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과학과 이성을 넘어선 기독교를 설명하지 못하면 끝장나는 것이다. 이성의 빛 아래서 산산이 부서진 기독교, 그것이 서구 교회의 운명이었다. 서구 교회는 신앙에 대한 근대의 도전에 KO 패를 당했지만 샤머니즘과 결합한 한국기독교는 앞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 앞에서 싸워 볼 것도 없이 봄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구조적으로 망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골고루 갖추고 있으니까.
영어 학교에 다닐 때 우리 반에 러시아인이 두 명 있었는데 지금 이름은 분명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배너무고프와 상노무스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두 인간은 모두 공산주의 시대에 태어나 교육받고 성인이 된 인간들인데도 러시아정교회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대단했다. 정작 지들은 교회에는 전혀 나가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사라졌다가 10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정교회에 대해서 아주 친근하게 생각하더라. 왜 그럴까? 바로 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열심히, 아주, 오래, 끈질기게, 지치고 않고 교회를 나가도 어쩐지 어색함을 느낄 수가 있다. 나는 항상 지금의 기독교는 전혀 '몸에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것'같은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제사문제다. 우리의 5,000년 전통 문화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시던 무식한 선교사 분들이 제사를 우상숭배로 간주해서 금지시킴으로서 이 땅에 대대로 집집마다 방방곡곡 제사 때문에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비극의 뿌리를 심어 놓았다. 아마도 한국 현대사에서 6.25가 형이하학적으로 가장 큰 상처를 준 사건이라면 개신교가 5,000년을 내려 온 제사를 폐지한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가장 큰 상처를 준 사건일 것이다.
당시 선교사들을 통하여 직수입된 기독교는 서구에서는 이미 한 물 지나간 보수경건주의 기독교였다. 그러므로 지금의 서양적 기독교는 긴 역사의 눈으로 보면 오래 못 갈 것으로 본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 문화와 사상과 전혀 맞지 않는 현재의 한국 기독교는 아마도 앞으로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할 것 같다. 호주는 전압이 240V이라서 한국에서 가져 온 전기제품을 임시로 쓰기는 쓰지만 오래 가면 문제가 생겨서 고장이 날 수밖에 없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반만년을 두고 흐르는 동양의 정신에 깊게 뿌리박은 한국인의 영성으로 더욱 쉽게 기독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길을 홀로 걸으시면서 개척하셨다.
이성중심의 '계몽주의'가 낳은 신념은 인간은 진보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과연 진보했던가? 인류는 이성을 과도하게 발전시켰고 자기반성 없는 인간중심의 과도한 이성은 전쟁을 낳았고 그 결과 인류는 두 가지 결정적인 '사실'에 직면했다. 즉, 홀로코스트와 히로시마 원폭이다. 미국이 누가 보아도 다 이긴 전쟁에서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일반 시민이 살고 있는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서 순식간에 20만 명의 목숨을 싹쓸이 해 버린 것이다. 이런 죽일 놈들이 어디 있냐고? 모르시는 말씀 그만 하시라.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지성인들의 이러한 근대의 결과물에 대한 철저하고도 뼈아픈 자기비판이요 자기해체요 자기반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버마스의 말처럼 근대는 미완성의 기획일지도 모른다. 하버마스가 보기에 인류의 역사적인 불행들, 학살과 전쟁과 핵은 인간의 이성이 과도하게 발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이성이 아직 '불완전하게' 발전했기 때문에, '미완'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런 오류들이 생겨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든 중세기의 기독교가 근대에 들어와 이성에 의하여 쫓겨나고 청소되어 빈 집에 포스트모던이라는 일곱 귀신이 들어와 정신을 못 차릴 세상이 되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독교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내 생각은 ‘아니올시다! 이다. 한 번 떠난 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기독교의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썰물로 썰물로 빠져 나갈 것이다. 870만이라는 기독교인이 머지않아 87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럼 우짤거냐?
어떤 세상 풍조에도 시달리지 않는 나와 예수의 일대 일의 관계를 가진 사람만이 신앙을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개인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보수 신앙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소망 무어냐? 우리 주 예수뿐이라. 주 예수 밖에 믿을 이 세상에 아주 없도다.”
나와 예수와 일대 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신앙! 이것 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 빈 집이 청소되어 깨끗해도 이 믿음만이 일곱 귀신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