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학자 중에 어느 분인가, 니까야 전체를 훑어서 붓다가 비아를 말했지, 무아를 말하지는 않았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환희봉행님의 논지이기도 하지요?^^
붓다가 말씀하신게 당신이 atta라고 알던 것은 atta가 아니라는 비아를 말할 것이지,
그게 곧 atta라는게 없다는 무아를 얘기한 것은 아니라는 말은,
불교도들간에도 다툼의 소지가 있는 말이고 그래서 이런 게시판도 있는 것이겠죠?^^
(물론 대세는 무아겠지만....)
에구... 시간나서 잡담 좀 쓰려고 했는데... 나가봐야겠네요.
나중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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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하고 들어와 이어 씁니다.^^
김성철 교수님 논문 중에, 이런 비유가 있더군요.
들판에 번져가는 불길처럼 "식"이랄까 그게 그렇게 순간의 점멸처럼 이어져간다고. 그걸 연속으로 생각해서 자아라고 느낀다는 거겠지요.
그런데 들판에는 불길이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불길이 번져갈 수도 있겠고,
그래서 비바사론에서는 나의 불길을 자상속, 타인의 불길을 타상속이라고 지칭한답니다.
무아이니 보통 생각하는 의미의 나니 남이니 하는 표현을 쓰기 껄끄러워 그런 것이겠지요.
무아라고는 해도 중생이 구별되어진다면, 나와 남이 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무아이지만 구별되는 [나(I)]는 자아(자의식) 혹은 atman으로서의 [atta]와는 다른,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나(진아)]일 수도 있겠습니다.
무아가 아니고 비아라 해도, 비아일때 찾아질 진아의 모습은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컴퓨터는 cpu라고 하는 연산 장치에 메모리라고 하는 기억 장치로 이루어져 있는데,
점멸하는 식이 기억을 보고서 자아를 상상한다는 것인데,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에서 말하는 견성이 그런 靈知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컴퓨터에는 cpu는 하나이지만 여러 프로그램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는 듯이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점멸하는 식이 나의 실상의 모습이라면 들판에 번지는 몇가닥의 불길이래도 사실 하나의 모습인 것이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뭔 말을 하려고 했던건지가 아리까리해지는... 잡담입니다.^^
첫댓글 환희봉행님 글을 보고 적어봤습니다.^^ 저로서는 잡담 밖에 할 수 없는 어려운 주제를 많이 다루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