남이 묻는 것을 듣자 간단히 경과를 이야기했다. 즉 위향주의 절친한 친구가 청나라에서 태감노릇을 하고 있는데 위향주의 부탁을 받 고서는 위험을 돌보지 않고 그곳에 잡혀 있던 오립신 등 세 사람을 구 출해 냈다는 내용이었다. 진근남은 그 이야기를 듣고 위향주의 절친한 친구 운운 하는 것이 바로 위소보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속으로 무척 기뻐서는 웃으며 말했다. "소공야, 유노영웅, 그리고 오형, 세 분은 너무나 겸손하십니다. 폐회 와 목왕부는 그야말로 한 집안 사람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한편의 사람 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손을 써서 도운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무슨 은 혜이며 보답을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까? 그 위소보는 바로 불초의 어린 제자로서 나이가 어려 철이 없는 형편입니다. 다만 의리만은 꽤나 중시 하는 편이죠."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소보가 청나라 황궁 안에 잠입해 있는 것은 본래 매우 은밀한 일이다. 그리고 그저 그가 궁안의 중요한 기밀을 탐지해 내서는 반청복명의 대 업에 도움이 되어 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큰 일을 해내다니 강호에서는 즉시 그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만약 다시 목왕부 사람들을 속인다면 친구답자 못한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립신은 말했다. "우리들은 위향주를 한번 만나 보기를 원하며 친히 그에게 사의를 표하 고자 합니다." 진근남은 웃었다. "이번 일에 관계는 없지만 모두 다 절친한 친구이니 결코 속일 수가 없 구려. 궁안으로 잠입하여 소태감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의 작은 제자인 위소보 자신입니다. 소보야, 너는 나와서 여러 선배들에게 인사를 올리도록 해라." 위소보는 대청 벽 뒤쪽에서 대답했다. "예." 그리고 몸을 돌려 나와서는 뭇사람들에게 포권의 예를했다. 목검성, 유대홍, 오립신 등은 일제히 몸을 일으키며 크게 놀람과 의아 한 얼굴을 했다. 목검성 등은 위향주가 바로 소태감인 것은 꿈에도 생 각하지 못했고 오립신, 오표, 유일주 세 사람은 자기들의 목숨을 구해 준 소태감이 놀랍게도 바로 천지회의 위향주인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며 오립신에게 말했다. "오나리, 조금 전 황궁에서 그대에게 거짓 이름을 댄데 대해서 양해하 시기 바랍니다." 오립신은 말했다. "위험한 곳에 놓이게 된 이상 물론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소. 내 조금 전에 오표에게 말한 바 있었지만 소영웅은 정말 일을 깨끗하게 처리하 고 책임감이 강하며 기개 또한 드높은 실로 대담한 인물이요. 오랑캐 궁중에 어찌 그와 같은 인재가 있었던가 하고 우리들은 모두가 이상하 게 생각했소. 그렇다면.... 흐흐흐,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있을 수 있 는 일이야." 그러면서 그의 엄지 손가락을 내밀어 보이며 끊임없이 고개를 가로저었 다. 그리고 온 얼굴 가득히 찬탄과 흠모의 빛을 띠웠다. 요두사자 오립신은 유대홍의 사제였다. 강호에서 무척 명성이 드높은 사람이기도 했다. 진근남은 그와 같은 그가 자기의 제자를 크게 칭찬하 자 속으로 크게 기뻤으나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오형, 너무나 칭찬하지 마시오. 어린애의 버릇을 잘못 들이게 될까 두 렵소이다." 유대홍은 고개를 쳐들고 깔깔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진총타주, 그대 혼자서 무림의 덕을 모조리 다 보고 있는 것같구려. 무공이 뛰어나고 명성이 그토록 쩡쩡하며 또 친히 조직한 천지회 또한 이토록 세력을 떨치는데, 더구나 거두어들인 제자까지도 이처럼 그대의 체면을 두둑하게 세워 주는구려." 진근남은 두 손을 맞잡고 말했다. "유나리께서 그와 같이 말씀하신다면 그야말로 저의 버릇까지도 잘못 들게 만들겠습니다." 유대홍은 말했다. "진총타주, 이 유가가 한평생 탄복한 사람은 몇 되지 않소. 그대의 풍 채와 위인됨은 나로 하여금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탄복케 하는구려. 이후 오랑캐를 쫓아내고 우리 주오태자(朱五太子)가 등극하게 된다면 재상 자리는 반드시 그대가 나서서 해주어야 되겠소." 진근남은 빙그레 웃었다. "불초는 덕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데 어찌 그와 같은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이때 기표청이 불쑥 입을 열었다. "유나리, 장래 오랑캐를 무찌르고 주삼태자(朱三太子)가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게 되어 대명나라를 중흥하게 된다면 천하병마 대원수의 직위는 모두 어르신께서 담당하셔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유대홍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무슨 말씀을 하는 것이오? 뭐가 주삼태자라는 것이 오?" 기표청은 웃으며 말했다. "융무태자(隆武太子)께서 순국한 이후 남은 분이 주삼태자이며 지금 행 궁(行宮)을 대만에 세워 두고 있지 않습니까? 훗날 우리 강산을 되찾게 된다면 주삼태자야말로 당연히 정통으로 군주가 되실 분이죠." 유대홍은 날카롭게 외쳤다. "천지회에서 이번에 오사제와 제자를 구해 준 것에 대해서 우리는 몹시 고맙게 생각하오. 그러나 대명천자의 정통은 조금도 차질을 빚게 되어 서는 안 되오. 기소제, 진짜 하늘의 명을 받은 천자는 분명히 주오태자 이외다. 영력천자(永曆天子)는 바로 대명나라의 정통인 것을 천하가 모 두 알고 있는데 그대는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진근남은 말했다. "유나리께서는 화내지 마십시오. 지금 눈앞의 큰 일은 바로 강호의 호 걸과 연계를 갖고 모두 함께 청나라를 무찌르는 것입니다. 장래에 주삼 태자가 제위에 오르느냐 아니면 주오태자가 제위에 오르느냐 하는 것은 아직 논하기 이른 일이외다. 그 일을 가지고 먼저 자기 편끼리 싸워서 야 되겠습니까? 대명나라 황제의 계보에 관한 정통이 누구에게 속하느 냐 하는 것은 물론 큰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하인 사람들이 일 시에 다투어서 명백하게 할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자, 술상을 차 렸으니 모두들 흔쾌하게 마시도록 하시지요.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서 손잡고 힘을 합하여 오랑캐를 모조리 때려 잡는다면 무슨 일이든 간에 천천히 상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목검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총타주의 말은 잘못되었소이다. 명분이 서지 않는다면 말로서 올바 르다 할 수 없으며 말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는 것 이외다. 우리가 주오태자를 추대하는 것은 결코 부귀영화를 탐하여 그 러는 것이 아니외다. 진총타주께서 그저 천명(天命)이 누구에게로 향하 느냐 하는 것을 알고 주오태자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우리 목왕부의 아 래위 사람들은 모두 다 진총타주의 지휘를 받들겠으며 결코 그 명을 어 기지 않을 것입니다." 진근남은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고 백성들에게는 두 임금이 없습니다. 주삼태 자께서 멀쩡하게 대만에 계시며 대만에 수십 만의 군민과 천지회의 십 수만 형제들이 이미 주삼태자에게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하고 있습니 다." 유대홍은 두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진총타주께서 수십만 군민이니 십 수만 형제들이니 말씀을 하시는 것 은 설마하니 많은 수의 사람으로 이겨 보겠다는 것이오? 그러나 천하의 수천 수만의 백성들은 모두 다 영력천자가 면전(綿甸:지금의 버마)에서 순국했으며 대명나라 최후의 황제인 것을 모두 알고 있소이다. 우리가 영력천자의 자손을 세우지 않는다면 어찌 온갖 고생을 다하고 끝내 비 명횡사하신 대명나라의 천자를 대할 수 있겠소." 본래 그의 음성은 종소리처럼 우렁찼다. 그런데 이와 같이 큰 소리로 말을 하자 더욱더 사람의 고막을 울려 웅웅거리게 했다. 나중에 이르러 서는 마음속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가눌 길 없는듯 그만 목이 메어 울 부짖는 듯했다. 진근남이 이번에 북경에 온 것은 원래 서천천이 당왕과 계왕 가운데 정 통이 누구냐 하는 일을 갖고 목왕부 백씨 형제와 다툼이 일게 되고 결 국에는 실수하여 백한송을 죽이게 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반청복명이라는 대업을 가장 중시하고 있었다. 만약에 오 랑캐를 아직 쫓아내기도 전에 자기 편끼리 내분을 일으키게 된다면 청 나라를 물리치려는 대사는 반드시 많은 장애를 받게 되리라고 생각했 다. 그리하여 그는 소식을 들은 이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남쪽에서 서 울로 돌아와 될 수 있으면 지극히 참고 견딤으로써 목왕부의 용서를 받 고자 했다. 그런데 북경에 와서 무어보니 상황은 자기가 짐작했던 것보 다 훨씬 나은 편이었고 서울에 있던 천지회의 사람들은 위소보의 통솔 하에 이미 목왕부의 수뇌와 만난적이 있으며 쌍방이 얼굴을 붉히지 않 았다는 사실에 전환의 여지가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소보가 다시 오립신 등 세 사람을 구하게 되었으니 서천천이 백한송을 잘못 죽인 일은 이제 쌍방이 그 일을 두고 서로 왈가왈부하지 않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표청과 유대홍이 당왕과 계왕의 정통성을 놓고 다시 말을 주고 받음에 따라 정세가 점차 긴장감 을 낳게 되었다. 더군다나 유대홍은 영력황제가 순국한 일을 두고 주름진 얼굴에 눈물마 저 글썽이는 것을 보자 불현듯 마음속이 쓰라려옴을 느끼며 말했다. "영력폐하께서 순국하신 것은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다 분통하게 여기 는 일이지요. 옛사람들도 초나라가 세 집안밖에 되지 않지만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초나라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더군 다나 우리 한나라 사람들의 숫자는 오랑캐보다는 백 배나 더 많습니다. 오랑캐의 세력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우리 한나라의 자손들이 그저 똘똘 뭉친다면 오랑캐를 쫓아내는 것쯤은 아무 걱정이 없으며 우리 강 산을 되찾는데 대해서 또 무슨 근심을 하겠습니까? 목소공야, 그리고 유노영웅, 우리들은 그러한 원한을 갚지도 못한 처지에 먼저 다툼을 일 으켜서야 되겠습니까? 오늘은 우리들이 반드시 한마음이 되어 서로 힘 을 합해 오삼계라는 녀석을 죽여 영력폐하의 원한을 풀고 목소공야의 원한을 갚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목검성과 유대홍, 오립신 등은 모두 일제히 몸을 일으키더니 이구동성 으로 말했다. "매우 옳은 말씀입니다. 매우 옳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거렸고 어떤 사람들은 전신을 부들부 들 떠는 것이 모두가 무척 감동한 것 같았다. 진근남은 말했다. "도대체 정통이 융무황제인지 아니명 영력황제인지 지금은 자세히 분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소공야, 그리고 유노영웅, 그리고 천하영웅, 다 만 그 누가 오삼계를 죽이게 된다면 모두들 그를 받들고 그의 명령을 듣게 될 것입니다." 목검성의 부친 목천파가 오삼계에게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목검성은 밤 낮으로 이를 갈다시피 하며 어떻게 해야만 오삼계를 죽일 수 있을까 하 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근남의 그와 같은 말을 듣자 먼저 부르짖었다. "바로 그렇소이다. 어느 누가 오삼계를 죽이게 된다면 천하영웅들 모두 가 그를 받들어 명령을 듣게 될 것입니다." 진근남은 말했다. "목소공야, 폐회에서는 바로 귀왕부와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기로 하지 요. 만약 귀왕부의 영웅이 오삼계를 죽이게 된다면 천지회의 아래위 할 것 없이 모두 목왕부의 명령을 받들고 따르도록 하겠소이다." 두 사람은 손을 내밀어 철썩 하니 손뼉을 쳤다. 강호에서 만약 세 번 손뼉을 쳐서 맹세를 하게 된면 그것은 다시 깨뜨 릴 수 없는 것이 관례였다. 두 사람이 재차 손뼉을 마주치려고 할 때 갑자기 지붕 위에서 그 누가 길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만약 내가 오삼계를 죽인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그러자 동서쪽 모퉁이에서 호통쳐 묻는 사람이 있었다. "게 누구냐?" 천지회의 지붕 위에서 경계를 서던 사람이 서둘러 다가가 질문을 던지 는 소리였다. 곧이어 팍 하는 가벼운 음향과 함께 한 사람이 지붕 위에 서 뜨락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대청에 매달려 있는 기다란 창문이 바람도 없는데 저절로 열리 면서 한 푸른 그림자가 번쩍 하더니 신속무비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동쪽에는 관안기와 서천천이, 서쪽에는 유대홍과 오립신이 서있다가 동 시에 손을 뻗쳐 팔을 벌려서는 막으려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가볍게 뛰어서 네 사람의 머리 위를 지나 이미 진근남과 목검성 앞에 서는 것 이 아닌가. 관안기와 서천천, 유대홍, 오립신, 네 사람이 힘을 합쳐도 그 사람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발이 막 땅에 닿게 되었을 때 네 사람의 손이 어느덧 그의 몸을 잡게 되었다. 관안기는 그의 오른쪽 어깨를 잡았고 서천천은 그의 오른쪽 옆구리를 움켜잡았으며 유대홍은 그의 왼팔을 움켜잡았고 오립신은 두 손을 함께 써서 그의 뒷허리께를 움켜잡았다. 네 사람이 펼친 것은 모두가 상승의 금라수법이었다. 그 사람은 결코 반항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천지회와 목왕부는 절친한 친구를 이와 같이 대하는 것이 예의요?" 뭇사람들은 그 사람을 살펴보았다. 그 사람은 몸에 청색 장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나이는 약 이십 삼사 세쯤 되어 보였으며 몸은 비쩍 마르고 키가 큰 편이었다. 모양으로 보건데 문약한 서생인 것 같았다. 진근남은 포권을 하고 물었다. "귀하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우리의 친구였던가요?" 그 서생은 웃으며 말했다. "절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오지도 않을 것이외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움츠려 마치 한 덩이의 고기로 빚은 공처럼 변했 다. 관안기 등 네 사람은 갑자기 자기네들의 손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 게 되었고 그만 허공을 움켜쥐는 꼴이 되었다. 곧이어 찍찍 하는 비단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한 무더기의 푸른 그림자 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 진근남은 길게 소리내어 웃으면서 오른손을 질풍과 같이 뻗쳐 왔다. 그 서생은 네 사람의 손바닥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갑자기 왼쪽 발목이 움켜잡힌 것 같았다. 그는 오른발을 질풍같이 쳐내며 진근남의 얼굴을 걷어차려고 했다. 이 한 발길질에 실린 힘은 엄청나게 컸다. 진근남은 대뜸 옆에 놓인 차 탁자를 들어 막았다. 우지끈 툭 하는 소리 와 함께 홍복으로 만들어진 차 탁자는 대뜸 박살이 나고 말았다. 진근 남은 오른손을 펼쳐 그를 땅바닥 쪽으로 던졌다. 그 서생은 엉덩이를 땅바닥에 주저앉는가 했더니 곧 그의 몸뚱아리는 마치 물위를 미끄러지듯 푸른 벽돌 위를 곧장 미끄러져 나갔다. 약 두 장 쯤 미끌어져 나간 후 허리를 뻗치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벽에 등을 기댄 채 몸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관안기, 서천천, 유대홍, 오립신 등 네 사람의 손에는 각기 한 조각의 옷자락이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서생의 청색 장포에서 각자가 찢어 낸 것이기도 했다. 이 몇 번의 변화는 동작이 신속무비했다. 여섯 사람의 손 씀씀이가 너무나 깨끗해 옆에서 구경하던 뭇사람들은 이를 보고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이 가운데 가장 우렁찬 것은 역시 철배창룡 유대홍의 목소리였다. 오립 신은 연신 고개를 흔들었으며 얼굴에 부끄럽고도 탄복했다는 표정을 띠 었다. 진근남은 미소를 지었다. "귀하가 친구라면 어째서 앉아 차를 마시지 않으시오?" 그 서생은 두 손을 맞잡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폐를 끼치고자 하던 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으젓하게 걸어와서는 뭇사람들에게 둥글게 읍을 하더니 가장 말석에 해당되는 의자에 앉았다. 여러 사람들은 만약 그가 친히 그와 같은 솜씨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야말로 문약하기 이를 데 없는 서생 모습의 사내가 그토록 뛰어난 상승의 무공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상 상도 못했으리라. 진근남은 웃으며 말했다. "귀하께서는 너무 겸손해 할 것 없소이다. 윗자리에 앉으시오." 그 서생은 손을 흔들었다. "감당할 수 없소이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총타주님, 불초의 성 명은 이서화(李西華)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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